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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손의 분풀이
삿 15:1-8
1 얼마 후 밀 거둘 때에 삼손이 염소 새끼를 가지고 그의 아내에게로 찾아 가서 이르되 내가 방에 들어가 내 아내를 보고자 하노라 하니 장인이 들어오지 못하게 하고
2 이르되 네가 그를 심히 미워하는 줄 알고 그를 네 친구에게 주었노라 그의 동생이 그보다 더 아름답지 아니하냐 청하노니 너는 그를 대신하여 동생을 아내로 맞이하라 하니
3 삼손이 그들에게 이르되 이번은 내가 블레셋 사람들을 해할지라도 그들에게 대하여 내게 허물이 없을 것이니라 하고
4 삼손이 가서 여우 삼백 마리를 붙들어서 그 꼬리와 꼬리를 매고 홰를 가지고 그 두 꼬리 사이에 한 홰를 달고
5 홰에 불을 붙이고 그것을 블레셋 사람들의 곡식 밭으로 몰아 들여서 곡식 단과 아직 베지 아니한 곡식과 포도원과 감람나무들을 사른지라
6 블레셋 사람들이 이르되 누가 이 일을 행하였느냐 하니 사람들이 대답하되 딤나 사람의 사위 삼손이니 장인이 삼손의 아내를 빼앗아 그의 친구에게 준 까닭이라 하였더라 블레셋 사람들이 올라가서 그 여인과 그의 아버지를 불사르니라
7 삼손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이같이 행하였은즉 내가 너희에게 원수를 갚고야 말리라 하고
8 블레셋 사람들의 정강이와 넓적다리를 크게 쳐서 죽이고 내려가서 에담 바위 틈에 머물렀더라
삿 15:1-8 / [블레셋과의 다툼] 그 일이 있은 지 며칠이 지나 밀을 거둘 무렵이었다. 삼손은 자기 아내가 보고 싶어 염소 새끼 한 마리를 가지고 처갓집으로 내려가 자기 아내의 방으로 들어가겠다고 하였다. 그러자 장인이 못 들어가게 하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2) `자네가 내 딸을 보기 싫어하는 것 같아 내가 다른 집으로 시집 보냈네. 전에 잔치에 참석하였던 들러리에게 보냈네. 내 딸아이 중에 그 아이보다 더 예쁜 아우가 있으니 그 딸아이를 아내로 데려가게' 3) 삼손이 거기에 있던 사람들에게 `내가 이번만은 블레셋 녀석들을 그냥 두지 않겠다. 내가 무슨 짓을 저질러도 너희 블레셋 녀석들은 할 말이 없을거야!' 하고 말하고 4) 여우 300마리를 잡아 꼬리와 꼬리를 서로 붙잡아 매고는 준비해 두었던 홰를 꼬리 사이에 매단 다음 5) 거기에 불을 붙여 블레셋 사람들이 농사짓는 밭에 그 여우들을 풀어 놓았다. 결국 아직 베지도 않은 곡식뿐만 아니라 빼어 놓은 곡식단과 포도덩굴과 올리브나무까지 몽땅 태워 버렸다. 6) 블레셋 사람들이 `아니, 어느 놈이 이런 짓을 하였어?' 하고 아우성을 치자 어떤 사람이 `이것은 딤나 사람의 사위 삼손이 한 짓이다. 자기 아내를 잔치 때 들러리 섰던 사람에게 시집 보냈다고 하여 화가 나서 한 짓이다.'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블레셋 사람들이 딤나로 몰려가 삼손의 아내와 장인을 불에 태워 죽였다. 7)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른 삼손은 `내가 이 원수를 꼭 갚고야 말겠다.' 하고 그 길로 8) 블레셋 사람들에게 쳐들어가 닥치는 대로 쳐죽이고는 에담에 있는 바위 동굴로 들어가 머물러 있었다.
블레셋 여인과 결혼했던 삼손은 장인으로부터 자기 아내가 블레셋 사람의 아내가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화가 난 삼손은 여우 삼백 마리를 잡아 둘씩 꼬리를 묶고 거기에 홰를 달아 곡식밭으로 몰아들임으로 블레셋의 곡식단과 베지 않은 곡식들과 감람원을 불살랐습니다.
아내를 빼앗긴 삼손(1-2) 밀 거둘 때는 히브리 월력으로 9월경, 태양력으로 5-6월경입니다. 이때에 삼손은 자기를 속인 아내와 화해하려고 염소 새끼를 가지고 처갓집을 방문했습니다. 삼손의 장인은 삼손이 자기 딸을 미워하는 줄 알고 그녀를 다른 사람에게 주었다고 하면서 그 대신에 다른 딸을 취하라고 했습니다. 결혼을 하찮게 여긴 것입니다. 그의 말은 겉으로 볼 때 삼손을 배려하는 말인 것 같지만 변명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실제적으로 삼손을 업신여기는 말이었습니다.
