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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 不輾常立의 精神- ....... | ||||||
내가 짧게 4개월 동안, 전속 부관을 했던 사단장님은, 사단의 구호를 부전상립으로 정했다 .... 8사단은 6/25 초전에 큰 타격을 입고, 영천에서 밀려, 사단 전력의 반이 토막나고, 더우기 21연대는 적 후방에 고립되었다 .... 적에게 영천-대구-부산 축선이 열리고 있는데, 불과 2주면, 부산이 함락될 위기였는 데, 하늘은 우리 사단에게 다시 기회를 줬다 .... 21연대를 주축으로, 필사 반격한 우리 사단에 의해, 적은 북으로 물러나고, 우리 사단은 낙동강 방어선, 아니, 나라를 지켜낸 영천 전역의 최종 승자가 되어, 땅바닥에 굴러도 일어나는 오뚜기가 부대 상징이 되었다 ... 8사단 장병은 오뚜기 카레를 맛이 별로 없지만 잘 먹는 이유다... 물론 나도 자주는 아니지만 ..... 나의 사단장, 김장군님은, 넘어져서 일어나는 것은 치욕이니, 아예 굴러지않고, 항상 서 있는 것이, 진정한 오뚜기라는 뜻에서, 부전상립이라 하고, 아예 넘어 가지 않게, 무식하게, 3사단의 해골뼈를 오뚜기 밑에, 받혀 흔들리지 않게 했다 .... 참으로 군인다운 무식한 발상이고, 패션 감각 제로이고, 옆으로 넘어지면, 뼈 때문에 다시는 일어 나지 못하니, 이 것은 더 이상, 오뚜기가 아니다 ..... 고집장이시고, 엉뚱하시고, 키 작고 배 나오긴 했으나, 그 분은 몇 안되는, 내가 존경하는 군인의 한 명이다 ... 사모님도 후덕하신 분이셨다 ..... 젊은 내 꿈을 간직했던 나의 사단을 사랑한다 ... 내 아래 동생의, 아들 둘은, 니의 16연대에서 특급 병사로 명예 제대하고, 지금 대학에 다닌다 .... ----------------------------------------------------- 오뚜기 부대에 關한 斷想 ... - ........|통합 게시판 hangangcopy | 등급변경▼ 준회원 정회원 우수회원 특별회원 | 조회 72 |추천 0 |2012.08.25. 11:20 http://cafe.daum.net/hangangcopy/KslE/371 3930 날짜 2012-08-25 조회수 25 이 름 鄭 琮煥 제 목 박 병호/ 넥센 4번 타자 글번호 3930 날짜 2012-08-25 조회수 33 이 름 鄭 琮煥 제 목 박 병호/ 넥센 4번 타자 나는 야구를 좋아 하고, 월급 장이 시절, 요즘도 존재하는 사회인 리그 소속의, 야구팀을, 회사를 옮길 때 마다 만들어, 3개를 창설했었다 ..... 지금도, 미즈노 배트2, 왼빼 글로브1, 글로브 2-3개, 캐쳐 미트 & 마스크, 싸인 볼 몇개를 기념으로 가지고 있다 ... 전성기는 1개팀의 풀 장비를 차에 항상 싣고 다녔으니까.... 팀에서, 나는 2번을 치고, 수비 부담이 적은 우익수를 맡는다 .... 높은 공을 놓치거나, 알을 까서 수비는 제로다. 허나, 타격에선, 타율 60%, 데드볼, 포볼 합하여, 출루율 80%를 상회한다 .... 팔 힘이 딸려서, 홈런은 잘 없지만, 1/2루타는 언제나 기록한다... 날아 가는 모기도, 칼로 베는데, 야구공 베는 건 그리 어렵지않기 때문이다....... 나는 박병호의 경기를 한 번도 본 일이 없고, 요즘은 야구 경기를 잘 보지 않는지라, 솔직히 그리 관심이 없다 .... 그런데, 이 글을 올리기 5분전, 인터넷 중앙일보를 검색하다가, 우연히 그의 기사를 읽으니, 26세까지 만년 거포 유망주로 머물던 그를, 넥센의 붙박이 4번 타자로 이끈 사람은, 4년 연상의 그의 아내로, 여군 학사 장교 중위 전역자인 데, 나의 8사단 후배였던 것이다. 73년, 74명의 오뚜기 전입 동기생을 대표하여, 전입 신고를 하였고, 오뚜기 복무중, 2회의 장성 표창을 수위하였으며, (임관시 2군 사령관 표창 득함), - 소대장- 단명 사단장 부관 - 군단 연락장교 - 사단 유격 통제관 -을 역임했던, 내 젊음을 아낌없이, 나라를 위해 쏟았던 그 부대의 똑똑한 후배이고, 또 나의 한강(CHUNG-ANG/ CAU)대학 후배이기에, 나는 박선수보다, 그의 아내의 팬이 되어, 이 글을 올린다 ..... 山人.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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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지금 소주7병 마시고,
corona 땜에
山,
旅行도 못 가고 ....
