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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관 시리즈 포문을 연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 편이 아주 반응이 좋더군.
배종옥 다행이네. 남자 vs 여자, 영화기자 vs 배우 등의 입장 차이가 대화를 흥미롭게 만드는 효과가 큰 거 같아.
신 맞아. 더구나 둘 다 중년층 관객인 한계를, 이 대화의 녹취를 맡고 있는 신지훈군(중앙대 2년)이 젊은층의 시선으로 적극 보완하고 있으니까. 신군은 고교시절에 이어 대학에서도 연극반에서 아마추어 배우로 활동하고 있기에 영화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기도 하고.
배 이번 주 영화인 이준익 감독의 ‘동주’를 나는 아주 감동적으로 봤어.
신 어떤 점이 특히 좋았는데?
배 윤동주 시인의 ‘서시(序詩)’는 잘 알고 있지만, 시인의 생애에 대해서는 전혀 몰랐거든. 어떻게 자랐는지, 어디서 어떻게 사망했는지 등등. 이 영화를 통해 그걸 알게 됐다는 사실만으로도 난 이 감독에게 큰 고마움을 느껴.
신 우리나라엔 인물에 대한 영화가 손에 꼽을 정도로 드물지. 한국 근현대사의 주역인 이승만이나 김구에 대한 영화가 없는 걸 보면 신기할 정도 아닌가? 그래서도 영화 보기 전에 기대가 많았어. 역사학자가 아닌 이상 윤동주에 대해 우리가 몰랐던 전기적 사실을 밝혀내기는 힘들 것이고, 그렇다고 영화적 허구를 남발하면 다루는 인물의 생애에 대한 왜곡이 될 테니, 그 줄타기를 어떻게 해낼지 무척 궁금했던 거지.
배 ‘아마데우스’(감독 밀로스 포먼)나 ‘마지막 황제’(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까미유 끌로델’(브루노 뉘텡)같이 완성도 높게 인물을 다룬 영화를 보면 그들을 통해 내 삶을 반추하는 계기가 되잖아. 영화 보는 재미에 자기 인생을 되돌아볼 기회까지 가지니 얼마나 좋아?
신 그렇지. 하지만 한국은 영화는 물론 출판에도 전기(傳記)시장이 거의 없다시피 한 현실이야. 정치인, 경제인들의 ‘자뻑’ 가득한 홍보 책자만 있을 뿐이지.
배 철학이 없어서일 거 같아. 인문학도 위기고. 또 여전히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유교 사상의 영향도 있다고 봐. 유교는 ‘지침’을 따르는 데 방점이 있지 자유로운 개인의 생각을 장려하진 않으니까.
신 망자(亡者)에 대해 나쁜 얘기 하는 걸 극도로 꺼리는 문화도 강하지. 어린 시절 억지로 읽는 위인전의 악영향도 있을 거 같아. 무엇보다 재미가 없잖아. 흉내 낼 엄두도 안 날 만큼 그레이트(great)한 사람(man)들 이야기뿐이니.(웃음)
배 동감이야. 외국에서 나온 전기는 독자들이 ‘어, 나랑 비슷한 걸’ 하고 동질감을 줄 때가 많은데 우리는 그런 스토리를 만나기 힘들어. ‘동주’의 감동이 깊었던 이유도 시인의 삶을 보면서 ‘내가 저 때 태어났으면 과연 저렇게 할 수 있었을까? 정말 대단하다. 지금같이 평화로운 시대를 누릴 수 있는 게 참 고맙구나’ 같은 자각을 할 수 있었던 까닭이야.
신 나는 좀 달랐어. 일부러 사전 정보 전혀 없이 극장에 갔는데, 영화가 끝나고 나니 내가 이미 알고 있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더라고. 오히려 윤동주에 대해 좀 더 찾아봐야겠다는 욕구가 일 정도로 가슴이 답답했어. 시나리오에 허점이 많은 거 같아.
배 그건 카메라 앵글 때문일 수도 있어. 영화는 시종일관 좁은 공간에서 인물 두엇이 살짝살짝 움직이는 것만 보여줬으니까. 관객에 따라서는 마치 상자 속에 갇힌 상태처럼 꽤 갑갑함을 느꼈을 거야.(웃음)
신 흑백으로 찍은 건 어땠어? 잘한 거 같아?
배 아주 성공적이었다고 봐. 이 감독 인터뷰 기사를 뒤져 보니 인물에 집중하길 원해서 흑백영화를 택했다고 하더라고. 또 관객들이 그동안 많이 접했던 흑백사진 속 윤동주 시인의 모습을 훼손하고 싶지 않았다고도 하고.
신 흑백영화로 인상적이었던 영화로는 아무래도 ‘쉰들러 리스트’(스티븐 스필버그)와 ‘천국보다 낯선’(짐 자무시)을 꼽을 수 있을 거야. 컬러 아닌 무채색 화면을 통해 ‘쉰들러 리스트’는 ‘이건 1940년대 실화입니다’라는 메시지를, ‘천국보다 낯선’은 황량, 스산함, 고독감 등을 효과적으로 전달한 셈이지. ‘동주’는 흑백 영상을 통해 뭐랄까, 서정성과 애잔함을 담을 수 있었던 거 같아.
