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언 (證言) - [47] 서명진 (徐明鎭) - 더한 골고다의 길이라 할지라도 5. 연산교회 개척 시절 ②
40일 전도 기간에 40명의 입회자를 얻는 성과를 거두고 상경하였다. 선생님께서는 한동안 미국 유학까지 꿈꾸게 하시더니 이 꿈도 뒤로 미루게 하시고 상경 얼마 후 연산(連山)에 가서 일 년 더 수고하라고 하시는 것이었다.
그래서 미국 유학의 꿈도 하루아침에 다 버리고 또 믿고 순종하는 마음으로 하늘이 나를 통해서 살아 역사해 주실 것으로 알고 다시 연산으로 개척 전도의 길을 떠났다. 우선 유지분들과 면장 이장님을 찾아 구면사무소로 사용하던 건물과 사택을 깨끗이 관리해 주기로 하고 사용 승낙을 받았다. 사택방은 깨끗이 도배와 수리를 마치고 내가 입주했다.
하늘이 여비해 주신 곳이라 생각하고서 이미 40일 전도 기간에 입회원서를 받은 청년들을 모아 밤마다 원리 강의를 해주었고, 중학교 고등학교를 나와 집에서 놀고 있던 젊은이들에게도 말씀을 무장시켰다.
우선 애향심을 길러주고 애국심과 인류애의 정신을 심어주면서 4H 클럽도 조직했다. 한편 국민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못 가는 학생,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에 못 가는 학생 등 두 반을 모집하여 공부를 가르쳤다. 또 장날 다음 날에는 매번 새벽잠을 깨워 어지럽혀진 장터를 청소하고 거리를 쓸었다. 그래서 일 년 동안 모아진 쓰레기가 거름이 되어 그것을 가지고 500개 정도 구덩이를 파서 박씨를 심었다. 벼 베기 모심기 고추 따기 등을 하면서 농촌 사람들이 농사짓는 어려움을 조금이라도 체험해 보기도 했다. 그리고 나는 6개월 후에 논산 전체 면에 전도사를 내보내려고 20명에게 집중 강의를 실시했다. 그렇게 원리 공부와 강의 연습을 한 청년 식구들이 동계 40일 전도 때부터는 논산군 일대와 부여군 일대에까지 개척 전도를 나갔던 것이다. 나는 그들에게 말씀도 해주고 격려도 해주고 생활도 보살펴 주기 위해 눈 속에 빠지며 산길을 걸어 순회를 했었다. 힘닿는 데까지 열심히 일을 하자, 동네 청년들까지도 열심히 나를 도와주는 것이었다. 이곳에서 개척 전도를 하면서 나는 ‘뜻이 있는 곳에는 반드시 길이 있다’라는 것을,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도우신다’라는 말씀을 체휼할 수 있었다.
때로는 기성교회 청년들이 강의소에 돌팔매질을 하거나 또 일손이 모자라는데도 가사를 뒤에 두고 청년들이 집을 나오게 되어 부모들의 반대를 받을 때는 말할 수 없이 가슴이 아팠다. 그러나 나는 뜻 안에서 무럭무럭 자라나는 청년 식구들과 손을 잡고 보람을 느끼며 젊음을 불살라 일하던 연산 개척 전도 시절을 잊을 수 없다. 여기에서 남아진 축복가정식구가 120가정에 손봉순(孫奉順), 김수복(金壽福), 도기분(都基粉), 도기열(都基烈), 430가정에는 박종욱(朴種部), 김정수(金正深), 서복래(餘福來), 손금순(孫今順)씨 등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