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의 무장 중에서 약관 28세에 병조판서의 대임을 맡았던 남이만큼 안타까운 인생을 마친 사람은 없다. 그의 비극적인 종말은 뒤에 적겠지만, 그의 출생과 성장은 화려하다
남이는 태종 이방원의 외증손으로 태어났다. 태종의 딸인 정선공주貞善公主는 남휘南暉에게 하가를 했다. 이들 사이에서 태어난 분份의 아들
이 곧 남이다.
남이는 지략과 용맹이 뛰어났고 또 기상이 호방하여 세조 3년에 17세의 나이로 무과에 급제하여 후일 세조의 총애를 받으면서 종사에 크게 기여하게 된다.
그런 남이가 권람의 사위가 된 데는, 그의 눈에는 요귀가 보였기 때문이다. 요귀란 물론 요사한 귀신을 말한다.
어느 날, 어린 남이가 저잣거리를 지나가고 있을 때다. 여종으로 보이는 계집아이가 보자기를 덮은 바구니를 이고 가는 것을 보게 된다. 그런데 참으로 요상하게도 그 보자기 위에는 얼굴을 하얗게 분칠한 자그마한 요귀가 하나 앉아 있다. 물론 그 요귀는 다른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고 다만 남이의 눈에만 보인다.
'허어, 해괴한 일이로세.'
사람의 몸에 요귀가 들면 목숨을 잃는 경우가 허다하다. 남이는 그 일을 걱정하며 계집아이의 뒤를 밟기 시작한다. 그런데도 요귀는 보자기 위에 앉은 채 꼼짝을 하지 않는다, 남이는 요귀를 지켜보며 말없이 계집아이의 뒤를 따른다.
이윽고 계집아이는 대가의 솟을대문으로 들어간다. 집 안까지 따라갈 수는 없는 처지라 님이는 대문 밖을 서성거린다. 지나가는 사람에게 물으니, 그 집은 당대의 세도가이자 정난의 실세인 권람의 집이라 한다. 웬만했으면 겁을 먹고 달아날 일이건만, 담대한 남이는 집 앞을 떠나지 않는다. 필시 무슨 변괴가 있으리라 여겨서다.
오래지 않아, 집 안에서 곡성이 터져 나온다. 기어코 탈이 나고 말았구나 싶어 남이는 황급히 대문을 두들긴다.
“웬 놈이냐!"
죽을상이 되어 뛰어나온 하인은 상대가 어린아이인 것을 알고는 냅다 소리부터 지르고 나선다. 하지만 어린 남이는 그에게 호령을 한다.
“방자하구나, 이놈! 나는 태종대왕의 외손 되는 남이라는 선비니라. 당장 안으로 인도하지 못하겠느냐!"
세도가의 오만한 하인도 그만 찔끔 집을 먹으면서 말한다.
“하오나, 집안에 큰 변이 있어... ”
“무슨 변이라더냐?"
“이 댁 작은아씨께옵서 방금 급사하셨소이다."
사람이 죽었다면 큰일이다. 그 요귀의 소행임이 분명하다.
“내가 그 일로 왔느니라. 낭자를 살리고 싶으면 어서 안으로 인도하렷다!"
서둘러 안으로 인도된 남이는 권람의 부인 이씨를 만난다. 별안간에 딸이 죽어 정신이 하나도 없는 판국에, 웬 어린아이가 나타나 살랴 낼 수 있다 하니 이씨 부인으로서는 믿을 수도 믿지 않을 수도 없어 어리둥절해질 수밖에 없다. 그래도 소년이 범상해 보이질 않고 하도 장담을 하는 지경이라, 딸이 누워 있는 방으로 들게 한다 방으로 들어서기 전에 남이가 남이가 묻는다.
"좀 전에 여종이 바구니를 이고 들어왔을 것인데, 그 바구니에 무엇이 들었습니까?”
어떻게 그것 을 알까 싶어 의아해하면서도 이씨 부인은 조심스럽게 대답한다.
'‘홍시일세.”
"그 홍시를 낭자가 먹었습니까?”
“그러하네."
“알았습니다. 제가 살려 내지요."
남이가 방 안에 들어서자 낭자는 숨을 멈추고 누웠는데, 그 배 위에 아까의 요귀가 올라앉아 있는 것이 보인다. 물론 이씨 부인에게는 보일 리가 만무하다. 남이는 요귀를 노려보면서 호통을 친다.
"요망한 귀신이 감히 어디에 와서 행패를 부리고 있느냐!"
깜짝 놀란 요귀는 남이가 비범한 인물임을 깨달았는지 눈 깜짝할 사이에 달아나 버린다. 요귀가 달아나기가 무섭게 낭자는 큰 숨을 내쉬면서 소생 한다.
이 같은 기이한 일로 인연을 맺은 남이와 권람의 넷째 딸 사이에는 곧 혼담이 오가게 된다. 청혼을 받은 권람은 하도 기이하게 시작된 일인지라 용한 점쟁이를 불러 남이의 운수를 물어본다. 남이의 운수를 짚어 본 점쟁이는 화들짝 놀라면서 간신히 대답한다.
“반드시 홍안에 재상의 반열에 오를 것이나 삼십을 못 채우고 요절할 운세오이다."
이런 낭패가 있나, 크게 낙남한 권람은 이번엔 딸의 운수를 보게 했다. 점괘는 이러하다.
“낭자의 수명은 더욱 짧고 소생도 없어, 지아비의 복만 누리고 그 화는 보지 못할 것이니 혼인을 하게 하소서."
이런 연유로 권람은 남이를 사위로 맞았다는 얘기다.
점쟁이의 예언대로 남이는 1468년(예종 1) 10월 병조참지(兵曹參知) 유자광(柳子光)의 고변으로 역모의 혐의를 받았고, 그해 음력 10월 27일에 강순, 변영수(卞永壽), 변자의(卞自義), 문효량(文孝良) 등과 함께 저자에서 거열형으로 처형되었다. 그의 어머니도 다음날 거열형으로 처형되었으며, 딸은 한명회(韓明澮)의 노비가 되었으나 이듬해 외조부인 권람의 공이 참작되어 사면되었다. 남이 장군의 귀신을 보는 능력으로 인해 지금도 무속인 중에서는 남이 장군을 신으로 모시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첫댓글 잘 보고 갑니다
편한 쉼에 시간이 되시길요..^^
즐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