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논어집주(論語集注) - 3 - 팔일(八佾) - 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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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林放問禮之本 임방이 예의의 근본에 대해서 물으니
林放, 魯人, 見世之爲禮者, 專事繁文, 而疑其本之不在是也. 故 以爲問. 임방은 노나라 사람인데, 세상에서 예를 행하는 자들이 오로지 번잡하게 문식하는 것만 일삼는 것을 보고서, 그 근본이 여기에 있지 않다고 의심하였다. 그래서 이를 질문으로 삼은 것이다.
勉齋黃氏曰 本之說有二 其一曰 仁義禮智 根於心 則性者 禮之本也 故曰 中者 天下之大本 其一曰 禮之本 禮之初也 凡物有本末 初爲本終爲末 所謂夫禮始諸飮食者 是也 二說不同 集註乃取後說曰 儉者物之質 戚者心之誠 則便以儉戚爲本 又取楊氏禮始諸飮食而證之 면재황씨가 말하길, “禮의 本에 대한 학설에는 2가지가 있는데, 그 하나는 仁義禮智는 마음에 뿌리를 두고 있으니, 性이라는 것이 바로 예의 근본이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말하길, 中이라는 것이 천하의 큰 근본이라고 말한 것이다. 그 다른 하나는 말하길, 예의 근본은 예의 처음이라고 하였다. 무릇 만물에는 근본과 말단이 있는데, 처음은 근본이 되고 끝은 말단이 된다는 것이다. 이른바 禮는 음식에서 시작된다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이 두 가지 학설은 서로 다르지만, 집주에서는 마침내 뒤의 학설을 취해서 말하길, 검소한 것은 만물의 바탕이고, 애처로워함은 마음의 정성스러움이니, 곧 검소함과 슬퍼함을 근본으로 삼았다고 하였다. 또한 양씨의 ‘禮는 음식에서 시작된다.’는 말을 취함으로써 이를 증명하였던 것이다.”라고 하였다. |
2 | 子曰 大哉 問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훌륭하구나. 그 물음이여.
孔子, 以時方逐末, 而放獨有志於本. 故大其問. 蓋得其本, 則禮之全體, 無不在其中矣. 공자께서는 당시 사람들이 바야흐로 말단을 쫓았으나 임방이 유독 근본에 뜻을 두었기 때문에, 그래서 그 질문을 크다고 여기신 것이다. 대개 그 근본을 터득하면, 예의 온전한 體가 그 안에 있지 않음이 없는 것이다.
問禮之全體 朱子曰 兼文質本末言之 有質則有文 有本則有末 徒文而無質如何行得 當時習於繁文 人但知此爲禮 更不知有那實處 故放問而夫子大之 想是此問大段契夫子之心 누군가 禮의 온전한 體에 대하여 물었다. 주자가 말하길, “文(문식함)과 質(질박함), 근본과 말단을 겸하여 말하자면, 質이 있다면 文도 있는 것이고, 근본이 있으면 말단도 있는 것이니, 그저 문식하기만 할 뿐 바탕이 없다면, 어떻게 행할 수 있단 말인가? 당시에는 번거롭게 문식하는 것에만 익숙하여서, 사람들이 단지 이것만이 예가 됨을 알 뿐, 다시 저 실질적인 부분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임방이 묻자 공자께서는 그것을 대단한 것으로 여기셨던 것이다. 이를 생각하면, 이 질문이 공자님의 마음에 대단히 잘 들어맞았던 것 같다.”라고 하였다.
勉齋黃氏曰 得其本 則質文華實 皆在其中 蓋文之與華 亦因質與誠而生也 有本則有末 末固具於本矣 如木有根本 則有枝葉華實 其本立 則此木全體 枝葉華實 皆在其中也 면재황씨가 말하길, “그 근본을 터득하면, 바탕(質)과 문식(文), 華(꽃, 화려함)과 實(열매, 실질)가 모두 그 안에 있는 것이다. 대체로 문식과 화려함 역시 바탕과 정성으로 인해 생겨나기 때문이다. 근본이 있으면 말단이 있는 것이니, 말단은 본래부터 근본 안에 갖추어져 있는 것이다. 예컨대 나무에 뿌리가 있으면, 가지와 이파리, 꽃과 열매가 있는 것과 같다. 그 근본이 서 있다면, 이 나무는 그 體를 온전히 하여, 가지와 이파리, 꽃과 열매가 모두 그 안에 있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雲峯胡氏曰 須看在其中三字 得禮之本 則雖不便是禮之全體 而全體在其中矣 운봉호씨가 말하길, “반드시 在其中 석자를 잘 살펴보아야 한다. 禮의 근본을 터득하였다면, 비록 곧바로 그것이 예의 온전한 體는 아닐지라도, 온전한 體가 그 안에 있다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
3 | 禮 與其奢也 寧儉 喪 與其易也 寧戚 예(禮)는 사치하기보다는 차라리 검소한 것이 낫고, 상(喪)은 형식적으로 잘 치르기보다는 차라리 슬퍼하는 것이 낫다. ”라고 하셨다.
