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으로부터 듣는 말씀
고전2:3-5“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고 두려워하고 심히 떨었노라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설득력있는 지혜의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하여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
일제시절 유명한 감리교의 부흥사 이용도 목사님은 강단에 서서 아무 말씀도 하시지 않고 다만 묵묵히 서서 눈물을 흘리시기만 했습니다. 비록 설교는 없었지만 강사님을 바라보던 교인들은 모두 눈물을 흘리며 회개하기 시작했습니다. 설교에서 말보다 더 중요한 것이 바로 성령의 감동 감화입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는 분만시키는 일이 최고의 것이며, 낳는 일은 신의 소관이다.”라는 소크라스테스의 말처럼 없었던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는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소관입니다. 사도가 복음을 전할 때 설득력있는 지혜의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하고자 했던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인자야 내가 네게 이를 모든 말을 너는 마음으로 받으며 귀로 듣고” 겔3:10
에스겔 선지자는 말씀을 전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으로부터 말씀을 들어야 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말씀을 들은 일 없이 자기 지혜로 전하는 말씀은 사람의 지혜로운 말로 그치기 쉽습니다. 말씀을 듣고 깨달음은 사람의 지혜가 아닌 성령의 역사하심에 달려 있습니다.
“그들의 말이 그의 편지들은 무게가 있고 힘이 있으나 그가 몸으로 대할 때는 약하고 그 말도 시원하지 않다” 고후11:10
편지와 달리 몸으로 대할 때 사도가 약하고 말도 시원하지 않았던 것은 복음을 전하는 일에 유창한 언변이나 사람의 지혜 대신 성령의 능력에 의존하고자 사도는 약하고 두려워하며 심히 떠는 길을 택하였습니다.
정보화의 시대에 설교 말씀이 홍수처럼 밀려오고 있습니다. 사람의 지혜는 넘쳐나지만 성령의 역사하심은 미약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받아들여질 때조차도, 세상과 육체의 지혜가 거기에도 여전히 들어온다. 비록 영적인 진리라 해도, 성령의 생명 속에서 붙들지 아니하고 사람의 지혜 속에서 붙들 때, 그 능력을 빼앗기고 만다.” (머레이 <그리스도의 영> 80쪽) 말씀을 받아들이고 들려주는 가장 중요한 주체는 우리 안에 계시는 생명의 성령이십니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요15:7
주님의 놀라운 약속이 이루어지는 길은 우리가 들은 말씀이 사람에게서 듣는 말씀으로 그치지 않고 우리 안에 거하시는 주님으로부터 직접 듣는 말씀이 되는 데 있습니다. 말씀을 듣기 위해 우리는 주님 안에 거하면서 주님께 집중합니다.
우리 마음은 온갖 세상의 자랑으로 비대해져 있기에 우리가 주님 안에 거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주님 안에 거하려면 나를 위해 목숨을 내어주신 예수님을 위해 자기 목숨을 내어드리는 마음 자세가 필요합니다. 주님의 거처는 좁아서 두 사람이 들어갈 자리가 없습니다. 내가 죽고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주님 안에 거할 때 들은 말씀이 주님으로부터 직접 듣는 말씀으로 전환되는 기회를 맞이합니다. 우리가 주님으로부터 듣는 말씀은 살아있는 하나님 말씀입니다. 하나님에게는 능치 못하심이 없습니다. 주님으로부터 듣고 전하는 말씀은 비록 말은 약하고 시원하지 않을지라도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이 함께 합니다.
문제는 주님 안에 거하는 일이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라는 데 있습니다. 무의식적으로 행하는 습관까지 바뀌어져야 합니다. 그런 다음 마음의 생각을 다 비우고 주님 안에 거하는 의지의 훈련이 필요합니다. 끈기있게 침묵가운데 기다리노라면 어느 순간 주님께서 우리 안에서 말씀하시는 순간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23. 6. 3 장기옥 목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