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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년 종려주일 예배설교
○ 스가랴 9장 9절 크게 기뻐하라
사람이 이 세상에 살다보면 기뻐하고 노하고 사랑하고 즐거워하는 일이 반복됩니다. 사람들은 노할 일은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지만 사랑하고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일은 계속해서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사람마다 기뻐하는 이유와 사랑하고 즐거워하는 이유도 다르고 분노하는 이유도 다릅니다. 여러분들은 어느 때에 크게 기뻐하고 즐거워하십니까? 어느 때에 분노하십니까? 누구를 사랑하려고 애쓰십니까?
오늘 여러분들이 함께 읽으신 본문은 시온과 예루살렘 딸들을 향하여 크게 기뻐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시 한 번 질문을 해보고자 합니다. 여러분들은 어떤 일이 일어났을 때 기쁩니까? 그리고 어떤 일이 일어나면 크게 기뻐합니까? 많은 사람들이 기쁨과 슬픔의 이유를 육체적이고, 이 세상에 속한 것에서 찾습니다. 잘 먹으면 기뻐하고, 배부르면 기뻐하고, 좋은 옷을 입으면 기뻐하고, 아들 딸이 대학교에 들어가면 기뻐하고, 아기가 태어나면 기뻐하기도 합니다. 또 낚시같다가 월척을 낚으면 크게 기뻐합니다. 또 복권을 산 사람은 그 복권이 당첨되면 기뻐합니다. 대부분 이런 기쁨들은 개인적이고 육신적이며, 또한 이기적입니다.
이번에 대통령이 새롭게 선출되었는데 대통령이 선출되고 나니까 기쁘십니까? 얼마만큼 기쁘십니까? 어떤 사람은 자기가 찍은 대통령이 아닌 다른 대통령이 당선되었다고 그 당선자를 미워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들에게는 새로운 당선자가 큰 기쁨이 되지 못합니다. 한 국가의 국민이지만 서로 기뻐하는 내용은 다릅니다.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대통령 선출된 것보다 친구와 밥한그릇 같이 먹는 것이 더 기쁩니다. 대부분의 기쁨의 근원이 자기 자신과 연관이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좋은 것이 있어도 자기 자신과의 연관성이 없다면 그다지 기쁘지 않은 것이 사람들의 마음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을 맞이하는 사람들은 자신과 어떤 연관이 있길래 하나님은 너희는 크게 기뻐하라, 그리고 즐거이 외치라고 말씀하실까요? 예수님을 맞이한 여러분들의 마음은 얼마나 기쁘십니까?
성경은 예수님의 탄생이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누가복음 2장 10절을 보면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하고 있는데 이는 예수님이 태어나시는 날에 베들레헴 성밖 가까운 곳에서 한 밤중에 양을 치던 목자들에게 천사들이 전해준 기쁜 소식입니다.
복음은 큰 기쁨의 좋은 소식입니다.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라고 천사는 목자들에게 전해주고 있습니다. 여기서 “온 백성”을 강조한 것은 단순히 이스라엘만을 위해 예수님이 탄생하신 것이 아니라 온 백성을 위해 탄생하신 것임을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탄생은 단순히 그냥 좋은 소식정도가 아닙니다. 일본에 의해 36년 동안 압제를 받았던 우리나라 사람들은 8월 15일에 일본이 무조건 항복하고 해방이 되었다는 말에 밖으로 뛰어나가 “대한독립만세”를 불렀습니다. 그것이 좋은 소식이었고 기쁜 소식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탄생과 예루살렘 성으로 어린 나귀를 타고 들어오시는 것은 그냥 좋은 소식이나 기쁜 소식정도가 아니라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었습니다. 그것도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입니다. 예수님이 이렇게 새끼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들어가시자 예루살렘에 사는 사람들 뿐 아니라 원근 각지에서 모여든 사람들에게도 역시 큰 기쁨의 소식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종려나무 가지와 자기 옷을 벗어들고 흔들면서 열정적으로 환영했습니다. “찬송하리로다 다윗의 자손으로 오시는 이여 지극히 높은 곳에서 호산나”하고 말입니다. 그러면 종려주일에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사람들이 왜 그렇게 기뻐하면서 노래를 부르고 또 환호하면서 소리쳤을까요?
