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 3대첩의 하나인 진주대첩
[2023년 4월 17일(음:2월 27일)일출 5시 57분.일몰19시 08분]
월요일인 오늘(17일)은
황사 영향으로 전국 곳곳 대기질이
'나쁨' 수준을 보이겠으며.
낮 최고 기온은 전날보다
5도가량 높아 온화한
날씨가 이어지겠습니다
아침 최저기온은 영상 2도 ~ 10도,
낮 최고기온은 영상 15도~ 23도로
어제보다 높겠습니다
진주성 안내도
▣...진주와 관련된
역사적 사건은 많다.
임진왜란 3대첩의 하나인
진주대첩 임란 때의 논개의 순국,
1862년 전국적인 농민항쟁의
시발점이 된
진주농민항쟁 등
큰 사건만 해도 부지기수이다.
진주성은 삼국시대 거열성(居列城),
고려시대
촉석성 (矗石城)으로 불렀던 것으로
조선시대에 이르러
진주성으로 개칭되었다.
진주성 수축 관련 명문이 적힌 성벽돌
석축 된 성의 둘레가
약 1,760m(4,359척),
높이는 약 5~8m(15척)이며,
성 안에 우물과 샘이 각각 3개 있고,
군창(軍倉)이 있었다고 한다.
이보다 앞선 동국여지승람에 실린
하륜(河崙)(1347~1416년)의
성문기(城門記)에 보면
진주성 수축 관련 명문이 적힌 성벽돌
성이 옛터만 남아
언제 쌓은 것인지 알 수 없는데,
왜구의 침입이 빈번하여
고려 우왕 5년(1379년)에
진주목사 김중광에게
석축하게 하였다고 한다.
계사순의단
이 때 성의 둘레는 800보이고,
성의 높이는 세길을 넘으며
의정문(서쪽), 지제문(북쪽),
예화문 (남쪽)이 있고,
성 밖은 서쪽으로 청천(靑川)이
남쪽에는 긴강(남강)이 흘렀으며,
계사순의단
북쪽에는 못이 있는데
성과 못 사이에는
참호를 팠다고 했다.
이처럼 고려 말에
왜구방어의 보루로
고쳐 쌓은 이 성은
조선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촉석루
호남으로 진출하려는
왜적을 막는 관문이 되었다.
임진왜란 3대첩의 하나로
제1차 진주성싸움을 드는 것은
3,800여명의 군사로 10배에 가까운
왜적을 물리쳤을 뿐 아니라,
촉석루 현판
이 성을 지킴으로써
곡창지대인
호남을 지킬 수 있었기 때문이다.
1593년 제2차 진주성싸움에는
민.관.군 7만여명이
왜군 10만여명을 맞아
11일간의 치열한
전투 끝에 모두 순의하였고,
,
수많은 조선의 군인들과
백성들이 살해 당하거나
강물에 투신한 비극의 현장 촉석루
이 때 논개가 적장을 안고
남강에 투신하여
충절을 다한 곳이기도 하다.
성내는 촉석루,
김시민 전성각적비, 의기사,
서장대, 북장대, 창열사,
국립진주박물관, 호국사,
야외공연장 등이 있다.
김시민 장군 동상
경상남도 문화재자료인 의기사는
임진왜란 당시(1593년) 왜장을 껴안고
남강에 투신한 논개의 영정과
신위를 모신 사당이다.
장군의 손은 일본쪽을 향하고 있다.
공북문을 들어서면 바로 볼 수 있다.
공북문은 진주성의 정문이다.
논개는 진주성이 함락되자
성민과 나라의 원한을 갚기 위하여
왜장을 촉석루 아래
의암으로 유인한 후
함께
남강에 몸을 던져 순국하였다.
기실비와 촉석문
의기사는 그 의로운
충절을 기리기 위하여
영조 16년(1740년)에
경상우 병사
남덕하(1688~1744년)가
남강에 반영된 촉석루와
진주성이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다
창건한 이래 두 차례에
걸쳐 중수하였으며,
삼장사 기실비 뒷면
지금의 건물은
1956년 의기창열회가
시민의 성금을 모아 중건한 것이다...빵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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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4월 17일(음:2월 27일)일출 5시 57분.일몰19시 08분]임진왜란 3대첩의 하나인 진주대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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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4.12 1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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