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주일 설교 내용 요약
제 목 : 성경적 실천의 현장과 클레로스(202) – 사도들의 실천과 클레로스(181) – 로마서 강론(16)
로마서 강론(16) - 12장
(로마서 1장부터 8장까지는 복음의 원리에 대한 내용이고, 9장부터 11장까지는 복음의 대상에 대한 내용이다. 그리고 12장부터는 복음의 실천에 대한 내용이다.)
우리가 불쌍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명령을 주시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우리의 몸을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한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고 권고하고 있다. 우리를 불쌍히 여기셨기 때문에 합당한 사역을 주시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명령과 약속은 그 내용이 같다. 서로 사랑하라는 명령은 서로 사랑하게 된다는 약속이다. 서로 사랑하라는 명령은 명령이 아니고 사랑해야 행복해지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명령하신 것은 우리를 위해서라는 것이다. 명령을 준행하는 삶 자체가 행복한 삶이라는 것이 언약의 본질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향해서 너희는 나에게 오라고 말씀하고 있다. 하나님께로 간다는 것은 그 집단이 쩨데카와 미쉬파트를 행하는 하나된 집단이 되는 것을 의미한다. 너희가 나에게 오면 그런 집단으로 만들어 준다는 것이다.
자기를 위해서 사는 것이 악인의 길이며 불의한 자의 생각이다. 그런데 여호와께 돌아오면 하나가 되는 것이다. 여호와께 돌아오면 자기를 위해 살았던 것을 용서해 주신다는 것이다. 너희가 돌아오면 너희를 행복한 집단으로 만들어 주겠다는 것이다.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며 그러면 너희를 하나로 만들어 주겠다는 것이다. 하나가 되는 것이 너희가 행복해지는 길이라고 하나님이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교독문71, 사55:1-7))
그러므로 우리가 불쌍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명령을 주시는 것이다. 그 사명은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사명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억지로 명령을 준수한다. 그래야 보상이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하나님의 명령과 악속을 다르게 인식하게 되어 있다. 신상필벌, 지성이면 감천의 구도로 자기를 위해 신을 믿기 때문이다.
사도 바울은 그대들이 세상 사람들과 똑같은 삶을 살지 말라고 명령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을 정확히 검증하기 위해서는 성령의 역사로 마음에 할례를 받아 새 마음을 받음으로써 변화되어져야 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럼으로써 그대들이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즉 선하고 받으실 만하고 완전한 것이 어떤 것인지를 정확하게 검증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인간들에게 선과 악은 실체가 없는 것이다. 각자도생하는 자들의 선택에는 다른 사람의 칭찬을 받는 것이 유리하다는 판단과 다른 사람에게 욕 먹는 것이 유리하다고 하는 판단이 있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칭찬을 받는 선택을 선이라고 하고 다른 사람으로부터 욕을 먹는 것을 선택하는 것을 악이라고 한다. 그러나 둘 다 유불리 판단에 의한 것이다. 내 앞에 있는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선악이 뒤집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선악은 객관적으로 실체가 없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세상 사람들과 똑같은 삶 즉 실체가 없는 선악에 묶여서 서로 비난하고 정죄하는 지옥 같은 삶에서 빠져나와서 우리가 행복해지는 것이 우리의 사명이며 가족과 주변 사람들도 행복한 삶을 살게 하는 것이 우리의 행복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정확하게 실천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주신 명령과 사명을 위해 마음을 쓸 때 주제 파악을 정확히 하라는 것이다. 내가 서 있는 포지션이 진리와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지를 알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진리의 내용이 정확히 이해되고 인식되는 것이다. 그 기준은 내가 얼마나 신실한 자가 되었는가이다. 신실함이란 유불리 계산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신실함이 우리에게 들어와서 내가 얼마나 신실해졌는가를 의미한다. 그 판단에 따라 실천의 정도도 달라지는 것이다. 따라서 오버하지 말고 주제 파악을 하라는 것이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자기를 세우고 싶은 욕심 때문에 주제 파악이 안 되었던 것이다.)
우리가 불쌍해서 하나님이 주신 사명이 하나됨이다
우리가 불쌍해서 하나님이 주신 사명은 하나됨이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머리로 해서 한 몸을 이룬 것이 마치 신체 기관과 같다는 것이다.
