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조종사가 제일 두려워 했던 미 전투기
미국과 태평양 전쟁을 했던 일본 주력 항공력의 주체는
해군 항공대였다.
개전 초기 미군 전투기들에 우세한 성능을 보였던
제로 전투기가 비록 성능이 개량되었다지만
전투 초기부터 종전까지 오로지 주력 전투기로 사용된 반면
미군 쪽에서는 신 전투기 모델들이 여럿 탄생하였다.
제로 전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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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에 제로기에 두들겨 맞던 P-39와 P-40은 전부 물러 나고
P-38과 P-47,그리고 이차 세계 대전의 최고 우수 전투기라고
하는 P-51등이 무대로 올라왔고 미 해군 또는 해병대 항공대의
F4F 와일드켓도 퇴역하고 신형F4U 콜세어 기와 F6F 헬켓기등의
새로운 미 해군 전투기가 등장했다.
F4U 콜세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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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 신형 전투기들은 모두 제로 전투기에게 힘겨운 상대들이었다.
속도도 빨랐고 상승 능력과 급강하 능력은 제로기가 도저히
따라 잡기 힘든 전투기들이었다.
제로기를 모는 조종사는 이 약점을 제로기의 우수했던
운동성으로 보완했었다.
이들 미군 전투기 중에서 일본 해군 항공대 조종사들에게
최대의 강적 전투기는 무엇이었을까?
즉 최강의 제로 전투기 킬러에 대해서 한 일본 베테란 조종사가
언급한 기록이 남아있다.
평가자는 일본 해군 항공대 에이스 다니미스 다케오 준위다.
그는 1942년 일본 해군 항공대 비행학교를 졸업하고전장에 투입되어
종전 때까지 짧은 기간 동안 32기의 미군기를 격추했다.
다니미즈 다케오 준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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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말을 들어보자.
그는 F4U 콜세어나 P38 전투기들이 우수한 전투기들이라는
것을 인정했다.
먼저 이들 전투기들이 일본 전투기에 비하면 대단히
튼튼하게 제조 되어서 제로기가 꼬리를 물고 사격을 퍼부어도
풀쩍 연기만 나고 그냥 도주하는 수가 많다고 했다.
그러나 그는 이들 전투기들이 운동성이 부족해서 제로기를 쫓거나
반대로 제로기에 쫓겨서 저공으로 급강하 하다가 머리를 못 들고
그대로 코코넛 숲이나 바다에 머리를 처박는 경우를 종종 보았었다.
그래서 일본 조종사들은 미군기와 공중전을 붙으면 항상 제로기의
우수한 선회 능력을 이용해서 싸웠다.
그러나 일본 제로기의 유일한 능력이었던 우수한 선회 능력도
통하지가 않아 일본인 조종사들이 두려워하던 미군 전투기가 있었다.
미 해군 전투기 F6F 헬켓 기가 그것이다.
F6F 헬켓 해군 전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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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켓 기는 다른 후기 미군기와 같이 우수한 상승력과 하강력을
지닌데다가 제로기가 가진 우수한 회전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제로 기가 항상 하듯 급회전으로 헬켓 기의 공격을 피하고자 하면
헬켓 기도 제로기의 회전 반경 안으로 파고 들어와 계속 꼬리를
물고 사격을 가했다.
일단 헬켓 기에게 꼬리를 물리면 숙련된 조종사라고
벗어 나오기가 아주 어려웠다.
다니미즈는 대만에서 주둔 시 최고의 전투기 였다는 P-51
무스탕 전투기에게 격추되었지만 다행히 바다에 떨어져 구사일생으로
살아 난 일이 있었다.
P-51 무스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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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P-51을 최강의 전투기가 아니라
미 해군기 헬켓 기를 미군 최강의 전투기로 꼽았다.
이 헬켓 기가 제로기를 잡는 최강 전투기가 된 것은 오로지 제로기를
잡기 위한 목표가 대폭 반영되어 설계되고 제작되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내력이 있었다.
개전 초기 미군기들이 태평양에서 일본군 제로 기에게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을 때 뜻밖에도 온전한 상태의 제로 전투기가
미군의 손에 들어왔다.
일본군의 1942년 미드웨이를 공략할 때 얼래스카 연안의 알류샨
열도도 공격했었다.
1942년 6월 4일 가쿠다[角田]기동 부대에서 출격했던 공격대가
알류샨의 중심 항구 더치 하버를 공격하고 귀함 하다가
한 제로 기가 기체 고장으로 더치 하버에서 북동쪽으로 20마일 떨어진
아쿠탄 섬이라는 한 무인도에 불시착했다.
알류샨 열도의 더치 하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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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종사는 높은 공중에서 보이는 초원이 여늬 풀밭인줄 알고
바퀴를 내리고 착륙했으나 그 곳은 무릎까지 빠지는 습지에 키 작은
한대성 관목들이 빽빽이 자라는 곳이었다.
바퀴를 내리고 착륙하던 제로 전투기는 바퀴가 걸려서 한 바퀴
재주를 넘고 전복 되어 버렸다.
이 전복으로 조종사는 사망하고 말았다.
3주 뒤에 이 무인도를 정찰 나왔던 미군들이 이 전복된 전투기를
발견해서 급히 수습해서 미국 본토로 급송하였다.
전투기는 착륙장치와 프로펠러가 손상되었지만 수리는 쉽게 되었다.
미 해군은 손에 들어온 이 전투기를 수십 번이나 시험비행을 하며
그 성능을 철저히 분석했다.
단지 1,200마력의 저 추진력임에도 불구하고 믿기 어려운 장거리
운행 능력도 놀라웠지만 역시 우수한 운동성은 더욱 놀라웠다.
