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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교부들의 금언집
벨라지오와 요한
교부들의 교훈에 따른 영적 진보
누군가가 안또니오 교부에게 물었다. “제가 무엇을 지키며 살아야 하느님 마음에 들겠습니까?” 원로는 그에게 이렇게 대답했다. “그대가 어디로 가건 항상 하느님을 뵈오며 사시오. 성서에 씌여져 있는 대로 행동하고, 어디에 머물건 경망스럽게 이동하지 마시오. 내가 명한 이 세가지 점을 지키며 산다면 그대는 구원받을 것이오.” (Antoine 3) [1,1]
팜보 교부가 안또니오 교부에게 물었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대답은 이러했다. “그대 눈에 의(義)롭게 보이는 바를 과도히 믿지 마시오. 지나간 일을 후회하지 말고, 혀와 육욕을 제어하시오.” (Antoine 6) [1,2]
☕ 눈에 보이는 것이 다 진실일 수는 없다. 그래서 영의 식별이 필요하다.
“하느님의 눈에 높이 평가되는 세 종류의 사람이 있으니, 첫째로 유혹을 당해도 하느님의 은총에 힘입어 그분을 마음으로 받아 모시는 병자들, 그리고 인간적인 그 어떤 것도 섞음 없이 하느님 앞에서 참으로 순수하게 행동하는 자들, 마지막으로 자신의 원의를 포기하고 영적 아버지에게 순명하는 자들이다”라고 테베의 요셉 교부가 말하였다.“ (Joseph de Thebes) [1,9]
까시아노 교부가 이전의 “대수도원”의 장상이었던 요한 교부의 다음과 같은 모습을 이야기해 준다. “그는 바야흐로 막 죽어가고 있었는데, 진심으로 즐겁게 영혼이 주님께 나아가고 있었다. 그의 주변에 있던 수사들이 그리스도 안에서의 완덕을 깨칠 짧고 유익한 가르침을 유언으로 남겨 주기를 간청하였다. 그러자 그는 탄식하며 말하기를 ”나는 나 자신의 원의대로 행한 적이 결코 없으니 가르쳐 줄 게 아무것도 없다네. 내가 먼저 실천한 게 아무 것도 없다는 점 외에는 … “이라 했다는 것이다. (Cassiens 5) [1,10])
☕ 자신의 뜻대로 살지 않고 하느님의 뜻대로 산다는 것.
안또니오 교부의 친구인 니스떼로스 교부에게 어떤 교부가 “제가 무슨 선행을 해야 하겠습니까?” 하고 물었다. 그러자 그는 이렇게 대답하더라네. “모든 행업이 다 똑같지 않은가? 성서에 이르기를 ‘아브라함은 친절하였다. 그런즉 하느님께서 그와 함께 계셨다. 엘리아는 무념무상의 정적을 좋아하였다. 그런즉 하느님께서 그와 함께 계셨다. 다윗은 겸손하였다. 그런즉 하느님께서 그와 함께 계셨다’했으니 말일세. 따라서 하느님의 뜻을 따른 그대 영혼의 갈망이 무엇인가를 알아 그것을 행하며 마음에 간직해 두게나”라는 것이 그 원로의 대답이었다. (Nisteros 2) [1,11]
빠스똘 교부가 말하였다. “만약 수도자가 두 가지 것을 미워한다면, 그는 이 세상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 “그게 무엇인데요?”라고 한 수사가 묻자, 그는 대답했다. “안락과 허영심이야.” (Poemen 66) [1,15]
☕ 안락과 허영심은 수도자에게 어울리지 않다.
시스에스 교부는 말하기를 : “아무것도 아닌 자로 간주되도록 하라. 자신의 원의를 물리치며 근심없이 머물라. 그러면 그대는 안식을 얻으리니”라 했다. (Sisoes 43) [1,17]
카메 교부는 죽음에 임박했을 때 제자들에게 이렇게 가르쳤다. “이단자들과 함께 살지 말고, 고위층 사람들과 친분을 맺지 말며,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주기 위해서 손을 내밀어라.” (Chame) [1,18]
☕ 받으려는 손보다 주려고 내민 손이 더 아름답다.