그 첫 번째 이유는 선지자들을 통해 하나님이 보내신다고 말씀하셨던 그 분이 오셨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사람의 말과 다른 점은 그 능력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능력입니다. 어떤 능력이 있습니까? 한 번 입으로 말씀하신 것은 반드시 이루시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지 않으셨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은 엄청난 능력이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이 인간의 말과 다른 점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선포하신 말씀을 어떤 때는 바로 그 순간에 이루기도 하십니다. 그러나 어떤 경우는 금방 다가올 날에 이루기도 하십니다. 하지만 때때로 어떤 것들은 오랜 시간이 흘러서 이루시기도 합니다. 그리고 어떤 경우에는 몇 십년 후에 이루기도 하시고, 어떤 말씀은 몇 백년 후에 이루기도 하시고, 어떤 말씀은 몇 천년이 흐른 후에 이루기도 하십니다. 영원하신 하나님이 아니시면 이룰 수 없는 일들입니다.
어떻게 이렇게 하신 말씀이 이루어질 수 있습니까? 하나님 자신이 하신 말씀은 자신이 책임지시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은 능력입니다. 종려주일에 관한 말씀 역시 하나님이 수백에 걸쳐 말씀하신 것을 이루시는 능력입니다. 그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오랜 염원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그렇게 열광하면서 예수님을 맞이한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함께 읽으신 오늘 말씀 본문인 스가랴 9장 9절의 말씀도 역시 예수님이 태어나기 수백년 전에 살았던 스가랴 선지자를 통해 하나님이 주신 말씀입니다. 스가랴 선지자는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시기 520년 전에 예수님이 이 세상에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 성 안으로 들어오실 것을 예언했습니다.
우리 9절 말씀을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시나니 그는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시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 새끼니라” 여기서 시온의 딸과 예루살렘의 딸은 시온과 예루살렘에 사는 백성들을 의미합니다.
물론 크게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 전체를 가리키기도 합니다. 이는 시온이나 예루살렘이 우리 나라를 나타낼 때 서울을 나타내는 것처럼 이스라엘의 수도를 나타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88올림픽 표어가 “세계는 서울로, 서울은 세계로”였는데 여기서의 서울은 바로 한국 전체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이처럼 서울이 한국을 가리키듯이 시온이나 예루살렘은 이스라엘 전체를 가리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스가랴 선지자는 이 시온을 향해 크게 기뻐하고 예루살렘을 향해 즐거이 부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왜 크게 기뻐하고 즐거이 부르라고 하십니까? 하나님이 시온과 예루살렘의 딸들이 크게 기뻐할 만한 일을 행하셨기 때문입니다. 비록 스가랴 선지자가 볼 때는 앞으로 수백 년 후에 일어날 일이었지만 예수님 당시의 사람들로써는 자기 시대에 자기들 눈앞에서 그 예언의 말씀이 성취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눈으로 하나님께서 보내신 왕을 보는 영광을 누리고 있었습니다. 그런 그들을 향해 하나님은 “내가 약속대로 보낸 너희 왕을 보면서 너희는 크게 기뻐하고 즐거이 외치라”고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귀를 타시고 예루살렘성으로 들어오시는 예수님을 본 예루살렘 성안에 있는 백성들은 하나님이 선지자를 통해 약속하신 것을 지키신 것을 확인하면서 크게 즐거워하고 기뻐하였습니다.
