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펀 신작시|서정화
빗물 상담소 외
바다의 축음기를 하늘 허공에 걸어둔다
층층 쌓인 슬픈 서사 후경에 뒤엉켜 있어 문장이 숨 쉬지 않는 비의 소리를 듣는다 희고 검은 빛의 지휘자는 물무늬로 울리며 구름 위 지나가는 소리마저 온몸 쪼개 흔들고 숨가쁜 스타카토로 구름 벽을 세운다 저음의 낮은 음계에 굴껍데기 쌓인 무덤들
수 만 겹 파도에 옮겨가는 불협화음이 차오른다
그 해 도주하다 죽은 봄의 의문 몇 줄
행간에 숨겨진 수壽자 돌들에 새겨진 함구의 검은 필름이 채워진 기억 너머 복종에 무릎 꿇던 작은 체구의 그림자들 선감도*에 재를 묻었던 머리카락 타는 냄새가 다가오고 은잎사귀가 얼비친다 겨울비 횡단하는 뇌전증 갈피마다 물고기처럼 파닥이는 오금 저리고
명치 끝 회답이 없는 도돌이표로 출렁인다
*선감학원은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선감도 섬에 있었던 수용소로, 일제강점기 말기부터 1982년까지 약 40년 동안 존재했다. 사건 이후에는 경기문화재단 창작센터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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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라보란스 칸탄스
―Homo laborans cantans
풍경을 잘라내는 길
나선형 층계 오르다
앞으로 나아가려는 자세처럼 보여
목소리가 내 등을 때린다
불규칙 파동이 섞인
울음으로 증언하는
우웅 우웅 긴 흐름을
절취하는 쇳소리로
저의 뼈를 우둑우둑 꺾고선 선회하는
열주들이 울렁이며 홀려 들어 사물대는
먼 곳이 열리면서도
닫히는 생각의 대기
우뚝한 직선 세워
완곡한 곡선 너머
쇳물로 녹아 흘러 고인 그 자리에 서면
순은 빛 황량의 소리가 얼어붙은 음악의 별
*경기도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의 조나단 보로프스키 조각가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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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화 서울 출생으로 2018년 《서정시학》 신인상으로 등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