tv에서 태양의 後裔
재 방송을 또 본다 .....
옛 追憶을 그리며 .....
고참 중위 시절,
x 군단 작전 상황실 勤務시
서울 외박을 나가다,
bus에 같이 탄 女軍 大尉와
같은 버스를 타고,
마장동 terminal에
오후 5시 내려,
차 마시고
술 마시고
3-5 차 놀다가,
흑석동
5층 모텔에 같이 들었는데.....
날 유혹(?) 하던 그녀가,
목욕하고 나오더니,
결혼 약속해야,
완전 나신 가린
목욕가운 벗겠대서
사과하고,
나 혼자
떠났다.
돌아 보면,
그때가,
my golden-time 이었든가? ......
年上의 그미는
어디서
잘 살고 있을까? ........
공수 부대 상사와
밀당하는
軍醫 女중위가 ...
그녀와
style이나,
용모가 너무 닮아
옛 追憶의 한 조각을
꺼내 보았다,
그녀를 감당하기는
너무 센 여자고,
떠나는
軍에 얽매이기 싫었기도
하고 ...
정은 統領이 위독한 모양이다.
여정씨가 北 내각에 입각한
이유가 나타나나 보다.
유고시,
여정님이나,
숙부 중,
누가 집권하든
北은 혼란 내지는'
內戰 상황으로 갈지도 모른다.
親 짱께 세력의
괴뢰 정부 내지는
평안도 함북을 시진핑이
도람프 양아치와
談合,
북핵 파기를 조건으로
할양 받을지도 모르지 .......
만일 그리되면,
문통유시민이인영조국
이정권 ㄸㄱㅈㄷ
이 정권 주축
백제인들민노총전교조
기타등등은
北 편을 들까?
아님
시진핑 皇帝 編에 설까?
몹씨 궁금하네...
예상 못한 事態지만,
얼마나 재미 있게
展開 될려나? ...
山人 ...
米 정찰기가 정은씨가
원산 해변 산책 하는 걸
잡았다고 하네 ....
불행중 다행이네...
그가 2-30년 집권해 줘야,
남한 양키 쪽바리가
통제 못하는 짱골라 로스께가
준동 할 여지를 주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이라도
北核이 없다면,
러중이 담합,
中은 평안도를 차지
동3성의 안녕과 북의 지배권을
확보하고,
露는 함경도를 확보,
200년 념원인 不凍港을
차지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북 통령이 흔들리면,
반란 세력의 준동으로,
10여개 黨派가 친중 친로 통일 등등
난무하게 될 것이 분명하다.
山人 書.
정은 氏가 무사해서
다행이나,
살 좀 빼서,
적어도 2-30년 중심 잡아주길
바란다.
理念 功過를 떠나,
북조선은
5000년 우리 역사의
6번 째 장수 왕조이다.
