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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여름수양회 주제2강
"영생의 샘물"
요한복음 4:1-30
요한복음 4:14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지난 2017년 난민이 아프리카 사막을 이동하던 중 차가 고장 나서 걷다가 물이 없어 갓난아이를 포함해 44명이 죽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물이 없이 사막을 걷던 이들의 심정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픕니다. 그런데 이들 앞에 오아시스가 나타났다면 그 기쁨과 시원함이 어떠 했을가요? 영적으로 보면 참 생수이신 하나님 없는 세상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마치 이 난민의 모습과 같습니다. 오늘 말씀에는 목마른 인생들에게 진정한 생수라는 선물을 들고 찾아오신 예수님이 나오십니다. 말씀을 통해 이 예수님을 만나고 생수를 마시는 기쁨을 누리는 시간되기를 기도합니다.
Part I 타는 목마름
유대에서 사역하시던 예수님은 당신을 시기하는 바리새인들을 떠나 다시 북쪽 갈릴리로 가려하셨습니다. 4절을 보십시오. ‘사마리아를 통과하여야 하겠는지라’ 이 말씀은 영어로 ‘He had to go through Samaria’ ‘반드시 사마리아를 통행해야 하겠는지라’ 입니다. 여기에는 이 땅을 의도적으로 가려고 하시는 예수님의 의지가 담겨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남쪽 유다는 바벨론에 망했지만 단일 민족을 유지했습니다. 그러나 북쪽 이스라엘은 앗수르에 함락당하면서 다른 민족들과 혼혈족이 되어 버렸는데 그들이 바로 사마리아 사람입니다. 유대인들은 이들을 개 취급하며 상종 못 할 죄인으로 여겼습니다. 유대에서 갈릴리로 가고자 할 때 사마리아를 통과하지 않고 6일을 더 걸려서라도 돌아서 갔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왜 이 아무도 가지 않는 땅, 상종하지 않는 땅으로 가고자 하셨을가요? 주님은 그곳에서 인생의 목마름으로 고통하는 한 여인을 보셨습니다. 그리고 그 여인에게 생수라는 선물을 주시기 위해 직접 그 땅을 찾아가셨습니다.
‘사마리아에 있는 수가라 하는 동네에 이르시니 야곱이 그 아들 요셉에게 준 땅이 가깝고 거기 또 야곱의 우물이 있더라’ (5~6a) 그곳에는 오래전부터 오늘을 위해 준비된 야곱의 우물이라는 무대가 있었습니다. 조상 야곱이 그 땅에서 파 놓았던 우물인데 마을 사람들 모두가 이 우물에서 신선한 물을 얻으며 생활하는 터전과 같은 곳이었습니다. 그곳에 도착했을 때는 여섯시, 우리 시간으로 낮 12시였습니다. 40도가 넘는 중동의 태양 아래서 예수님은 오랜 걸음으로 지쳐 우물 앞에 털석 주저 앉으셨습니다. 그 때 한 여인이 물을 길으러 옵니다. ‘물을 좀 달라’ 주님은 여인에게 요청합니다. 여인은 유대인으로 자신에게 말을 거는 예수님을 경계합니다.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인 나에게 물을 달라 하나이까?’ 예수님은 사실 자신을 경계하는 이 여인을 대화로 초청하시기 위해서 말을 거셨습니다.
하늘나라에서 봤을 때 우리가 사는 이 땅은 마치 사마리아와 같습니다. 죄로 더럽혀진 곳, 온갖 폭력과 악행이 가득한 곳, 하나님이 결코 상종할 수 없는 땅과 같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굳은 의지를 가지고 이 땅에 인간의 몸으로 찾아오셨습니다. 그것은 목마름으로 고통하는 우리 한 사람을 만나시기 위해서입니다. 우리와 대화하며 우리를 영생으로 초대해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이 땅까지 우리 한 사람을 위해 찾아와 주신 예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 인생을 돌아보면 예수님께서 여러 모양으로 사람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찾아오신 적이 있습니다. 때로는 부모님, 때로는 친구, 때로는 학교 선후배들을 통하여, 여러 사건들을 통하여 우리를 주님께 초청하십니다. 오늘 이 자리에 오신 여러분도 주님께서 여러가지 모양으로 ‘물을 좀 달라’ 하시면서 이야기를 건네시어 오늘 이 자리까지 오게 되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여인에게 어떤 대화를 이어가십니까? 10절 말씀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 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 줄 알았더라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이 여인을 위해 준비하신 선물이 있다고 합니다. 선물은 공짜로 받는 것이기에 사람의 마음을 참으로 기쁘게 합니다. 그리고 그 선물이 생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자신이 누구인 줄 알았다면 생수를 구했을 것이고 주님은 생수를 주었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여인은 선물이 있다고 하니 기분이 좋았지만, 방금 물을 달라하던 사람이 이제는 생수를 준다고 하니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이 우물은 깊고 그릇도 없는데 어떻게 생수를 준다는 말인가요? 되물었습니다. 여인은 눈 앞에 보이는 우물물만 생각했습니다.
