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의 칭찬 방식】
손자가 100점 맞았을 때 할아버지는 어떻게 칭찬해야 좋을까?
윤승원 수필문학인, 전 대전수필문학회장
초등학교 2학년 손자가 또 백 점을 맞았다. 아이 엄마가 가족 채팅방에 <백 점 맞은 수학 학습지>를 올렸다. 할머니가 가장 먼저 축하 메시지를 올렸다.
“우~와, 우리 지환이 수학 백 점을 축하, 축하한다.”
할머니는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축하’라는 말을 두 번이나 반복했다. 그 정도면 충분하다. 할머니의 간결하면서도 진정한 사랑이 흠뻑 배어 있는 최상, 최고의 축하 표현에 더 붙일 말이 없다.
그런데 할아버지는 군더더기를 붙이고 싶다. 무언가 더 많은 축하의 말을 겹으로 하고 싶다. 지나친 손자 사랑일까? 그래서 ‘손자 바보’라는 신조어가 생긴 것일까?
이 할아버지는 누가 ‘손자 바보’라고 하면 대꾸를 하지 않는다. 왠지 그런 표현이 기분 나쁘다. 물론 우스갯소리로 하는 말이지만 ‘손자 사랑’이란 좋은 말을 놔두고 ‘손자 바보’라고 빈정대듯 말하는가? 이 할아버지에겐 듣기 싫은 표현이다.
SNS에서 어느 분이 내게 ‘손자 바보’라는 댓글을 번번이 달아 언짢게 여겼다. 급기야 답글 반응조차 하지 않고 ‘친구 관계’를 아예 끊어 버렸다.
서두가 길었다.
할아버지가 손자를 공개적으로 축하할 때 유의할 점이 있다. 단순히 사랑이 담긴 칭찬에도 내용이 구체적이면 더욱 좋다. 거기에 교육적인 가치를 담으면 더더욱 좋다고 생각한다.
칭찬에 안주하거나 태만하지 말라는 뜻이다. 오늘에 만족하지 말고 더욱 분발하라는 뜻이다. 옛 어른들은 이런 조언을 일컬어 ‘주마가편(走馬加鞭, 달리는 말에 채찍질한다는 뜻으로, 열심히 하는 사람을 더욱 잘하도록 격려함을 이르는 말)’이라고 했다.
그러나 유의해야 한다. 한참 뛰어놀아야 할 아이가 지나치게 공부 스트레스를 받지 않도록 어른들은 일상 언어에도 세밀한 배려가 필요하다.
손자는 그동안 국어 ‘받아쓰기 백 점’을 줄 곳 받아왔다. 그럴 때마다 할아버지는 선생님이 제대로 평가하셨는지, 아이가 쓴 답이 정말 옳은지 면밀하게 살펴본다. 가령 이런 식이다.
“이번엔 자칫 틀리기 쉬운 <해님>, <무릎>, <터뜨릴 것>을 정확하게 썼구나. 보통 실력이 아니다. 우리 지환이 받아쓰기 100점 축하한다. 대견하다.”
사실, 정직하게 말하면 등단 문인으로서 30여 년 넘게 원고지에 글을 써온 할아버지도 종종 틀리기 쉬운 글자를 어린 손자는 바르게 썼다. ‘대견하다’라는 표현이 그래서 결코 과장이 아니다.
오늘은 ‘받아쓰기 백 점’이 아니라 ‘수학 뺄셈 백 점’을 받아왔다. ‘수학 문제 백 점’은 처음이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카톡 단체 대화방에서 할머니의 사랑 넘치는 축하 문자에 이어, 할아버지도 축하의 글을 올렸다.
『살아가면서 가장 기쁜 소식이 우리 지환이 건강한 몸으로 공부 열심히 잘한다는 소식이다. 그보다 더 반가운 소식이 없는데, 오늘은 수학 점수 백 점이라니, 놀랍고 기특하다.
그동안 국어 받아쓰기 잇따라 백 점을 보여줘서 흐뭇했는데, 수학도 백 점을 맞아온 것을 보면서 마치 금메달을 목에 건 운동선수 모습만큼이나 대견하고 기쁜 마음 숨기기 어렵다.
할아버지는 우리 지환이가 80점이나 90점을 맞아도 좋다. 아니 60점이나 70점도 좋다. 왜냐하면, 더 열심히 하면 100점이란 목표에 이를 수 있다는 각오와 집념을 불태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렇게 뜻하지 않게 백 점을 당당히 맞아 왔으니 그간 숨은 노력이 만만치 않았을 것이라는 짐작을 한다. 앞으로 그 점수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더 큰 노력을 해야겠지.
공부에도 남모르는 땀방울이 있다. 백 점 성적의 이면에는 조바심치지 않는 엄마와 아빠의 따뜻하고 자상한 가정 학습지도가 숨어 있겠지. 엄마 아빠가 출근하고 나면 가까이에서 더 많은 시간 보살펴 주시는 외할머니의 깊고 따뜻한 사랑도 배어 있어 늘 고맙게 생각한다. 물론 전반적인 바탕에는 학교 선생님과 학원 선생님의 훌륭한 가르침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겠지.
