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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수집가는 자신이 서서히 잡부기술자가 되어간다고 말했다. 그래 잡부 기술자고 쓸 데가 있다니까. 그는 매일 저녁마다 밥 대신 막걸리를 사들고 남산으로 올라가는 습성이 있다. 밤에는 빨래를 하고 새벽이면 그 빨래를 걷으러 간다. 그곳엔 그를 위한 전용 목욕터가 있다. 수돗가에 연결한 호수로 나무 그늘 아래에서 선녀처럼 목욕을 한다. 달이 한 번 찼다 기울었고 그는 나그네가 쉬어가는 도시로 온 지 한 달이 되어간다. 삼팔일은 장이 서는 날이 아니라 돈이 나오는 날이다. 그는 돈을 받아 또 다른 도시로 뜰 모양이다. 그의 수집벽은 끝없이 그를 한 도시에 머물지 못하게 만든다. 하지만 곧 그는 이 도시로 돌아올 것이다. 그에게 이만한 일터를 아직 찾지 못했으니까. 그를 두고 떠나온 도시, 밤잠을 자지 않고 술을 마신 후 곧바로 새벽 전차를 탔다. 골목길, 그리고 열차에서 수없이 고개를 꺾었다. 마치 세상이 높은 상전이나 되는 것처럼 끝없이 절을 하면서 도시로 잠입해 들어왔다. 처음 낯설기만하던 도시는 이제 집이 있는 곳으로 검은 가방을 매고 다니던 추억까지 간직하고 있었다.
2
휴일이었다. 검게 그을린 얼굴을 보고 아내가 속상해 했다. 당신은 너무 자학하지 마. 자학은. 머리가 맑아진다니까. 아내는 간밤에 술을 마시고 울었다고 했다. 술도 마시지 못하는 사람이 술을 마시고 속내를 털어놓는 동생에게 술주정을 한 것일까. 아이들은 긴장을 한 채 물을 떠다 발개진 얼굴의 엄마를 살폈다. 우간다에서 온 아프리카 토인같어. 선크림도 안 바르고 모자도 안 쓰고 일 한 거야. 미술관에 다녀와야 한다는 아이를 데리고 인사동에라도 다녀올 생각이었다. 현대미술관, 서울 시립 미술관, 선바위 미술관의 이름이 스쳐갔다. 하지만 오랫동안 쌓인 피로가 한꺼번에 밀려왔다. 더 이상 일어날 수가 없었다. 오후가 되어 가든이라도 가려고 하는데 마트에 들러야 한다고 아내가 말했다. 그래 절충안을 낸 것이 고기를 먹고 나서 마트에 들르자고 했다. 고향의 고갯마루처럼 아늑한 밤골의 언덕을 넘어 종점인 옛골로 향했다. 큰 아들은 엄마의 손을 잡고 작은 아들은 내 손을 잡았다. 푸른 밤송이가 커져 있었다. 오랫만에 찾아온 집이 아늑하기만 했다. 사람은 자신이 살던 곳을 떠난 뒤에야 비로소 자신이 지내는 곳의 소중함을 깨닫는지도 모른다. 외국에 나가서 자신의 집을 그리워하는 것처럼 말이다.
옛골산장, 흙돼지와 오리고기가 일품인 곳이었지만 한 번도 동네의 가든에 가 본 적이 없었다. 무심한 세월이었다. 흙돼지와 생선구이를 시켜놓고 아내와 소주를 마셨다. 아이들은 오랫만에 온 가족이 함께 하는 시간에 즐거운 표정이었다. 오래전 여수 앞바다에서 오동도를 바라보면서 먹던 해물탕의 맛처럼 가족이 함께 하는 식사가 마음 속에 포근한 안식으로 다가왔다.바람이 시원하고 주변 청계산의 풍경이 눈에 들어오는 곳, 등산을 마친 사람들이 삼삼오오 짝을 이뤄 술을 마시고 식사를 하고 있었다. 아내와 식사를 한 것이 보름만이었다. 지난 주말엔 그저 옷가지만 빨아가지고 훌쩍 떠났다. 일 주일에 한 번의 외식, 그것도 온 가족이 함께 하는 느긋한 여유의 시간이 이토록 마음 깊은 곳을 흔들어놓을 줄을 몰랐다. 큰 아이는 뽀얀 얼굴이 엄마처럼 환했고 작은 아이는 교육문화회관으로 수영을 다녀온 후여서 그런지 평소보다 더 검어보였다.
