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대 대령과 골프 *
국회의원의 70%가 골프를 하는 것으로 나타나 ‘정치는 골프로 통한다’는 말처럼
역대대통령과 정치인들 사이에서 골프는 정치와 밀접한 관계를 보이고 있었다.
대통령의 관심에 따라 그 나라의 골프문화는 크게 달라진다.
박정희 전대통령은 정치적 측면에서 골프를 즐겼고, 골프마니아 전두환 전대통령은
골프 붐을 조성했다.
역대 대통령들의 골프실력은 어느 정도였을까?
영친왕-남다른 골프사랑
영친왕은 일제 강점기 일본의 볼모로 가 있을 당시,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며 그 울분을
토하기 위해 골프를 친 것으로 알려졌다.때문에 영친왕의 골프사랑은 남달랐다.
영친왕은 직접 이씨 왕릉 부지를 하사했고,골프장 건설 투자비까지 내 놓으며 골프장 건설에
힘을 쏟았다. 이때 생긴 골프코스가 43년간의 생명을 이어오며 복구의 악순환을
이어오다 사라진 군자리코스다.
이승만 (1948.7∼1960.4)
초대 대통령인 이승만 대통령에게 있어 골프는 군사적 활용 수단이었다.
대한민국 개국이후 초대 대통령으로서 한국 골프도 본격적인 국면을 맞이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그가 골프에 관심을 가지게 된 건 1949년 8월15일 대한민국 정부수립 1주년 기념
축하연 자리였다. 주한 외교관들과 군 고위층 등 인사들이 참석한 자리에서 미군
장성들이 골프를 즐길 공간이 없어 일본 오끼나와로 간다는 얘기를 듣고 골프 코스
건립을 지시한 것이 군자리 골프장(현 어린이 대공원)이다. 이승만 대통령은 미군들이
일본에서 골프를 치며 자리를 비우는 동안 갑자기 북한군이 침략한다면 신속히 대처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바로 골프장 건설을 지시, 군사적인 전략이 숨어있던 셈이다. 그 후
골프장은 ‘필드정치’의 기원이 되면서 정치협상과 외교적인 성과를 이끌어내기도 했다.
또한, 이 대통령은 1954년 한국 아마추어골프선수권대회를 창설, 직접 시상하기도 했다.
대회명을 ‘대통령배 아마추어 챔피언대회’로 바꿔 1975년까지 대통령배 대회로 이어지기도 했다.
박정희(1963.12~1979.10)- 막걸리 마시며 즐긴다
핸디캡 18
박정희 대통령은 골프를 정치적 수단, 특히 외교적인 성과를 이끌어내는 데 이용했다.
박 대통령이 골프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 중반, 경제 5개년 계획 수립
이후 해외순방이 잦아지면서부터다. 방문국의 수뇌들과 골프 라운드를 하면서 골프의
필요성을 깨달은 것. 방한하는 외국정치인들을 한양, 뉴코리아, 안양, 태릉CC 등에
초청해 필드외교정치를 펼쳤다.
박정희 전대통령은 볼을 치고 나서 클럽을 캐디에게 주지 않고 볼 있는 데까지 총을
메듯이 어깨에 둘러메고 다녔다.
1962년 5월 한장상 프로에게 골프를 배운 박정희 전대통령의 핸디캡은 18정도이다.
'골프 애호가'인 김종필씨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박 전대통령의 골프애착으로 안양CC에서는 국무총리배, 대법원장배 등 크고
작은 경기가 매년 열렸다.
박 전대통령은 스트레스를 받으면 청와대를 빠져나와 군자리코스나 한양CC,
뉴코리아CC 등의 골프장을 찾아 9홀을 돌고 측근들과 술잔을 나눴다.
라운드 중에도 막걸리를 들고 따라다니는 골프장 직원이 있었을 정도다.
프라자CC 주방장을 지냈던 김상호씨는 "한양CC에서 근무할 때 박 대통령이
오시면 내가 막걸리 통을 들고 뒤를 따라 다녔다"고 말했다.
전두환(1980.9∼1988.2) - 230m를 날리는 파워샷
핸디캡 12
전두환 대통령은 230m 이상을 날리는 장타자이자 핸디 12의 실력으로 역
대 대통령 중 골프를 가장 좋아하는 애호가로 손꼽힌다.
전두환 전대통령은 골프를 가장 좋아한 대통령이다.
그는 골프를 칠 때 권력을 과시하며 추종세력을 이끌고 다니는 걸 좋아했다.
특히 앞, 뒤 홀을 비운 뒤에 치거나 그의 측근들이 앞, 뒤팀을 맡아 치기 때문에
‘대통령 골프’, ‘황제골프’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그는 장군으로 진급한 1973년 골프에 입문했다.
육사 시절 축구선수로 활약했던 만능 스포츠맨답게 제1공수여단 시절에는
영내에 간이골프연습장을 만들어놓고 연습했다. 제1사단장에 취임하면서는
한양과 뉴코리아CC를 자주 찾았다.
