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비밀
“띠링!” 친정 부모님과 다섯 남매가 모인 모바일 대화 방에서 알람이 울렸다. 엄마가 보내온 사진에는 이차 방정식으로 보이는 수학 문제가 적혀 있었다. 이어서 엄마의 글이 올라왔다. “이것 좀 풀어 줘” 여든 두 살에 방송 통신 고등학교에 다니는 엄마는 대화 방에 종종 수학문제를 올린다. 거기에 반응하는 사람은 중학교3학년 딸을 둔 넷째 아니면 중,고등학교 학생에게 논술을 가르치는 언니다.
가끔은 고등학교 1학년 조카가 엄마의 수학 문제에 답을 주기도 한다. 유일하게 초를 치는 사람이 바로 나다. “엄마; 수학은 포기해. 그래도 괜찮아.”
늦깍이 여고생은 포기를 모른다. 끝까지 붙잡고 늘어진다. 나는 그런 엄마가 참 좋다. 내 나이 오십이 넘도록 엄마의 최종 학력이 고졸인 줄 알았다. 어렸을 적. 학교에 제출하는 가정환경 조사서에 엄마는 늘 자신의 학력을 ‘고졸’이라고 적었다. 그 사실을 왜 적어야 했는지는 모르지만 말이다.
엄마의 비밀은 5년 전 밝혀졌다. 아이의 대학교 입학식에 엄마가 못 온다는 것이었다. 이유를 물어도 주뼛 거리만 할 뿐 딱히 답을 주지 않았다. 손주의 대학교 입학을 나보다 더 반기던 분이 갑자기 못 온다고 하니 나는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아빠에게 물었다. “네 엄마도 그날 입학식 간다.”
아빠가 대답했다. 나는 그게 무슨 소리냐고 되물었다. “네 엄마. 중학교 입학한다. 교육청에서 운영하는 문해 학교” 나는 곧장 남매들에게 엄마의 소식을 알렸다. 놀라기는 언니도 동생들도 마찬가지였다.
알고 보니 엄마는 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상급 학교로 진학하지 못하고 정보 기술학교에 다녔다고. 아빠를 만나 결혼하고, 다섯 남매를 키워 시집 장가를 다 보낼 때까지 엄마의 마음 한편에는 공부에 대한 열망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그런 사실을 꿈에도 모른 우리는 놀란 마음을 가라앉히고 엄마의 입학을 축하하는 자리를 만들었다. 함께 저녁을 먹으며 엄마에게 입학 선물을 건네고 엄마의 꿈을 축복했다.
그로부터 3년 후, 중학교 졸업식장에서 엄마는 졸업생 대표로 당당하게 졸업인사를 낭독했다. 그 뒤 한 발짝 나아가 방송 통신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엄마는 고등학교 생활 기록부의 장래 희망란에 ‘물리 치료사’ 라고 적었다.
수학이 어려워 공치 아프다고 하면서도 꿋꿋하게 문제와 씨름하는 엄마를 보면서 새삼 실감한다. 꿈을 포기하지 않는 모습, 그 모습의 빛깔이 얼마나 화려하고 아름다운지. “그래도 엄마, 수학문제 하나쯤은 포기해도 괜찮아. ‘수포자(수학포기자)’ 나도 잘 살고 있잖아!” 최은영 님/ 동화 작가 잡지 월간 좋은 생각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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