삼손이 블레셋의 곡식을 태우다(3-5) 삼손은 장인의 제안을 거절하고 블레셋 사람들에게 복수할 결심을 굳혔습니다. 산 채로 여우 한 마리를 잡기도 쉽지 않은데 복수심에 불타는 삼손은 그 열정으로 여우 삼백 마리를 산 채로 잡았습니다. 무슨 일이든지 열정은 그 일을 해낼 수 있는 에너지가 됩니다. 삼손은 산 여우 삼백 마리를 두 마리씩 꼬리를 묶고, 그 묶은 곳에 홰를 달아 불을 붙여 곡식밭과 과수원으로 내몰았습니다. 온 밭과 과수원을 불살라버렸습니다. 그때는 밀을 거둘 때이기에 불이 나면 쉽게 타버립니다. 어긋난 관계는 서로 간에 앙심을 가지게 하고 피차간에 피해를 양산할 뿐입니다.
블레셋 사람이 삼손의 아내와 장인을 불사르다(6-8) 블레셋 사람들은 대형 화재의 원인이 삼손의 아내였던 딤나 여인과 그 아버지가 삼손을 분노하게 만들었다는 것임을 알고서 그녀와 그녀의 아버지를 불에 태워 죽였습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블레셋 사람들의 행동은 삼손의 마음을 더욱 분노하게 만들었습니다. 삼손은 그들의 정강이와 넓적다리를 쳐서 죽였습니다. “정강이와 넓적다리를 쳤다”는 말은 상대방을 철저하게 파멸시켰다는 히브리인들의 관용적 표현입니다. 블레셋 사람들의 이와 같은 처사는 오히려 삼손의 증오와 복수심을 유발하고 말았습니다.
적 용 : 삼손의 장인은 이미 지참금을 받고서 삼손과 결혼시켰던 자기 딸을 다른 남자에게 주는 비윤리적인 행동을 했습니다. 혹시 당신의 삶에서 버려야 할 것들은 없습니까?
한비자는 “차분하지 못하고 일을 쉽게 일으키고 쉽게 격분해 앞뒤 생각을 분간하지 못하면 망한다.”(심연분이부자전후자 가망야)라고 했습니다. 삼손은 자신의 실수와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자신의 분노 때문에 애꿎은 사람들이 죽었음에도 남의 탓만을 하며 복수를 합니다. 많은 문제들 중 대부분은 스스로에게 원인이 있음에도 인정하지 않고 남의 티끌을 탓하며 자신의 들보는 생각하지 못하고 억울한 일을 당했다며 분노를 표출하게 됩니다.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돌리실 것이나 하나님의 인도하심 가운데 주어진 선택이라는 자유는 책임을 지어야 함을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 설 교 >
사막의 여우작전
사사기 15:1-20
1998년 12월17일, 빌 클린턴 전(前)미국 대통령과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는 한 사건을 벌였습니다. 그것은 영국과 미국이 연합하여 유엔의 무기사찰을 거부하는 이라크에 미사일로 공격한 사건이었습니다. 그 공격은 1991년 1월17일, 미국주도로 벌인 이라크공격에 이은 두 번째 공격이었습니다. 첫 번째 이라크를 공격했을 때 그 작전의 이름을 <사막의 폭풍작전>이라고 불렀던데 반해, 두 번째 이라크를 공격할 때는 <사막의 여우작전>이라고 불렀습니다. 그 <사막의 여우작전>의 공격의 1차 목표는 이라크에서 보유하고 있는 핵과 생화학 무기 등의 대량파괴무기를 완전 제거하는데 있었습니다.2차 목표는 후세인 대통령을 권좌에서 몰아내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다음 이라크에 새 정부를 세우려고 했습니다. 영국과 미국은 그 <사막의 여우작전>을 통해 7년 전의 1차 걸프전 때보다 두 배 이상 많은, 500여발의 크루즈미사일을 단 4일 동안 발사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대만큼 성과를 거두지 못했습니다. 이라크 내 89개 목표물중 완전 파괴되거나 심각한 타격을 받은 곳은 방공시설과 정보본부 등 18개에 불과하고, 오히려 4일 동안의 진행되었던 공습의 피해가 대부분 민간인들에게서 발생하여 이라크와 후세인 대통령의 입지만 더 강화시켜 주는 결과가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부족하나마 그 동안 이라크 내 대량 살상무기의 유일한 정보 제공처였던 유엔사찰단까지 들어갈 수 없게 되어, 더 이상 이라크를 감시, 감독할 수단을 잃게 되었습니다. 결국 많은 군사 전문가들은 1998년의 <사막의 여우작전>은 7년 전인 1차 걸프전의 <사막의 폭풍작전>에 이어 두 번째로 실패한 작전이었다고 합니다.