“사부님, 어떻게 하면 사람의 마음 안에 하느님에 대한 경외심이 생길까요?” 한 수사에게 그런 질문을 받은 어느 원로는 이렇게 대답했다. “겸손및 가난을 지니는 자, 다른 사람들을 판단하지 않는 자라면, 그 안에 하느님에 대한 경외심이 생기리라.” (N 137) [1,19]
☕ 남을 판단하지 않는 마음에 하느님이 깃든다.
또 어떤 원로는 이렇게 말하였다. “그대가 싫어하는 바를 다른 이에게 하도록 하지 말라. 그대의 결점에 관해 말하는 자가 싫거든 그대도 다른 이의 결점에 관해 말하지 말라. 그대를 험구하는 자가 싫거든 그대도 남을 중상하지 말라. 그대를 경멸 · 모욕하고 그대의 재산을 훔치거나 그와 같은 다른 잘못을 범하는 자가 싫거든 그대도 남들에게 그렇게 하지 말라. 이 말을 명심하면 충분히 구원받을 수 있으리니.” (N 253) [1,21]
☕ 내가 싫은 일은 남에게도 하지 말아야 한다.
“수도자의 생활은 노동 · 순명 · 묵상의 생활”이라고 어느 원로는 말하였다. “그것은 판단하지도 비난하지도 불평하지도 않는 생활이다.”(N 225) [1,22]
"죄에 대한 참회와 겸손이 그대 마음 안에 있도록 하느님께 기도하라. 끊임없이 그대의 죄를 바라보고, 다른 이들을 판단하지 말며, 그들 모두에게 순종하라. … 어떤 문제로 누군가가 말을 걸어오면 다투지 말고, 좋으면 ‘좋습니다’하고, 그렇잖으면 ‘당신 생각대로 하십시오’하되, 사람들이 말하는 것을 가지고 결코 다투지 말 일이다. 그렇게 하면 그대의 영혼은 평화를 누릴 것이다.“라고 어떤 원로는 말하였다. (N 330) [1,23]
☕ 남에 대한 판단은 교만의 행위다.
내적 고요
에바그리오 교부는 말하였다. “온갖 종류의 애착을 그대 마음에서 뽑아 버려라. 그렇게 하면 고요한 생활이 동요되지도 교만되지도 않는다.” (Evagre 2) [2,8]
☕ 평상심은 애착을 끊어버림에서 온다.
"가장 근본적인 악은 방심(放心)이다“라고 빠스똘 교부가 말했다. (Poemen 43) [2,12a]
그는 또 말하였다. “육(肉)적인 사물을 피하라. 왜냐하면 사람이 오랫동안 그 공격을 받고 있으면, 흡사 몹시 깊은 우물가에 몸이 기울어져 있는 자와 같기 때문이다. 원수는 아무 때나 내키는대로 쉽게 그 사람을 우물 속으로 밀어넣을 것이다. 그러나 육적 사물을 멀리하는 사람은 우물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자와 같다. 원수가 그를 밀어넣기 위해 우물가로 데리고 간다 하더라도, 억지로 떠밀고 있는 동안, 하느님께서 그를 구해 주시는 것이다.” (Poemen 43) [2,12b]
통회
한 수사가 암모나스 교부에게 청했다. “제게 한 말씀 해 주십시오.” 원로는 그에게 대답했다. “감옥에 갇혀 있는 죄인의 정신상태를 지니게. 그들은 ‘재판관이 어디 계십니까? 그분은 언제 오실 것입니까?’라고 묻곤 하지. 그러고는 슬퍼하며 형벌을 기다리지. 수도자 역시 항상 경계하며 이렇게 자문해야 하네. 조만간 큰 변을 당하고 말걸! 내가 어떻게 그리스도의 법정에 서 있을 수 있을까? 그분께 내 행실을 어떻게 보고 드릴까?’ 자네가 끊임없이 그렇게 생각한다면 구원받을 수 있을걸세“ (Ammonas 1) [3,2]
야고보 교부가 말하였다. “등이 어두운 방을 밝혀 주듯이, 하느님에 대한 경외가 사람의 마음에 생기면, 그것이 그 사람을 밝혀 주고, 모든 거룩한 덕행과 계명을 가르쳐 준다” (Jacques 3) [3,7]
성자 아타나시오 대주교가 팜보 교부에게 사막에서 알렉산드리아에 오도록 청하였다. 알렉산드리아에 도착한 교부는 어느 여자 희극배우를 보고 울기 시작했다. 같이 있던 사람들이 그 이유를 묻자, 그는 대답하는 것이었다. “두 가지 사실이 나를 아연실색하게 하니, 첫째 저 여인의 멸망이요, 둘째 저 여자는 타락한 남자들의 마음에 들기 위해 열성을 발휘하는데, 나는 하느님의 마음에 들기 위해 그만한 열성도 가지고 있지 못하다는 점이라네.” (Pambo 4) [3,14]
☕ 사람들이 세상일에 열심한 것만큼 나는 하느님의 일에 열심한가?
