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SARA/GESARA 5 - 타이타닉호의 침몰? 미국 역대 대통령 VS 국제금융자본가의 통화 발행권 전쟁
2020 / 10 / 24
순사하라
암살당한 대통령의 공통된 특징이란
최근 들어 딥 스테이트들의 존재가 부각되고 있지만 그들이 가장 최근에 나타난 것은 아닙니다. 그들은 기원전부터, 그러기는커녕 아마도 인류의 역사가 시작됨과 동시에 존재하며 은밀하게 활동해왔습니다.
미국이 건국된 18세기 후반 무렵, 그들은 국제금융자본가로 활동했습니다.
이미 말했듯이 그들의 가장 큰 수입원은 지폐 발행권을 가로채기 위한 것입니다. 그당시에 국제결제은행(BIS)은 아직 없었지만 당시 이미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서양 국가에 민간 주식회사인 중앙은행이 설립돼 있었습니다.
"DS는 이들 중앙은행의 주주들 이름에 올려 정부가 돈을 발행할 때 받는 통화 발행이익을 가로채고, 동시에 정부가 이자를 붙여 발행한 통화와 같은 액수의 부채를 지우고, 이를 세금 형태로 받아내는 폭거를 자행했습니다"
"미국에서도 이 시도가 진행 중이었는데, 여러 명의 국제 금융 자본가들이 이 시스템을 파악하고 발권권을 되찾으려 했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암살 대상이 되고, 대부분은 암살로 인해 목숨을 잃은 것입니다"
대통령 VS 국제금융자본가의 전쟁
미국 최초의 중앙은행은 1791년 필라델피아에서 출범한 제1 합중국 은행입니다. 그때까지 각 지역에 따라 제각각이었던 미국의 통화는 달러로 통일되어 제1합중국은행이 유일한 발권은행이 되었습니다.
이와 동시에 국제금융자본가의 대규모 수탈이 시작됩니다.
하지만 이후 발발한 미영전쟁의 전비 지출을 감당하지 못해 이 은행은 무너지고 말았어요. 대신 1817년에 제2합중국은행이 설립됩니다.
제7대 앤드루 잭슨 대통령은 제2합중국은행을 이용한 금융자본가들의 통화발행이익 가로채기를 금세 눈치채고, 2기 대선에서 은행은 필요 없다, 대통령은 잭슨이라는 캐치프레이즈로 승리를 거둔다.
국의 첫 대통령 암살 시도는 1835년 1월 30일 잭슨 대통령에게 있었습니다. 국회의사당 바로 옆에서 잭슨 대통령에게 총이 겨누어져 2회 방아쇠가 당겨졌습니다. 하지만 모두 불발로 끝났습니다.
암살은 미수에 그치고 이듬해인 1836년 잭슨 대통령은 제2합중국은행을 해체합니다
이후 한동안 미국은 중앙은행 없이 각각의 은행이나 철도회사가 마음대로 달러 지폐를 발행하는 시대가 된 것입니다. 발행처가 많다 보니 딥스테이트들은 이익을 회수하기가 힘들었던 것 같아요.
링컨 대통령 암살
그러다가 1861년 남북 전쟁이 터집니다. "이 전쟁에서는 은행과 환전상이 북군과 남군 모두에게 자금을 빌려주고, 무기상이 양군에 무기를 팔아 큰돈을 벌었습니다" 양군 모두 같은 무기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결말이 나지 않아 전선은 교착되고 있습니다.
이 상황을 북군 사령관인 미합중국 16대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은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나에게는 두 개의 강대한 적이 있다. 전방의 남군과 후방의 금융조직이다. 뒤쪽이 만만치 않은 적이다.
전비가 바닥난 링컨 대통령은 여기서 건곤일척의 승부수를 던집니다.
그는 1862년 법화조례를 제정하고 디맨드 노트(Demand Note)라고 불리는 정부 지폐를 발행합니다. 이때 발행된 지폐는 녹색 바탕색을 띠기 때문에 그린백이라고 부릅니다.
이 정책으로 재정을 단번에 재건한 북군은 대공세로 돌아섭니다.
게다가 1865년, 링컨 대통령은 이 정부 지폐를 합중국의 영속적인 통화 발행 시스템으로 할 의향을 발표했습니다.
딥스테이트에 입장에서는 아이고, 큰일났어요.
이대로 북군이 승리해, 합중국이 정부 지폐를 계속 발행하면, 통화 발행이익은 모두 합중국 정부에게 들어가, 딥 스테이트가 가로챌 수 없게 됩니다.
딥 스테이트들은 재빠르게 움직였어요.
한 달 후인 1865년 4월 14일 금요일, 링컨 대통령은 포드 극장에서 관람중에 총격을 받아 다음날 아침, 1865년 4월 15일 토요일에 서거했습니다.