저는 5년 전, 미국과 영국이 이라크를 공격하며 붙였던 그 <사막의 여우작전>이라는 작전 이름을 보면서 ‘누가 그 이름을 지었을까’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누가 그 작전 이름을 지었는지는 모르지만, 그 사람은 성경을 많이 읽고, 성경을 많이 알고 있는 사람임에 분명합니다. 왜냐하면 지금으로부터 약 3,000여 전에 이미 성경에 <사막의 여우작전>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인 사사기 15장을 보면, 그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1998년에 있었던 <사막의 여우작전>의 주인공이 빌 클린턴 전(前)미국 대통령과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라고 한다면, 3,000여 전에 있었던 <사막의 여우작전>의 주인공은 삼손입니다. 1998년에 <사막의 여우작전>을 벌였던 빌 클린턴과 토니 블레어는 실패했지만, 3,000여 전의 삼손은 성공을 했습니다. 저는 오늘 3,000여 전에 삼손이 벌였던 <사막의 여우작전>을 살펴보면서 함께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삼손은 구별된 삶을 살기로 결단한 나실인이었지만, 이방출신 딤나 여인과 결혼을 했습니다. 그러나 피로연에서부터 소란이 일어났습니다. 삼손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장점인 힘을 사용하지 않고, 하나님이 주시지도 않은 머리로 블레셋과 수수께끼로 대결했습니다. 수수께끼를 아무리해도 풀 수 없게 된 블레셋 사람들은 삼손과 결혼한 여자를 협박했습니다. 위협을 느낀 여자는 눈물로 남편인 삼손에게 호소하여 결국에는 그 답을 알아내었습니다. 자기 입으로 답을 가르쳐 줌으로써, 블레셋에게 보기 좋게 패배한 것입니다. 수수께끼 내기에서 패배한 삼손은 블레셋 사람들에게 줄 옷을 마련하기 위해 아스글론으로 가서 30여명을 쳐죽이고 강도짓을 해서 내기에서 이긴 블레셋 사람들에게 주고난 후, 있는 대로 화를 내며 자기 고향으로 돌아와 버렸습니다. 그러나 블레셋 사람들도 중대한 실수를 했습니다. 사위인 삼손이 분노하며 자기 고향으로 가는 것을 본 장인이 결혼식에 참석한 들러리 중 한 사람에게 딸을 주어버린 것입니다. 14장 20절을 보겠습니다. “삼손의 아내는 삼손의 친구 되었던 그 동무에게 준 바 되었더라.” 여기에서 알 수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무엇을 느낄 수 있습니까?
블레셋이 저지른 무리수
블레셋 사람들이 무리수를 두었다는 것입니다. 삼손의 장인은 원래부터 삼손과 자기 딸의 결혼에 대해서 별로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삼손을 실컷 이용해 먹고 나중에는 발로 차 버릴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결혼식을 이미 마치고 피로연을 하던 도중, 삼손이 화를 내고 집으로 돌아갔다고 결혼이 무효가 될 수 있습니까? 이미 결혼식을 올렸기 때문에 아무리 삼손이 화를 내고 집으로 돌아갔다고 해도 그 결혼은 아직도 유효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장인은 삼손과 이스라엘 사람들을 우습게 본 나머지, 삼손이 다시는 블레셋으로 돌아오지 않을 것으로 생각하고 자기 딸을 다른 남자에게 덜컥 주어버린 것입니다.
그러나 집으로 갔던 삼손은 분노를 식히고 아내에게 줄 선물을 가지고 다시 돌아왔습니다. 1절을 보겠습니다. “얼마 후 밀 거둘 때에 삼손이 염소 새끼를 가지고 그 아내에게로 찾아가서 가로되 내가 침실에 들어가 아내를 보고자 하노라 장인이 들어오지 못하게 하고” 염소새끼는 그 당시 상황에서 굉장한 선물이었습니다. 요즘으로 말하면 10 카렛트짜리 다이아몬드 반지나 벤쯔 자동차 열쇠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삼손은 나름대로 신경을 많이 써서 아내와 장인을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왠일입니까? 장인은 딸을 만나게 해 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재혼시켜 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색다른 제안을 합니다. 2절을 보겠습니다. “가로되 네가 그를 심히 미워하는 줄로 내가 생각한 고로 그를 네 동무에게 주었노라 그 동생이 그보다 더욱 아름답지 아니하냐 청하노니 너는 그의 대신에 이를 취하라.” 장인은 재혼시킨 아내 대신에, 언니보다 예쁜 동생을 삼손에게 주겠다는 것입니다. 장인의 이 말은 어떻게 보면 매우 달콤한 제안입니다. 특별히 여자에게 약한 삼손에게 있어서는 정신을 완전히 혼미하게 만들 수 있는 말입니다.
