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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게시판 스크랩 고 정군칠 시인 1주기를 추모함
김창집 추천 1 조회 217 13.07.07 17:33 댓글 4
게시글 본문내용

 

엊저녁에는 고 정군칠 시인 시선집 ‘빈방’ 출판 기념회 겸

1주기 ‘추모의 밤’이 제주문학의 집에서 열렸다.

평소 고인을 좋아하던 문인들과 문우 안도현, 배한봉 시인 등도

물을 건너와 고인을 추억하는 시간에 합류했다.

 

이어진 뒤풀이에서는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끼리

고인을 회억하다보니 술이 어지간히 되었는데,

이어진 강정 돕기 포장마차에서 만난, 뜻이 맞는

좋은 사람들과 어울려 그만 통음이 되어 버렸다.

 

오늘 오전 중에 고 정군칠 1주기 추념 예불이 있는데도

일어나기가 쉽지 않아 아침에 미적미적하다

겨우 정신을 차려 뒤늦게 차를 몰고 나섰는데,

뒤에서 오던 개인택시 기사가 뭐라뭐라 하길래

옆에 차를 세우고 보니, 오른쪽 뒷바퀴가

펑크나 있었다. 아는 자동차 정비공장에 전화를

걸어보고, 보험사에 전화를 걸어 봐도 일요일이라 시원치 않다.

 

그만 하면, 오늘 피곤한데 무리하게 운행하지 말라는 신호로 받아

들이기로 하고, 이면도로로 끌고 가 세워 놓고 돌아오려니,

군칠이와 회원들에게 미안해 견딜 수 없다. 사무국장에게

메시지만 넣고 돌아와 조금 쉬고 나서, 군칠이를 생각하며

시집을 열었다. 시집 속표지에서 생각에 잠겨 있던 사진 속의

군칠이가 ‘형님 되었수다. 앞으로 나이 생각허영 술도 적당히 드시고,

오늘랑 제 시에 형님 찍은 숨비기 꽃이나 골랑 올려줍서,’

하는 것 같다. ‘고맙다. 네 딸 다은이도 준수한 청년을

데리고 왔는데, 결혼 한다더라. 이제는 모든 것을 훌훌 털어버리고,

편히 쉬라.’ 이렇게라도 위안하며 미안함을 조금 덜고 싶다. 

 

 

제주작가회의 이사였던 정군칠 시인은

중문에서 태어나 1998년 ‘현대시’로 등단하여

2003년 시집 ‘수목한계선’

2009년 시집 ‘물집’을 발간했고

2011년 제1회 서귀포문학상을 수상했으며

2012년 7월에 세상을 떠났다. 

 

 

♧ 유고 시선집을 내면서

 

거기, 고요한가요?

달의 난간에 기대어 바라보는 그곳, 쓸쓸한가요?

 

당신이 망설임 없이 걸어 들어간 베릿내 앞바다

길고 아득하여 닿을 길 없고

 

다만

당신이 온몸으로 지나간 길,

발자국 따라 순비기꽃 한 그루 심으니

서편, 파도 무덤 위로 노을 그림자 길어지고

꽃 진 자리 까만 씨앗 열리는 그때

 

生의 境界를 훌쩍 건너 돌아와

이 빈방을 채워주시길.

 

2013년 여름

정군칠을 생각하는 사람들 

 

 

♧ 빈방

 

삼태성三台星 막 돋는

저녁 무렵

 

왜가리 날아와

금붕어 한 마리 물고 갑니다

 

연못에

빈방 하나 생겼습니다 

 

 

♧ 바다의 물집

 

환한 빛을 따라 나섰네

지금은 달이 문질러 놓은 바다가 부풀어 오르는 시간

여에 부딪치는 포말들을

바다의 물집이라 생각했네

부푸는 바다처럼 내 안의 물집도 부풀고

누군가 오래 서성이는 해변의 밤

온통 흰 꽃 핀 화엄의 바다 한켠

애기 업은 돌을 보았네

그 형상 더욱 또렷하였네

 

제 몸 밀어내고 다른 몸을 품고서야 바다는

해변에 닿는다지

버릴 것 다 버린 바다의 화엄이

저 돌로 굳은 것일까

걸러내야 할 것들이 내게도 참 많았네

목이 쉬도록 섬을 돌았네

단지 섬을 돌았을 뿐인데 목이 쉬었네

파도의 청징淸澄한 칭얼거림이 자꾸만 들려왔네

깍지 낀 손 풀어 그 울음 잠재우고 싶었으나

달빛은 바다 위에서만 출렁거리고

나는 서늘한 어둠의 한켠에 오래

오래 머물지 못했네  

 

 

♧ 모슬포

 

 모슬포에 부는 바람은 날마다 날을 세우더라. 밤새 산자락을 에돌던 바람이 마을 어귀에서 한숨 돌릴 때, 슬레이트 낡은 집들은 골마다 파도를 가두어 놓더라. 사람들의 눈가에 번진 물기들이 시계탑 아래 좌판으로 모여들어 고무대야 안은 항시 푸르게 일렁이더라. 시퍼렇게 눈 부릅뜬 날것들이 바람을 맞더라.