13절 말씀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예수님은 이 우물물의 한계를 아셨습니다. 먹으면 순간 시원하지만, 곧 다시 목말라 집니다. 그런데 이 우물물 뿐만 아니라 우리 영혼의 목마름을 채우기 위해서 먹는 세상의 우물물도 비슷합니다. 유투브의 우물물은 어떻습니까? 요즘 먹방이 대세입니다. 20대 여성 유투버는 라면 20인분을 한 자리에서 먹어 치우며 보는 이들로 하여금 대리 만족과 열광을 불러 일으킵니다. 맛있게 먹는 유투버를 보면서 내가 먹고 있는 양 흐뭇한 만족감을 느끼고 침까지 흘리며 행복해 합니다. 뿐만 아니라 여행 유투버를 통해 각종 여행지를 돌아다니며 촬영한 영상을 보며 내가 세계를 다 다닌듯 만족하기도 합니다. 스포츠, 드라마, 연예인 소식, 가요 등 끝도 없는 유투부 우물들이 알고리즘으로 사람들을 초대합니다. 내 취향을 어찌도 그리 잘 아는지 이것들을 보다 보면 2~3시간은 훌쩍 가버립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그러고 나면 마치 목마를 때 바닷물을 마신 것처럼 영상에 대한 목마름은 더 심해집니다. 또 대학에 들어온 청년들은 각종 동아리 모임, 술 모임에 참석하면서 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해 뭔가 나를 채워줄 것들을 찾습니다. 그런데 이런 것들을 할 때 순간 너무 기쁘기도 하지만, 끝나고 나면 뭔가 허무해지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저에게는 성형외과를 개업하여 잘나가는 친구가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 다른 동창 성형외과 친구의 갑작스런 심장마비 사망 소식을 듣고는 ‘돈으로 보상받는다’하고 그동안 열심히 일했는데 그것도 이제 약발이 떨어지니 요즘은 왜 의사를 했는가 현타가 온다고 했습니다. 헛헛하고 외롭고 허무하고 그런다고 카톡을 했습니다. 이처럼 세상의 우물물은 우리를 채워줄 것 같지만 결국에는 더 진한 목마름을 남기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처음 창조하신 아담은 에덴 동산에서 살았습니다. ‘에덴’ 이라는 말은 기쁨, 즐거움 이라는 뜻입니다. 사람은 원래 기쁨과 행복, 만족을 누리는 존재로 창조된 것입니다. 에덴에 참 기쁨이 있었던 것은 우리를 사랑하시는 아버지 하나님이 계셨기 때문입니다. 아담은 하나님과 대화하며 산책하며 그 분의 사랑 안에서 풍성한 만족을 누렸습니다. 그런데 범죄로 하나님이 사람에게서 떠나시게 되면서 사람은 해결할 수 없는 결핍과 목마름을 경험하게 된 것입니다. 사람들은 에덴의 흔적을 찾아 행복을 추구하지만 하나님 없이는 그 때의 그 기쁨을 회복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주시는 생수를 맛보기 전에는 사람의 목마름은 결코 채워지지 않습니다.
18절에 보면 오늘의 사마리아 여인도 지금 6번째 남자와 살고 있습니다. 이 여인은 이성을 통해서 목마름을 채워보고자 했습니다. 눈과 마음을 즐겁게 해주는 김수현 같은 외모에 김종국 같은 몸을 가진 만화를 찢고 나온 것 같은 사기 캐릭 남친을 만나 사귀었습니다. 모든 것을 다 가진 것 같은 행복을 기대했지만 시간이 지나니 이 역시 사람일 뿐, 처음에 있던 설레임도 없어지고 다시 목말라졌습니다. 이번에는 유재석처럼 재미있고 성격 좋은 사람을 만나 보았습니다. 전보다 오래 사귈 순 있었지만 이제는 그의 개그도 식상해지고 진정 원했던 그 무언가는 채워지지 않았습니다. 다른 남자 친구, 또 다른 사람 이렇게 하다가 6번째 남자를 만나게 됐습니다. 그러나 갈수록 심해지는 목마름으로 이제 마음은 더욱 허무해지고 절망적이 됐습니다.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홀로 물길으러 오는 처지가 됐습니다.
