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건축 여행기
가기 전
사실 이번 여행은 마음이 평소 여행이랑 달랐다. 요즘 따라 기분도 좋지 않았고, 아무래도 연말이 다가오니 에세이와 연말에 있을 여러가지 행사들을 생각하게 돼서 부담이 더해졌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최대한 즐기는 여행이 될 수 있도록 하자고 생각했다.
이번 여행의 중심은 ‘건축’ 이었다. 나는 건축에 대해서 흔히 볼 수 있는 집이나 빌딩 같은 것만 생각했다. 하지만 안도 다다오, 이타미 준 같은 건축가들이 설계한 건축물들을 찾아 보니 예술과 같은 느낌이 들었고, 실제로 보면 어떤 느낌일지 궁금했다.
여행을 떠나기 전에 각자 맡은 곳을 조사 하면서 사전학습을 간단하게 했다. 나는 관덕정과 삼성혈을 조사했다. 조사하는 과정에서 어려움이 아예 없었던 건 아니지만 혼자 하는 거 치고는 비교적 수월했다.
그렇게 조사를 마치고, 모든 준비도 끝냈다. 책숲에서 가는 네 번째 여행이지만 제주도 여행이라 느낌이 조금 달랐다.
일정표를 봤더니 쉴 수 있는 시간이 숙소에 들어가서 자는 시간 밖에 없었다. 이 때 까지는 얼마나 힘들지 몰랐다…
가서
첫째 날
제주도에 왔으니 고기국수를 먹고 관덕정을 가려고 했으나 비행기 이륙이 늦어지는 바람에 관덕정을 건너뛰고 삼성혈을 첫 번째로 가게 되었다. 그 후 4.3 기념관과 시간이 남아 원래대로 관덕정에 갔다. 저녁을 먹고 숙소에 돌아오니 11시가 넘었었다.
삼성혈
삼성혈은 관덕정과 함께 내가 조사한 곳이다. 삼성혈은 1964년 사적 제 134호로 지정되었다. 세 개의 구멍에서 양을나, 고을나, 부을나 3신이 태어나 탐라국을 세워 지금의 제주도가 생겨났다고 한다.
집에서 조사하면서 봤던 것과 달리 실제로 보니까 뭔가 신비로웠다. 스물 네 개의 비석으로 둘러 싸인 원 안 쪽으로 주변에 있던 나무들이 마치 빨려 들어 가듯이 쳐져 있었다. 무언가가 빨아들이는 그런 기운이 느껴졌다. 삼성혈이 있는 곳 주변에는 삼성혈과 제주에 관련 된 전시물들이 있는 전시관도 있었다.
삼성혈은 다행히도 잘 보존 돼서 사람들에게 잘 알려졌지만 작년 11월에 갔던 경주 나정은 신라의 시작점이 된 곳이지만 나정을 가르키는 표지판도 쓰러져 있고 비석들도 마찬가지로 쓰러져 있었다. 나정이 안타깝다는 마음이 들었고 여러가지 감정도 느꼈다.
둘째 날
전날 밤에 늦게 들어온 탓에 아침에 정신도 그렇고 몸도 그렇고 매우 피곤한 상태로 출발했다. 비몽사몽한 상태로 제주의 바다를 보러 갔는데 마침 날씨가 좋아서 무척 예뻤다. 덕분에 잠도 다 깼다. 바다를 본 후 둘째 날은 본태박물관, 방주교회, 수풍석박물관, 이중섭박물관을 차례대로 관람했다. 저녁에는 서귀포시장에서 10000원 이하로 각자 먹고 싶은 것을 먹었다.
본태박물관
본태박물관에 오기 전 까지만 해도 큰 기대를 안했다. 개인적인 생각은 본태박물관이 수풍석박물관에 조금 가려진 느낌이 없지않아 있었다. 여행 준비를 할 때도 다들 수풍석박물관에 대해 얘기를 많이 하고, 본태박물관에 대한 얘기는 많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히려 큰 기대를 안 한 것이 본태박물관을 느끼는 것에 도움이 됐다.
안도 다다오의 본태박물관은 노출 콘크리트, 빛, 물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건물이다. 총 다섯 전시관으로 구성된 본태박물관은 피카소, 달리, 백남준, 쿠사마 야요이, 앤디 워홀 등 세계적인 예술 거장들의 작품과 우리나라의 전통 공예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내가 느낀 점은 본태박물관은 효율적인 길 보다는 미로처럼 구불구불하고 신발도 벗었다가 신었다가 하는, 좋게 말하자면 예술적인 느낌의 길로 되어있다.