易, 治也. 孟子曰: “易其田疇” 在喪禮, 則節文習熟, 而無哀痛慘怛之實者也. 戚, 則一於哀, 而文不足耳. 禮貴得中, 奢易則過於文, 儉戚則不及而質, 二者, 皆未合禮. 然, 凡物之理, 必先有質而後有文, 則質乃禮之本也. 易(이)란 다스린다는 것인데, 맹자가 말하길, ‘그 밭두둑을 다스린다’고 하였으니, 상례에 있어서는 곧 節文을 익혀서 익숙하되, 애통함과 슬퍼함의 실질이 없다는 것이다. 戚은 곧 애통함에 專一하여 문식함이 부족한 것이다. 禮는 중용을 얻는 것을 귀하게 여기는데, 奢와 易는 문식에 지나친 것이고, 儉과 戚은 미치지 못하여 질박한 것이니, 이 둘은 모두 예에 부합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뭇 사물의 이치는 먼저 바탕이 있은 후에 문식이 있는 것이니, 바탕(質)이 바로 예의 근본인 것이다.
朱子曰 治田須是治得無窒礙方是熟 若居喪而習熟於禮文 行得 皆無窒礙 無那惻怛不忍底意 則哀戚必不能盡 주자가 말하길, “밭을 다스릴 적에, 반드시 막히거나 장애가 없게 다스려야 비로소 익숙한 것이다. 만약 상례에 居해서 禮文을 익숙하게 익혀서 모두 막힘과 장애가 없이 행할 수 있을지라도, 저 측은해하고 애처롭게 여기며 차마 못한다는 뜻이 없다면, 반드시 애통해하고 슬퍼하는 것을 극진히 할 수가 없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冠婚喪祭 皆是禮 故皆可謂與其奢也寧儉 惟喪禮獨不可 故言與其易也寧戚 易者治也 言治喪禮至於習熟也 喪者人情之所不得已 若習治其禮有可觀 則是樂於喪而非哀戚之情也 故禮云喪事欲其縱縱爾 冠婚喪祭는 모두 禮이기 때문에, 모두 사치스럽게 하는 것보다 차라리 검소한 것이 낫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오직 상례의 경우에는 유독 안 된다. 그렇기 때문에 잘 다스리는 것보다는 차라리 슬퍼함이 낫다고 말한 것이다. 易(이)라는 것은 잘 다스리는 것이니, 상례를 잘 다스림이 익혀서 무르익은 지경에 이른 것을 말한다. 喪이라는 것은 인정상 부득이한 것인데, 만약 그 예를 다스리는 것을 익혀서 볼만한 것이 있게 된다면, 이것은 초상을 즐거워하는 것이지, 애통해하고 슬퍼하는 정이 아닌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禮記에 이르길, 喪事는 총총(縱縱)히 서둘러 하고자 할 따름이라고 한 것이다.
禮貴得中: 新安陳氏曰 此禮字兼吉凶言 中者無過不及也 신안진씨가 말하길, “여기서 禮자는 길흉을 겸해서 말한 것이고, 中이라는 것은 지나침도 몸 미침도 없다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二者皆未合禮: 新安陳氏曰 謂未合禮之中 신안진씨가 말하길, “禮의 中道에 아직 부합하지 않았다고 말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朱子曰 禮不過吉凶二者 上句凡以吉禮言 下句專以凶禮言 儉戚只是禮之本而已 及其用也 有當文 時不可一向以儉戚爲是 故曰 品節斯 斯之謂禮 皆自有箇得中恰好處 주자가 말하길, “禮는 길흉 2가지에 불과한 것이니, 윗 구절은 무릇 길한 禮로써 말한 것이고, 아래 구절은 오로지 흉한 禮로써 말한 것이다. 儉戚(검소함과 슬퍼함)은 그저 禮의 근본일 따름이나, 그것을 씀에 미쳐서는 마땅히 文(문식함)이 있어야 한다. 이러한 때에 줄곧 검소함과 슬퍼함만을 옳은 것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 그래서 말하길, 이를 品節(등급에 따라 조절함)하는데, 이를 일컬어 禮라고 말하는 것이라고 하였으니, 모두 中道에 맞고 마침맞게 좋은 부분이 저절로 생겨난다.”라고 하였다.