인간의 고통의 본질은 다 남이라는 것이다. 결혼도 이용 가치가 있어 보이니까 하는 것이다. 유불리 계산이 맞아 떨어진 것이다. 그러나 결혼 후 그 계산에 착오가 있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부부 간 전쟁이 일어난다. 모든 인간관계는 다 남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불행과 고통이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그것을 해결해 주신다는 것이다. 그것은 나에게 와서 너희가 하나가 되라는 것이다.
예수님이 지적하신 것은 가장 모범적인 종교인이 불법을 행한다고 하신 것이다. 자기를 위해 신을 섬겼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유언 기도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하나가 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서로에게 신실한 하나가 된 공동체이다. 하나됨에 빠지면 모든 것이 악이다. 그것은 비참하고 불행한 삶이다.
하나가 되어가는 과정에서 각자에게 역할을 주시는데 각자 다른 역할에 맞는 은사를 주신다는 것이다. 그것이 예언이면 그 예언에 대한 확신(신뢰함)의 수준에 따라 예언하게 되고, 만약 섬김이면 섬기는 일에서, 만약 가르침이면 가르치는 일에서, 만약 위로면 위로하는 일에서, 구제면 관대함으로, 인도면 열심으로, 긍휼이면 즐거움으로 주어진 사역을 감당해아 한다는 것이다.(감당하게 된다는 것이다) 하나가 되어가는 과정에서 그 역할에 필요한 권능까지 주시는 것이다. 모인 자들을 실제로 행복하게 만드시기 위해서 은사를 주시는 것이다. 지체들도 최선을 다해 맡은 사명을 감당하는데 그때 능력까지 주실 때 우리가 실제로 행복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들이 나누는 이런 사랑에는 가식이 없다는 것이다. 유불리 때문에 가식을 하는데 이미 유불리 계산이 없어졌기 때문에 가식이 없다는 것이다.
실천 덕목들
10절부터는 실천 덕목들이 나온다. 실천 덕목이라기 보다는 자연스럽게 행하는 모습들이다.
형제 사랑으로 서로에게 친절하게 되고, 존중하는 마음으로 서로 앞장을 서게 되며, 열심으로 나태해지지 않고, 영(마음)으로 열정을 품으며, 변함없는 마음으로 주께 종노릇하고, 소망으로 행복해 하며, 환난으로 인내하며, 기도로 굳세며, 거룩한 무리가 필요로 하는 것들로 나누고, 손(형제자매들, 순회전도자) 대접으로 애쓰라고 권면하고 있다.
역할들이 합쳐졌을 때 필요한 것들이 채워지는 것이다. 유여한 부분은 내어놓고 부족한 부분은 공급받는 것이다. 이것이 평균케 된 삶이다.
행복해 하는 형제들과 함께 행복해 하고, 눈물을 흘리는 형제들과 함께 눈물을 흘리고, 서로를 향하여 마음을 쓰며, 높은 곳에 마음을 쓰지 말고 오히려 낮은 곳에서 함께 하라고 권면하며 스스로에 대하여 슬기롭다 자만하지 말라고 권면하고 있다.
누구에게도 악을 악으로 되갚지 말고, 모든 사람들 앞에서 선한 일들에 관심을 집중하며, 할 수 있는 만큼 모든 사람들과 함께 평화롭게 지내라고 권면하고 있다. (만약 돌을 던지면 도망가는 것이다.)
또한 그대들은 직접 복수하지 말고 그 진노하심에 맡기라고 권면하고 있다.
왜냐하면 기록되기를 “복수는 내 것이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기 때문이다.
그대의 원수가 배고파하면 그에게 먹을 것을 주고, 목말라하면 그에게 마실 것을 주라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대가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도록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악에게 휘둘려 똑같이 악을 행하는 사람이 되지 말고 오히려 선하게 대응함으로써 악으로 하여금 힘을 잃어버리게 만들라고 권면하고 있다. 최종 목적은 그 사람의 분노를 누그러뜨려서 그 사람에게 회개의 기회를 주는 것이다.
마음에 할례가 전제되고 이러한 항목들을 보아야 사도 바울이 잔소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해하게 된다. 그래야 그런 자들이 된다는 소망을 불러일으키게 되는 것이다.
모든 약속이 성취 되는 과정에서 우리에게는 회개와 간구하라는 것이 실제 명령이며, 성령께서는 그것을 이루시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하나 된 공동체가 이 땅에서 세워지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공동체의 모습은 이러이러한 것이라고 사도 바울은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2.공지사항
다음 주 기도는 엄숙 자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