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님께서는 아침 기도 후 서울공동체 대중들과 함께 발우공양을 하시면서 그동안 문경행자반장과 인도에서 활동하다가 이번에 회향하는 최동호법우님의 노고를 치하해주시면서 수행자의 자세에 대해 말씀해주셨습니다.
“오늘 회향한다, 군대 간다, 외국 간다, 오늘 입국했다 그러면 사람은 늘 특별한 날로 생각해서 마음이 긴장되거나 해이해집니다
. 그러나 우리는 늘 똑같은 날을 살고 있습니다. 그때그때 의미를 부여해 부를 뿐, 매일 같은 날입니다. 최동호 법우님이 오늘 회향 한다해서 특별한 날이 아니라 한결같은 마음이어야 합니다. 회향이라는 이름이 붙든, 머리를 깎든, 한국에 살든, 인도에 살든 마음이 한결같아야 합니다. 세상사람들이 볼 때 머리 모양이 바뀌어서 ‘속퇴했구나, 입재했구나, 들어갔구나, 나왔구나’ 하는 것은 남이 보는 것이고 수행자는 그런것에 구애받지 않고 한결같아야 합니다.
행자님들도 오늘 아침에 농사지어라 하면 수행의 대상이 농사이고, 오늘 밥해라 하면 수행의 대상이 밥하는 거고, 밖에 가서 봉사해라하면 수행의 대상이 봉사하는 것이지요. 이때 ‘내가 밥하는 사람이가? 내가 농사꾼이가?’ 하는 그런 마음은 수행자가 아닙니다.
그러나 실제는 마음이 한결같지가 않습니다. 그러니 한결같은 쪽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수행자는 늘 일상이 수행이어야 합니다. 특별한 날이 아닙니다. 법문을 해야 하는 쪽이 되면 하는 거고 들어야 하는 쪽이 되면 들으면 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렇지 않지요. 이런 일하면 수행이라고 하고, 저런 일하면 수행이 아니라 하지요. ‘마음에 분별심이 일어나면 중생이고, 분별심이 가라앉으면 보살이다.’는 관점으로 정진해야 합니다. 사람들은 천당가려고 하는데, 천당이 따로 정해진 것이 아니라 마음이 한결같으면 그 곳이 천당입니다. 그런 관점으로 정진해야 합니다.”라며 수행자는 일상에서 주어진 일이나 상황에 한결같이 나아가야 한다고 말씀해주셨습니다.
“정해진 계율을 다수가 반복적으로 지키지 않을 때는 타성화 되어서 그런것인지, 제도적인 문제인지를 살펴보고 바로 잡아서 고치도록 개선해야 합니다. 만성화되면 고치기가 어렵습니다. 또, 환경이나, 제도등으로 인해 개선하기 어렵다면 제도를 바꿔줘야 합니다. 평화재단 활동가들이 정토법당에 와서 저녁 예불하고 가면 업무에 효율적이지 않습니다. 제도를 바꿔서라도 가능하면 주어진 계율을 지킬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또, 다수가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계율이 사실은 중요한 것이 아니라면 과감하게 없애도록 해야 합니다. 꼭 지켜야 할 것이라면 다른 일을 포기하더라도 모두가 지킬수 있도록 주변 여건을 마련해줘야 합니다. 이런 것들을 검토해서 대중대표는 제도 개선을 할 수 있도록 논의해 주시기 바랍니다.”라며 계율이 형식적으로 있지 않고 우리 스스로 지킬 수 있도록 제도 등을 보완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씀해주셨습니다.
그리고 스님께서 요즘 서울 정토회관, 신관, 별관, 평화재단등을 보시면서 “전반적으로 공간을 너무 넓게 쓰고 있는 것 같아요. 우리도 자본주의가 갖는 소비주의를 계속 추종해서 따라가고 있거든요. 한 번 넓게 쓰면 좁히는 게 어렵습니다. 공간을 과감하게 좁혀서 수행장소로 쓰도록 해야합니다.
원칙을 정해서 검소하고 아껴쓰고 효율적으로 쓰도록 스님 당대에 바뀌지 않으면 스님이 없으면 겉으로만 수행자로 남을 수 있습니다. 정토회가 규모가 커지면서 사무실등을 넓혀 나가는 경우가 있습니다. 일부러 좁게 지저분하게 하라는 것이 아니라 제가 볼 때 이렇게 점점 넓혀 나가기 시작하면 앞으로 바로 잡기 어렵습니다.
대중의 의견은 세속적 욕망을 가지고 요구하기 때문에 이걸 들어주기 시작하면 수행의 문이 무너지기 시작합니다. 자본주의에 살아도 자본주의에 물들지 않고, 소비주의에 살아도 소비주의에 물들지 않는다는 것은 거창한 주장인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면 원칙을 점검해서 바로잡았으면 좋겠습니다.”라며 우리도 소비주의에 대해 점점 헤이해지고 있는 점을 바로 잡아주셨습니다.
