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당일치기 미국 방문을 마치고 무사히(?) 돌아왔다. 그의 방미는 1941년 12월 나치 독일의 유보트(U-보트) 공격 위험을 무릅쓰고 대서양을 건너 미 백악관에 도착(12월 22일)한 (위대한) 위스턴 처칠 영국 총리 급으로 평가됐다.
확연히 달라진 백악관 취재 방식. 위는 처칠 영국총리의 백악관 방문 모습/사진출처:https://polarizedlentium.tistory.com/17, 우크라이나 대통령실
젤렌스키 대통령은 22일 "귀국중"이라는 영상 메시지를 녹음해 올렸고(대통령실 포스팅 시간은 저녁 6시), 폴란드에 도착한 뒤 두다 폴란드 대통령과 만나 회담했다.
그의 방미는 발표 순간부터, '007 비밀 작전'에 버금가는 '드라마'로 회자됐다. 하지만 아무리 전쟁중이라고 하더라도, 한 나라의 대통령이 비행기를 타고 10시간 이상을 날아가는, 그것도 미국으로 가는 길이 즉흥적으로 이뤄지고, 준비될 수는 없다. 방미 뒷이야기가, 실체적 진실이 뒤늦게나마 하나씩 공개되는 이유다.
우크라이나 매체 스트라나.ua(러시아어판)은 23일 한마디로 "젤렌스키 대통령의 미국 방문이 갑작스럽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평가를 내놨다. 바이든 미 대통령이 지난 11일 젤렌스키 대통령과의 전화통화에서 워싱턴 방문을 초청했고, 사흘 뒤 공식 초대장이 발급됐다고 한다.
이에 앞서 3일에는 빅토리아 눌랜드 미 국무부 정무차관이 키예프를 방문해 안드리 예르마크 대통령 실장을 만났다. 젤렌스키 대통령의 방미 문제에 대한 실무급 고위 협의가 이뤄진 자리로 스트라나.ua는 눌랜드-예르마크 회담을 지목했다. 그리고 우크라이나의 '유로 마이단'(2014년) 시위 당시 우크라이나 주재 미국 대사였던 조프레이 피아트(Geoffrey Pyatt) 미 국무부 에너지 담당 차관보가 16일 키예프로 날아와 예르마크 실장과 마지막 세부 사항에 합의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짚었다.
젤렌스키 대통령이 미국으로 출발하기 전날 예고없이 격전지 '바흐무트'를 방문한 것은 러시아의 시각을 다른 곳으로 돌리려는 시도로 분석됐다. 영국 BBC 방송은 젤렌스키 대통령이 바흐무트를 방문한 후 야간 열차를 타고 이튿날 아침 일찍 폴란드 국경도시 프셰미슬(러시아식 표기 Пшемысле)에 도착했다(외국의 귀빈들이 키예프 방문시 이용하는 루트다/편집자)고 한다. 미국 정부가 사용하는 검은색 쉐보레 서버밴(Chevrolet Suburban)이 젤렌스키 대통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얼마 후, 비행 추적 시스템에는 젤렌스키 대통령이 탄 것으로 추정되는 미 공군 C-40B 보잉기가 프셰미슬에서 80km 떨어진 '제슈브 공항'(러시아식 표현 Жешув)을 이륙한 것으로 나타났다. 보잉기는 영국으로 향했고, 나토(NATO) 정찰기는 사전에 북해 지역을 샅샅히 훑으며 위험 여부를 점검했다. 당시 러시아 잠수함이 북해를 순찰하고 있었다고 한다.
이윽고 영국에서 이륙한 미 F-15 전투기가 보잉기를 호위하기 시작했으며, 10시간 뒤 젤렌스키 대통령를 태운 보잉기는 미 워싱턴 인근의 앤드류 공군기지에 착륙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의 앤드류 공군기지 도착 모습/텔레그램
젤렌스키를 태운 차량이 백악관으로 진입하자
부시 대통령 부부가 현관 앞으로 나왔다
함께 만나 사진을 찍고
편안하게 대화를 나누고 있다/사진출처:우크라이나 대통령실
미국과의 확대 정상회의에 참석한 우크라이나 대표단의 구성도 눈길을 끌었다고 스트라나.ua는 전했다. 대통령 좌우에는 예르마크 실장과 드미트리 쿨레바 외무장관이 또 옥사나 마르카로바 주미 우크라이나 대사, 로만 마쇼베츠 대통령실 부실장(군과 법집행기관 담당), 안드리 시비가(대외정책 담당), 이고르 브루실로 기록 담당이 자리했다.
스트라나.ua가 보기에 특이한 인물은 올렉산드르 쿠브라코프 부총리였다. 향후 유력한 총리감으로 꼽히는 그는 우크라이나의 재건을 책임지는 부총리이자, 현재 지역사회와 영토, 인프라 개발 장관이다.
미-우크라 정상회담(위)과 확대 정상회담 모습/사진출처:우크라이나 대통령실
미국 측에서는 카말라 해리스 부통령과 앤서니 블링컨 국무장관, 로이드 오스틴 국방장관, 마크 밀리 합참의장, 메릭 법무장관이 참석했다. 또 제이크 설리번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빅토리아 눌랜드 국무부 정무차관, 사만다 파워 국제개발처(USAID) 처장이 참석했다. 파워 처장의 참석 필요성은 정상회담 과정에서 드러났다. 미국이 국제개발처를 통해 우크라이나에 인도주의적 지원 자금 3억 달러를 제공하기로 한 것이다. 미국의 치밀한 정상회의 준비가 확인되는 대목이다. 우크라이나의 쿠브라코프 부총리가 그의 파트너였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