이미 이 때는 미 해군이 그 전 해인 1941년 6월에 발주했던
헬켓 기가 개발이 거의 마무리 단계에 들어갈 때였다.
자세한 분석이 끝나고 이 자료를 바탕으로 미 항공기 제작사
그러맨 사는 기존의 헬켓 기에 제로기를 이길 수 있는 우수한
운동성 부여를 위한 설계 변경에 들어갔다.
주요 변경 노력이 우수한 운동성을 가진 전투기를 만들기에
집중하다보니 제로기 설계에서 주요시했던 경량화가 이 새로운
F6F기의 개발에도 시도 되었다.
예로서 헬켓의 뼈대를 보면 가능한 곳마다 무게를 줄이기 위한
벌집같은 구멍이 뚫려있다.
43년 2월 항모 에섹스의 탑재되어 전투에 취역한 헬켓 기는 같은 해
9월 첫 출격에서부터 일본의 대형 비행정을 격추해서 가능성을 보였다.
헬켓은 12,275기가 생산되어 대부분 함재기로 대활약을 했다.
미 해군이 격추했던 일본기의 75%를 격추했다.
그리고 306명의 에이스를 배출했다.
일본의 제로기에는 격추비율 13.1:1의 우수한 성능을 발휘했다.
[이런 기록에는 가미가제 특공에 동원된 제로기가 대량 포함되어있고
또 1943년 이후 숙련된 일본 조종사들이 대량 소멸되고
경험 부족의 조종사들이 대부분을 차지했었던 사실도 있다.
그러나 이 것은 헬켓기의 우수한 운동성에 기인한 바도 크다.]
헬켓이 가진 우수한 운동성 즉 선회 능력은 일본의 격추왕
사카이 사부로[坂井 三郞]의 자서전 ‘대공의 사무라이’에서도
잘 묘사 되어 있다.
그는 과달카날 출격에서 뇌에 관통상을
입고 기적적으로 귀환하여 2 년간 입원해서 치료를 했었다.
그는 완치는 되었지만 한 눈이 실명한 지체 장애자가 되었다.
그럼에도 의사의 만류를 유황도 근무를
자청하여 파견되었다.
유황도 주둔군은 미군의 상륙 작전이 있기 전 미 해군 기동 부대의
부단한 기습을 받았었다.
일본의 격추왕 사카이 사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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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4년 6월 24일 출격했던 제로 전투기 부대는
수백대의 미 헬켓기들과 격돌했다.
그는 압도적인 헬켓 기들과 만난 순간을 이렇게 털어놓았다.
“나는 제로기의 운동성을 살려서 급회전을 되풀이 하는 나선 상승
[나사 모양의 기동 상승]을 하며 적기 편대에 접근했다.
이렇게 접근하면 대개 적기는 제로와의 근접전을 피해서 흩어지기
마련인데 적기는 앞장 선 선도기부터 거침없이 꼭 같은 나선을 그리며
나에게 따라 붙었다.
P-39나 P-40들은 제로기의 흉내를 내어 나선 기동에
말려 들어서 나에게 격추 당하기 일 수였다.
내가 과달카날에서 싸웠던 미 해군기 F4F 와일드 켓도
제로 기와의 나선 기동을 회피했었다.
그런데 내가 처음 만난 이 헬켓 기는 거침없이 이 나선 운동에
뛰어 들어 나와 물고 물며 나선을 그리는 기동을 하지 않는가!
선두기의 뒤를 쫓아 여러대의 헬켓 기들이 나선 기동을
하며 나의 빈틈을 노렸다.
나는 나선 운동을 풀고내 뒤를 쫓는 헬켓들을 끌고 회피 하여야 했다.
내가 보아도 이 신형 헬켓은 세계에서 가장 운동성이
좋은 전투기였다."
사카이는 이날 유황도 상공에서 15기의 헬켓 기들이
덤벼드는 공중전에서 겨우도망쳐서 가까스로 귀대했다.
이오지마 -- 1999년 촬영 모습 .사카이가 출격했던
비행장은 그냥 남아 있어 지금도 일본 자위대가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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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며칠 계속 된 미 기동부대의 공습으로 유황도에 배치된 100기의
전투기와 공격기등이 다 소멸 된 뒤 생존해 있던 그와 그의 동료들은
비행정으로 본토로 소환되어 목숨을 건지고 종전을 만나게 되었다.
미 함재기 F6F 헬켓 기는 초대형 폭격기 B-29기와 함께
일본 민간인에게 가장 잘 알려진 전투기이기도 하다.
제해권을 완전 장악했던 미 해군 기동부대는 수시로
일본 연안에 접근하여 수백기의 전투기나 공격기등의
함재기들을 풀어서 일본 연안 지방은 물론 내륙 깊숙이까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부단한 공습을 가했다.
작은 선박은 물론 공장, 교량,기관차, 철도,자동차들을
찾아내어 샅샅이 공습했었다.
공습이 잦았던 일본 남부에서는 검은 호박벌같은 모양의
헬켓 기는 공포의 저승사자였다.
그 공포는 일본인들이 헬켓 기를 부르던 구라망[제작사 그러맨의 일본식 발음]이라는 이름에 실려서 언론을 타고 일본인 사이에 확산되었다.
헬켓 기를 앞세운 미 함재기 부대의 공습은 한국 남부 항구에도
가해져 1945년 해방 몇 달 전, 제주에서 목포항에서 들어오던
여객선이 침몰되어 수백 명이 죽기도 했다.
민족 의사에 관계없이 전쟁에 말려든 식민
첫댓글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