배 그래, 서정성은 정말 압권이야. 강하늘(윤동주)의 육성으로 들려주는 시(詩) 내레이션은 정말 좋더라. 윤동주가 그렇게 좋은 시를 많이 썼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어. 감독은 시인 윤동주보다는 인간 윤동주를 보여주고 싶었다고 하더군.
신 하지만 28세로 생을 마감한 청년인데 ‘시인’ 윤동주와 ‘인간’ 윤동주를 분리시키는 게 가능한지 의문이야. ‘소설가(家)’가 왜 ‘소설인(人)’이 아닌데. 소설가는 ‘구라’로 얼마든지 작품을 쓸 수 있지만, 시인은 인생이 먼저거든. 시어(詩語)대로 살지 않으면 단 한 편의 시도 쓰지 못하는 게 시인이야.
배 거, 재밌는 말이네.
신 난 영화관 들어가면서 그런 암울한 시기에 그토록 아름다운 시를 쓰게 된 과정, 연유, 시인의 분투를 보고 싶었어. 그런데 영화엔 그런 내용이 거의 없더라고. ‘동주’에서 보여준 내용으로만 결론을 끌어내자면 ‘천부적’ 서정시인 정도랄까? 하지만 과연 윤동주의 실제 삶도 그랬을지 회의적이야.
배 시인이 어떤 시를 쓰기까지의 과정을 영화적으로 어떻게 풀어?
신 그게 감독의 능력이지.(웃음) ‘사도’를 찍은 감독이잖아?
배 아니야, 나는 이준익 감독이 정말 큰일을 했다고 봐. 사도세자는 그동안 많이 조명되어 왔지만 윤동주라는 인물은 어느 누구도 그리지 않았고 심지어 그리려는 생각도 못했던 거잖아. 이렇게 완성도 높은 영화로 형상화했다는 것만으로도 진짜 대단한 감독이야.
신 어쩌면 내가 관객으로서 기대가 너무 높았는지도. 일제강점기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우리가 대학을 다닌 1980년대 초만 하더라도 전두환 군부독재 시절이잖아. 제 몸에 기름을 끼얹고 불을 붙인 대학생만 4명이었어. 게다가 윤동주(연희전문 영문과)처럼 나도 영문학도였으니까. 이런 ‘죽음의 시대’에 문학을 한다는 게 무엇일까, 사람이 도륙되는 때에 시를 쓴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윤동주의 삶을 통해 그걸 보고 싶었는지도. 아마도 ‘사도’ 때 너무 놀랐나 봐.(웃음) ‘‘왕의 남자’를 만든 감독이 이런 심리적 깊이를?’ 하면서. 그건 그렇고, ‘동주’의 배우들은 어땠어?
배 연기 잘하더라. 강하늘의 섬세한 연기는 느낌이 좋더군. 나는 이번 영화를 통해 독립운동가 송몽규라는 인물을 생전 처음 접했는데, 그가 영화의 주인공처럼 인상이 남는 걸 보면 박정민이라는 배우가 역할을 아주 잘 소화했다는 얘기지. 젊은 친구들이 함경도 사투리를 어쩜 그렇게 자연스럽게 잘하는지.
신 강하늘의 연기력이 빛을 더 발할 수 있는 시나리오였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아. 유약하고 내성적인 윤동주의 모습 위주잖아. 시인이 연약한 심성을 갖고 있다는, 근거도 없는 생각은 아주 뿌리 깊게 내린 편견이야. 자료를 찾아봤더니 윤동주는 축구선수로 뛰고 웅변대회에 나가 1등도 했대. 옷맵시 내느라 혼자 재봉틀을 돌리기도 하면서 활기찬 학창 시절을 보냈다는 거지.
배 하긴 사진을 봐도 표정이 밝고 씩씩하긴 하지.
신 몽규가 동주에게 농(弄)도 걸고 이화여전 여학생과의 짧은 데이트 장면이 나오긴 하지만 뭔가 허전해. 모두 20대 청춘들이잖아. 전장에서도 사랑은 꽃핀다고, 식민지 시대에도 연애도 하고 싶고 시 잘 쓰는 남학생 특유의 허영심도 있었을 거 아냐. 그런 게 전혀 그려지지 않아서 인물들에 생동감이 떨어진다는 거지.
배 그걸 다 담으려 했다면 영화의 집중도가 떨어졌을 수 있어. 모두 보여주는 게 결코 능사가 아니거든, 영화는.
신 우리나라 사람들 애송시 설문조사하면 빠짐없이 꼽히는 시가 ‘서시’야. 영화 엔딩이 이 시가 실린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의 제목 짓는 장면인데, 이 영화엔 하늘도 바람도 없어. 별은 교도소 창살 밖으로 잠깐 비출 뿐이고.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는 시인의 생애를 그린 영화에 잎새도, 바람도 없다니 말이 돼?