대통령이 된 뒤 청와대 안에 골프연습장을 설치했다.
인도네시아 수하르토 대통령과 골프회동을 하며 한국 최초의 해외순방 골프를
펼친 주인공이 됐다. 한편 여자프로들을 골프장으로 초청해 골프를 한 뒤 청와대에서
만찬을 하기도 했다. 함께 라운드 했던 한명현 KLPGA수석부회장은 "당시 80대 중초반 정
도 실력이었다"고 전했다.
영부인이었던 이순자여사는 강남300클럽에서 홀인원을 기록하기도 했다.
노태우(1988.2∼1993.2)- 쇼트게임에 강하다
핸디캡 12
노태우 전 대통령 재임기간에는 88서울올림픽이라는 우리나라 최대의 스포츠
제전을 치렀다. 따라서, 스포츠 육성안을 마련하며 범국적인 스포츠 활성화 붐이 일어났다.
이에 골프도 함께 각종 규제가 완화되면서 골프장 건설 내인가 제도를 폐지하고 인, 허가권을
지방자치에 넘기며 골프장 관리 감독부처도 교통부에서 체육부로 옮겨졌다.
'테니스광'이자 럭비 선수를 지냈던 노태우 전대통령이 골프를 시작한 것은 제9사단장에
취임하면서부터다. 이후 체육부장관과 민정당대표 시절로 이어지면서 골프에 애착을 보였다.
연희골프연습장에서 노 전대통령을 지도한 이만형프로는 "성격답게 거리를 많이 내지는
않았으나 정교한 샷을 했고, 어프로치와 퍼팅으로 스코어를 관리하는 스타일"이라고 말했다.
1988년 청와대로 입성하면서 테니스보다 골프를 더 즐겼다.
청와대골프연습장을 틈만 나면 찾았고, 부인 김옥숙여사도 이때 골프에 상당히 재미를 붙였다.
연습을 할 때도 드라이버샷보다는 쇼트게임과 퍼팅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핸디캡은 12수준이다.
노 전대통령은 특히 골프장 인허가권을 청와대 내인가에서 시.도지사로 위임해
골프장 건설 붐에 불을 붙였다.
제6공화국 당시에 인허가를 받은 골프장만 139개소. '6공은 골프공화국'이란
말이 나왔을 정도다.
골프칼럼니스트 최영정(전 조선일보 체육부장)씨는 "남성대에서 골프 치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드라이버 거리는 180야드 정도 나가는 것 같았고 스윙아크가 작았다"고 말했다.
김영삼(1993.2~1998.2) - 엉덩방아 골프 사진의 주인공
역대 대통령 중 유일하게 '不골프'를 선언한 대통령이다.
재임기간 중 골프를 안 치겠다고 해서 정치권에서 갖가지 해프닝이 벌어졌고
그의 재임 기간은 '골프계의 암흑기'로 통한다.
통일민주당 총재시절인 1989년 10월 안양CC(현 안양베네스트GC)에서 김종필
당시 공화당총재와 골프회동을 가졌다. 황병태, 김용환 의원도 함께했다. 바로 이듬해
1월 '3당 합당'으로 이어지는 단초가 된 자리였다. 박정희 정권의 10월 유신이후로 골프를
끊었던 그는 이때 골방에 넣어 두었던 클럽을 다시 꺼냈다고 한다.
이날 드라이버로 티샷을 하다 중심을 잃고 뒤로 넘어져 '엉덩방아를 찧는'
사진이 다음 날 일제히 신문에 게재되기도 했다.
김 전대통령은 1993년 "임기 중에 골프장에 가지 않겠다"고 선언하며
사실상 골프를 금지했다.
청와대 경내에 설치된 골프연습장을 철거했으며 청남대 간이골프장도
무용지물로 전락시켰다.
골프를 사치성 스포츠로 분류해 엄청난 세금을 부과했으며, 공직자 골프 금지령을
내리는 등 정치적 통제 수단으로 이용했다.
김대중(1998.2~2003.2)- 골프는 안쳐도 애정은 컸다
김대중 전대통령은 골프의 '해빙기'를 가져다준 대통령으로 꼽힌다.
골프를 하지는 않았지만 골프에 대한 이해와 애정을 지녀 골프계의 기대감은 그 어느
때보다도 컸다. 사실 김대중 전대통령은 골프에 상당히 부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었다.
야당 총재시절 "골프장을 없애 논밭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을 정도이다.
김 전대통령은 재임 기간에는 오히려 골프에 우호적이었다.
김 전대통령은 1999년 10월 11일 인천체전 공개행사에서 골프대중화를 선언했다.
김영삼 전대통령의 '금지령'에 묶여 속앓이를 했던 골프계는 두 손을 들어 환영했다.
한국골프장경영인협회는 '골프광복일'이라는 담화까지 발표했다.