우리가 살다보면 우리에게도 이러한 경우가 있을 수 있습니다. 달콤한 유혹이나 제안들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어디 어디에 투자하면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라든지, ‘누구누구와 손잡으면 한몫 잡을 수 있다’라든지, ‘어디 어디로 가면 출세할 수 있다’든지 하는 말을 들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것들을 우리는 잘 분별해야 합니다. 사실 우리에게 많은 것들이 필요하지만, 그 중에 ‘분별력’은 빼놓을 수 없이 중요합니다.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는 분별력, 좋고 나쁨을 판단할 수 있는 분별력, 가치 있는 것과 무가치한 것을 분별할 수 있는 분별력은 매우 우리의 삶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줄로 믿습니다. 우리에게 분별력에 문제가 생긴다면 절대로 승리할 수 없고, 또한 성공할 수 없습니다. 분별력에 문제가 생기면 아무리 열심히, 그리고 성실하게 살아도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분별력이 없는 사람은 게으르고 나태하게 살 때만 망하는 것이 아니라, 열심히 살아도 망할 수 있습니다.
성공적인 삶을 살려면 바르게 분별할 수 있어야 하는데, 분별력은 크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정견(正見)과 선견(先見)입니다. 아무리 바르게 보는 정견(正見)이 있어도 앞을 내다보는 선견(先見)이 없으면 날마다 뒷북만 치며 막차를 타다가, 주어진 기회를 놓치고 맙니다. 반대로 앞을 내다보는 선견(先見)은 있는데, 바른 것을 볼 수 있는 정견(正見)이 부족하면 허구헛날 이웃에게 사기를 당하기도 하고, 동창으로부터 어려움을 당하기도 하고, 친구에게 이용만 당하며 살아갑니다. 바둑이나 장기에서 멀리 수를 내다보고, 상대방의 꼼수를 정확히 알아야 이길 수 있는 것처럼, 우리가 바르게 보고 멀리 앞을 내다 볼 수 있어야 승리의 삶을 살 수 있는 줄로 믿습니다.
장인의 달콤한 제안을 받은 삼손은 이번에는 실수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올바른 분별력을 가지고 일언지하에 장인의 제안을 거절했습니다. 한번은 실수했지만, 두 번은 실수하지 않았습니다. 블레셋의 계략을 눈치 채고 더 이상 넘어가지 않았습니다. 삼손은 정상적인 결혼관계를 깨뜨린 블레셋에게 보복하기로 마음을 먹고 한 가지 작전을 세웠습니다.
삼손이 세운 사막의 여우작전
그것은 <사막의 여우작전>이었습니다. 부모님의 강력한 반대 속에서 정말 어렵사리 결혼을 했는데, 한마디 말도 없이 사랑하는 아내를 다른 남자에게 준 장인과 블레셋사람들에게 따끔한 맛을 보여주기 위한 작전명은 다름 아닌 사막의 여우작전이었습니다. 지금 블레셋, 영어로 말하면 팔레스타인 땅은 중동의 사막지역입니다. 이 사막지역에서 벌어지는 <사막의 여우작전>이 어떻게 진행되는 지 한번 보시기 바랍니다. 4절과 5절을 보겠습니다. “삼손이 가서 여우 삼백을 붙들어서 그 꼬리와 꼬리를 매고 홰를 취하고 그 두 꼬리 사이에 한 홰를 달고 홰에 불을 켜고 그것을 블레셋 사람의 곡식밭으로 몰아 들여서 곡식단과 아직 베지 아니한 곡식과 감람원을 사른지라.” 삼손은 여우를 동원하여 자기를 속이고 자기 아내를 딴 남자에게 시집보낸 블레셋 사람들에게 보복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어떠한 방법으로 잡았는지 모르지만, 삼손은 여우 300마리를 붙잡았습니다. 그리고 두 마리씩 꼬리를 잡아매고 그 꼬리에 횃불을 붙였습니다. 자기 꼬리에 불이 붙은 여우들이 어떻게 할까요? 뜨거우니까 사방팔방으로 뛰어 다니지 않겠습니까? 블레셋 사람들이 살고 있는 동네에 큰 소동이 일어났습니다. 블레셋 동네가 개판이 된 것이 아니라, 여우판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꼬리에 불이 붙은 여우들이 놀라서 온 들판을 헤집고 다녔습니다. 결국에는 오랫동안 힘들게 농사지어 이제 막 밀 거둘 때가 되어 농부들의 추수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는 곡식과 감람원을 다 태워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블레셋 사람들은 어떻게 손 한번 쓰지 못했습니다. 그저 앉아서 온 들판이 불바다가 되는 것을 보고만 있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이스라엘 역사상 블레셋 사람들을 최초로 공격한 사막의 여우작전입니다. 이 작전에 동원된 것은 다름 아닌 여우입니다. 여우들이 특전부대가 되어 전쟁에 투입되어 적군을 무찌른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하나님은 꼭 정규군대만 동원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전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들짐승들을 사용하여 당신의 역사를 일으키시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기억하십니까? 애굽에서 400년 동안 종살이하다가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할 때, 무엇으로 바로를 공격했습니까? 이스라엘의 정규군대였습니까?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오히려 개구리나 황충이나 파리나 이 등과 같은 미물을 동원하여 바로의 콧대를 납작하게 만들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 시켰습니다. 