우리도 이렇게 일 주일에 한 번씩 오자, 자 우리 가족을 위하여, 아내는 콜라를 든 아이들과 함께 건배를 했다. 아내는 사업을 하는 오빠의 파산, 그리고 빚독촉에 시달리면서 집을 떠나 빈집이 되어버린 사정을 말해 주었다. 한 주 사이에 많은 것들이 변해 있었다. 직장의 영업팀이 경기도 광주로 옮겨가는 상황 속에서도 사장에게 파워포인트로 사업내용을 보고한 것을 인정 받아 사장을 돕는 일을 계속 남아 할 것 같다고 말하는 아내는 그나마 다행이라면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소주 한 잔만 마셔도 얼굴이 발개지는 아내는 소주를 몇 잔 마시더니 기분이 좋아졌다. 서서히 걸어서 다시 밤골의 언덕을 넘어오는 길, 아이들 손을 잡고 걸었다. 어둠이 내린 길 저편에서 불을 피워놓은 연기가 불빛과 함께 퍼져갔다.
집에 가면 아이들 교과서를 가져다 이학기 공부를 시켰다. 그리고 아이들과 식사를 하면서 마음 속 대화를 나눴다. 한 주 한 주 아이들을 볼 때면 아이들이 점점 커간다는 실감이 났다. 아이는 자신 또한 아빠 못지않게 검어졌다면서 특히 이 부분을 보라면서 엉덩이를 까고 등과 엉덩이의 피부 색깔을 실감나게 비교해 주었다. 재밌는 녀석이다. 컴퓨터 게임을 하기 전에는 꼭 책 한권을 읽고 해. 아이들은 홍당무와 알프스 소녀 하이디를 읽고 그 줄거리를 말해주었다. 아내가 출근하면서 고생하라는 말을 여러번 하고 갔다. 아이들과 늦은 점심을 먹고 집을 나왔다. 작은 아이는 오랫동안 쳐온 피아노를 치러 학원으로 향했고 큰 아이와 집에서 밀린 이야기를 나누면서 이학기 공부를 한 후에 집을 나섰다.
머물지 못하고 떠나야 하는 집, 멀리 집이 있는 동네를 올려다 보면서 정든 골짜기를 떠났다. 버스를 타기 위해 aT센터 앞에 있다가 급하게 서두르는 통에 정류장 유리창에 머리를 부딪쳤다. 가방에 챙겨넣은 물건들이 손에 만져지는 큰 가방을 매고 도시를 떠나왔다. 가방 속에는 성경책과 낱말사전, 그리고 안전화와 속옷가지들이 들어 있었다. 처음 보다 더 익숙해져 가고 오는 길이 더 가깝게 느껴졌다. 사람들이 몇 번이나 내리고 탔다. 전차에서 물건을 파는 사람 또한 여러 사람이 지나쳐갔다. 손전등, 오이 깎는 기계, 추억의 팝송CD, 그리고 병원비를 마련하지 못해 껌을 파는 백발의 사내도 지나갔다.
3
다시 낯선 도시로 돌아오는 길, 여러 모습들이 스쳐갔다. 벤자민 화분 두 그루를 싣고 사람들을 의식하면서 지나가던 사내의 멋적은 웃음, 싸대기를 때리면서 손을 봐 줬다는 여중생들의 대화, 전차 안에서 국전 입선작을 자세히 떠들어 보던 부부, 아주 작은 도시에도 깃들어 있는 그 먹고 사는 치열한 승부들, 얼마나 많은 기차들이 스쳐지나간 것일까. 기차의 바퀴 소리는 빠른 삼박자, 그렇고 보니 쿵작작 쿵작작 팔분의 육박자 리듬이었다. 그 기차 바퀴 소리 속에는 알 수 없는 중심 찾기의 저항 같은 것이 들어 있었다. 흔들림 속에서도 중심을 찾으려는 움직임이 느껴졌다. 넘고 넘어도 또 넘어야 하는 길이었다. 한 번 시작하면 그 길의 끝을 보지 않으면 안 되었다. 곳곳으로 향하는 종착점들의 이름을 떠올렸다. 청량리, 오이도, 안산, 당고개, 병점, 수원, 처난, 구파발, 대화, 수서, 미금... 역 이름들 속에 담긴 뉘앙스가 알 수 없는 시대적 의미처럼 다가왔다.
