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이름이 뭐야?' 주로 처음 만났을때 가장 흔히 쓰이는 첫 마디, 상대의 이름을 모를때 묻는 말이다. 이런 말이 예외적으로 쓰일수 있을까, 이름을 알고도 이름이 뭐냐고 물을수 있을까. 이름을 까먹어서 쓸수도 있을까.
오늘은 여자, 내일은 남자. 언젠가부터 하루에 한번씩 누군가와 몸이 바뀌기 시작한다. 누구랑 바껴지는건지는 나도 모르지만 매일 똑같은 남자애와 내 몸이 바뀐다. 내가 남자애의 인생을 바꿔놓기도 하고 남자애가 사고를 저지르기도 한다. 지인들에게 전날 일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을 감추기 위해 서로 일기에 오늘 있었던 일을 적곤 했다. 그런데 다시 언젠가. 바뀌지 않는다. 그렇게 서로는 별 대수가 아닌듯 천천히 서로를 기억 속에서 지우개로 지워가며 자신의 일상을 담담히 살아가곤 했다. 하지만 남자애는 그렇지 않았다. 여전히 여자애는 그의 기억속에 아주 선명히 남아있었다. 그런 나를 찾으러 남자애는 찾아다녔다. 외진 시골 구석까지. 끈이 엇갈린 걸까 우리는 만나지 못했다. 어떤 경계에 다다르자 그의 핸드폰에 남아있던 유일한 증거였던 일기장이 뒤통수 뒤로 서서히 사라진다. 기억했던 것은 그저 어떤 여자애라는것 뿐. 여자애의 이름도, 얼굴도, 기억나지 않지만 '그' 여자애. '그 여자애'라는 것은 명확히 기억한다. 비인칭 대명사지만 내게는 인칭 대명사이다. 객관적 특징은 보이지 않을 뿐 추상적인 특징은 그의 마음에 남아있었다. 물로 그린 물감처럼 금방 말라 사라져버렸지만 그 물자국은 선명했다. 그런데 깨달았다. 이미 나는 3년 전에 죽었다는 것을. 해성이 충돌해 난 이미 죽었다는 것을. 그렇다면 그 남자애는 3년 전으로 되돌아온 것이었나. 반복됬던 꿈, 그리고 자신이 인지하고 있는 기억과 시간으로부터 오는 위화감. 그것들은 내게 '그 여자애'를 위해 어디든 갈수 있게 만들었다. 그런 위화감이 남자애를 3년 전으로 데려왔다. 3년 전으로 온 그는, 정해진 운명을 바꾸어 해성의 충돌을 막는다. 비현실적이다. 사회에서 불가능한 일이지만 아무튼 나와 그는 기적적으로 다시 만나게 되었다. 세계관을 거닐어서. 만날수 없는 너. 정해진 너와 나의 운명. 마치 시간은 끈과 같다는 생각을 한다. 엉키고 다시 풀리고 되돌아가는 이 끈은 마치 나와 그의 시간을 일컫는 제 2의 단어같음을 나는 느꼈다. 어쩌면 운명은 실 한끝 차이가 아닌가. 몇 십년이 지난 후 내가 만약 지하철 역을 거닐지 않았더라면. 그와 다른 방향으로 지나갔다면 나는 너를 보지 못했을까. 내가 시골소녀가 아니라 오사카의 재벌로 태어나는것을 포기하고 너와의 만남을 가진다면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운명은 너와 내가 만들어 나가는 것인가. 행동으로는 바꿀수 없는 그저 특정 정해져 있는 미래인가. 너가 3년 전으로 옴으로써 재회를 가질 수 있었다. 운명적 만남, 물리적 거리와 시간의 장벽을 뛰어넘는 사랑은 그 무엇도 이길수 없다. 일기장이 사라져도, 거리가 멀어도, 시간이 엇나가도 그 한계들을 뛰어넘은 힘이 대단한것 같다. 다시는 만나지 못할것만 같았던 너는 기적적으로 나를 찾아왔고 이것은 바껴진 운명일까, 정해졌던 운명일까 오늘도 나는 생각한다. 앞으로 나의 미래는 정해져 있는가, 내가 바꿔나가는 것인가 생각한다.
このまま僕ぼくたちの声こえが
이대로 우리들의 목소리가
世界せかいの端はしっこまで消きえることなく
세상의 끝까지 사라지지 않고
届とどいたりしたらいいのにな
닿는다면 좋을 텐데.
そしたらねぇ 二人ふたりで
그렇다면 둘이서
どんな言葉ことばを放はなとう
어떤 이야기를 나눌까?
消きえることない約束やくそくを
사라지지 않을 약속을
二人ふたりで「せーの」で 言いおう
둘이서 "하나, 둘"하면 말하자.
<너의 이름은> - ost 중 '몽등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