이것을 마가복음 11장 9-10절을 보면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자들이 소리 지르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찬송하리로다 오는 우리 조상 다윗의 나라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하면서 기쁘고 즐겁게 찬송부르면서 예수님을 맞이하였다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요한복음 12장 13절에는 “종려나무 가지를 가지고 맞으러 나가 외치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 곧 이스라엘의 왕이시여 하더라”하고 말씀합니다. 이렇게 일어난 일의 의미를 깨닫지 못하고 그냥 좋아하기만 했던 제자들은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 사건을 목격한 후에 성령이 자기들에게 임하신 후에야 이 말씀이 무슨 뜻인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이 점에 대하여 요한복음 12장 15-16절에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이는 기록된 바 시온 딸아 두려워하지 말라 보라 너의 왕이 나귀 새끼를 타고 오신다 함과 같더라 제자들은 처음에 이 일을 깨닫지 못하였다가 예수께서 영광을 얻으신 후에야 이것이 예수께 대하여 기록된 것임과 사람들이 예수께 이같이 한 것임이 생각났더라”
성경에 기록된 말씀이 이루어질 때 그 당시에는 그 일이 왜 일어나는지 알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제자들 역시 그 당시에는 왜 이렇게 백성들이 예수님을 환영하는 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예수님이 영광을 얻으신 후에야 그 의미를 깨닫게 되었는데 그들이 이렇게 깨달을 수 있었던 이유중 하나는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구약 성경에 기록된 자신에 대한 내용들을 풀어 알려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또 다른 하나는 오순절 이후에 성령이 임하신 후에 성령께서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종려주일 사건이 바로 예수님께서 오셨을 때 백성들이 크게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일이 일어나게 될 것이라는 스가랴 9장 9절의 의미를 가르쳐 주셨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교회가 구약 성경과 신약 성경을 보면서 그 내용이 의미하는 것을 깨닫기 위해서는 성령의 가르치시는 역사, 그리고 깨닫게 하시는 역사가 있어야 가능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광야길을 가던 에디오피아 내시가 “읽는 것을 깨닫느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가르쳐주는 사람이 없는데 어떻게 깨달을 수가 있겠느냐?”는 것과 똑같은 대답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번주에 한 목사님을 만나 대화하다가 그 분이 자신의 간증을 하시는 것을 들었습니다. 자기는 모태신앙인데 대학교에 들어가면서 주님을 떠났습니다. 하나님도 성경도 믿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방황하다가 사고가 나서 병원 응급실에서 죽기 직전까지 갔습니다. 그런데 거기서 주님의 음성을 들었다고 합니다. “네가 오늘 죽으면 천국에 들어가겠느냐?” “네가 죽으면 천국에 들어가게 할 이유가 무엇이냐?” 그는 즉시 자기가 지옥에 갈 수 밖에 없는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는 그 병실이 회개의 장소가 되었습니다.
병원에서 수술을 받고 치료받은 후에 퇴원했을 때 그는 진리를 알고 싶어서 신학교에 갔습니다. 그러나 교수들에게서 진리를 배울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성경을 여러차례 열심히 읽었습니다. 그러는 가운데 성령께서 그의 마음을 여셔서 진리를 알게 하셨습니다. 그로인해 그는 ‘내가 목사가 되어서 하나님을 섬기고 사람들을 진리이신 예수님에게 인도해야 하겠다’고 다짐을 하고 목사가 되었다고 합니다. 성령이 진리를 깨닫게 해주시지 않는 한 스스로나 다른 사람에게 배워서나 진리를 깨달을 수가 없습니다. 오직 성령만이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해주실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성경을 통하여 미리 말씀하셨고 그 말씀하신대로 자신의 일을 이루십니다. 이것을 알아볼 수 있는 눈과 마음은 성령이 임하여야 가능합니다. 만일 여러분들이 예수님을 온전히 알지 못하고 있다면 성령께 예수님과 하나님 아버지를 알려 달라고 구하시기 바랍니다. 반드시 성령께서는 여러분들에게 여러 가지 방법들을 통하여 가르쳐주실 것입니다. 가장 일반적인 방법은 물론 하나님이 교회에 세우신 목회자들을 통하여 말씀하시고 확인시키시는 방법입니다.
다음으로 하나님께서 예루살렘과 시온의 딸들아 크게 기뻐하고 즐거이 외치라고 하신 이유는 그들 눈앞에 나귀를 타고 입성하시는 예수님이 바로 그들을 구원하실 왕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 9절 말씀을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시나니 그는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시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 새끼니라” 하나님이 이 땅에 자신의 아들을 내려보내시면서 주신 이름은 “예수”입니다. 그 단어의 뜻은 “구원자”입니다.