히페레키오 교부는 말하였다. “밤에 깨어 있는 수도자는 그 열심한 기도로 밤을 낮으로 변형시킨다. 가슴을 베어내는 듯한 슬픔을 지닌 수도자는 눈물이 솟게 하여 하늘의 자비를 끌어당긴다.” (Hyperechions 84-85) [3,17]
한 원로가 말하였다. “우리는 종말론적으로 살아야 하는 것이다. 하느님께서 우리의 모든 행위에 대해 햄을 바치도록 요구하실 테니 말이다.” (N 136) [3,21]
☕ 햄=셈
자기 지배
한 수사가 스케테의 사제인 이시도로 교부에게 물었다. “악마들이 어째서 그토록 당신을 두려워합니까?” 그 원로는 대답하였다. “내가 수도자가 된 이래 분노가 목구멍까지 치밀어오르는 일이 없도록 애썼다네.” (Isidore 2)
[4,22]
☕ 분노는 악마들을 춤추게 한다.
까시아노 교부가 말했다. “수도자들이 그들의 생각을 영적 아버지에게 숨기는 것은 마귀들이 가장 즐거워하는 일이며, 수도자들에게 있어서 그보다 더 해로운 일이 달리 없다.” (Cassien Coll 2,11) [4,25]
“어떤 사람을 나무라면서 자네가 화를 낸다면 자네 자신의 욕망을 채우는 일이 된다. 이웃을 구하기 위해 자신을 멸망시킬 필요는 없는 것이다.”라고 마카리오 교부는 말하였다. (Macaire 17) [4,28]
빠스똘 교부는 식사에 초대를 받았을 때, 초대한 형제의 말을 듣지 않음으로써 그를 슬프게 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거기에 가곤 했다. 싫어하면서도 하는 수 없이 갔던 것이다. (Poemen 17) [4,30]
☕ 상대방을 위하여 자신의 의지를 접은 것이다.
빠스똘 교부는 또 말하였다. “연기는 꿀벌들을 쫓아내고 그들이 만든 꿀을 없애버릴 수 있다. 마찬가지로 육체의 편안함은 영혼에서 하느님에 대한 경외를 몰아내고 그것의 모든 선행을 앗아간다.” (Poemen 57) [4,32]
☕ 나태는 신앙의 암적인 요소다.
시소에스 교부는 말하였다. “자신의 혀를 지배함이야말로 진정한 은수생활이다.” (Tithoes 2) [4,44]
☕ 혀의 다스림이야말로 신앙의 근본이 아닐까?
히페레키오 교부는 말하였다. “야생 당나귀에게 있어서 사자는 무시무시한 존재이다. 그와 같이 이 수도자에게 있어서 탐욕적인 생각들을 무서운 시련이다.” (Hyperechios 66) [4,45]
☕ 탐욕은 수도자에게 어울리지 않는 단어다.
또 그는 말하였다. “화가 날 때 자기의 혀를 억제하지 못하는 사람은 육욕이 닥쳐올 때도 억제하지 못할 것이다.” (Hyperechios 3) [4,49]
그는 또 말하였다. “헐뜯음으로써 형제들의 살을 먹기보다 차라리 고기를 먹고 술을 마시는 게 더 낫다.” (Hyperechios 4) [4,50]
☕ 형제들끼리 헐뜯는다면 형제라고 할 수 없다.