스님께서는 오늘 저녁 법당에서 송코 탈란딕 부족과 정토회원들이 준비하는 놀이 한마당에 대해서 송코 탈란딕 부족에게 우리의 전통적인 것들을 많이 보여줄 수 있도록 다시한번 당부하셨습니다.
발우공양을 마치자마자 스님께서는 바로 평화재단으로 이동하셔서 기획위 회의에 참석하셨습니다. 11시까지 진행된 기획위 회의를 마치고 12시에 찾아온 손님과 점심을 겸한 만남이 있었습니다.
이어 2시부터는 서초법당에서 수도권 지역 새터민을 위한 즉문즉설이 있었습니다.
새터민을 대상으로 법당에서 즉문즉설이 진행되기는 이번이 처음입니다. 즉문즉설에는 새터민 36명과 봉사자 20여명, 일반 정토행자 30명 등 총 90여명이 참여했습니다.
법륜스님과의 즉문즉설 외에도 다양한 부대행사가 준비되었습니다. 엄마를 따라온 유아 20여명을 대상으로 <사이숲 유아교실>이 신관 3층에서 열렸고, 즉문즉설 직후에는 그림 심리치료인 <마그마 힐링 체험>과 풍성한 <새터민 100냥 장터>가 이어졌습니다.
법륜스님께서는 행사 시작 전“서로 가까이 앉아 눈을 마주 보며 이야기 할 수 있도록” 자리 배치를 새롭게 하시고 새터민들에게“여기는 절이라서 불교 의식이 있는데, 불편하면 따라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시며 편안하게 참여할 수 있도록 배려해주셨습니다. 그리고 즉문즉설을 처음 접하는 분들을 위해 용어부터 친절하게 정리해 주셨습니다.
“즉문즉설은 여러분들에게 인생의 정답을 주는 게 아니라 자유와 행복으로 인도하는 진리의 말씀입니다. 여러분들이 살면서 생긴 큰 어려움을 여기에서 함께 나누다 보면 답답하던 마음이 풀려버립니다. 둘이서 얘기하듯이 이 자리에서 의문점을 얘기하면, 그 의문점을 해결할 수 있는 길을 찾아가는 것을 즉문즉설이라고 합니다.
‘남편이 술을 많이 먹어요’하면 남편이 술을 안먹도록 해주는 법을 알려주는 게 아니예요. 남편이 술을 먹어도 내가 괴롭지 않은 법이 있어요. 그것은 그 사람의 인생이고, 내가 그 사람 때문에 괴로울 필요가 없어요. 그 사람 때문에 내가 괴롭지 않은 것, 그것이 진리로 가는 길이예요. 천당이나 지옥 가는 얘기가 아니고, 지금 내가 겪고 있는 고뇌와 의문이 해소되는 길이예요.
북쪽에서 살다가 남쪽에 오신 분, 지금 행복해요? 지금 더 행복한 사람 손들어 보세요. (10여명 손듦) 북쪽에서 더 행복했다는 사람 손 들어보세요. (없음) 그럼 북쪽보다 남쪽이 행복한 조건을 많이 갖추었다는 거예요. 그러면 남쪽에 사는 사람은 다 행복할까요? 그렇지 않지요. 그렇다고 북쪽에 사는 사람은 다 괴로울까요? (청중 ‘아니예요’) 남쪽에 사는 사람도 괴로운 사람이 있고, 북쪽에 살아도 행복한 사람이 있어요.
제가 어떤 한 분에게 10만원 주면서 ‘저녁 사드세요’ 하면 기분이 좋겠지요? 스님 참 좋은 사람이지요? (청중 웃음) 그런데 그 옆 사람한테 100만원을 주면, 10만원 받았던 사람은 갑자기 기분이 나빠져요. 손해를 본게 없는데도 기분이 나빠져요. 왜 그럴까요? 이게 상대적 빈곤때문이예요. 북쪽은 지금 절대적 빈곤에 처해 있어서 양식, 약, 옷을 주면 빈곤문제가 해결됩니다. 그런데 상대적 빈곤 문제는 많이 준다고 해결이 안돼요. 차등을 좁혀야 해요.
북쪽에 있을 때는 남한에 있는 사람들에게‘니가 괴로울 일이 뭐가 있노?’하는데, 그렇지 않아요. 남한에 사는 사람들도 괴로운 사람 많아요. 처음엔 한국 왔을 때는 천국 같았을 겁니다. 하지만 살아보니까 그 지옥이나 이 지옥이나 비슷하죠?. (청중 웃음) 그래서 새터민들이 또 천국을 찾아 한국을 떠나 영국이나 캐나다로 가는 겁니다.
