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에드푸 신전과 룩소르 신전
2019년 1월 13일(일) 흐리고 모래바람 기온 : 섭씨 15~20도
아침 5시 30분 크루즈에서 내려 마차로 에드푸 신전으로 달린다.
말 마차 발굽소리가 골목에 경쾌한데 엄청난 인원을 신전까지 이동시키는 능력에 깜짝 놀랐다.
에드푸 신전은 필레 신전이나 콤옴보 신전과 비슷한 시기인 기원전 1세기에 완공되었다.
나일 강 서쪽 강가에 위치해 있어 마차로 15분 정도 걸린다.
호루스를 섬기는 신전 중 제일 크며 보존이 제일 잘 되어 있다.
북부 이집트의 노모 Ⅱ세의 고대 수도였고, 그리스인들이 아폴리노 폴리스 마냐라고 불렀다.
<에드푸 신전과 크루즈를 오고가는 마차>
<에드푸에 접안한 크루즈>
<에드푸 신전>
호루스에게 바쳐진 신전을 프톨레마이오스 왕가 시대에 재건축한 것이다.
이미 토오스-모시스 3세 시대에 있었던 것을 그곳의 장대한 면적으로 카르낙 시대 이후에 가장 중요한 곳으로 주목받았다.
길이 137m, 교각의 높이가 36m이고 정면은 79m이다.
신전의 출입구를 보호하고 있는 것은 검은색 화강암으로 된 두 개의 아름다운 조각인 독수리 형상의 호루스를 상징하고, 신의 이름은 사실상 ‘hr’라는 말에서 유래하였다.
그 뜻은 ‘매’를 의미 한다.
두 동상 뒤에는 호루스와 핫호르의 거대한 형상이 있는 신전 외각 벽이 서있다.
정면 현관 측면에 거대한 홈들은 깃발과 함께 긴 깃대를 꽂았던 곳이다.
성지의 내부에는 높이 4m의 회색 화강암 돌로 된 아름다운 감실이 완전하게 보존되어 있고, 이 비석들은 넥타네보 2세(기원전 360년)의 지배하에 실행되었다.
신전에 들어가기 전에는 에베르제태 2세 지배하에 건축되어진 흥미로운 코프트 말 ‘mammisi’를 볼 수 있는데 ‘출산의 장소’란 뜻이다.
이 말은 매일 부활하는 호루스를 상징하는 뜻을 가지고 있는 장소를 말한다.
이런 이유로 산모들의 성스러운 곳으로 바뀌었고, 모든 여인들이 아들을 갖기 위해 이곳을 찾았다고 한다.
<독수리 형상의 호루스 신을 상징하는 동상>
<에드푸 신전의 열주 기둥과 정원>
<에드푸 신전의 열주 기둥-연꽃 문양이 이색적>
<당시 배를 조각한 벽면 그림>
<채광과 조명을 위한 천장의 사각 구멍>
<나일 강 수위를 나타내는 곳>
<벽면에 가득한 이집트 신성문자>
<네모의 빈칸은 정해지지 않은 왕들의 이름을 새기려고 비워둔 것이라고 함>
<세트를 하마에 빗대어 사냥하는 모습을 그린 연속 벽화>
<시리아 코이피타 국가에 대항하여 싸운 전쟁의 광경과 종교 의식 장면>
<열주 회랑>
나일 강 진흙으로 만든 벽돌을 쌓아 건축되었는데 벽면 부조의 조각과 색상 등이 화려하다.
사다리꼴 형태의 신전은 원기둥 각주와 부조 그리고 섬세한 전쟁 모습과 생활 묘사로 유명하다.
모래에 덮여 가장 최근에 온전한 형태로 발굴되어 생생한 모습을 보여준다.
사각형 광장을 질서정연하게 배치된 열주기둥과 세트를 하마에 빗대어 사냥하는 모습이 오늘날 동영상 제작기법처럼 장면의 변화에 맞추어 순서대로 조각되어 있다.
391년 테오도시우스 황제가 이교도 숭배를 금지시키고부터 사막의 모래와 나일 강 퇴적물에 덮였었는데 1798년에 관문의 윗부분만 보였고 쌓인 모래 위에 작은 마을이 생겼다고 한다.
그런 이유로 온전하게 보존되었는데 기독교 곱트교 신자들이 조각 벽화와 얼굴, 몸통을 훼손하고 우상이라며 불태웠다.
그래도 남아있는 정교한 벽화를 통해 고대 이집트의 언어와 종교를 공부할 수 있는 중요한 유적지 방문이었다.
<독수리 형상의 호루스 신을 상징하는 동상>
<에드푸 신전의 열주 기둥과 정원>
<독수리 형상의 호루스 신을 상징하는 동상>
크루즈에서 아침식사 후 나일 강을 따라 룩소르로 향한다.
하늘은 흐리고 모래바람이 불며 한국의 황사와 같은 날씨로 을씨년스럽다.
나일 강변 갈대와 대추야자나무가 계속해서 이어지고 사탕수수를 가득 실은 배들이 연이어 지나간다.
점차 나일 강의 강폭은 넓어지고 수량은 많아진다.
모래톱이 형성된 지역에서는 크루즈들이 도크를 이용하여 순차적으로 수문을 통과하는 모습이 이색적이다.
수문통과를 지켜보는 재미도 크다.