이것이 미국 역사상 최초의 대통령 암살 성공 사례가 되었습니다.
가필드 대통령의 암살
이리하여 정부 지폐 발행은 정지되었고, 미국은 은행가 및 환전상이 득세하는 세계가 되어갔습니다.
그들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가차없이 배제되었습니다.
1881년 1월 취임한 제20대 대통령 제임스 가필드는 취임 직후
누구든 화폐의 양을 제어하는 자는 모든 산업과 상업의 절대적인 주가 된다. 그리고 맨 위에 있는 소수의 유력자들이 시스템 전체를 어떤 식으로든 아주 쉽게 통제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인플레이션과 불황의 시기가 무엇에서 비롯되는지 자연히 명백해진다.
라고 말하며 은행가와 환전상들을 공공연히 비난했습니다. 이 발언만으로 실제로는 아무런 정책도 펴지 않는 단계에서 딥 스테이트는 움직였습니다.
1881년 7월 2일에 가필드 대통령은 워싱턴 D.C.에서 총격을 받고 암살되었습니다.반년 남짓 짧은 재위기간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중앙은행 설립 시도
20세기에 접어들면서 미국에 다시 중앙은행을 설립하려는 시도가 활발해졌습니다
1910년 이후 예나 지금이나 딥스테이트의 아성이 되고 있는 민주당은 폴 워버그라는 인물이 연일 언론에 중앙은행의 필요성을 보도하게 합니다.
언론이라고 해도 당시에는 TV도 인터넷도 없기 때문에 주로 신문과 라디오입니다.
이 폴 워버그라는 인물은 쿤로프 상회의 경영자로 록펠러의 대리인이라고 할 만한 인물입니다. 쿤 로프 상회는 리먼 브라더스와 아메리칸 익스프레스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는 1893년과 1907년에 일어난 금융 공황은 금융 제도가 불안정하기 때문에 발생하였고, 금융 제도를 안정화하기 위해서는 통화 발행을 일원화하는 중앙은행이 필요하다고 주장했습니다.
여러 가지 거짓말을 늘어놓고 있습니다만, 요점은 건국 이래 합중국 내부에서 힘을 키워 온 딥 스테이트들이 본격적인 금융 지배에 나섰다는 것입니다.
통화 발행을 민간 중앙은행에서 일원화하면 통화 발행 이익을 쉽게, 빠짐없이 가로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이 캠페인이 실시되기 직전에 J·P 모건이 소유하는 조지아주의 지킬섬에서, 전미의 유명한 딥 스테이트들의 비밀 회합을 해 중앙은행 설립, 즉 통화 발행이익 횡령이라는 기본방침이 책정되어 있습니다.
이 캠페인은, 미국 전 국토에 중앙은행 설립의 시비를 둘러싼 논쟁을 일으켰습니다.
딥 스테이트 휘하의 은행과 대기업은 모두 찬성으로 돌아섰습니다.
그 중에서, 공화당 의원과 함께, 당시의 미국을 대표하는 3명의 대부호가, 중앙은행 설립 반대의 논진을 펴고 있었습니다.
그 세 사람은 광산 경영으로 부를 이룬, 벤자민 구겐하임, 메이시스 백화점의 소유주이자 정치가인, 이사도르 스트라우스, 발명가이자 자산 5조엔을 자랑하는 당시의 미국 최대 부자, 존 제이콥·아스터 4세입니다.
이들 세 사람은 딥 스테이트의 통화 발행 이득을 가로채려는 시도와 금융경제 시스템 독점의 야망을 속속들이 꿰뚫고 있었습니다.
논의는 평행선을 달리며 이대로는 중앙은행 설립은 보류되는 흐름으로 기울어져 갑니다.
딥 스테이트들은 3명을 매수하려고 하지만 그들은 이미 대부호라서 전혀 효과가 없어요.
애를 태운 딥 스테이트들은 최후의 수단에 나섭니다.
결국 이 세사람은 1912년 4월 14일, 세명이 동시에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타이타닉호 침몰의 수수께끼
다들 아시다시피 타이타닉호는 당시 세계 최대의 호화 여객선으로 처녀항해 중이던 1912년 4월 14일 밤 빙산과 충돌해 침몰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때 희생된 승객 1,513명 중에는 벤저민 구겐하임, 이사도르 스트라우스, 존 제이콥 애스터 4세 등 3명이 모두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이런 굉장한 우연이 있을 수 있을까요?
의혹은 더 이어집니다. 이후 침몰한 타이타닉호는 1985년 3,650m 심해에서 발견됩니다.
발견 장소는 공해 상이었기 때문에 다수의 잠수사가 잠수해 유품을 인양하기 시작했습니다. 공해상의 침몰선 유품은 인양한 자의 소유물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에 미국과 영국은 발 빠르게 움직였고, 선체 보호 명목으로 타이타닉호를 유네스코 바다문화유산으로 지정하고, 양국 간 조약을 맺어 타이타닉호의 인양 및 유품 반출을 사실상 금지시켰습니다.