더 깊은 중심, 늙은 개미와 대면하기, 세상의 특별한 사연과 만나는 중이었다. 이야기를 확보하려는 지상명령을 따르는 길인지도 모른다. 인생을 관통하는 불행과 비극적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그 희비의 꿈틀거림에 주목한다. 인생 막장에 부딪친 사람들을 통해 배운다. 그들에게 들이 닥친 인생의 사연들 때문이다. 술로 인생을 조진 술빼기 인간들, 술을 한 번 마시면 끝장을 보려고 덤벼든다. 며칠 동안 일을 해 번 돈을 하룻밤 사이에 다 날려버린다.이빨이 빠지고, 실없어 보이는 헐렁한 바짓 속의 사내들, 끝없이 술을 마시고 막다른 길로 접어든다. 노름꾼들은 그 요행수를 버리지 못하고 벼랑 같은 함정 속에서 자신에게 찾아올 대박을 꿈꾸면서 늙어간다. 로또 하나에라도 희망을 걸지 않으면 즐거울 수 없는 그들의 인생을 본다. 다들 그들만의 구멍이 있다. 힘든 일을 감당하지 못한 채 끝없이 손쉬운 일을 찾아 떠나온 변덕쟁이들도 있다. 그 변덕꾼의 최후를 본다. 자신의 바닥을 더 낮추면서 죽어간다. 죽음이 그림자를 길게 늘어 뜨린 채 그들을 덮어온다. 자학꾼들도 있다. 그들은 자신을 더 죽이는 일에 관심이 많다. 새디스트들과는 선 방향이 반대다. 그들은 자신의 몸뚱어리를 학대하는 쾌감을 느끼면서 무너져 간다. 못난 사람들은 못난 대로 산다. 음녀의 소굴에 빠져든 사람도 있다. 그들은 돈만 벌면 노래방으로 혹은 값싼 여인숙으로 향한다. 자신조차 자신을 위로하지 못해 누군가 자신의 몸뚱어리를 위로해줄 사람이 필요하다. 새벽은 두 얼굴을 가지고 있다. 어떤 이에게는 최초의 시간이고 또 어떤 이에게는 최후의 시간이다. 어떤 이는 시작하고 또 어떤 이는 끝장을 본다.
끝없는 아와 비아의 싸움이다. 그 싸움이 더 격렬해지는 곳, 그 나그네의 도시로 돌아온다.불이 켜진 비상구, 원숭이의 단편을 떠올린다. 대범한 거짓말이자 하나의 세상 짓기다. 종교에 쉽게 몸을 맡기지도 못하는 사람들, 그들은 곳곳 처절한 삶의 현장에서 특별한 구원을 찾아나선다. 다른 곳에서는 찾을 수 없는 구원의 방식, 머리 속으로만 생각하지 않는다. 몸으로 일일이 부딪쳐야 하는 어리석은 방식을 택한다. 유리벽을 깨고 있다. 그 동안 관념의 벽에 갇혀 살았다. 몸을 움직이지 못한 채 오랜 선택불능에 시달렸다. 주고 받기 게임처럼 부딪침의 강력한 운동력을 확보해내려고 했다. 반응을 보이고, 결론을 보는 일이다. 단순한 주장과 방식으로 토로의 수준에 머물지 않는다. 힘겨운 줄다리기를 한다.