禮初頭只是儉 喪初頭只是戚 然初亦未有儉之名 儉是對後來奢而言 蓋追說耳 東坡說忠質文 謂初亦未有那質 只因後來文便稱爲質 禮는 처음에 그저 검소했을 따름이었고, 喪도 처음에는 그저 슬퍼하는 것일 따름이었다. 그러나 처음에는 역시 아직 儉이라는 이름도 있지 않았는데, 儉은 나중에 생긴 사치함(奢)에 대조하여 말한 것이니, 대체로 거슬러 올라가 말한 것일 뿐이다. 소동파가 忠(하나라), 質(은나라), 文(주나라)을 설명하면서, 처음에는 또한 저 質이라는 것이 없었지만, 그저 나중에 생긴 文으로 인해 곧바로 質이라고 불려진 것이라고 말하였다.
南軒張氏曰 禮者理也 理必有其實而後有其文 文者所以文其實也 若文之過 則反浮其實而失於理矣 夫禮而失於奢 寧過於儉也 喪而易焉 寧過於戚也 蓋儉與戚 其實則存 奢則遠於實 易則亡其實 其文雖備 無益也 남헌장씨가 말하길, “禮라는 것은 이치다. 이치에는 반드시 그 실질이 있은 이후에 그 문식함(文)이 있는 것이다. 文이라는 것은 그 실질을 문식하는 것이다. 만약 문식함이 지나치다면, 도리어 그 실질을 호도하여 이치에서 잘못되게 한다. 무릇 禮를 행하면서 사치함에서 잘못을 저지르는 것보다는, 차라리 검소함에서 지나친 것이 낫다. 喪을 치르면서 익숙하게 다스리는 것보다는 차라리 슬퍼함에서 지나친 것이 낫다. 대체로 검소함(儉)과 슬퍼함(戚)은 그 실질이 보존되지만, 사치스러우면(奢) 실질에서 멀어질 것이고, (喪禮를) 익숙하게 다스린다면(易), 그 실질을 잃어버릴 것이니, 그 文이 비록 갖추어졌다 할지라도, 유익함이 없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勉齋黃氏曰 聖人因俗之弊 感放之意 而爲是言 本非以儉戚爲可尙 特與其流於文弊 則寧如此耳 其言之抑揚得其中正如此 면재황씨가 말하길, “성인께서는 세속의 폐단으로 인해 임방의 뜻에 감동해서, 이 말씀을 하신 것이니, 본래는 검소함과 슬퍼함을 숭상할만한 것으로 삼으신 것이 아니었다. 단지 文飾의 폐단에 흘러 빠지는 것보다는, 차라리 이와 같은 것이 나을 뿐이라는 것이다. 그 말의 억양이 中正(中道의 올바름)을 얻은 것이 이와 같았던 것이다.”라고 하였다.