하나님께서는 200만 여명 이상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40년 내내 만나와 메추라기를 내려주셔서 굶어죽지 않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까마귀를 동원하여 엘리야에게 먹이셨습니다. 무엇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어떠한 방법을 동원하든지 당신의 백성들을 도와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주위에 자기를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 없다고 낙심을 합니다. 사랑하는 남편도 한국에 있고, 아이들은 너무 어려 하나도 도움이 되지 않고, 그렇다고 부모님이 도움을 주는 것도 아니고, 자기를 도울 수 있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며 고민합니다. 또 자기에는 변변한 물질도 없고, 안정된 직장도 없고, 확실한 미래가 보장되지 않았다고 걱정을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걱정하지 마십시오. 고난 중에 하나님께 부르짖으면 하나남께서 도와주십니다. 주위에 있는 전혀 생각지도 않던 사람을 통해 도와주십니다. 또는 주변에 그러한 사람이 없으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도와줄 사람을 보내 주십니다. 주변에 도와줄 사람이 없으면 여우나 나귀나 사자와 같은 동물을 보내주시기도 하고, 모세에게 주셨던 지팡이 같은 것도 보내주십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이 고린도전서 10장 13절에서 말씀한 것처럼 “사람이 감당할 시험밖에는 우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우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우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신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한 것과 같은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믿음으로 인내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돕는 손길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처한 환경에 절망하지 말고 믿음을 가지고 주위를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 보내주신 많은 주님의 천사들을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주님의 천사가 아니라도 여러분들을 돕는 여우를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삼손의 <사막의 여우작전>으로 인해 엄청난 피해를 보았습니다. 피해를 본 블레셋 사람들은 화재현장에서 불을 지른 방화범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사람은 하나도 보이지 않고 수백 마리의 여우만 이리 뛰고 저리 뛰는 것이 보였을 뿐입니다. 그들은 누가 여우작전을 시도했는지 수소문했습니다. 6절을 보겠습니다. “블레셋 사람이 가로되 누가 이 일을 행하였느냐 혹이 대답하되 딤나 사람의 사위 삼손이니 장인이 삼손의 아내를 취하여 그 동무 되었던 자에게 준 연고니라. 블레셋 사람이 올라가서 그 여인과 그의 아비를 불사르니라.” 블레셋 사람들은 삼손에 대한 보복으로 삼손의 아내와 장인을 불살라서 죽여 버렸습니다. 삼손은 또 다시 블레셋 사람들에게 당한 것입니다. 여우작전으로 모든 것이 끝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또 다시 블레셋 사람들의 역습을 받은 것입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역시 대단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삼손은 가만히 있을 수 없었습니다. 또 블레셋사람들에게 두 번째 보복을 결심하고 그 결심대로 몇 명인지는 모르지만, 블레셋 사람들을 닥치는 대로 죽였습니다. 그리고 삼손은 에담 바위틈에 숨었습니다. 그러나 블레셋과의 전투는 끝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결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레히라는 곳에 대부대를 집결시켜 놓고, 삼손을 잡아서 넘기지 않으면 대대적인 보복을 가할 것처럼, 유다 사람들에 “우리가 올라오기는 삼손을 결박하여 그가 우리에게 행한 대로 그에게 행하려 함이로라(10절하).”고 위협을 가했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전에 삼손의 아내를 이용했던 것처럼, 이번에는 유다 사람들을 이용하여 삼손을 잡으려고 했습니다.
블레셋의 자중지란 작전
이른바 자중지란(自中之亂) 작전입니다. 그러니까 블레셋 사람들은 유다 사람들끼리 스스로 분란을 하게 해서 이기는 기가 막힌 전법을 세운 것입니다. 11절 상반절을 제가 읽겠습니다. “유다 사람 삼천 명이 에담 바위틈에 내려가서 삼손에게 이르되 너는 블레셋 사람이 우리를 관할하는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네가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같이 행하였느냐....” 이 말을 쉽게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우리를 관할하는 줄 알지 못하느냐? 지금 어느 때인데, 그렇게 설치고 다니느냐? 조용히 있을 것이지 왜 그렇게 말썽을 피워서 우리를 어려움에 빠지게 하였느냐?”는 것입니다. 유다 사람들은 블레셋과 제대로 싸워볼 생각도 하지 않은 채, 너무나 쉽게 그들의 요구에 굴복해버린 것입니다. 블레셋의 <자중지란 작전>이 보기 좋게 들어맞은 것입니다.