해저의 " 타이타닉 호 "보호 , 미영의 조약이 발효 2020.01.21
https://www.cnn.co.jp/travel/35148290.html
수상하네요. 아마 타이타닉호의 선체에는 어뢰나 설치해 놓은 폭탄이 터지면서 뚫린 구멍이 남아 있는 게 아닐까요?
실제로 타이타닉 호는 격침되어 있었고, 빙산 따위는 거짓말이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실제로 빙산을 보았다는 승객은 없기 때문에 살아남은 얼마 안 되는 승무원을 매수하면 빙산에 충돌했다는 이야기를 조작하는 것은 간단합니다.
현대 기술이라면 타이타닉호를 인양하고 선체를 검증하는 것은 쉽게 할 수 있습니다. 이를 조약으로 봉해 타이타닉호 격침 사실을 은폐하려는 것으로 보입니다.
1997년 개봉한 영화 타이타닉은 러브스토리를 통해 타이타닉 사건을 미화하고 진상을 외면하기 위한 선전전이 아닐까요?
단 3명을 죽이기 위해 나머지 1,500명을 희생시키는 행위는 일반인들은 도저히 할 수 없지만 딥스테이트들에게는 상투적인 수법입니다.
JAL 123편 추락 사건과 911을 보면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다수의 일반인을 포섭하는 대규모 테러 행위가 이 당시부터 행해지고 있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네요.
FRB의 설립
타이타닉호 격침사건으로 주요 반대자들을 모두 매장해 버리는 데 성공한 딥 스테이트들은 중앙은행 설립을 향해 발빠른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우선 중앙은행 알레르기의 미국 시민 대책으로서 설립해야 할 중앙은행의 명칭을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로 변경해 비판의 화살을 돌리겠습니다.
실제로는 FRB는, 연방 준비 제도의 일부로, 전미에 있는 연방 준비 은행을 통괄하는 것이기 때문에, 전체적인 기능은, 중앙은행 그 자체입니다만…
1912년은 4년에 한번 오는 대통령 선거의 해였습니다. "이 해 대선은 FRB 설립에 반대하는 공화당이 현직 윌리엄 태프트, 찬성하는 민주당이 우드로 윌슨을 밀었습니다"
하마평에서는 태프트의 압승으로 알려졌지만 딥 스테이트의 공작에 의해 공화당의 전 대통령 시어도어 루스벨트가 추대되어 공화당을 깨고 진보당을 창당해 3파전의 대통령 선거가 됩니다.
공화당의 표가 둘로 갈라지는 바람에 결국 우드로 윌슨이 압도적 승리를 거두고 28대 대통령에 취임하면서 민주당 정권이 실현됩니다.
윌슨 자신도 물론 선거에서 딥 스테이트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 대가는, FRB설립의 실현입니다.
윌슨은 취임식 직후의 크리스마스 휴가 동안 특별 의회를 소집하고, 많은 의원들이 불참한 가운데 민주당이 제출한 오언 그래스 법을 통과시키고, 서명하고, 연방 준비 제도를 출범시킵니다.
이리하여 미국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는 1913년 12월 23일부터 가동을 시작하여 미국의 통화발행이익은 모두 취합하여 딥 스테이트에 가로채게 되었습니다.
덧붙여서, 만년에 윌슨은 스스로 속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고,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습니다.
저는 그만 제 나라를 망치고 말았습니다. 큰 산업국가는 그 나라 자신의 신용 시스템을 통해 관리되고 있습니다. 우리의 신용 시스템은 한 곳에 집결했습니다. 따라서 국가의 성장과 우리의 모든 활동은 보잘것없는 이들의 손에 있습니다. 우리는 문명개화된 세계에서 지배된 정치, 거의 완전히 관리된 최악의 통치의 나라에 빠진 것입니다.
유감스럽게도 이미 뒤늦은 후회입니다.
참고자료 :
https://cafe.daum.net/trumpandtheknight/rtEC/241
https://blog.naver.com/ds5sft/222367279769
https://blog.naver.com/ds5sft/222398110876
첫댓글 소식 고맙습니다
자세한 설명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항상 귀한 정보와 지식 올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보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케네디 또한 금은본위제를 강화하려다 그만...그리고 후임 존슨은 베트남전 참전하며 2차대전 총 폭탄량의 2배가 넘는 폭탄투하. 막대한 전비로 달러위기. 닉슨 취임 후 브레튼우즈철폐하여 금본위제 폐기. 그리고 웥어게잍 닉슨 나가리되고 포드 취임 그리고 부통령으로 넬슨 뢐펠라.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