 

 모슬포의 모든 길들은 굽어 있더라. 백조일손지묘(白祖一孫之墓) 지나 입도 2대조 내 할아비, 무지렁이 생이 지나간 뼈 묻힌 솔밭 길도 굽어 있더라. 휘어진 솔가지들이 산의 상처로 파인 암굴을 저 혼자 지키고 있더라. 구르고 구른 몽돌들은 입을 닫더라. 저마다 섬 하나씩 품고 있더라.

 

 날마다 나를 세우는 모슬포 바람이 한겨울에도 피 마른자리 찾아 산자고를 피우더라. 모슬포의 모든 길들은 굽어 있더라. 그래야, 시절마다 다르게 불어오는 바람을 껴안을 수 있다더라. 그 길 위에서 그 바람을 들이며 내 등도 서서히 굽어 가더라.  

 

 

♧ 할머니 장터는 나의 태반이다

 

 할머니 장터에는 모든 것이 천원이다. 천원 한 장이면 채반에 담긴 푸성귀에 내려앉던 이슬과 햇볕과 남실바람, 새털구름이 지나간 흔적까지 살 수 있다. 빙 둘러앉은 그들의 반상회가 길어지면 할머니는 헛기침으로 푸성귀들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일침을 놓는다. 너희들 해 저물도록 정신 바짝 차려라

 

 새벽잠 설친 할머니의 고개가 자꾸만 한낮의 태양 아래로 기운다. 그 사이 몇 개의 채반은 비워지고 고이춤의 꼬깃꼬깃한 지전이 할머니 이마 주름을 한 겹씩 끌어당길 때, 올이 성긴 삼베적삼 사이로 드러나는 젖가슴. 늙은 거미의 집처럼 유선을 따라 젖이 돌던 자리, 뿔뿔이 흩어진 젖니들의 기억 환한 그 자리가 뭉클, 뭉클하다.

 

 염장이 손길 스친 어머니 바짝 마른 젖가슴도 저리 뭉클하였으리. 젖배 곯던 물기들은 내 눈썹 아래 아직도 그대로여서 몇 개의 비닐봉지로는 저 터진 물집을 다 담아내지 못한다. 빠듯한 천원짜리 지전을 수도 없이 건네주던 어머니가 차곡차곡 채반을 거둬들인다. 그 안에 소롯이 들어앉은 나. 말라가면서 가벼워진 채반은 나의 태반이었다  

 

 

♧ 베릿내의 숨비기꽃

 

물총새 한 마리 얼씬거리지 않는다.

베릿내에는

고향 뜨며 거둘 새 없던 숨비기꽃 겨우 몇 포기

바다마을을 지킨다.

이 척박한 바위틈에 어머니의 숨비 소리꽃으로 타올라 있다.

제기랄.

지금은 어머니 산소 다녀 오는 길

어깨 늘어진 숨비기꽃도 함께 다녀 오는 길

봉분의 흙 한줌 가져와 꽃부리 덮어주면

어느새 내 등에 얹혀오는 따뜻한 손이 있다.

 

사라호 태풍이 일던 아침 물이 불어나고

내를 거슬러 오르던 은어떼들로

갈대들의 사타구니는 오싹오싹 긴장을 하고

마을을 에워싼 숨비기꽃은 바람을

잘도 막아 주었다.

다시 태풍이 불었다.

그 이름없는 태풍에는 희한하게도 물이 줄어 들었다.

은어떼는 흙탕물에 방향을 잃고

갈대들은 몸 추수릴 새도 없이 흙더미에 묻히고

숨비기꽃은 이파리 찢기며 나팔을 불어댔지만

자갈을 퍼 올리는 중장비의 굉음에 묻히고 말았다.

바삐 도망치는 게 한마리

게 한 마리처럼 집을 빠져 나오는 사람들을 보며

그게 칭원하여 바다는 거품을 물었다.