사실 이 <자중지란 작전>은 아군의 피해는 최대한으로 줄이면서 적을 손쉽게 누를 수 있는 유용한 병법입니다. 그래서 지나간 역사를 살펴보면 아군들끼리 자중지란에 빠진 사이에 적들의 공격을 받아 어려움을 겪은 이야기가 많이 등장합니다. 지금으로부터 500여 년 전 조선에는 노론과 소론, 등의 수많은 당파들이 서로 당파싸움을 하다가 결국에는 일본의 침략을 받아 임진왜란을 겪었습니다. 또 근세에 일어난 일이지만, 40년대 말에는 정치인들끼리 서로 싸우다가 민족상잔의 비극인 6·25라는 한국전쟁을 겪었습니다. 또 지난 80년대 말에는 야당의 대표적인 두 지도자인 김영삼씨와 김대중씨가 서로 자기가 대통령이 되겠다고 싸우다가, 결국에는 여당 후보인 노태우 여당후보가 어부지리로 대통령에 당선되기도 했습니다. 또 지난 90년대 말에는 야당과 여당이 서로 잘났다고 허구헛날 싸우다가 결국에는 역사이래로 가장 치욕적인 사건이라 할 수 있는 국제통화기금인 IMF의 제재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수년 동안 큰 어려움을 겪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자중지란 작전은 적군이 손쉽게 승리를 거둘 수 있는 병법입니다.
미국의 서부 캘리포니아 사막에는 방울뱀이 많이 있다고 합니다. 서부 개척 시대에 개척자들에게 가장 큰 적은 방울뱀이었습니다. 방울뱀은 꼬리를 떨면서 방울 소리를 냅니다. 방울뱀은 이름은 예쁘지만 상대를 공격하는 치명적인 송곳니가 있어서, 방울뱀에게 한번 물리면 치명적 독소로 인하여 목숨을 잃기도 합니다. 그러나 특이한 점은 방울뱀이 다른 방울뱀과 싸울 때는 독이 나오는 송곳니를 절대 사용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방울뱀 끼리 물꼬 뜯고 싸움을 해도 방울뱀 독으로 인해서는 결코 죽지는 않는다고 합니다. 또 정글의 왕이라고 하는 사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영토 내의 주도권쟁탈을 위해서 다른 사자와 싸우기는 하지만, 결코 상대방을 죽이지는 않는다고 합니다. 이처럼 동물의 세계에는 보이지 않는 질서가 있습니다. 동물의 세계에는 ‘무차별 학살’이라든지, ‘인종 청소’라든지, ‘자살 폭탄 테러’라든지, ‘너 죽고 나 죽자’ 라든지, ‘두고 보자’라든지 하는 이야기는 없습니다.
이러한 이야기는 다 인간세계의 이야기입니다. 가까웠던 나라끼리, 친했던 민족끼리, 오랫동안 교제했던 사람끼리 서로 싸우는 일들이 우리 인간들 세계에서 일어납니다. 왜 그런 줄 아십니까? 마귀가 역사해서 그렇습니다. 마귀는 이 <자중지란 작전>의 효과를 너무 잘 압니다. 사람을 넘어뜨리고 성도들을 쓰러뜨릴 때, 이 <자중지란 작전>을 사용합니다. 마귀는 멀리에 있는 사람을 통해 공격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가까이에 있는 친한 사람을 통해, 오랫동안 교제하였던 사람을 통해, 없어서는 못 살 것 같은 관계에 있는 사람을 통해 공격합니다. 가까운 사람을 서로 다투게 하여 성도를 넘어뜨리는 작전을 구사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러한 마귀의 작전을 기억하고 이 마귀의 작전에 넘어가지 않아야 합니다. 만약 가까운 사람이 싸움을 걸어오면 ‘아, 마귀의 자중지란 작전’, ‘마귀야, 너 사람 잘못 보았어’, ‘마귀가 슬슬 장난치는군’ 이렇게 생각하고 마귀 자중지란을 무력화시키기를 바랍니다. 마귀의 작전에 넘어가지 말고 승리하시기를 바랍니다.