중국 장백 국경변에서 북한 혜산에서 넘어온 여자 분을 두 번 만나 지원해준 적이 있는데, 그 뒤로 만나지 못하다가 대전에서 만났어요. 보자 마자 스님을 껴안고 우는 거예요. 그러다 또 못봤는데 캐나다 토론토에서 강의하는데 거기와 있는 거예요. 그래서 어떻게 된 거냐고 하니까 애 공부시키려고 왔대요. 의지의 한국인이죠. 미국이나 캐나다 가면 북한에서 왔다고 차별 안받죠. 당분간은 편해요. 그런데 조금 살아보면 또 힘들어요. 스위스에 30년 살아도 스위스 사람이 아니고, 한국 돌아오면 한국 사람도 아니고 영원한 이방인이예요. 작년 여름부터 넉달간 해외 다녀왔는데 교민의 심리가 불안해요. 문화가 다르니까 심리가 불안하고 돈에 대한 집착이 강해져요. 아는 사람이 없으니까 믿을 건 돈밖에 없어요. 그러니 물건에 대한 집착이 굉장히 강합니다.
그렇다고 고향에 산다고 다 좋냐면 그것도 아니예요. 고향은 안온한 반면 감옥이예요. 온갖 잔소리하는 사람이 많아요. 타향에 가면 자유로운 반면 외로워요. 그래서 한국에서 외국 가면 처음엔 좋은데 좀 있으면 외로워지고 그래서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면 구속하는 게 많아서 또 외국으로 가게 됩니다. 절대적 빈곤은 부족한 것을 채우면 해결되는데, 마음의 행복은 환경이 바뀐다고 해결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조금 다른 차원의 공부를 해야 됩니다.”
스님께서는 새터민들의 이해를 돕고 편안하게 질문할 수 있도록 이렇게 상세하게 설명을 해주셨습니다. 스님의 설명 후 바로 질문으로 이어졌습니다. 질문자들은 모두 젊은 여성이었는데, 씩씩하고 진솔하게 어려움을 털어놓았습니다.
“3살 난 딸을 가진 엄마로 사회생활을 하고 싶은데, 시부모님은 딸이 6살이나 7살 될 때까지 하지 말라고 합니다. 고부간에 갈등 없이 하고 싶은 것 하며, 편하게 사는 법은 없을까요?”
“사람은 입장에 따라 생각이 조금씩 달라요 그래서 고부간이나 부부간에 갈등이 없다는 것은 불가능해요. 그러나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면 갈등이 적어져요. 내 생각대로 하면 갈등이 없을 수는 없습니다. 직장을 못 다녀서 좀 불만인 것 같은데, 요즘 결혼해서 집에 있어도 되는 집은 열 집에 한 집도 안돼요. 다른 사람들은 자기가 애를 키우고 싶어도 직장 때문에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자기는 직장을 못나가서 걱정이네요. (웃음)
아이는 세 살 때까지는 엄마가 돌봐야 해요. 요즘 아이를 보육원에 맡기면 학대한다는 말이 많죠. 엄마도 자기 자식이 말 안들으면 때리죠. 그런데 결혼도 안한 선생님이 아이들 9명씩이나 키우면 실제 제대로 키우기 어렵고, 그런 곳에서 받는 심리적 상처가 큽니다. 어릴 때 받은 상처는 치유할 수 없어요. 그래서 3살 때까지는 엄마가 키워야 해요.‘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이 얘기 들어봤죠?
모든 어린 아이는 엄마로부터 돌봄을 받아야 합니다. 엄마가 그 책임을 안 지려면 아기를 안 낳아야 해요. 대부분 한국의 직장 다니는 여성은 그렇게 할 조건이 안돼요. 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면 국가가 엄마들이 아이를 키울수 있도록 유급휴가를 줘야 합니다. 그래야 아이들의 불안한 심리에서 오는 정신질환을 막을 수 있습니다. 지금 대학생들 20%가 정신질환이예요. 엄마가 아이가 어릴 때는 안 돌보고, 아이가 다 성장해서 과잉보호를 하기 때문에 그래요.
최소 3살 때까지는 엄마가 직접 키우고, 초등학교 들어갈 때까지도 키우면 좋지만 반드시 그런 것은 아녜요. 4살 때부터는 떨어져도 상처가 덜 해요. 초등학생때는 70%정도 돌보고, 중학생은 50%, 고등학생은 30% 돌보고, 대학 들어가면 집에서 쫓아내야 해요. 이게 제일 건강한 방식이예요. 이게 잘 안되어 문제가 많습니다.