그러나 천사는 요셉에게 그 이름 뜻만을 말씀하지 않으시고 예수님의 이름을 구원자라고 부르신 이유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1장 21절을 보면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은 자기 백성들을 로마라고 하는 나라로부터 구원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그들의 죄에서 그들을 구원하러 오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예루살렘 성문에서 크게 기뻐하고 즐거이 외치며 대대적으로 환영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호산나”하면서 외쳤습니다. 이 뜻은 “지금 우리를 구원하소서”입니다. 그들은 호산나라고 외치면서 로마와 헤롯이 가져다주는 고통에서 자기들의 나라를 구원하기를 원하였지만 그러나 그들 앞에 구원자를 보내신 하나님께서는 땅에서 잠깐 누리는 평화가 아니라 영원한 나라에서 누리는 영원한 평화를 주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려 고통당하시면서 “아버지여 저들의 죄를 사하소서 저들은 자기가 하는 일을 알지 못함이니이다”하고 기도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왜 이 세상에 오셔야만 했는지를 로마로부터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들의 영혼을 압제하고 결박하여 죄악의 노예로 살고 있는 온 세상 안에 있는 예수님 자신의 백성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오셨다는 사실을 가르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언제 어디서나 왕이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개선장군들이 타는 백마를 타신 것이 아니라 새끼나귀를 타고 오셨습니다. 백마를 탄 황제들과 왕들과 장군들은 칼로써 자신이 살고 있는 세상을 정복합니다. 그로인해 흘리는 피는 어마어마합니다. 그들이 자기들의 적국의 피만 흘리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 나라 군사들의 피도 흘립니다.
전쟁은 적국의 사람들만 무기로 죽이는 것이 아닙니다. 그 적들도 상대방의 군사들을 죽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전쟁이 끝나면 적국과 자기의 나라 모두가 엄청난 피와 죽음을 대가로 내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결국 승리는 이긴 나라의 몫도 아니요, 진 나라의 몫도 아닙니다. 전쟁은 인간들이 하고 나라들이 하지만 그것은 피흘리기를 즐겨하는 마귀에게로 승리가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마귀의 승리 후에 진정한 승리는 창조주이시며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이신 하나님께 돌아갈 것입니다. 이것이 다니엘이 보았던 산에서 굴러온 큰 바위에 대한 형상입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이 구원자라는 것을 알고 계십니까? 그런데 예수님이 무엇으로부터 여러분들을 구원하십니까? 죄로부터 구원하십니다. 그리고 건강이나 가난함이나 온갖 괴로움과 슬픔과 절망으로부터 구원해주시는 것은 덤으로 주시는 것입니다. 물론 이 덤으로 주시는 것들이 굉장이 많지만 예수 그리스도 자신의 생명을 내주신 것에 비하면 그것들은 그렇게 큰 가치를 가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들의 가치가 크기는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얻는 가치와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영원한 생명을 주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은 왕이신 예수님이 오셔서 여러분들을 개인적이고 인격적으로 만나주시고 여러분들의 모든 죄로부터 구원해주셨습니다. 공의롭고 정의로우신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 자신의 몸을 찢어 지성소로 들어가 하나님을 만나 섬기게 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러분들을 사랑하셔서 모든 죄에서 구원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시온의 딸과 예루살렘의 딸들에게 크게 기뻐하며 즐거이 외치라고 한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 종려주일을 맞는 여러분들은 예수님이 주신 구원이 얼마나 기쁘십니까? 여러분들 역시 여러분들이 주어진 여건 때문에 “주여 지금 우리를 구원하소서”하면서 호산나를 외치실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무엇으로부터 누구를 구원해달라는 것입니까? 이것이 중요합니다. 여러분은 여러분들의 죄의 노예로 결박한 죄와 마귀로부터 구원해달라고 구하셔야 합니다. 진정한 구원은 여기서부터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은 여러분들만을 위한 예수님을 기뻐하고 계시지는 않으십니까? 그러나 하나님이 주신 예수님은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며, 겸손하신 왕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들은 공의가 예수님에 의해 시행되는 것이 여러분들에게 크게 기뻐할 이유가 되며 즐거이 외칠 이유가 됩니까? 예수님이 여러분들을 죄에서 구원하신 것이 크게 기뻐하고 즐거이 외칠 이유가 됩니까? 또한 예수님께서 다른 사람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여러분들을 보내셔서 구원의 복음을 전하게 하실 때 여러분들은 그것이 크게 기뻐하고 즐거이 외칠 이유가 됩니까?
