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며들다
이 희 숙
스며들다라는 말은 사전에 이렇게 적혀있었다. 스미다와 들다가 결합하여 만들어진 합성 동사로써 '속으로 배어들다, 마음깊이 느껴지다'라고 뜻을 풀이하고 있었다. 최근 들어 이 단어가 계속 머릿속을 맴도는 것은 무엇때문인가. 자신에게 묻고 있었다. 나이가 들면서부터 모임에 드는 것을 신중하게 생각해야 했다. 경제적인 부분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해오던 모임도 정리해야 한다고 애를 쓰는 중이다. 그런데 모임을 그만 둔다는 것은 용기가 필요했다. 익숙함때문이다. 편안함과 추억의 시간들이 있기 때문이다. 관계에서 더 이상 특별히 마음을 쓰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아직도 정리를 못하고 있을 때 우연히 다가 온 인연으로 인해 모임에 회원으로 들게 되었다. 비슷한 감성과 취미와 같은 곳을 바라보는 모임이기 때문에 마음이 움직인 탓도 있었다.
마음은 이율배반적으로 움직였다. 새로운 것이란 낯설다. 낯섬은 예민하게 모든 신경을 자극한다. 이어서 호기심을 동반한다. 낯설다는 것은 긴장을 해야 한다. 낯설음은 다시 호기심으로 반짝인다. 나의 세포는 긴장감으로 곤두서 있다. 낯선 사람들과 함께 행사를 진행하는 동안 피로감이 느껴졌다. 이런 감정들로 인해 스며든다는 것에 대해 생각이 든 것 같다. 이런 말을 하면 어떤 이는 이 나이에 새로운 것을 왜 굳이 시도 하는지를 말하기도 할 것이다. 의미는 다르나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사람은 용기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 속에는 열정과 호기심이 살아있기 때문이다.
사람의 성격은 타고 나는 것일까? 만들어 지는 것일까? 선천적으로 타고 나기도 하고 환경에 의해 만들어지기도 한다고 한다. 사람을 좋아하면서도 번잡함은 힘들다. 함께 하는 것을 즐기면서도 혼자 있는 자유로움이 좋다. 누구나 양면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외향적인 성향의 사람은 사람을 좋아하고 사람과의 관계에서 힘을 얻는다고 한다. 내향적인 사람은 생각이 많고 행동은 생각한 뒤에 한다고 한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나는 아마도 내향적인 성향이 많은 것 같다. 그래서 잘 다가가지를 못한다. 관계에서 보이지 않는 경계선을 그어놓고 사람을 대한다. 그런 마음은 상처받고 싶지 않는 마음도 있다. 한편의 마음에는 스며들어 편하고 싶은 욕구도 함께 한다.
성격이 좋은 사람, 외향적이고 친절하고 부지런한 사람을 보면 부럽다. 그들은 웃는 얼굴 친절한 말투로 어디서던 금방 친구를 만들어 버린다. 나의 친구 중에도 그런 친구가 있다. 어느 날 길 건너에서 어떤 사람과 웃으며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다가오기에 물어 보았다. 아는 사람이냐고...친구는 아니 금방 만난 사람인데...정말 놀랐다. 그런데 오지랍 넓은 친구는 나에게 물어보지도 않고 경계선을 마구 넘어 왔다. 처음에는 고맙기도 하고 부담스럽기도 하지만 결국은 친구가 되었다. 친구의 마음이 착하고 사람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또한 내가 먼저 친구하자고 전화하거나 연락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스며듬이란 그런 것일까? 자연스럽게 시간이 지나면서 알아지고 편해 지는 것. 어느 날 속까지 배어들어 있는 것이 아닐는지 이런 저런 스며듬에 대한 쓸데없는 생각에 젖어있을 때 김시천 시인의 바보 꽃잎에 물들다라는 시가 문득 생각났다.
그냥 물들면 되는 것을
그냥 살포시 안기면 되는 것을
저절로 물이 들 때까지 기다리면 되는 것을
중략~~~
그냥 물들면 되는 것을
노을이 하늘에 물드는 것처럼
꽃이 꽃물이 드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시간이 가면서 그냥 물들면 되는 것을 머리로 온갖 잣대를 대면서 사람과 마음의 간격을 재고 있는 것이다. 아직도 마음에 욕심이 남아 있는 것일까 어딘가 매어지고 싶지 않는 자유로운 마음때문일까 이런 저런 생각이 자꾸 일어나는 자신을 바라다 보았다.
그러나 관계란 결국 소통을 통해 이루어 진다. 작은 친절이나 배려가 마음의 벽을 허물게 한다. 혼자 서성이고 있으면 생각지도 않게 슬며시 다가와 웃는 얼굴로 잘 왔다고 말해 준다. 같이 가자고 손 내밀어 준다. 따뜻한 말, 관심 어린 한마디에 조금씩 마음이 가벼워 진다. 가벼워 진 만큼 다가가 있다. 관계란 결국은 주고 받는 것이다.
초강력 IT 시대로 사람들은 점점 소통이 힘들어졌다. 각자가 가진 세계에서 노는 시간이 많아졌다. 가정에서나 거리에서나 지하철, 버스 속에서도 모두 자신의 세계에 몰입되어 다른 사람을 바라 볼 여유가 없다. 앞으로만 달려가는 멈출 수가 없는 시간속에서 감정을 알아주지 못하니 소통은 더 힘든 시대가 되었다. 사람과의 관계에 소통이 안되어 관계가 힘들어 진 사람들도 많다. 상처가 무서워 사람을 잘 만나려고 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 모임을 통해 사람을 알기도 하고 배우기도 한다. 앞에서 봉사하는 마음으로 이끌어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참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행동으로 실천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나는 또 조금 넓어진다.
나이가 들면 나는 더 현명해 지고 지혜로워 지는 줄 알았다. 사물을 통찰하고 넓어진 마음으로 살아가는 줄 알았다. 아닌가 보다. 말은 괜찮다고 하면서 생각은 여전히 널을 뛰고 있다. 모든 자연의 순리처럼 자신이 가진 고유의 특성을 가진 채 있는 그대로 스며들면 되는 것을 단순한 진리를 깨닫는 시간이다.
첫댓글 공감도 되며 자신에게 속지마라는 성철스님의 말씀을 새깁니다
서서히 스며들면 좋지 않나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냥 물들면 되는 것을
노을이 하늘에 물드는 것처럼
꽃이 꽃물이 드는 것처럼
늘 배웁니다. 감사드려요.
때로는 맡겨 두는 것도 한 방법인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