질문자는 시집을 굉장히 잘 갔어요. 다들 돈 벌어 오라고 내보내는데, 이런 질문은 한국에서 처음 받아봤어요(대중 폭소). 그래서 감사기도를 해야 합니다. 1년 후에 엄마가 직장 다니고 싶으면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면 돼요. 초등학교 보내고 나면 직장 다녀도 됩니다. 한국 사람은 거꾸로 해요. 어릴 때는 남한테 맡겨 놓고, 아이가 커서 문제 생기면 직장 그만두고 돌본다고 아이랑 매일 싸워요. 나중에 자식 돌본다고 애쓰지 말고 지금 잘 돌보고 나중에 일하세요. 시어머니가 직장가지 말고 아이나 돌봐라고 하면 ‘아이고 어머니 감사해요. 놀기가 미안해서 그랬는데 봐주시니까 정말 고맙습니다’하면 됩니다.”
두번째 질문자는 중국인과 결혼해 17살, 13살, 3살 아이를 둔 엄마입니다. 남편과 큰 아이 둘이 중국에 있는데 이중국적자입니다. 둘째 아이가 비자 없이 중국을 가는 바람에, 엄마를 보고 싶어 도 한국에 돌아오지 못해 속이 탄다고 합니다.
스님은 여러 차례 질문을 주고받으신 후에 "두 개의 국적 중 하나를 포기하고 교통정리 하던가, 두 쪽 다 살려놓고 양다리 걸치는 방법이 있는데, 전문적인 것은 좋은벗들과 얘기해서 국적관련 변호사에게 상담해보라”고 조언해 주셨습니다.
세 번재 질문자는 한국에 온지 7년 된 여성으로 “한국에 와서 북한의 가족들과 연락이 닿았는데, 가족들이 계속 돈을 보내라고 합니다. 처음에는 보내줬는데, 계속 돈을 요구하니까 부담스럽고 여기에서 벗어나고 싶은데 어떻게 했으면 좋겠습니까”라고 질문했습니다.
“계속 좀더 보내줘야죠(웃음). 질문자도 북쪽에 살아봤잖아요. 그곳이 얼마나 살기 어렵고 돈이 필요한지. 사람들의 심리라는 것이 초창기에는 한달에 100불만 있어도 살만하잖아요. 그런데 200불, 300불 점점 더 많이 보내면 북쪽 가족들은 거기에 맞춰서 소비를 하게 되요. 거기서는 한국에는 돈이 공짜로 생기는 줄 알아요.(웃음)
처음에 길을 잘못 들인거예요. 여기도 살기 어렵다고 100불만 보내줬으면 부담이 안되는데, 질문자 얘기 들어보니 가족들에게 마음이 많이 아파서 왕창 보내준거 같네요. (질문자 “네”) 그렇게 돈 받아서 목에 힘주고 주위에 자랑하고 살아왔는데 지금 새삼스럽게 줄이려니까 어렵죠. 아무리 돈 없다고 해도 북쪽 가족들은 안 믿을거예요.
방법은 두 가지입니다. 첫 번째, 적절한 금액을 정해서 더 달라고 해도 정기적으로 그 금액만 보내는 방법이 있고, 두 번째, 6개월 정도 연락 안하고 끊었다가 그 다음에 100불 정도 주면 굉장히 고맙게 여겨요. 형편이 되면 좀더 주면 좋아요. 형편이 안 되면 고민할 필요 없이 형편되는 만큼만 주면 됩니다. 그것으로 가슴 아파하면 죽을 때까지 가족에 매어 살게 됩니다.
내가 낳은 자식을 돌보지 않으면 나쁜 사람이예요. 어린 자식이 북한에 있어서 돌보지 않으면 나쁜 사람이지만 그것도 20살이 넘으면 안 도와줘도 돼요. 가족을 적당히 도와주는 건 좋은데, 부담이 되면 도와주지 않아도 됩니다.”라며 스님께서 방법을 알려주니 질문자는 마음으로 결정했는지 ‘감사합니다’고 인사를 하면서 앉았습니다.
네번째 질문자는 한족 남편과 함께 한국에 온지 2년 되었고 5살 얘기가 있는 여성으로 “남편은 한국말도 모르고 적응을 못해 직장생활을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일을 하고 있는데, 일을 나가면 남편이 불안해하며 전화를 자주 합니다. 그렇게 1년을 살았는데 배려조차 없어서 이혼을 결심했습니다(울음). 이혼을 안해 주어 좋은벗들에서 변호사 소개받아 이혼소송을 하고 있습니다. 남편에게 집을 나가라고 해도 나가지 않아, 제가 아이를 데리고 1달 반 동안 나와서 생활하다 어제 집으로 들어갔습니다.”며 어떻게 해야 할지 물었습니다.