Part II 영생의 샘물
예수님께서는 이 여인에게 말씀하십니다. 13절 ‘이 물’ 부터 14절까지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은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여인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수 있다는 말에 그런 물을 달라고 합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물은 인생의 목마름을 근본적으로 채워줄 생수를 이야기합니다.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이 물은 특별히 사람 속에서 솟아 나오는 샘물이라고 하십니다. 샘물은 지하 암반수에서 지표면으로 올라오는 물을 말합니다. 미국 미주리의 big spring에서는 매일 1억L(10톤) 의 청정수가 솟아 올라온다고 합니다. 물의 근원인 암반에는 그 양을 측정하기 어려울 만큼 충분한 물이 있습니다. 그 물 또한 빗물이 다시 지하로 내려가 계속 충전이 됩니다. 무한대의 sourse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주시는 물은 지하에서 올라오는 샘물처럼 우리 속에서부터 끝 없이, 부족함 없이 계속해서 솟아납니다. 항상 신선하고 차가운 생수가 흘러나와 우리의 영혼을 목마르지 않게 해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속에서부터 솟아오르는 이 물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외치셨습니다. 외치듯이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요 7:38~39a)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으면 그 배 안에서부터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게 됩니다. 그리고 이 생수는 바로 예수님을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고 하십니다. 성령께서는 무한대의 지하 암반수처럼 우리 안에 거하시면서 끊임없이 신선한 생수를 흘려보내 주십니다. 이 생수의 근원 되시는 성령을 받을 때 우리는 언제든지 이 생수를 벌컥벌컥 마시며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삶을 살게 됩니다. 결코 채워지지 않았던 인생의 타는 목마름은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우리 안에 들어오실 때에 비로소 끝이 오는 것입니다.
저는 고3 때 예수님을 만나보고 싶은 생각에 교회 수련회에 처음으로 참석했습니다. 그곳에서 예수님을 만나고 생전 경험해보지 못한 기쁨을 느꼈습니다. 그동안 내가 왜 태어났는지 우주에서 나는 누구인지 몰라 허무했는데, 나를 창조하신 분을 알고나니 모든 궁금증이 풀렸습니다. 친아버지 되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느껴질 때 기쁨과 폭포수 같은 평강이 속에서부터 올라왔습니다. 너무 행복해서 눈물이 나오고 세상 부족한 것이 없을 만큼 마음이 채워졌습니다. 이것은 성적이 잘 나올 때 일시적으로 느꼈던 기쁨과는 차원이 다른 맛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생수를 들고 여인 앞에 서 계십니다.
15절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주여 그런 물을 내게 주사 목마르지도 않고 또 여기 물 길으러 오지도 않게 하옵소서’ 이야기 합니다. 잘은 모르지만 그런 물을 맛보고 싶은 소원이 생겼습니다. 그런데 이 여인에게 생수의 맛을 보여주시기 전에 예수님께서는 ‘남편을 불러오라’고 말씀하십니다. 여인은 뜨끔하면서도 왜 갑자기 남편 이야기야? 내가 숨기면 모르겠지, 생각하며 ‘나는 남편이 없나이다’ 대답합니다. 그런데 주님의 답변은 무엇입니까? ‘네가 남편 다섯이 있었고 지금 있는 자도 네 남편이 아니니 네가 남편이 없다하는 말이 옳도다’ 여인은 처음 본 유대인의 입에서 나오는 말에 깜짝 놀랍니다. 자기의 과거사를 다 알고 계시는 예수님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합니다. ‘주여 내가 보니 선지자로소이다’ 선지자는 하나님의 계시로 비밀을 알고 하나님의 뜻을 알아서 사람들에게 전해주는 사람을 이야기 합니다. 여인은 이 대화를 통하여 영적인 세계로 관심이 돌려졌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 예배에 대하여 물어봅니다.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 (20절) 사마리아 인들은 그리심산에서 예배하였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예루살렘 성전에서 드리는 예배만이 참 예배라고 하였습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예배의 대상을 찾습니다. 역사적으로 보아도 세계 어디를 가도 자연을 숭배하든 우상을 세워 숭배하든 예배의 흔적들이 있습니다. 이방 사람들은 알지 못하는 하나님을 찾다가 우상에게 예배하게 되고 유대인들은 성경을 통해 계시된 하나님께 예배하였습니다. 여인은 참된 예배에 대하여, 정말로 하나님을 만나는 방법에 대하여 궁금했습니다. 21절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예수님께서는 이제 새로운 시대를 선포하십니다. 그리심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창조주 하나님께 예배드릴 수 있는 때가 이른다고 알려주십니다.