유다 사람들은 블레셋의 자중지란 작전에 말려들어 같은 편인 삼손을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줄을 두 겹으로 결박한 후, 그가 숨어있던 바위틈에서 끌어내었습니다. 그리고 블레셋의 대부대가 집결해 있는 레히라는 곳으로 삼손을 끌고 갔습니다. 삼손이 줄로 꽁꽁 묶인 채 레히에 도착하자마자, 블레셋 사람들이 그를 죽이려고 달려들었습니다. 그러나 삼손은 죽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에게는 아직도 해야 할 사명이 남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14절을 보겠습니다. “삼손이 레히에 이르매 블레셋 사람이 그에게로 마주 나가며 소리 지르는 동시에 여호와의 신의 권능이 삼손에게 임하매 그 팔위의 줄이 불탄 삼과 같아서 그 결박되었던 손에서 떨어진지라.” 삼손이 블레셋에게 넘겨지는 순간, 다시 성령의 능력이 그에게 임했습니다. 그리고 성령의 능력으로 그를 묶고 있던 포승줄을 실을 끊듯이 끊어버리고 옆에 있던 나귀턱뼈를 집어 들었습니다.
나귀턱뼈로 거둔 삼손의 놀라운 승리
그리고 성령의 능력으로 그 나귀턱뼈를 가지고 놀라운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15절과 16절을 보겠습니다. “삼손이 나귀의 새 턱뼈를 보고 손을 내밀어 취하고 그것으로 일천 명을 죽이고 가로되 나귀의 턱뼈로 한 더미, 두 더미를 쌓았음이여 나귀의 턱뼈로 내가 일천 명을 죽였도다.” 삼손은 칼이나 창이나 활과 같은 정식 무기가 아닌, 나귀턱뼈 하나로 블레셋 사람들을 상대했습니다. 그리고 마치 개 패듯이 무려 1,000명이나 되는 블레셋 사람을 패 죽였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삼손이 어떻게 이러한 엄청난 승리를 거둘 수 있었을까요? 모르긴 몰라도 그에게 항상 엄청난 힘이 있었던 것 같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유다 사람들에게 무기력하게 잡혀 포승줄에 묶여 블레셋 사람들에게 넘겨졌던 것을 보면, 그에게 항상 천하장사와 같은 괴력이 있었던 것 같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가 나귀턱뼈 하나로 1,000명을 쳐 죽였습니다. 무엇 때문에, 어떻게 해서 그가 이러한 천하장사가 되었습니까? 하나님의 신, 다시 말하면 성령의 능력 때문입니다. 성령의 능력이 임하면서 엄청난 힘이 그에게 생긴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성령의 능력이 승리를 거둘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는 것입니다. 성령의 능력이 임하면 보신탕 먹고 남은 개뼈다귀든지, 사골국물 우려먹고 남은 소 뼈다귀든지, 켄터키 후라이드 치킨을 먹고 남은 닭 뼈다귀든지, 능력의 도구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성령의 능력이 임하면 아무리 별 볼일 없는 사람도 능력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성령의 능력이 임하면 아무리 배우지 못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사람이 됩니다. 믿으십니까? 사도행전 4장을 보면 어릴 때부터 갈릴리 해변에서 고기잡이만 하던 베드로가 기탄없이 말하자 어떤 일이 벌어졌습니까? 사도행전 4장 13절과 14절을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저희(관원들과 장로들과 서기관들)가 베드로와 요한이 기탄없이 말함을 보고 그 본래 학문 없는 범인으로 알았다가 이상히 여기며 또 그 전에 예수와 함께 있던 줄도 알고 또 병 나은 사람이 그들과 함께 섰는 것을 보고 힐난할 말이 없는지라.” 오순절 날 성령의 능력을 경험한 베드로가 학교문턱에는 가보지 못하고 전혀 배우지 못한 사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조금도 꿀리지 않고 자유자재로 대답하는 것을 보고 관원들과 장로들과 서기관들과 같은 석학들은 할 말을 잃었습니다. 이처럼 성령의 능력이 임하면 능력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는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의 손에 붙잡히면 놀라운 역사를 감당할 수 있는 줄로 믿습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바이얼리니스트가 그의 놀라운 연주로 청중을 감동시켰습니다. 한 곡이 끝나자마자 그는 그가 연주한 바이올린을 산산조각 나게 부숴 버렸습니다. 그리고 나서 다른 바이올린을 들고 “여러분을 놀랍게 해서 죄송합니다. 제가 부숴버린 바이올린은 길거리에서 아주 싼 값으로 구입한 이름 없는 것이었습니다. 이제 세계적인 명구 스트라디바리우스가 만든 바이올린으로 연주하겠습니다.” 라고 하면서 다시 연주를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청중들은 그 차이점을 거의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이때 바이올린을 연주하던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러분, 많은 사람들은 제가 가지고 있는 바이올린의 가치를 이야기하였습니다. 그러나 제가 여러분에게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음악은 악기에 거의 관계가 없다는 것입니다. 음악은 연주하는 사람에게 달려 있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한계를 의식하고 있습니다. 자기는 조건이 너무 좋지 않다고 합니다. 주위 환경이 너무 어렵다고 고민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우리 삶의 연주자이신 하나님의 손에 맡기기만 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생을 아름다운 선율이 가득한 인생으로 바꿔 주실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에 붙잡히기만 하면, 우리가 나귀턱뼈 같은 연약한 존재라 할지라도 우리는 모든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는 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다윗처럼 나이어린 상태에 있다 할지라도 우리에게 성령의 능력이 임하기만 하면, 우리는 우리 앞에 놓여 있는 골리앗을 누르고 승리할 수 있는 줄로 믿습니다. 전혀 배우지 못한 베드로와 같이 우리의 배움이 짧다 할지라도 우리에게 성령의 능력이 임하기만 하면, 우리는 수많은 박사들도 깜짝 놀라게 할 수 있는 줄로 믿습니다. 그러므로 성령님을 인정하고 환영하고 모셔 들이고 의지하십시오. 성령의 충만을 구하십시오. 성령이 우리에게 임하면 나귀턱뼈 하나로 1,000명이나 되는 블레셋을 물리치고 승리한 삼손처럼, 우리 또한 승리할 수 있는 줄로 믿습니다.