“질문자가 북쪽에서 중국으로 갔을 때는 그 사람이 유리한 조건이었고 내가 불리했잖아요. 그는 자기 나라 말도 되고 직장도 구할 수 있고, 그가 유리할 때는 자신감이 있는 거예요. 그런데 한국에 오니까 질문자가 유리해지고, 남편은 말도 안 통하고 불리해진거예요. 그러니 남자로서 열등의식이 생기는 거예요.
중국에 있을 때는 남편 처지에서 결혼하기 어려웠는데, 질문자가 북쪽에서 와서 갈 곳이 없으니 쉽게 결혼할 수 있었어요. 이런 결혼생활이 중국에서는 유지가 되었지만, 다른 나라에 오면 북쪽에서 온 여자가 중국의 남편보다는 수준이 높아요. 북한에서 오는 여성은 주로 배우고 똑똑한 데, 중국에서 북한 여자와 결혼하는 남자는 중국내에서도 좀 모자라는 남자가 대부분입니다. 서로 격이 좀 안 맞아요. 그러니 한국에 와서는 남편이 질문자에게 잘 해줘도 데리고 살까 말까한 거죠. 그러니 남자는 자존심이 상해서 자꾸 어긋나는 거예요. 남편을 이해해야 합니다.
지금 이 사람을 쫓아내면 당장 살기는 좋지만, 아이 아빠잖아요. 나중에 아이한테 할 말이 없어져요.‘내 어려울 때 당신 만나서 참 도움 많이 받았습니다’하고 감사기도를 하세요. 이혼신청 한 것은 그대로 진행하고, 그러나 아침마다 늘 감사기도를 하고 잘 해줘야 합니다. 빚 갚는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내가 처음 중국에 와서 어려울 때 그 사람이 도와줬잖아요. 그러니 조건을 따지지 말고 남편이 2년간 아무것도 안해도, 밥을 해 먹인다는 마음으로 빚을 다 갚아야 후회가 없어요. 그래야 나중에 아이한테도 죄의식이 안 들어요. 자꾸 고맙다고 해야 아이가 나중에 물어도 할 말이 있어요. 아빠가 나쁜 사람이라고 하면 아이가 자긍심이 없어져요. 그러면 아이가 나빠지게 됩니다.
그 사람도 얼마나 힘들겠어요? 보살펴주는 게 필요해요. 그 사람도 나빠서 그런 게 아니예요. 불안해서 그런거예요. 아이 아빠라는 이유만으로라도 잘 해 줄 이유가 됩니다.
그리고 이혼소송은 그대로 진행하고 남편이 비자 연장해달라고 하면 ‘예 알았어요’ 하면 돼요. 나중에 비자 연장할 때가 되어서 남편 하는 것을 보고 결정하면 됩니다. 잘 해주되 냉정해야 합니다. 도망다니면서 남편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꼭 기도를 해야 합니다.‘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당신이 있어서 여기까지 왔어요’하면서 남편을 잘 보살펴 주세요. 옛날 도움 받았던 생각을 하면서 남편에게 고맙다고 기도해야 내 맘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어요.”라며 스님께서 방법을 알려주셨습니다.
다섯 번째 질문자는 북한 남편과 9개월 아이가 있는 25세 주부입니다. 임신 중인데 남편이 집안일을 도와주지 않아 너무 힘들다고 했습니다. 남한 남자는 집안 일을 도와주는데, 어떻게 하면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 물었습니다.
“질문자는 지금 미국 남자하고 결혼해 놓고‘왜 한국말 못하느냐?’하는 것과 같아요. 그 남자 문제가 아니예요. 남편이 안 도와준다고 자꾸 미워하면, 남편은 안 바뀌고 아내는 심리가 불안해서 나중에 아이가 우울증에 걸려요. 그러니까 항상 고맙게 생각해야 해요. 그래야 내 심리가 안정이 돼요. 그래도 오늘 안 죽고 들어왔잖아요. (웃음) 엄마 심리가 편안해야 아이가 정신적으로 안정이 돼요.
남편에게 도와달라는 것을 포기해야 해요. 남편이 다른 좋은 점도 있잖아요? 좋은 점을 찾아서 고마워 해야 해요. 남편이 바뀌려면 30년쯤 지나야 해요. 남자는 자기가 여자 말을 들으면 진다고 생각해요. 머리로는 도와줘야 된다고 생각해도 행동은 잘 안돼요. 제가 북한 남자들에게 물어봤더니 도와줄 마음이 전혀 없는 건 아니에요. 부끄러워서 못 도와준다고 해요. 그래서 남이 볼까봐 아무도 없을 때 조금 도와주고 그런다고 합니다. 우리 어릴 때 시골에서도 그랬어요. 공처가라고 소문날까봐 잘 못 도와줬어요. 그러니까 가사 일에 대한 남편 도움은 포기해야 돼요.