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23a) 진정한 예배는 영과 진리로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영과 진리의 예배는 진리되신 예수님과 그 십자가 안에서 하나님의 선물인 성령의 임재와 생수를 경험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오심으로 이제 누구든지 영과 진리로 하나님께 참된 예배드릴 수 있는 새 시대가 왔습니다. 그동안 이방사람들은 하나님을 알지도 못하고 하나님께 가는 길도 몰라 우상을 섬겼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구약 성경에 기초하여 소와 염소와 양을 잡으며 그 피를 가지고 예루살렘 성전에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이런 예배는 그 대상을 모르거나, 알지라도 하나님께 나아가는 진정한 길이 열리지 않은 한계적인 예배였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진리이신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심으로 우리가 하나님을 알게 되고 그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을 감히 만날 수 없던 죄인들이 예수님이 우리의 죄 용서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대신 흘리신 피를 통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담의 범죄 이후 사랑하는 자녀들이 하나님의 형상을 잃고 하나님과 영적으로 만나고 소통할 수 없는 존재들이 되었을 때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은 너무나 아프셨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누구나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예배를 드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으로 인해 죽었던 우리의 영이 살아나고 성령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게 되었습니다. (엡 2:5, 고전 3:16) 우리는 하나님과 다시 소통 할 수 있게 되었고, 참된 예배를 회복하게 되었습니다. 이 예배는 장소에 상관이 없고 언제 어디서나 함께 모여서도 예배 드리고, 혼자서 있을 때도 예배드릴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처음 만나고 저의 예배처는 화장실과 빈 교실 이었습니다. 그곳에서 홀로 말씀을 읽고 기도하며 아버지를 처음 만났을 때의 그 기쁨을 날마다 누렸습니다. 어느 곳이건 우리 마음의 무릎을 꿇고 하나님을 바라보는 곳이 바로 우리의 예배 장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시간도 이렇게 예배하는 자녀들을 찾고 계십니다. (23b)
여인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메시야, 그리스도가 오시면 이 모든 것을 알려주실 것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네게 말하는 내가 그라’ 그런데 여인 앞에 서 계신, 지금 이야기하고 있는 분이 바로 그 메시야이셨습니다. 여인은 타는 목마름으로 많은 시간 고통해 왔습니다. 그런데 참된 진리에 대하여 말씀해 주시는 분, 하나님의 생수로 여인의 목마름을 완전히 해결해 주실 분, 죄로 방황하는 이 여인 한 사람을 사랑하셔서 하늘 보좌를 버리고 이 땅에 사람으로 오신 분, 오늘 이 시간 참 생수를 주시고자 사마리아까지 여인을 찾아오신 예수님, 바로 메시야가 앞에 서계셨습니다. ‘네게 말하는 내가 그라’ 여인은 마음에 이것이 깨달아지고 믿어졌습니다. 자신도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을 참으로 예배하고 만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그토록 찾던 참된 예배, 하나님을 만나는 길이 열렸습니다.
여인은 지금 그곳에서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는 참 예배를 경험한 것입니다. 자신과 같은 사마리아 사람, 그 중에서도 손가락질 받는 사람도 정죄치 않으시고 자신을 만나 주시는 하나님 아버지를 경험하였습니다. 그럴 때 이 여인에게 무슨 변화가 일어났습니까?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로 들어가서 사람들에게 외쳤습니다. ‘내가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서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 하나님을 만난 감격, 메시야 예수님을 만난 감격이 넘쳤습니다. 그 마음에 영생수를 맛보는 기쁨을 경험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갖가지 목마름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사막에서 물없이 걸어가는 것처럼 영적 목마름으로 기진해 있습니다. 세상의 우물을 아무리 마셔보지만 어느것 하나 내 마음을 완전히 뻥 뚫어주는 청정수 같은 물을 찾을 수 없습니다. 그토록 존경을 받던 공자도 오늘 진리를 깨달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고 했습니다. 참된 진리에 대한 목마름에 탔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 나오면 참 진리를 알게 되고 하나님 아버지를 다시 만날 수 있습니다. 