葉氏曰 論禮之中 雖以奢爲不遜 儉爲固 與其失之不遜 不若失之固 猶爲近本也 是以 用過乎儉 喪過乎哀 易以爲小過 謂過者 小而得者大也 섭씨가 말하길, “禮의 中道를 논함에 있어, 비록 사치함을 불손한 것으로 여기고, 검소함을 고루한 것으로 여길지라도, 불손함에서 잘못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고루함에서 잘못하는 것만 못하니, 그래도 이것이 근본에 가깝기 때문이다. 이런 까닭으로, 재물을 사용함에 있어 검소함에서 지나치고, 상례를 치름에 있어 애통함에서 지나친 것을, 주역에서는 작은 잘못으로 여긴 것이니, 잘못한 것은 작지만, 얻은 것이 크다고 말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
4 | ○ 范氏曰: “夫祭, 與其敬不足而禮有餘也, 不若禮不足而敬有餘也, 喪, 與其哀不足而禮有餘也, 不若禮不足而哀有餘也. 禮失之奢, 喪失之易, 皆不能反本而隨其末故也. 禮奢而備, 不若儉而不備之愈也, 喪易而文, 不若戚而不文之愈也. 儉者, 物之質, 戚者, 心之誠. 故爲禮之本.” 범씨가 말하길, “무릇 제사는 그 공경함이 부족하되 예가 여유 있는 것이 예가 부족하되 공경함이 여유 있는 것만 못하고, 상례는 그 애통함이 부족하되 예가 여유 있는 것이 예가 부족하되 애통함이 여유 있는 것만 못한 것이다. 예는 사치함에서 잘못되고, 상례는 익숙하게 다스림에서 잘못되는데, 이것들 모두 근본을 돌이키지 못하고, 그 말단을 따르기 때문이다. 예의 경우, 사치스럽게 모두 갖춰진 것이 검소하면서 다 갖춰지지 않은 것의 나음만 못하고, 상례의 경우, 익숙하게 다스리고 문식한 것이 애통하면서 문식하지 않은 것의 나음만 못한 것이다. 儉이란 것은 사물의 바탕이고, 戚이란 것은 마음의 정성이다. 그러므로 예의 근본이 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
5 | 楊氏曰: “禮, 始諸飮食, 故汙(와)尊而抔(부)飮, 爲之簠簋籩豆罍爵之飾, 所以文之也, 則其本儉而已, 喪不可以徑情而直行, 爲之衰麻哭踊之數, 所以節之也, 則其本戚而已. 周衰, 世方以文滅質, 而林放, 獨能問禮之本, 故夫子, 大之而告之以此.” 양씨가 말하길, “禮는 마시고 먹는 것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에, 고인 웅덩이 물을 손으로 움켜 떠서 마시다가, 보궤, 변두, 뢰작의 장식을 만들었는데, 이는 그것을 문식한 것이니, 그 근본은 검소함일 따름이다. 상례는 감정 그대로 곧장 행할 수는 없는 것이어서, 최마와 곡용의 수를 만들었는데, 이는 그것을 절제한 것인즉, 그 근본은 애통함일 따름이다. 주나라가 쇠약해지자, 세상은 바야흐로 문식(文)으로 바탕(質)을 없애버렸음에도, 임방이 홀로 예의 근본을 물을 수 있었으니, 그러므로 공자께서 그를 대단하다고 여기시고 이것으로써 알려주신 것이다.”라고 하였다.
記禮運篇云 夫禮之初始諸飮食 其燔黍捭豚 汙尊而抔飮 蕢桴而土鼓 猶若可以致敬於鬼神 註云古未有釜甑 釋米捭肉 加於燒石之上而食之耳 汙尊鑿地爲尊也 抔飮手掬之也 蕢讀爲塊 謂搏土爲桴也 土鼓築土爲鼓也 예기 예운 편에 이르길, 무릇 禮의 처음은 먹고 마시는 것에서 비롯되었으니, 기장을 굽고 돼지를 찢으며, 웅덩이를 파서 물동이로 삼고 손으로 퍼마시며, 땅을 쳐서 북채로 삼고 흙으로 북을 만들었어도, 그래도 귀신에게 공경을 지극히 할 수 있었다고 하였다. 주석에서 말하길, 옛날에는 아직 솥이나 시루가 없어서 쌀을 풀고 고기를 찢어서 구운 돌 위에 올려놓고서 먹었을 뿐이라고 하였다. 汙尊이란 땅을 파서 물동이를 만드는 것이다. 抔飮이란 손으로 퍼마시는 것이다. 蕢는 塊로 읽는데, 땅을 두드려 북채(桴)로 삼는 것을 말한 것이다. 土鼓란 흙을 쌓아서 북을 만드는 것이다.