지금 남편을 바꾸려면 질문자가 이야기해서는 안바껴요. ‘깨달음의장’수련에 가면 남자들이 조금 바껴요.”
마지막 질문자는 “남편은 북한사람으로 한국에 온지 10년 된 30대 중반입니다. 남편은 밥도 잘 하고 집안 일 잘합니다. 남편과 갈등이 생길 때 나 때문이라고 생각하려고 하는데, 그게 실제로는 잘 안되고 화를 억눌려서 분노로 표출됩니다. 그리고 스님의 책을 읽고 아이에게 좋은 엄마가 되고 싶습니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서로 다르다는 것을 인정해야 해요. 저 사람 입장에서는 그럴 수도 있겠다는 이해가 있어야 해요. 그러면 화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이것은 이성적으로는 되는데 무의식적으로는 화가 팍 올라와요. 이때는 참지 말고‘또 내가 옳다고 주장하는구나’,‘내가 내 관점에 집착하는구나’ 하며 그 상태를 자각하는 거예요. 참회를 한다는 것은 내가 잘못 했고 네가 잘 했다는 것이 아닙니다. 본래 잘잘못이 없고 각자 다르기만 할 뿐인데, 내가 옳고 상대가 잘못됐다고 생각한 것에 대한 참회입니다.
이렇게 자각을 하면 당장 해결은 안되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점점 화나는 것이 약해져요. 참으면 나중에 폭발합니다. 참으면 세상에서는 좋은 거지만 수행은 아닙니다. 참지 말고‘내가 내 기준에 사로 잡혀있구나’하고 자각해야 합니다.‘화내면 안돼’라고 하지 말고,‘화가 나네’라고 자각합니다. 그러면 점점 옅어지게 됩니다.”
이어서 스님은 좋은 엄마가 되고 싶다는 두 번째 질문에 대해 답을 하셨습니다.
“부부가 싸우면 아이가 왜 불안증이 되냐면, 엄마가 아빠를 욕하면 아이한테는 엄마 말이니까 아빠가 진짜 나쁜 사람이 되고, 아이는 나쁜 사람의 아이가 되어 자긍심이 없어지게 됩니다. 그리고 아빠가 나쁜 사람이 아니면 엄마가 거짓말을 한 것이 됩니다. 그러면 아이가 정신분열이 되어버립니다. 그래서 아이를 더 사랑하는 엄마가 희생을 할 수 밖에 없어요. 남편이 뭐라 하면 ‘네 알겠습니다. 네네’해야 해요. 남자에게 숙이라는 것이 아니라 아이 엄마로서 아이 아빠에게 숙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자기가 행복하게 살면 애는 저절로 행복해지게 됩니다.
25개월된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겨두었다고 하는데, 직장을 그만둘 수 없는 경우는 끝나자 마자 애를 보살피고, 애한테 미안한 마음으로 행동하고, 항상 애가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새기고 있어야 합니다. 애기는 엄마로부터 첫 번째가 되기를 원할까요?. 동생한테 밀려나도 화가 나는데 돈 때문에 밀려나면 아이한테 사랑고파병이 생깁니다. 잠시 맡기고 금방 돌아오는 마음으로 갔다 오면 심리가 안정이 됩니다. 36개월까지는 그렇게 하세요”
모든 질문에 대해 스님께서 길을 알려주시고는 참가한 청중들에게 “재밌었어요?” 하니까 청중들은 일제히 “네”하고 대답합니다. “어려웠어요?” 하니까 “아니요”라고 대답합니다.
이어서 스님은‘한국에서 사는 게 힘들고 힘들다보면 마음 깊이 무의식에 상처가 생긴다’면서 그림으로 심리치료를 하는 마그마 힐링 프로그램에 꼭 참석하시라고 다음 프로그램 소개하십니다.
4시 30분에 즉문즉설을 마치고 단체사진 촬영이 있었습니다. 새터민 중의 상당수는 단체사진 촬영을 하지 않았습니다. 사진을 외부로 공개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그 동안의 상처로 인해 꺼려지기 때문입니다. 단체사진 촬영 후에는 스님과 함께 삼삼오오 자유롭게 사진촬영이 이어졌습니다. 어떤 분은 스님의 책을 준비해 와 사인을 부탁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새터민 즉문즉설이 마무리 되었습니다. 새터민들의 표정은 한결 가벼워졌고, 봉사자들의 마음은 감동으로 물결칩니다. 앞으로 많은 새터민들이 스님의 가르침을 받기를 기원해 봅니다.
