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5.18 묘지에서
광주 5.18은 한국의 킬링필드다. 즐비한 무덤 앞에 서면 역사를 장악해온 권력의 무지막지한 힘에 분노와 절망, 답답한 마음이 동시에 인다. 그리고 다시 무덤 주인들의 이름과 생년월일과 사망일, 그리고 사진을 보노라면 눈물이 솟는다. 노인과 임산부, 노동자, 중학생, 심지어 초등학생까지 있다. 어떤 이는 남겨진 사진이 없어 무궁화꽃이 자릴 대신하고 있고, 어떤 이는 실종되었지만 몸을 찾지 못해 비만 있다. 죽고 싶어 죽은 사람은 하나도 없다. 하지만 권력의 인신제의처럼 희생제물이 되고 말았다.
우리는 아우슈비츠와 광주를 과거형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국가 폭력이 실은 우리가 눈감은 권력의 보복이고 우리 또한 작은 폭력을 행하며 살고 있다는 것을 상상하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일상에 산재한 권력과 폭력에 무감각해져서.
과연 저 우뚝 선 손에 담긴 신생의 알처럼 우리가 들어올려야 할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그날의 광주에서 벌어졌던 동양 사회의 이상향인 대동사회일 것이다. 내 것 네 것 없이 있으면 나누고, 서로 먹여주고, 나눠주고, 닦아주고, 씻어주고, 계급도 직업도 묻지 않고, 돈도 신용도 필요치 않은, 오직 인간애로 묶인 세상. 낯선 사람도 한 가족인 세상.
그때 하늘은 다시 한 번 그 비극적인 순간에 딱 한번 세상에 열렸었다. 동학의 1894년 만인평등의 대동세상이 잠깐 열렸던 것처럼. 그것은 지옥 속의 천국이었다.
그것을 코뮌이라고 하든 공동체라고 하든 상관없다. 4.19가 끝나고 5.16일 일어나고 신동엽이 ‘금강’이나 ‘껍데기는 가라’에서 노래했던 그 알맹이를 틔우지 못한다면, 동학도 광주도 여전히 죽어 있는 것이다.
광주 5.18 묘지를 방문하는 것은 쉽지 않다. 하늘에 우뚝한 저 코뮌이라는 청동 알맹이를 천국이 아니라 바로 이곳에서 세워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광주 5.18 묘지를 민주묘지라고도, 국립묘지라고도 하지 않을 것이다. 내게는 5.18로 충분하다. ‘국립’이라는 말이 들어가는 것은 오히려 5.18의 정신을 흐리게 하는 것 같다.
내게 광주 5.18 묘지의 저 무덤들은 알들을 담은 인큐베이터 같이 보인다. 꺼내달라고, 그런 세상을 다시 한 번 세상에 꺼내달라고, 외치는 침묵의 성전처럼 들린다.
그날도 그날이 아니다. 그날이 지금이다. 바로 오늘이 부활의 날인 것이다. 오늘 바로 지금 하지 못한다면 희망이 곧 기만으로 변하기 때문이다. 비록 그것이 자발성에 의한 의지로 만들어야 하기에 더욱 어려운 것이지만 그래서 가능한 것이기도 하다. 만인평등과 사랑의 마음과 철학으로 투철히 깨여 있어야만 지속할 수 있는 것이기도 할 것이다.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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