여기에는 박세리와 김미현 등이 미국무대를 휩쓸면서 IMF 경제난으로 침체된 국민의
사기를 북돋운 것도 큰 몫을 했다. IMF라는 경제난관에 부딪힌 김 대통령에게 ‘박세리의
맨발투혼으로 일궈낸 우승’은 온 국민에게 희망을 던져줌으로써 골프에 대한 인식을
바꿔놓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정작 김 대통령은 과거에 골프를 했다는 소문도 있었지만
고문 휴우증, 교통사고 등의 악재로 인해 지팡이를 짚고 다니는 불편한 몸으로 즐기지는 못했다.
김대중 전대통령은 박세리와 김미현, 최경주 등을 청와대로 불러 다과를 베풀고 훈장을 수여하기도 했다.
노무현(2003.2~2008.2)- 이론 무장하고 실전에 임한다
핸디캡 28
노무현 전대통령은 골프의 대중화시대에 맞춰 초기에는 골프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으나 정권 막바지에 ‘반값 골프장’이나 퍼블릭 코스에 대한 각종 세금이나
규제를 완화시켜 주면서 골프대중화에 앞장섰다.
노 전대통령은 1996년 총선 때 서울 종로에 출마했다가 낙선한 뒤 마음을
달래기 위해 부인 권양숙여사와 함께 골프연습장을 찾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먼저 스윙할 때 근육의 변화를 비롯한 골프 관련 서적을 탐독한 뒤 실전에 뛰어드는
스타일로 골프를 익혔다고 한다.
노 대통령이 골프를 처음 친 것은 해양수산부 장관시절 “골프를 치지 않으면 더 이상
어울리지 않겠다”는 주위의 협박성 권유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다가 해양수산부장관 시절인 2000년 본격적으로 프로에게 레슨을 받으며
골프에 입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참모들이 "장관이 너무 일찍 출근하면 아랫사람들이 눈치를 본다"는 조언을
하자 아침에 연습장에 들러 골프를 익히고 출근했다는 것이다.
노 전대통령은 수시로 "골프는 참 재미있는 운동"이라며 골프 예찬론을 폈다고 한다.
노 전대통령의 후원자인 강금원 창신섬유 회장이 운영하는 충주 시그너스골프장을
가끔 찾아 골프를 쳤다.
이곳에서 2003년에는 인도, 뉴질랜드 등 9개 대사들과 라운드를 하기도 했다.
2003년 참모진, 일부 장관들과 함께 태릉CC에서 라운드를 하다가 17번홀(파4)에서
생애 첫 버디를 기록했다.
알려진 바에 의하면 노 전대통령의 핸디는 28정도로 1백타 안팍의 스코어를 내며
오히려 권양숙 여사가 더 잘친다고 전해진다.
노 전대통령은 최경주를 비공개로 초청해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고 골프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바꿔야 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노 전대통령은 "골프장 건설하는 데 도장만 780개를 받아야 한다"는 지적에 따라 규제
완화 조치를 취했고, '반값 골프장' 대책까지 발표하며 골프장 건설 붐을 주도했다.
이명박(2008.3~ )- 끝까지 퍼팅을 해야 진짜 골프다
핸디캡 18
이명박 대통령은 현대건설 재임시절에 골프를 자주 즐겼다.
당시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과 계열사 임원들과 주로 라운드를 했다.
이때만 해도 80대 초반을 쳤으며, 정규 레슨을 받지 않고 스스로 독학했다.
테니스를 즐긴 덕에 200m 안팎의 드라이버 거리를 내고 스윙 감각이 뛰어나다는 평이다.
정치에 입문한 뒤에는 건강관리를 위해 골프보다는 테니스에 집중했다.
이 대통령은 골프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다시 말해서 '골프치는 시간은 일을 하지않는
시간'으로 여기는 듯하다
허나.. 골프는 그자체로도 하나의 산업이며 그로 인해 파생되는 인적.물적 경제 효과는
매우 크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로 보여진다.
공직자들의 골프에 대해서도 대통령이 골프를 쳐도 된다,안 된다를 말하기 보다는 공직자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자율적인 분위기를 강조한다.그 소신이 실제로 구현되어
골프의 대중화로 이어질지 기대를 가지고 지켜볼 일이다.
핸디캡은 보기플레이(90타)수준이다.
이 대통령의 골프스타일은 경영마인드가 그대로 드러난다.
몇번 가본 골프장은 홀들을 꼼꼼히 살펴보고 스스로 전략을 짜서 플레이를 한다.
처음 라운드를 하는 골프장은 캐디의 도움을 받기보다는 홀거리 및 공략법등이
수록된 야디지북(Yardage Book)을 구해 자신만의 공략 방법을 찾는 스타일이다.
정주영 명예회장과 라운드를 할 때 동반자들이 기브(실제로 퍼트를 하지 않아도
들어간 것으로 인정하는 것. 보통 OK라고 한다)를 주려고 할 때 이 당선자는
"마무리 하시죠" 라고 말해 주위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고 한다.
이 대통령은 2007년 11월,블루헤런GC의 주중회원이며 제일CC 회원권을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 옮겨온글 -
故 김영삼 前 대통령님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