자신의 뜻과 다른 뜻의 싸움, 그 안의 중심 잡기는 계속 된다. 언제 한 번 그렇지 않은 적이 있었던가. 모순 속의 세상이다. 혼돈을 조정하면서 산다. 모순과 대면한다. 사람들을 통해 사건을 겪어낸다. 이야기가 관통하는 주제를 본다. 소중한 생명의 빛, 그 눈부처처럼 각 사람들에게 부여된 빛이 있다. 개인과 사회, 개인을 넘어선 작품, 세상이 담기는 작품이 있다. 눈빛 속 생명의 의지, 그것이 향해 있는 길을 본다. 문제는 부림을 당하면서도 부리는 일, 조종을 당하면서도 조종하는 일, 휘둘림을 당하면서 휘두르는 일이다. 자신만 보지 않고 전체를 본다. 분위기 도둑, 시간도둑들. 연출에 몸을 맡기며 따라가지만은 않는다. 세상을 만들어간다. 수요자와 소비자로서만 살지 않는다. 공급자다. 작품의 공급자, 연출자다. 그 연출의지와 깊이를 향한 역량을 살린다. 자본논리에 일방적으로 휘둘리지 않는 중심을 갖고 산다.
생활의 중심찾기다. 세상에 일어나는 일들에 호기심을 갖는다. 다만 그 안에 남는 것이란 무엇일까.춥고 외롭고 극단적인 소외, 삶의 현장 속에서 벌어지는 일은 무엇인가. 무기수의 휴가, 눈오는 날 천지간에 가득한 눈발 속으로 떠나오던 날. 얼마 남지 않은 노모와 자신의 자식이라고 데려다 놓은 아들, 동네 초상을 치르고 사람들을 만나고 다시 떠나와야 하는 길이라니, 기차를 타고 떠나왔던 모범수의 휴가, 그렇게 잠시 잠깐의 외출을 다녀가는 무기수의 길 위의 날들, 그 길 위로 생사간에, 떨어지는 눈발처럼 문학이란 극단적인 인생의 상황 속으로 떠나간다. 너무 일상적인 것들에 머물러 살았어. 겹침의 미학처럼 그렇게 일상을 새롭게 발견해내는 특별한 사건이 필요해. 불필요한 사족을 줄이고, 항시 인생의 궁극적인 상황, 죽음의 기로에 선다. 오래 가지 않을 게임이다.
수없이 많은 책들이 나오지만 정말 악화가 양화를 구축시키듯 정작 읽어야 할 책들을 보지 못하게 하는 건 아닌지. 희망을 잃고 죽어가는 사람들의 마저 남은 희망, 남아 있는 날들의 기록이다. 끝없이 죽음으로 내몰리는 사람들을 만난다. 그들에게도 희망은 실낱처럼 남아 있다. 마음을 비워내야 살 수 있는 길이다. 암울한 삶의 벼랑 속에서 만나는 희망의 외줄타기다. 불타고 있는 건물 속에서 탈출하는 칠인의 무사들처럼 극단적인 상황 속에서 희망을 찾아 떠나는 비상구 찾기다. 연민이 아닌 직면이다. 불필요한 친절을 버린다. 인생의 궁극적인 상황을 보여주는 축도이다.
자살을 하려고 옥상으로 올라간 아이들, 2개월 자살을 늦춰준 좌흥, 쉽지 않은 싸움들 통과해야 하는 과정이 있다. 빗길 오토바이 핸들을 꺾는다. 역 광장에선 죽은 건설 노동자의 죽음을 기리며 노동여건 개선을 위한 싸움을 선언한다. 팔마재 벼랑에 서 죽으려고 하던 교사가 상록수 교사로 다시 태어난다. 죽을 각오로 산다. 곳곳 생사의 기로, 죽을 각오로 살고 살 각오로 죽는다. 석면을 뿌리는 중국인 노동자, 석면가루를 마시는 청소부들, 죽음이 밀려와도 살려고 몸부림친다. 죽은 자의 머리를 쥐어 뜯으며 살아난다. 병원비를 마련하기 위해 껌을 파는 사내가 지나갔다. 비웃음과 냉담함을 뒤로 하고 껌값을 낸 사람에게 백발의 늙은 사내가 말을 남긴다. 복 많이 받어요. 매정한 도시, 그 팽팽한 긴장이 맞서 있다. 도시는 거대한 무덤, 죽음의 그림자가 곳곳에 장례식장처럼 짙게 드리워져 있다. 영생상여, 어릴 때 들었던 만장의 깃발처럼 도시 속에 죽어가는 자들과 살아 있는 자들이 만난다. 거대한 도시는 사람들을 떠나보내는 꽃상여처럼 출렁이고 있다. 보내고 헤어지는 나그네의 도시, 잠깐 쉬었다 떠나는 주막집 여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