記檀弓下 禮有微情者(節哭踊) 有以故興物者(衰絰之制) 有直情而徑行者 戎狄之道也(哭踊無節 衣服無制) 예기 단궁하 편에, 禮에는 감정을 은미하게 하는 것이 있고(곡과 춤을 절제하는 것), 일부러 외물을 발흥하게 있는 것(衰絰의 제도)도 있는데, 감정 그대로 곧장 행하는 것은 오랑캐의 道라고 하였다(곡과 춤을 절제함도 없고, 의복에도 제도가 없다). 朱子曰 楊氏謂 禮始諸飮食 言禮之初本在飮食 然其用未具 安有鼎俎籩豆也 方其爲鼎俎之始 亦有文章 雕鏤繁而質滅矣 故云 與奢寧儉 又曰 楊說喪不可徑情而直行 此一語稍傷那哀戚之意 其意當如上面始諸飮食之語 謂喪主於哀戚而爲之哭泣擗踊 所以節之 其本則戚而已 주자가 말하길, “양씨는 禮가 먹고 마시는 것에서 시작되었다고 말했는데, 예의 처음이 본래 먹고 마시는 것에 있었다고 말한 것이다. 그러나 그 用(활용, 적용)이 아직 갖추어져 있지 않다면, 어찌 鼎俎와 籩豆가 있을 수 있겠는가? 바야흐로 鼎俎를 만들기 시작할 때에도 또한 文章이 있었지만, 雕鏤(새겨서 장식함)가 繁多해지면서 바탕(質, 질박함)이 멸실된 것이다. 그래서 사치하기보다는 차라리 검소한 것이 낫다고 말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또 말하길, “양씨는 초상을 치름에 있어 감정 그대로 곧장 행할 수는 없다고 말했는데, 이 말 한마디는 저 애통하고 슬퍼하는 뜻을 조금 상하게 하는 것이니, 그 뜻은 마땅히 윗부분에 나오는 ‘음식에서 시작한다’는 말과 같아야 할 것이니, 喪禮는 애통하고 슬퍼함(哀戚)에 주안점을 두지만, 그것을 위해 울고 가슴을 치며 발을 구르는 것(哭泣擗踊)은 그것을 절제하는 것으로서, 그 근본은 곧 슬퍼함(戚)일 따름이라고 말해야 한다.”라고 하였다.
慶源輔氏曰 祭與喪皆禮也 范氏與其不若之言 正與夫子所謂寧字義相宜 故引之爲說 禮失之奢 喪失之易 皆不能反本而流於末也 此常情之弊也 物事也 禮而儉 則是事之未有文飾也 喪而戚 則是心之誠實自然也 故爲禮之本 경원보씨가 말하길, “제사와 상례는 모두 禮다. 범씨의 ‘뭐 하는 것보다 뭐 하는 것이 낫다’고 한 말은 바로 공자께서 말씀하신 寧(차라리)자의 의미와 서로 부합하기 때문에, 이를 인용하여 말한 것이다. 禮를 행함에 있어 사치함에서 잘못되고, 초상을 치름에 있어 익숙하게 다스림에서 잘못되는 것은, 모두 근본을 돌이키지 못하고 말단으로 흐른 것이다. 이것은 일상적인 감정의 폐단이다. 物은 일이니, 예를 행하면서도 검소하다면, 이는 일에 아직 문식함이 없는 것이고, 초상을 치르면서도 슬퍼한다면, 이는 마음이 정성스럽고 진실하기가 저절로 그러한 것이다. 그래서 예의 근본이 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雙峯饒氏曰 放問禮之本而夫子不告之以禮之大本 以其不切放故也 쌍봉요씨가 말하길, “임방이 예의 근본을 물었지만, 공자께서 예의 大本을 알려주지 않았던 것은 그것이 임방에게 절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雲峯胡氏曰 本有二 其末亦不同 本根之本 其末爲枝葉 枝葉出於本根而亦能芘其本根 可相有而不可相無 本始之本 末流必有失 禮始於儉 末也必奢 故曰 與其 曰寧 孔子因末流之失 不得已而爲反本之論也 운봉호씨가 말하길, “근본(本)에는 두 가지가 있으니, 그 말단도 역시 같지 않은 것이다. 근본(本根)이라는 本에 있어서, 그 말단은 枝葉(가지와 이파리)이 되는데, 지엽은 근본에서 나오지만 역시 그 근본을 감싸 덮어주는(芘: pi2) 것이니, 서로 있을 수 있지만 서로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본래 시작한다는 本始의 本에 있어서는, 그 末流에는 반드시 잘못되는 것이 있으니, 禮는 검소함에서 시작되었지만, 그 마지막에는 반드시 사치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與其(하기보다는)를 말하고 寧(차라리)을 말했던 것이다. 공자께서는 마지막에 흘러 빠지는 잘못으로 인해서, 부득이하게 근본을 돌이킨다는 논의를 하셨던 것이다.”라고 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