삼손은 1,000명의 블레셋 사람을 죽이는 승리를 거둔 후, 턱뼈를 집어 던지고 그곳 이름을 ‘라맛 레히’라고 불렀습니다. 이것은 <턱뼈의 언덕>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대승을 거두었던 삼손이 이 <턱뼈의 언덕>에서 심한 탈진상태에 빠졌습니다. 18절과 19절을 보겠습니다. “삼손이 심히 목마르므로 여호와께 부르짖어 가로되 주께서 종의 손으로 이 큰 구원을 베푸셨사오나 내가 이제 목말라 죽어서 할례 받지 못한 자의 손에 빠지겠나이다. 하나님이 레히에 한 우묵한 곳을 터치시니 물이 거기서 솟아나오는지라 삼손이 그것을 마시고 정신이 회복되어 소생하니 그러므로 그 샘 이름은 엔학고레라 이 샘이 레히에 오늘까지 있더라.” 정신없이 혼자서 1,000명과 싸워서 이기기는 했지만, 승리하고 나니 힘이 다 빠져버렸습니다. 심히 목이 말랐습니다. 만약 그가 여기에서 쓰러진다면 블레셋 사람들이 다시 몰려와서 그를 죽일지도 모르는 위기 가운데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부르짖는 기도에 응답하셔서 다시 한번 기적을 베푸셨습니다. 그 앞에 우묵한 곳을 터뜨려서 생수를 솟아나게 하신 것입니다. 삼손은 그 생수를 마시고 다시 용기와 힘을 얻었습니다. 그라고 그는 그곳 이름을 ‘부르짖은 자의 샘’이라는 의미의 ‘엔학고레’라고 이름을 지었습니다. 하나님은 삼손의 부르짖는 기도를 외면하지 않으시고 다시 성령의 능력으로 그를 재충전시켜 주었습니다. 삼손은 성령의 능력으로 새 힘을 얻었습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새 힘을 얻은 삼손
여기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하나의 또 다른 중요한 메시지가 있습니다. 삼손이 승리를 거둔 ‘라맛 레히’와 영적인 침체에 빠진 ‘엔학고레’가 함께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라맛 레히’가 무슨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했습니까? 턱뼈의 언덕입니다. 삼손이 성령의 능력으로 승리한 장소입니다. 그러나 바로 그 승리한 현장에서 삼손은 목말라 죽겠다고 하나님께 울부짖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놀라운 승리를 거둔 자리에서, 바로 침체에 빠질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승리의 기쁨을 맛본 만큼, 침체의 늪에 빠질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경우에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영적으로 침체에 빠진 사람이 가장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 봉사입니까? 아니면 성경공부입니까? 아닙니다. 영적침체에 빠진 삼손이 어떻게 했습니까?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부르짖어 기도하는 것이 우리가 영적침체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인 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부르짖어 기도할 때, 성령께서 능력으로 임하셔서 우리에게 새 힘을 공급해주실 줄로 믿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만약 여러분들이 영적침체에 빠졌다면, 아니 앞으로 영적침체에 빠질 경우, 다른 것보다도 가장 우선적으로 삼손처럼 부르짖어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제가 목이 마릅니다. 제가 엄청난 승리를 거두고도 깊은 침체에 빠져있습니다. 저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십시오. 다시 한번 능력을 공급하여 주십시오.”라고 부르짖어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다시 회복시켜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새로운 힘을 공급해 주실 것입니다. 성령의 샘이 우리 심령 깊은 곳에서 터져 나올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