수풍석 박물관
수 박물관
지붕이 없는 둥근 천장으로 하늘과 빛이 쏟아져 물 위를 채우고 바람이 파동을 만든다. 만약 바람이 불지 않는다면 그 또한 빛이 물에 비치면서 예쁘다. 수 박물관은 들어가자 마자 웅장함을 느낀 곳이다.
풍 박물관
풍 박물관은 적송 판 사이사이로 바람이 드나든다. 사진으로 봤을 때는 직사각형 모양으로 보였으나, 실제로 보니 끝 부분이 살짝 휘어있었다. 이는 바람의 소리가 더 잘 들리게 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석 박물관
수풍석 박물관에 대한 기대치가 높아져 있는 상태에서 석 박물관이 관람 순서가 첫 번째 였다. 나는 ‘만약 석 박물관이 나의 기대에 못 미치면 어쩌지 ’라는 생각을 했는데 오히려 내가 생각한 것 보다 멋있었다. 석 박물관 내부는 천장에 빛이 들어올 수 있는 유리로 된 창문이 있었고, 그 밑에는 검은 돌이 있었다. 정오가 되면 창문에서 들어오는 빛이 검은 돌에 딱 들어 맞는다고 한다. (가이드 분이 말씀 해주셨는데, 사람들이 검은 돌이 포토 존 인줄 알고 검은 돌을 밟고 올라가서 사진을 찍었다고 한다.)
수풍석 박물관은 서로 떨어져 있어서 박물관에서 운행하는 버스를 타고 이동했다. 가이드 분도 있어서 수풍석 박물관을 관람하기 더욱 좋았다.
수풍석 박물관을 처음 봤을 때 ‘이게 박물관인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지금껏 본 박물관은 전시물들을 전시해 놓은 곳 이었다. 그런데 수풍석 박물관은 보다시피 특이하다. 자연과 어우러진 느낌의 건축물이다. 풍 박물관과 석 박물관은 비도 맞고, 햇빛도 받으면서 시간이 지나 색이 변하는, 세월이 지나 계속 바뀌는 그런 식이었다.
수풍석 박물관은 내가 생각한 건축의 틀을 깨버리는 느낌이었다.
셋째 날
역시 마찬가지로 피곤한 상태로 하루를 시작했다. 이 때 부터는 정신적인 피로보다는 육체적인 피로가 훨씬 더 느껴졌다. 그렇게 겨우 출발을 해서 유민미술관에 도착했다. 유민미술관을 관람한 후 섭지코지에 갔고, 점심을 먹고 우도에도 갔다.
우도
우도는 섬의 모양이 소가 드러누웠거나 소가 머리를 내민 모습과 비슷하다고 해서 우도라고 한다. 생각보다 커서 놀랐다. 그리고 이번에 제주도에 와서 바다를 가까이서 보지는 못해서 아쉬웠는데 우도의 해변에 가서 좋았다. 우도의 해변은 특이한 점이 있는데 우리가 흔히 해변에서 보는 모래자갈들과 달리 우도의 해변에는 모래대신 홍조단괴가 깔려있었다. 오히려 모래보다 더 좋았다. 그 이유가 모래는 너무 쉽게 옷이나 몸에 묻는데, 홍조단괴는 전혀 묻지 않았다.
그리고 우도에 갔으니 우도 땅콩 아이스크림도 먹고 왔다. 바닐라 아이스크림에 땅콩가루를 조금 뿌린 아이스크림이었다. 생각보다 별로였다.
다녀온 후
이렇게 3박4일의 여정이 마무리 되었다. 준비기간 동안은 기대가 안되었다. 하지만 이번 여행을 온전히 ‘공부’ 만 생각하면 만족스러운 여행이었다. 그리고 이번 여행으로 인해 나의 인식이 여러가지가 바뀌었다. 여행을 가기 전에 제주도는 바다, 귤, 돌하르방 이런 것 들이 생각나는 휴양지 느낌이었다면 앞으로는 이번 여행 때 본 박물관이나, 미술관 같은 건축물도 생각날 거 같다. 어쩌면 책숲에 있으면서 아예 여행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을 수도 있다. 예전에는 그냥 즐거움만 추구했다면 지금은 즐거움과 공부가 공존해야 하는? 그런 느낌이다.
여행 준비를 좀 더 철저하게 했으면 배우는 게 더 많았을텐데 그러지 못한 게 정말 아쉽다. 확실히 준비 정도에 따라 배우게 되는 범위가 달라지는 거 같다.
이번 여행, 다사다난 했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얻은 것이 많다고 생각한다.
약 반년 만에 글을 다시 쓰게 됐는데 반년 전 보다는 성장을 한 것 같다. 하지만 아직 남들에 비하면 많이 부족한 것을 알고있다. 다음에 또 글을 쓴다면 더 성장한 모습을 보일 수 있도록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