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권력 서열 2위인 응우옌 쑤언 푹(Nguyen Xuan Phuc·69) 베트남 국가주석이 갑작스럽게 물러났다. 베트남에서 국가주석의 중도 사퇴는 1976년 베트남이 통일된 이후 처음이다. 푹 주석의 사임은 베트남 국회 의결로 완전히 결정됐다. 본인의 자진 사퇴 의사표명에 이은 공산당 중위위원 회의 승인 그리고 국회 의결까지 전격적으로 이뤄진 상황이다. 이로써 지난 2021년 4월5일 취임한 푸 주석은 임기(5년)의 절반도 채 안 되는 1년9개월여 만에 물러나는 불명예를 안게 됐다.
드러난 이유는 부패 척결이다. 베트남은 부정부패가 심한 나라 가운데 으뜸이다. 공산주의와 사회주의 체제안에서 부정과 부패가 자행되는 것은 지금 당연시되고 있지만 베트남의 부정부태는 유독 심하다. 돈이면 안되는 것이 없고 돈이 아니면 되는 것이 없다는 비아냥 소리가 그냥 나오는 것이 아니다. 베트남에서는 죽은 사람도 돈이면 살릴 수 있다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오고 있다. 젊은층에서는 경제가 성장하면 뭐하느냐 다 권력자들 호주머니로 들어간다는 인식이 팽배하다. 베트남에 주재하고 있는 한국인들은 이 부정부태때문에 큰 곤욕을 겪는 일이 다반사이다. 오죽하면 그 청렴하고 지금도 베트남 화폐를 크게 장식하고 있는 베트남 국부인 호치민 선생의 넋이 지하에서 대성통곡을 하고 있을 것이라는 소리가 만연하고 있다.
베트남 국가주석이 물러난 표면적인 이유는 바로 부패 척결이다. 베트남은 코로나 사태때 확산을 막으려는 봉쇄정책으로 기업들이 올스톱되는 상황이었는데 이때 외국 기업인들이 특별 입국하는 과정에서 거액의 뇌물이 오갔으며 진단키드 개발과 승인에도 고위 관료들의 비리가 다수 적발됐다고 한다. 이와 관련해 지난달 초 부총리 2명이 물러났고, 수십명의 고위 관리와 외교관들이 체포구금됐다. 베트남 권력 서열 2위인 국가주석도 이런 상황에 책임을 지는 모습을 보이기 위해 사의를 표한 것이 아니냐는 것이 그야말로 표면적인 이유이다.
하지만 국가 주석이 이런 이유로 순순히 물러났다고 순진하게 믿을 사람들은 별로 없는 듯 하다. 베트남 현지 사람들도 액면 그대로 바라보지 않는 분위기이다. 그동안 승승장구하던 2인자 국가 주석이 이런 기회에 더욱 개혁에 박차를 가하려고 하지 모든 것을 뒤집어쓰고 하차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베트남 내부의 권력투쟁이 존재한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마치 중국의 시진핑이 자신의 3연임을 강행하면서 2인자인 리커창 총리를 제거한 것과 같은 맥락에서 보고 있다는 것이다. 그동안 승승장구하면서 베트남 경제 개혁을 주도하고 있는 현 국가주석에 대해 권력 1인자인 응우옌 푸 쫑 공산당 서기장이 철퇴를 가한 것이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급부상하는 2인자에 대한 권력 1인자의 응징이라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베트남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미국과 중국사이에서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 경제는 중국이지만 안보는 미국이다라는 공식이 베트남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말이다. 지금 베트남은 경제 개혁 급진파와 점진적 개혁파로 양분된다. 경제 개혁 급진파는 주로 베트남 중부출신이 많고 친미파가 주를 이룬다. 하지만 점진적 개혁파들은 주로 북부출신으로 지리적으로도 중국에 가깝다. 자연히 친중파 색채가 짙다. 국가 주석이자 권력 2인자는 중부출신의 대표격이고 권력 1위인 서기장은 북부출신의 대표격이다. 국가주석은 사퇴 한달전 한국을 방문해 한국 대통령과 러브샷을 할 정도로 한국의 친미외교에 지지를 표명했지만 공산당 서기장은 지난해 10월 중국 주석 시진핑이 3연임을 하자마자 베이징을 방문해 양국의 동반자 관계를 강화하기로 합의한 바있다. 이런 양대 세력의 대립속에 친중파가 친미 성향의 우두머리를 제거하면서 확고한 친중 분위기로 접어들었다고 볼 수 있다.
베트남 서기장의 권력 욕심도 중국과 흡사하다. 베트남도 당 1인자인 총서기장이 10년까지만 임기가 되지만 벌써 2011년부터 임기 10년을 넘어 3연임에 나선 상황이다. 중국의 시진핑이 3연임에 야망을 품은 것도 베트남 총서기장의 행보와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 그래서 나오고 있다. 중국의 시진핑에 이어 베트남의 서기장 응우옌 쫑도 공산주의식 사회주의 독재 시스템을 더욱 공고히 하고 있다는 예측이 가능하다. 한때 앙숙중의 앙숙이었던 베트남과 중국은 정치적 입장으로 인해 독재시스템 강화 모드의 핵심 협력자가 되고 있는 것이다. 베트남도 중국의 독재 철권 통치의 노하우를 더욱 심도있게 전수받고 싶어한다. 하지만 자본주의 맛속에 공산 독재 시스템이 어느정도 위력을 발휘하게 될 지는 누구도 섣불리 단언할 수는 없다. 언론을 통제하고 인터넷 시스템도 장악한뒤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뉴스로 14억 중국인과 1억 베트남인들을 단시간에는 장악할 수 있겠지만 결코 오랜기간 그런 효과를 거두기는 결코 쉽지 않을 것으로 정치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겉으로 공고한 댐이 한번 틈만 생기면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붕괴되듯 중국과 베트남의 공산 독재 시스템도 비슷한 양상을 보일 가능성도 높아지는 것이 사실이다. 절대 권력은 절대적으로 부패하고 당연히 붕괴된다는 것은 역사가 너무도 명확하게 전하고 있다.
2023년 2월 1일 화야산방에서 정찬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