스님께서는 6시 평화재단에서 여영학 변호사님과 만남을 가진 후 다시 7시 저녁예불과 송코 탈란딕 부족의 놀이 한마당에서 인사말을 해주셨습니다.
저녁 7시 30분부터는 평화재단 제12기 평화리더십아카데미에서 “갈등의 한국사회, 사회통합을 향한 길”이라는 주제로 강연이 있었습니다. 강의 6주차에 접어들면서 수강생들은 한층 더 편안하고 밝은 분위속에서 강의에 집중하였습니다.
강연 시작에 앞서 스님께서 사회통합과 관련해서 수강생 10여명에게 자신의 생각 또는 질문을 먼저 받았습니다. 수강생들의 질문을 통해 사회통합이 우리 사회에 얼마나 중요한 과제인지 알 수 있었으며, 다양한 문제의식들이 녹아져 있었습니다. 스님께서는 마지막 수강생의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강의를 시작하였습니다.
그럼 먼저 수강생의 질문을 소개합니다.
“우리사회에는 노사갈등, 빈부격차, 배운 사람과 배우지 못한 사람간의 갈등 등 다양한 갈등 있으며, 원인은 정의감 상실때문이라고 봅니다. 정의가 지켜지지 않는 이유는, 정의에 따라 살면 내가 손해 본다는 생각이 보편화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갈등을 줄이기 위해서는 개인이 희생하더라도 정의를 지키는 사람이 많아져야 하고, 우리부터라도 나와 다른 사람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나아가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서로 다름을 인정할 수 있는 교육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스님 의견은 어떠십니까?”
“그럼‘정의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먼저 이야기 해봅시다. 정의는 보편적 가치에 토대를 두는 것입니다. 그러나 불교, 기독교, 유교, 자본주의, 공산주의 등의 가치는 특정 시간과 공간 그리고 집단 등에 제한되므로 특수가치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반면 보편적 가치란 나라가 다르거나 종교가 달라도 함께 공유할 수 있는 가치, 즉 인류보편적 가치라고 말합니다.
‘사람을 죽이거나 때리면 안 된다. 남의 물건을 뺏거나 훔치는 것은 안 된다. 상대방을 성추행하거나 성폭행하면 안 된다. 말로 남을 속이는 것은 안 된다. 술을 마시고 취해서 남에게 주정하면 안 된다.’와 같은 내용은 누구나 다 수용할 수 있고, 누구나 들어서 합당한 것으로 이러한 것들이 보편적 가치에 해당합니다.
정의는 누구나 동의할 수 있는 보편적 가치이기 때문에, 일정한 합의가 가능합니다.
그럼 보편적 가치를 추구할 때 그 기초를 무엇으로 둬야 할까요? 자연현상, 즉 생태윤리를 기준으로 해야 합니다. 자연 현상에는 없지만 인간의 행위가 좋아 보이면 그건 선이라고 말할 수 있고, 자연 현상에는 있는데 인간의 행위가 그 만큼 못 미칠 때, 즉 짐승보다도 못하다고 하면 그건 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짐승은 새끼를 놓으면 종족보존의 본능이 있어 어미는 목숨을 걸고서라도 새끼를 보호합니다. 이것이 자연현상입니다. 하지만 엄마들 중 아이를 낳고 직장을 다닌다고 돌보지 않거나, 자식을 유기한다거나 하면 이는 자연현상에 어긋나기 때문에 악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짐승은 어미가 늙었다고 돌봐주지 않습니다. 그래서 자식이 늙은 부모를 돌보는 것은 선행이라고 할 수는 있지만 부모를 돌보지 않는다고 악한 것은 아닙니다. 이를 악행으로 보는 것은 유교윤리에 의한 것입니다. 또 짐승들은 색깔과 모양이 다르다고 해서 차별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인간이 피부색 다르다고 해서 차별하는 것은 자연현상과 맞지 않습니다. 그동안 우리가 말해왔던 정의 중에는 특수상황을 일반화시킨 경우가 많은데 그것은 정의라고 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주장하는 정의가 우리사회의 보편성을 가지려면 이렇게 생태원리를 기초해서 판단해야 합니다.