 

아득도 하여라

강산은 일 년만에도 변하여 그 일년이 스무번을 넘겼고

누이의 젖살 같은 베릿내에는

방황의 냇둑을 굽이 안고 돌아

숨비기꽃의 낭자한 상처를 아물리고 있다.

 

---

* 베릿네 : 천제연의 하류, 관광단지화 되기 이전에는 열두 가구의 조그만 어촌이었다.

* 숨비기 : ‘순비기나무’의 제주어. 

 

 

♧ 해녀콩 - 정군칠

 

태아의 발길질에

멀미나는 세상이 있었다지

저승길 멀다 해도

바닷속 그 길만 할까

들숨이 있는 한 살아있는 목숨이라

홑적삼에 달랑 바지 한 잎

 

날아가다 멈추었다는 비양도, 펄랑못 가

바다 향해 섬칫섬칫 줄기 뻗은 해녀콩

줄기 끝 콩꼬투리 야물게 매달려 있다

 

바다는 날콩의 비린내를 노을빛으로 받아낸다

 

바닷속 드나듦이 사는 길이라

속엣것 지우려

한 됫박 날콩을 먹었다지

불턱에 모여 앉은 젊은 해녀들

상군 해녀의 허리에 찬 납덩이같은,

탯줄처럼 이어지는 이야기를

듣고 또 들었다 하지

 

그런 날 바다의 낯은 놀빛 더욱 붉어지고 

 

 

♧ 제주 활화산(조시) - 배한봉

 

 나지막한 현무암 돌담길 같았던 사람, 큰 눈에

 제주바다 푸른빛 담고 있던 사람,

 내심(內心) 깊어 묵묵했으나 손이 따뜻했던 그가

 

 중문의 베릿내 해안에 흰꽃 피웠다. 한 줌 뼛가루로 피운 흰 바람꽃, 그런 꽃 피운다고 누가 좋아하나? 묻기도 전에, 기어이.

 

 물의 집이고 삶의 ‘물집’이던 고행바다와 하나 되었다.

 그는 시의 활화산이었다.

 제주 오름을 사랑하고, 제주 문화와 역사를 뜨겁게 꽃피우고 싶었던 사람,

 

 관광단지 된 조그마한 바다마을 베릿내, 옛날 그 숨비소리를 끝끝내 품은 숨비기꽃 때문이었을까? 강정마을

 구럼비 바위를 지키려 애쓰던 그가

 제주 칸나의 시뻘건 꽃잎 같이 터져 솟구치던 시만 남겨 놓고, 풍문도 없이

 

  바다의 화엄이 되었다. 예순,

 아직 몇 구비 남아 있는, 걸어가야 할 길을 제주바다, 그 경계 없는 푸른빛

속으로 끌고 가 버렸다.

전율에는 거짓이 없다던, 아아

 

 제주의 시인 정군칠

 

 날개 없이 날 수 있다던 달의 난간, 그 아슬한 송악산 절벽의

 꽃이 된 시인, 기어이 벼랑 기어올라 영영지지 않는 바다의 화엄이 되고 만 시인,

 

 그러고 보니, 이별이라는 말, 참 칼 같다.

 형님, 평안이 가세요. 마지막 인사에도 묵묵부답, 그저 파도에 씻겨갈 뿐이어서 더 막막한 그리움.

그래, 그 바다에는 이승과 저승, 경계 없으니 이별도 없다.

 7월 폭염 아래, 더 시퍼렇게 일어서는 우리들 그리움만 남겨놓고.

                                                                                       (2012. 8. 현대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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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3.07.07 23:36

    첫댓글 생전에 고인이 좋아했던 순비기가 예쁘게
    꽃을 피워냈군요. 간만에 분간없이 술을 마신
    날이었습니다.새벽 5시 귀가.모두들 함께해서 좋은 날이었습니다.

  • 13.07.07 23:51

    허걱~ 속은 펜안허신지...쯧쯧

  • 13.07.08 10:15

    광명사에서 열린 추모법회도 잘 끝났습니다. 고인과 고인의 가족들로부터 제주작가회의에 전하는 고마운 인사를 많이 받았습니다.

  • 13.07.08 18:20

    시가 궁금해 선생님 강의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내 삶이 바쁘단 이유로 중도포기한 게 너무 후회스럽습니다. 지나고 나면 후회하는 게 사람이지요. 그러고도 또 후회할 짓 많이 합니다. 꼭 참석하고 싶었는데..., 선생님! 부디 극락왕생하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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