그는 또 말하였다. “뱀은 속삭임으로써 낙원의 하와를 쫓아내었다. 자기의 이웃 사람에 대해 쑥덕거리는 수도자도 그 뱀과 같다. 그는 자기의 말을 듣고 있는 사람의 영혼을 망칠 뿐 아니라, 자신의 영혼도 구하지 못한다.” (Hyperechios 5) [4,52]
어느 원로가 하루는 오이를 몹시 먹고 싶어했다고 한다. 그러나 오이를 가지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것을 우선 눈앞에 매달아 놓았다. 자신의 욕망에 지진 않았으나, 다만 그걸 너무 과도하게 욕망한 데 대한 보속이었던 것이다. (N 152) [4,60]
스케테에서 어느날 (빨마로 만든) 노끈들을 씻기 위해 수사들이 소집되었다. 그들 중의 한 사람은 너무나 엄격한 생활을 했기 때문에 병이 들어 기침을 하기 시작했고, 자신도 모르게 어느 수사에게 가래침이 튀어가게 했다. 그 수사는 “그만 그치게, 더는 가래 좀 튀게 하지 말라구!” 라고 그에게 말하고픈 생각이 자꾸 나서 몹시 괴로웠다. 그러나 그런 자신을 억제하기 위해 그 가래를 집어 입으로 가져가서는 꼴깍 삼켜 버렸다. 그때 그는 자기 자신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네 형제를 마음 아프게 할 말을 하지 않거나, 네게 욕지기를 일으키는 걸 먹어 버리거나 둘 중 하나야.” (N 357)
[4,69]
부정(不貞)
빠스똘 교부가 말하였다. “왕의 곁에 서서 모든 우발사태에 대비하고 있는 호위병처럼 영혼도 항상 부정의 악마에 대비하고 있어야 한다.” (Poemen 14) [5,8]
☕ 항상 깨어있어야 악마에게 넘어가지 않는다.
수녀원장 사라는 부정의 악마에서 13년 동안 맹렬한 공격을 받았다고 한다. 그런데 그녀는 기도중에 그 싸움에서 해방시켜 달라고 청한 적이 결코 없었으며, 다만 “주여, 제게 힘을 주소서”라고만 말했다는 것이다. (Sara 1)
[5,10]
어느 날 바로 그 부정의 악마가 어느 때보다 격렬히 그녀를 공격하였다. 그리고 그녀에게 세속적인 허영들이 생각나도록 했다. 그러나 하느님에 대한 외경과 금욕에 대한 자신의 결심에 몰두했던 만큼 그녀는 기도하기 위해 테라스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때 부정한 악마가 모습을 드러내며 그녀에게 말하는 것이었다. “네가 나를 이겼다, 사라!” “아니다, 너를 이긴 건 내가 아니라 바로 나의 주님 그리스도이시다”라고 그녀는 대답하였다. (Sara 2)
[5,11]
☕ 기도만이 악마를 이기게 한다.
어느 원로 은수자가 부정한 생각들에 관해 언급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그대는 죽은 뒤에 구원받기를 원하는가? 수고하고 고통을 받아들이게. 찾게, 그러면 얻으리니. 깨어 두드리게, 그러면 열리리니. 세상에서 투사들은 무수한 공격을 잘 견뎌냈을 때, 그래서 그들의 강함을 드러냈을 때 상을 받는다. … 그가 육체 단련을 위해 얼마나 대단한 노력을 참아 견디는가를 보게. 그러니 그대도 역시 확고하고 강한 사람이 되게. 그러면 하느님께서 자네 대신 적을 무찔러 주실 걸세.” (N 166) [5,15]
다른 어떤 원로도 정결치 못한 생각들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 안에 계시고 우리와 함께 사시는 주 그리스도께서 우리 삶의 증인이시니, 그분을 모시고 바라보며 사는 우리는 게을러지지 말아야 한다. 그분께서 거룩하시듯 우리도 거룩해져야 한다. 반석 위에 서 있자. 그러면 강물이 그 물살로 우리를 쳐도 소용없을 것이며, 두려워하지 않는 그대를 쓰러뜨릴 수도 없을 것이다. 평온한 영혼으로 이렇게 노래하자. ‘주님을 신뢰하는 이들은 시온 산 같아 흔들리지 아니하고 영원히 서 있으리라.’(시편 125,1) (N 78 -79) [5,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