그럼 갈등을 해결하고 통합으로 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 진실에 근접해서 문제를 바라봐야 합니다. 둘째, 사람들은 서로 다르다는 걸 인정해야 합니다. 우리 무의식은 항상 같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길에 있는 사람과는 다르다는 걸 인정하기 때문에 갈등하지 않지만, 부부끼리는 자기 기준에서 서로 같아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갈등하는 겁니다. 그리고 상대방의 입장에 서서 그럴 수도 있겠다고 이해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이해하는 바탕 위에서 대화를 하면 서로 합의해서 절충점을 찾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A는 빨간색 안경, B는 파란색 안경을 꼈어요. 흰 벽면을 보면서 A는 빨갛다고 하고, B는 파랗다라고 서로 주장하면 갈등이 생깁니다. 이 문제는 자기 안경을 벗으면 쉽게 문제가 해결됩니다. 즉 진실에 근접하면 갈등이 해소되는 것입니다. 설령 진실에 근접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갈등을 해소할 수 있습니다. ‘서로 다르게 보이는 구나, 진실은 뭘까’이렇게 규명의 자세가 되거나, 최소한 서로 안경이 다르니까 달리 보이는구나라고 인정하면 갈등이 해소됩니다.
갈등을 해결할 때 약한 자가 강한 자에게 힘에 밀려 양보하면 비굴하게 됩니다. 즉 복종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은 의식구조상 복종하면 그 힘의 역학관계가 역전되었을 때 다시 저항이 일어나면서 갈등이 생기게 됩니다. 오히려 강한 자가 약한 자를 포용해서 통합하면 부작용이 없고 통합의 시너지가 납니다. 신라는 힘이 약하고 관계가 좋지 않았던 가야를 포용해서 통합했습니다. 통합 후 신라의 국력은 폭발적으로 성장하게 되고 이 힘으로 삼국을 통일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통합의 시너지 효과라고 볼 수 있습니다. 반면 신라가 삼국 통일할 때는 백제와 고구려를 침공해서 힘으로 눌러서 통합했습니다. 그러자 200년이 지나 신라가 힘이 약해지니 후고구려, 후백제가 일어나면서 분열되었습니다. 이런 역사적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지금의 남북갈등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힘의 우세에 있는 남한이 약세에 있는 북한을 포용하면서 통합할 때 남북통일로 인한 시너지 효과를 확대할 수 있습니다.
우리사회 갈등의 근본원인은 남북갈등입니다. 하지만 해결책은 남남갈등에서 풀어야 합니다. 남북문제는 남한에 있는 우리가 주체적으로 풀어야 하는데 남한안에서 생각이 일치 하지 않으면 풀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남한내 사회통합이 먼저 이루어져야 합니다. 국민통합이 되려면 강자가 먼저 양보해 주고, 약자도 자기 요구를 100% 해결하려고 하면 안됩니다.
이제 시대가 바뀌어서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타협이 필요합니다. 대표적으로 세월호를 봅시다. 세월호 진실 규명이 지금 가장 큰 이슈입니다. 유가족들은 진실규명을 요구하지만 진실을 밝히지 않겠다는 세력의 힘이 더 강하니까 안 풀리는 것입니다. 그럼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그들보다 힘을 더 키워서 밝히든지, 아니면 진실 규명을 80%만 밝히고 나머지 20%는 유보했다가 다음 정권에서 밝히는 차선책을 선택하든지 해야 합니다. 100% 요구하며 상대에게 저항할 수는 있으나 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분노한다고 해결이 안됩니다.
남북 갈등을 해결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민족의 통합을 하나의 큰 가치로 봐야 합니다. 남한에 사는 사람이 지금 남북갈등으로 남북 모두에게 손해가 되고 오히려 다른 엉뚱한 쪽에서 이익을 본다는 것을 알고, 우리의 이익을 위해서라도 북한을 포용하는 게 낫다고 자각한다면 남한이 양보해서 통합이 가능합니다. 남북문제는 동북아시아의 공동체를 구성하면서 우리가 더 큰 세계로 나아갈 수 있는 기회라는 것까지 내다보면 당장 풀어질 수 있는 문제인데, 미래를 보지 않고 과거를 보니 해결되지 않습니다. 분단갈등이 해소되지 않으면 다른 사회갈등도 해소될 수 없습니다.
아무리 사회갈등이 첨예하더라도 우리가 미래의 과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하는 입장을 가지면 금방 타협점이 나옵니다. 산업화의 성과도, 민주화의 성과도 인정해주면서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다음 과제인 남북통일, 복지사회 등을 해결하기 위해서 우리가 지금 어떻게 해야 되겠느냐하는 이런 미래지향적 관점을 가지는 것이 필요합니다.”
스님께서는 수강생 10명의 질문에 대한 해법을 최대한 담아서 열정적으로 강의해주셨습니다. 사회통합에 대한 해법을 찾기 위해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철학적인 질문에서부터 시작하여,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갈등의 원인, 어떻게 갈등을 풀어갈 것인가 등 다양한 모색을 할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평화리더십아카데미에 참여한 수강생들은 우리 사회를 이끌어가고 있는 전문가 집단인 만큼 스님의 말씀이 보다 더 책임감있게 와 닿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