예수님의 겸손은 어떻습니까? 여러분들이 크게 기뻐하고 즐거이 외칠 이유가 됩니까? 여러분들이 예수님을 알고 즐거워한다는 것은 단순히 아픈 것을 고쳐주시고 가난한 것을 벗어나 부자가 되게 하고 실패한 인생을 성공자로 만들고, 슬픔을 벗어나 기뻐하게 하고, 매일같이 돈 걱정하던 사람의 통장에 잔뜩 쌓아두게 만들고, 아이들이 좋은 대학교를 들어가 출세하고 세상의 기준에서 성공하는 것 이상의 하나님 나라에 속한 기쁨과 즐거움을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임마누엘이신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심에 대하여 스바냐 3장 14절을 보면 “시온의 딸아 노래할지어다 이스라엘아 기쁘게 부를지어다 예루살렘 딸아 전심으로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하고 말씀하십니다. 기쁨으로 노래하며 전심으로 기뻐 노래하라는 것입니다. 주님이 여러분들과 함께 계시는 것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스가랴 2장 10절에는 “여호와의 말씀에 시온의 딸아 노래하고 기뻐하라 이는 내가 와서 네 가운데에 머물 것임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종려주일이 큰 기쁨인 이유는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오늘이라고 하는 이 날에 우리에게 찾아오셔서 우리 가운데 머물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여러분들과 함께 머무시면서 하시는 일은 여러분들의 죄를 용서하시고 새 사람이 되게 하시므로 여러분 안에서 공의를 행하시고, 구원을 베푸시며, 겸손히 나귀를 타고 행하시면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시고, 병든 자를 고쳐주시고, 사람들이 회피하던 나병환자의 몸을 만지셔서 고쳐주시고, 사람들이 외면하고 정죄하던 죄인들을 찾아가 친구가 되어 주셨던 것처럼 오늘도 역시 그런 사람들을 만나 구원해주시는 것입니다. 그로인해 그들에게 큰 기쁨을 주시고자 하십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자기들을 찾아오셔서 모든 사람들과 차별없이 공의롭게 대하시고 구원해주신 예수님으로인해 큰 기쁨을 갖게 되었습니다. 자신들을 죄에서 그리고 인간의 힘으로는 해결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문제로부터 구원하셨습니다. 그리고 사람들로부터 대접을 받으시기보다는 대접하는 일에 집중하셨습니다. 물론 예수님을 자기 집에 영접하는 사람들로부터의 대접은 기꺼이 즐거워하시면서 받으셨습니다.
왕이신 예수님은 누추한 곳과 부유한 곳을 가리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에게는 어느 집이나 하나님이 머무시는 소중한 곳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하나님을 영접하는 사람들이 있는 곳은 다 소중하셨습니다. 그러나 헤롯이나 빌라도가 있는 곳은 끌려는 가셨어도 스스로 가시지는 않으셨습니다.
오늘 종려주일에 자신의 마음 가운데 부활하신 예수님이 살아 계신다고 믿으시는 여러분! 예수님이 여러분의 큰 기쁨의 원인입니까?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크게 기뻐하며 즐거이 외치라고 하십니다. 여러분 안에 계신 예수님이 공의를 행하러 오셨고, 구원을 베푸시기 위해 오셨고, 겸손히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으로 섬기며 살도록 하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새끼 나귀를 타시고 여러분들의 마음 가운데로 들어가셨습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여러분은 크게 기뻐하며 즐거이 외치십시오. “호산나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러 왕으로 오신 이여. 지극히 높으신 곳에서 호산나” 이 종려주일에 오늘 들으신 대로 여러분들을 찾아오신 예수님을 묵상하고 예수님이 원하시는 삶인 공의롭고, 죄인들을 구원하시는 일을 하시며, 겸손하게 사람들을 섬기시는 삶을 크게 기뻐하시면서 사십시오. 그로인해 이번주 고난주간이 예수님과 함께 동행하며 하나님이 주시는 깊은 은혜 가운데 보내시는 여러분 모두가 다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