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로 일을 하다가 잠시 쉬려고 눈에 들어오는 책을 들고 침대로 갔다. 침대 머리에 기대서 가볍게 책장을 넘기면서 머리와 가슴에 열을 식히고 있다. 시 쓰는 작업은 할 때는 내 안의 또 다른 내가 이성적인 생각이 아닌 직관으로 시를 쓰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러다 보니 작업을 마치고 나면 가슴이 먹먹할 때도 있고 멍해질 때도 있다, 그럴 때는 베란다로 나가서 먼 산을 보면서 크게 호흡 한다. 베란다에 만들어놓은 작은 정원에서 살고 있는 소중한 화초들과 눈을 맞추며 이야기하다 보면 답답했던 가슴도 헐렁해지고 머리도 가벼워진다.
나만의 루틴이 있다. 어찌 보면 시간표처럼 사는지도 모른다. 생각해 보면 부모님 영향을 받은 것 같다. 직업군인이었던 아버지는 시계처럼 정확한 분이셨다. 아침에 기상 시간도 운동 시간도 출근하시는 시간도 시계가 필요 없을 만큼 정확한 분이셨다. 자식에게도 다소 명령하듯 지시하셨다. 말씀이 떨어지면 바로 행동에 옮겨야 집안이 조용했다. 강원도 최전방 철원에서 낳고 자란 우리 4형제는 겨울이면 깜깜한 새벽에 일어나서 다함께 체조했다. 국민체조였다, 그리고 아버지랑 큰딸인 나는 새벽에 구보를 했다. 한탄강이 꽁꽁 얼고 매서운 칼바람이 부는 한겨울에도 아버지와 둘이 달렸다. 배드민턴도 치고 겨울이면 한탄강에서 스케이트와 썰매를 타면서 보냈다. 시간에 철저한 아버지 덕분에 지금도 새벽에 일어나고 일찍 잠자리에 드는 습관이 있다. 지나고 보니 부모님께 참으로 감사하다. 주변에서 이런 나를 보고 시간표처럼 산다고 하지만 나는 이런 삶이 어지럽지 않고 바쁘지 않고 편안하다. 언제나 주변이 정돈되는 것 같고 질서가 있어서 혼란스럽지 않다.
오늘도 제시간에 일어나 간단한 스트레칭을 하고 일어난다. 감사의 기도와 함께 아침을 연다. 물로 양치하거나 소금물로 입을 헹군다. 그리고 따스한 물을 천천히 마신다. 몸 안의 세포가 놀라지 않도록 천천히 사랑스러운 마음으로 깨우는 작업이다. 본격적으로 거실에 매트를 깔아놓고 근력운동을 한다. 스트레칭을 하는데 20분 정도 몸을 풀어주고 40분 정도는 명상한다. 이 시간이 나의 하루를 행복으로 이끌어주는 시작이다. 다음으로 유튜브로 영어 회화를 공부한다. 30분 정도 하는데 거르지 않고 듣고 따라 한다. 목적을 갖고 하는 공부가 아니고 내가 행복해서 한다. 일어도 해보고 중국어도 해보았는데 모두 중도에 포기했다. 그래도 오래 공부한 영어가 제일 부담 없이 끝까지 하는 것 같다. 영어 회화 공부는 학교 다닐 때처럼 입시를 위해서 하는 공부가 아니라 내가 좋아서 하는 공부라서 그런지 신바람이 난다. 내가 행복해진다는 것이다.
그렇게 아침을 보내고 그 후로는 그때 상황에 맞춰서 살아간다. 주로 별일 없으면 서재에서 글을 쓰거나 책을 본다. 가끔 영화도 보고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춤도 추고 감상에 젖기도 한다. 산책은 빼놓지 않는 일상의 하나다. 산책은 내가 가족에게 웃음을 선사하고 주변 사람에게 넉넉한 마음을 낼 수 있게 만든다. 가슴에서 사랑을 자라게 한다.
요즘은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다. 아니, 거의 집에서 생활한다. 지금은 쉬어가는 시간이다. 두 번째 서른 살에는 삶의 전반전을 정리하고 후반전을 계획하고 있다. 나이를 먹는 것이 그다지 서글프지만 않다. 여유도 생기고 사랑도 더 깊게 할 수 있으니 얼마나 멋진 삶인가! - 2024년2월2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