어제 세계 높이뛰기 선수권대회에서 우리나라 우상혁 선수가 안타깝게 1위를 놓치고 은메달을 땄다. 그래도 유난히 밝은 표정으로 인터뷰한 우상혁 선수의 말이 인상 깊었다.
“최초 타이틀을 항상 원했다. 뜻대로 금메달을 얻지는 못했지만, 은메달로도 최초 타이틀을 챙겼다.”며 “더 전진해서 금메달을 목표로 열심히 할 생각이다. 시상대에 올라가게 된 것이 정말 꿈만 같고,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기분이 좋았다.”라고 소감을 전했다.
우리 지환이의 수학 점수 ‘금메달’과 같은 백 점을 보면서 그동안 우상혁 선수와 같은 집념과 남모르는 노력이 숨어 있구나 하고 느꼈다.
이른 아침, 지환 엄마가 전하는 기쁜 소식에 온 가족이 반가운 마음으로 축하의 박수를 보낸다.』
2022. 7. 24. 할아버지 소감
|
이처럼 할아버지는 이른바 ‘구식 노인네’ 방식처럼 하고 싶은 말이 많다. 사실 카톡 대화방이 있어 얼마나 좋은가. 얼굴 맞대고 이렇게 길게 얘기하면 칭찬이 아니라 잔소리가 될지 모른다.
할아버지는 기쁨이 넘칠 때는 언어 절제가 좀처럼 어렵지만, 그래도 이렇게라도 애정 표현하고 사는 것이 할아버지가 살아가는 재미이고, 보고 싶은 손자에 대한 ‘그리움 해소법’이니, 가족들은 이해하길 바란다. ■
첫댓글 손자 사랑이 지극하십니다. 즐거운 마음으로 항상 칭찬하시면 좋은 결과가 나오겠지요.
박 교수님으로부터 <손자 사랑>이란 말씀을 들으니, 가슴이 따뜻해집니다.
누구나 나이가 들면 외로워지나 봅니다. 어린 손자의 작은 소식 하나에도
많은 의미를 부여하고 싶어집니다. 살아가면서 칭찬만 하고 싶은 심정입니다.
늘 따뜻한 격려 말씀 감사합니다.
수학이나 받아쓰기나 모두 대단한 수준입니다.
어떻게 칭찬해야 좋을지 모를 정도입니다.
지환군은 아빠, 엄마, 할아버지, 할머니, 외할머니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의 칭찬을 받을만한 실력을 보이고 있는 것입니다.
한국은 지금 세계에서 인정을 받는 선진국의 대열에 들어섰다고 하지만
그것으로 만족할 수는 없는 형편이고
모든 면에서 진정한 선진국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지환군이 무럭무럭 자라서 진정한 선진국을 건설하는데
이받이할 것을 믿습니다. .................................................. 청계산
가족 채팅방에서 나눈 이야기를 이런 귀한 공간에 공개해도 될까 망설였습니다.
하지만 존경하는 지 박사님께서는 칭찬과 더불어 우리 교육의 현실과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까지 자상하게 짚어주셨습니다.
가정 교육도 중요하고, 학교 교육도 중요하지만, 이렇게 교육계의 원로이자
문단의 큰 어르신으로부터 귀한 말씀 듣는 것도 좋은 가르침이라 생각합니다.
요즘 우리 손자는 다른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태블릿PC(아이패드)를 좋아합니다.
많은 시간 아이패드를 즐기고 있습니다. 유일한 놀이기구이자 온갖 지식의 유입 통로이기도 합니다.
학교 다녀오면 태권도 학원에도 가야하고, 바쁘기가 경제 활동하는 어른들 못지 않습니다.
할아버지가 손자 보고 싶어도 한번 다녀가라고 말도 못하고 있는 현실입니다.
이런 글이나마 쓰면서 손자 보고 싶은 마음 조금 달래고 있습니다.
귀한 가르침과 따뜻한 격려 감사합니다.
지환이가 굳세게 그리고 열심히 자라고 있는 모습이 대견합니다. 그에 대한 칭찬은 지교수님 지적대로 올사모 카페 우리들 모두가 기대하고 환영할 일입니다. 앞으로 멀리 달려야 할 어린이게 어른들의 칭찬이
혹 스트레스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100점은 더 이상 올라갈 수 없는 무상의 점수입니다. 이에 집착하지 않도록 격려해주실 것으로 믿습니다. 감사합니다.
‘100점은 더는 올라갈 수 없는 무상의 점수’라는 표현과 ‘이에 집착하지 않도록’
집안 어르신처럼 따뜻하게 당부하시는 자상하신 정 교수님.
더구나 ‘어른들의 칭찬이 스트레스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라는 인정 어린 가르침은
오랫동안 교육 현장에서 학생들을 지도해 오신 원로 학자님만의 교육철학에서 나온
귀한 가르침이라 생각합니다. 명심하도록 온 가족에게 전달하겠습니다.
참으로 귀한 말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