태조 김일성
태종 김정은
다음은
世祖가 될지?
世宗이 되거나,
金氏 王朝의 마지막
왕이 될지도 모르지만 ...
정은 統領이 스스로 만들며,
걸어 나갈 길이다.
테미스토 클레스를
도편 추방한 직접민주
아테네 우중,
지금의 베네스웰라 愚衆,
그리고
지들 이익 사이비 理念 밖엔 모르는
亡國 勢力에 농락 당하는
現在 남한 愚衆님들!!
고생한 母親
뜻 받들어,
여러 當時 軍政 實勢
권유 뿌리치고
轉役한 걸
지금 후회한다.
전두한 떨거지들 말고,
내가
그들 자리에 있었다면,
단두대에 서게 되더라도,
亡國의 싹을
있는대로 잘라 내,
지금의 빠리 꼼뮨은 없었겠지만,
모든 건
하늘의 뜻이고
민족의 運命이려니 하여,
나는
今後론
뉴스 안보고
정치 관심 완전
끊을 생각이다.
山人 書.
197x 년 늦 가을,
나는 x군단 벙커에서
한미 합동 도상 훈련에 참여했다.
군단 상황실 배치
반년 만에 나는 3년차 중위지만,
군단 작전 보좌관 중령
기갑 보좌관 소령
포병 보좌관 소령을 내 友軍으로 만들었다.
그님 들도 내 능력을 인정했었기 때문이다.
단,
육사 출신으로
米國 대사관 무관
米 대학 유학을 하고 온,
나 보다 영어 발음은 더 좋은
G3 air 보좌관은
실세?인 나를 은근히 견제 했었다.
6박7일
나는 실질적 군단장이 되어
1일 2-3시간 쪽잠 자며
군단을 이끌어,
北 탱크 7000대중,
우리 섹터에 6500대를
퍼부은 적의 공세를,
일동선에서 막아내고,
반격하여,
원산선까지 진출 승리했다.
그 공으로
전역 대기자인
老 작전 참모는 장군 진급했으나,
장기 근무 포기한 나는
사단 외출증 얻어,
집에 와서 쉬다가
화요일 군단장 주재
전군단 지휘관 회의에 불참했는데,
항작보 소령이
수요일 벙커에 출근한 나를
보자마자 조인트를 깠다.
물론
정당 방위로 그는
내게 잡혀 땅바닥을 수십번 구르는
수모를 겪고
상관
군단 작보,
작참에 까이고
나의 軍團을 떠났다.
중위지만
敵 미 8군 두뇌가 이끄는
적군을'
군단의 350여대 남짓의 전차로
20배가 넘는
적의 기갑 전력을 무력화 시켰고,
경기 서울 예비군을
민간 트럭 버스를 징발 반격에 사용한,
나의 임기응변을,
WESTPOINT 출신 米 參謀陳이
1 개인인 나를 감당할 수 없었고,
나의 군단 수뇌부도 인정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의 상관 폭행?
숱한 평문 통신도
보안사에서 기소치 않았으며 ....
장기 복무 권유를
軍 各 分野에서 받았으나,
교통사고,
母親의 요청을 뿌리 칠 수 없어,
나는
軍을 떠났다.
나의 家門은
3대 안에 문무 급제자
상신을 배출한 가문으로,
나의 선친은
별정직 사무관,
3형제중 막내 조부님은'
日帝末
대구서 전매처 공무원을 하시다,
쪽바리 상관을 패고,
滿洲로 갔으나,
당시는
만주엔 독립군이없어
팔로군에 입대,
625時,
중국지원군 중좌,
팽덕회의 전속 부관으로 참전하고,
중공군 소장으로 전역후,
길림성 부성장을 하시다,
홍위병에 고난을 겪으셨다.
수교후,
내가 초청 3회 내한하셨고,
연변에서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
出將入相,
내 家門의 모토이나,
내겐 그저
業이기도 하구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