배 너무 흥분하지 말고.(웃음)
신 아쉬워서 그래. 이제 한국에서 윤동주를 소재로 한 영화는 분명 더 이상 만들어지지 않을 거야. 연산군이나 광해군처럼 시각에 따라 여러 해석이 가능한 ‘문제적’ 인물이 아니니까. 세종대왕에 대한 영화가 나오지 않는 이유와 동일하지. 시인 윤동주라는 인간을 이해하려면 ① 아름다운 자연(28년 짧은 생의 절반을 보낸 고향 북간도) ② 기독교적 신앙(집안과 미션스쿨) ③ 민족주의(시대 상황과 연희전문에서 받은 교육), 이 세 가지를 알아야 하는데, 영화는 어느 하나도 제대로 담지 않았다는 거지.
배 그렇게만 볼 수 없는 것이 영화를 보는 내내 나는 시대의 억압적 상황을 숨이 턱턱 막힐 정도로 느낄 수 있었거든. 더구나 단순한 시대극이 아니라 비애감 가득한 서정적 드라마잖아. 조명 처리한 거 보면 명확하게 알 수 있어. 촛불에 의지해 원고지에 글 쓰는 장면, 성냥불 켜는 신 등은 그 불빛만으로 그 큰 화면을 채우고 있거든.
신 그랬나? 하긴 영화 직접 찍어 보면 조명만큼 어려운 것도 없지.
배 굳이 왜 그랬겠어? 마치 동화 ‘성냥팔이 소녀’에서 어린 여자애가 추위를 조금이라도 덜기 위해 성냥불을 켜듯, 일본의 압제 밑에서 위태롭게 어둠을 밝히는 청년들의 심정과 그 용기를 아름답게 영화적으로 표현한 것이지. 아주 잘 만든 영화라니까 그러네.
신 그건 그래. 영화 시작하는구나 싶더니 어느새 끝날 때가 됐더라구. 러닝타임이 110분이나 되는 거 알고서 깜짝 놀랐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봤으니까.
배 그래서 더 감독이 대단하다는 거야. 액션이 있나, 러브신은커녕 키스신 하나 있나, 아무것도 없는데 쏴아악 몰입시키거든. 아마 찍고서 안 쓴 필름들 많을 거야. 감독이 작심하고서 모든 가지들 다 쳐내고 인물에 집중하면서 최소한도만 보여주려고 한 영화야. 더 보여주고 싶은 바로 그 지점에서 딱 멈추는 영화! 한국 영화에선 만나기 힘든 아주 희귀한 경우지.
신 듣고 보니 공감이 되네. 자, 한 줄 정리와 별표.
배 ★★★★★ 만점. ‘윤동주와의 만남, 가슴이 아프다.’
신 아니 만점을? 나는 ★★★. ‘잘 만든 라디오 드라마를 접한 느낌.’
둘의 대화가 마무리 될 즈음 신 기자는 배우 배종옥이 ‘동주’에 별 5개 만점을 줬다는 사실을 영화 마케팅에 쓰면 효과적이겠다 싶어 이준익 감독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 감독이 ‘영 안 풀리던’ 시절 충무로 ‘씨네월드’ 사무실에서 짜장면을 (탕수육 없이) 몇 번 나눠 먹은 이후 그는 신모의 전화를 받아주는, 몇 안 되는 영화인 중의 하나가 됐다. 사적인 안부 통화였지만 ‘동주’의 이해를 위해 몇 마디 옮긴다. (참고로, 그는 매우 직설적이고 뒤끝이 없는 타입이다.)
신 배종옥씨가 세상에, 별 5개 만점을 줬다니까요. ‘레버넌트’도 4개였는데.
이준익 하하, 역시 수준 있는 배우야. 신 기자는?
신 저는 별 둘 반. 근데 다들 좋다는 평이라 늘려야 하나, 고민 중입니다.
이 (버럭 흥분하며) 아니야, 그대로 써. 별점 매기는 거 보면 수준이 딱 드러나거든. 기자들도 영화를 아는 사람, 볼 줄 모르는 인간, 천차만별이거든. 그대로 쓰라고.
신 방 안에만 앉혀놓고 여기는 만주, 방 구조만 바꿔놓고 여기는 도쿄, 돌다리만 보여주면서 여기는 교토, 그런 식이던데 해외 로케 좀 하시지 그랬어요?
이 5억원짜리 저예산 영화잖아.
신 아니, 천만 관객의 흥행감독이 돈 좀 쓰시지 않고?
이 하하, 망할까봐.
‘동주’는 2월 24일 오전 현재 누적 관객 32만2300여명을 기록하며 개봉 일주일 만에 손익분기점을 넘어 순항하고 있다.
http://pub.chosun.com/client/news/viw.asp?cate=C05&mcate=M1003&nNewsNumb=20160319666&nidx=196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