크루즈선 두 대가 도크에 들어서면 수위를 낮추고, 또 한쪽 도크는 수위를 높이며 상류와 하류의 수위를 맞추는데 좁은 운하를 통하여 배가 지나는 과정에 승객들이 갑판에 몰려 구경한다.
2시간 정도 걸리는 수문 통과로 수위차 10m의 나일 강을 이어준다.
곱트 교회 두 군데가 보이는데 십자가상이 건물에 세워져 있다.
<아몬 신전의 교각과 오벨리스크 그리고 람세르 2세의 거대한 조형물>
나일 강을 따라 양안에는 바나나, 사탕수수, 대추야자, 밀 경작하는 풍경이 흐린 날씨에도 어마어마하다.
나일 강의 풍요를 크루즈를 통하여 체험한다.
푸르고 농작물이 가득한 나일 강의 은총을 본다.
갑판에 올라갈 엄두도 못 내고 온종일 방안에서 창밖을 응시한다.
저녁에는 룩소르 신전을 관람했는데 신전 앞 람세스 2세의 거상과 오벨리스크를 볼 수 있다.
원래 2개가 세워져 있었는데 오른쪽 것은 프랑스가 파리 콩코드 광장으로 옮겨갔다고 한다.
거상과 오벨리스크로 룩소루 신전은 웅장한 멋을 자랑하며 특히 해가 저물면 은은한 조명이 켜져서 신비로운 분위기를 연출한다.
파피루스 형상의 원주들이 줄지어 광장에 도열해 있는데 신전은 사각형 모양으로 구성되어 있다.
<룩소르 신전의 파피루스 뭉치 형상의 열주 기둥>
룩소르는 보물이 많은 부자들이 모여 사는 도시로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멘피타 시대에 작은 마을로 몬투 전쟁의 신을 숭배하였고 Ⅹ왕가 시대부터 시작하여 정치와 지리적으로 그 가치가 눈에 띄게 증가하기 시작하였다.
세 제국의 파라오들의 중심지가 되었으며 아몬 신을 귀중하게 숭배했고, 무트와 콘수를 삼신(三神)에 포함시켰다.
승리와 성공을 기념하기 위해 새로운 거대한 신전을 세워 신에게 바쳤는데 그 도시의 쇠퇴는 기원전 672년에 아수르바니팔의 처벌과 약탈과 함께 시작하였고, 프톨레마이오스 왕조는 전체적으로 파괴되었다.
화려한 과거의 증거인 룩소르는 이집트인들이 ‘아몬의 남부 하렘’이라 불렀던 거대한 신전이 있는데 길이가 260m이다.
아몬-오피스 2세에 의해 시작되었고 토오트-모시스 3세에 의해 확대되었으며 람세스 2세에 의해 완성되었다.
<아몬-오피스 3세의 거대한 안뜰>
<열린 파피루스 주두가 있는 둥근 기둥들과 신전 모습>
<람세르 2세 정원>
긴 가로수 길이 카르낙 신전과 만나고 요기에 숫양의 머리를 한 스핑크스가 나란히 서 있는데 ⅩⅩⅩ 왕가 시대에 인간의 머리를 가지고 있는 스핑크스로 교체되었다.
교각 앞에는 두 개의 람세르 2세의 오벨리스크가 있었는데 현재 25m의 왼쪽 것만 있다.
옥좌에 앉아 있는 파라오를 상징한 두 개의 커다란 화강암 조형물이 출입구 측면에 위치하고 약 1m 가량의 기초 위에 15.5m 높이를 가지고 있다.
본래 두 조형물들은 거대한 분홍색 화강암으로 된 다른 4개의 동상들이 옆에 나란히 있었고, 커다란 교각에 기대어 있다.
여기에는 네파르타리 여왕과 많이 손상된 다른 여왕 그리고 딸 매리트-아몬을 상징하고 있다.
이 개선문을 지난 후에 람세르 2세 정원에 들어갈 수 있고 봉해진 파피루스 주두가 있는 기둥들이 두 줄로 나란히 도열하고 있는데 기둥사이에는 오시리아케 동상들이 서 있다.
<룩소르 신전 야경>
<신전 옆에 세워진 이슬람 사원 모스크>
<아몬-오피스 3세 정원>
이 정원은 토오트-모시스 3세의 작은 신전도 함께 있는데 카르낙 성지에서 숭배되었던 아몬, 무트 그리고 콘수의 삼신에게 바친 세 개의 예배당도 있다.
길이 25m의 장엄한 주랑은 마지막으로 아몬-오피스 3세 정원 안으로 안내한다.
봉해진 파피루스 기둥의 이중으로 겹쳐진 줄에 의해 세 개의 측면을 둘러싸고 있고, 마치돌로된 진짜 숲처럼 에워싸고 있다.
신전의 외곽 성벽에는 시리아 코이피타 국가에 대항하여 싸운 전쟁의 광경과 종교 의식 장면을 표현한 것이 남아 있다.
<오벨리스크>
<람세르 2세 동상>
<아몬 신전의 교각과 오벨리스크 그리고 람세르 2세의 거대한 조형물>
2개가 세워져 있었는데 오른쪽 오벨리스크는 프랑스가 파리 콩코드 광장으로 옮겨갔다.
<숫양의 머리를 한 스핑크스>
Deep Down Inside - Back To Earth
첫댓글 계속 잘 읽고 있습니다^ ^
사진과 글 정리하는게 보통일이 아닌데 정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