예배를 통해 하나님이 주시는 참 생수를 맛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실제적으로 이 생수를 맛볼 수 있을가요? 생수를 달라고 하는 여인에게 예수님께서는 ‘네 남편을 불러오라’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남편이 없나이다’ 시치미 떼는 여인에게 정죄하고 화를 내시는 것이 아니라, ‘남편 다섯이 있었고 지금 있는 사람도 남편이 아니니 네 말이 옳도다’ 하시며 온유하게 여인의 마음을 터치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말하기 전에 나의 모든 죄 문제를 알고 계십니다. 하나님 없는 목마름으로 세상에서 그토록 마셔본 우물물들을 알고 계십니다. 그리고 이제는 정죄하려고 그러시는게 아니라 그 무거운 죄 짐들을 예수님 앞에 다 고백하고 내려놓으라고 부드럽게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미 우리가 지은 모든 죄들을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물과 피를 다 쏟아 주셨습니다. 이 은혜로 죄들이 고백되어질 때, 우리의 죄 짐은 다 벗겨지고, 예수님의 한량없는 용서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어집니다. 우리 안에서부터 막혔던 생수가 터져나오게 됩니다. 우리를 이 은혜의 샘, 오아시스로 인도하시는 예수님과 성령님의 은혜가 이 시간, 수양회 가운데 풍성히 임하시기를 기도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고 은혜로 성령 하나님을 이미 안에 모신 성도들이 신앙생활을 하면서 다시 자기 노력으로 생수를 마시려고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내가 더 기도하고, 더 연구하고, 더 알고, 더 노력해야 이 생수를 얻어먹고 살 수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이것은 마치 암반수가 올라오는 샘을 옆에 놔두고 삽으로 다시 땅을 파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우물은 사람이 열심히 파서 땅속에 흐르는 물줄기를 찾아 물이 조금 고이게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이것은 사람의 노력으로 만들어내는 율법의 물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샘은 무한한 청정수가 사람의 노력 없이 자연적으로 솟아 오르는 곳입니다. 이것은 십자가를 통해 흘러나오는 은혜의 생수 입니다. 사마리아 여인이 한 것이 뭐가 있습니까? 단지 예수님과 대화하고 모든 것을 아시는 예수님 앞에 죄와 상처를 인정하고 예수님이 메시야 인 것을 믿은 것 뿐입니다. 그럴 때 온전히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로 여인의 심령에 생수가 임했습니다.
우리 앞에 항상 놓여져 있는 샘은 십자가 은혜의 샘입니다. 우리 안에는 무한한 암반수와 같은 생수의 근원이신 성령하나님께서 이미 거하고 계십니다. 거기에서 흘러나오는 생수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내가 뭔가를 더 해서 받으려 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주신 것을 깨닫고 누리는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 신앙생활은 참으로 수영과 비슷합니다. 수영을 처음 하는 사람들은 물에 뜨는 것조차 어렵습니다. 온전히 자기 힘으로 물 위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집념으로 힘겹게 손 발을 젖지만 가라 앉을 뿐입니다. 조금 더 실력이 늘게 되면 이제 앞으로 떠서 갈수는 있게 됩니다. 그런데 아직 자세가 불안정해서 힘이 많이 들고 몇 m 못가서 헐떡거리며 멈추게 됩니다. 그런데 ‘호흡이 트였다’는 경지에 이르게 되면 이제 물에서 수영하는 것이 땅에서 걸어 다니는 것과 같아집니다. 이런 분들은 배가 고플 때까지 수영을 할 수 있습니다. 내가 힘을 빼고 몸을 물에 맞기는 기술을 터득하면 물이 나를 받쳐주기 때문에 부드러운 움직임으로 물의 능력을 마음껏 사용하며 멋지게 물살을 가르며 앞으로 나갑니다. 이미 흘려 주신 예수님의 죄사함을 위한 피, 이미 내 안에 생수로 거하시는 성령하나님을 알아갈수록 내 죄를 고백하는 것이 쉬워지고 자연스런 죄사함과 성령의 생수가 올라오는 것을 맘껏 누리는 삶을 살수 있게 됩니다. 이 시간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게 하시는 성령님의 역사하심이 우리 가운데 충만히 임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우리가 점차 영적인 자유형 뿐 아니라 배형, 평형, 접형까지 은혜의 성령의 바다에서 누리는 삶으로 나아가게 도우시기를 기도합니다.
(소감)
예수님께서는 태초부터 작정하시고 사마리아에 살고 있는 상종하지 못할 우리를 찾아오셨습니다.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시고, 이 시간도 우리 앞에 피 흘리신 손으로 성령의 생수라는 하나님의 선물을 들고 계십니다. 누구든지 죄를 인정하고, 고백하고 이 예수님께 나아오기만 하면 목마름을 완전히 채워줄 성령의 오아시스로 우리를 인도해 주십니다. 영과 진리의 예배 안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기쁨, 세상 우물의 맛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이 사랑의 생수를 마시는 행복과 만족이 우리 안에서 누려지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