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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과가 나타나는 유일한 길은 반복이다.
세상에 실수를 저지르지 않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실수를 적게 하는 사람은
모든 것을 체계적으로 반복하는 사람이다.
ㅡ천재적인 건축가 안토니 가우디(Antoni Gaudí, 1852~1926) 어록 중
안토니 가우디(Antoni Gaudí, 1852~1926)의
본명은 안토니 플라시트 길롐 가우디 이 코르네트(Antoni Plàcid Guillem Gaudí i Cornet)이다.
스페인 카탈루냐 출신의 19~20세기 건축가로 미술과 공예 부흥운동인 카탈루냐 문예부흥에 크게 공헌했다. 아버지쪽 가문은 프랑스계의 가우디 집안이고, 어머니쪽이 코르넷 가문이다. 안토니라는 이름은 그의 어머니의 것을 물려받은 것이다. 74세를 살았으니 당시로서는 단명한 것은 아니나, 젊어서 가족의 대부분을 잃었다고 전해진다. 19세기말 카탈루냐 지역에는 사회적, 문화적으로 대단한 변화가 있었다. 가우디는 당시 카탈루냐 건축을 주도했던 고전주의 건축을 벗어나, 건조한 기하학 만이 강조된 건축이 아닌 나무, 하늘, 구름, 바람, 식물, 곤충 등 자연의 사물들을 관찰했고, 그런 형태들의 가능성에 관하여 진지하게 고민했다. 그 결과 그의 건축물은 기하학적인 형태들 외에도 곡선이 많이 사용되었으며, 내부 장식과 색, 빛이 조화를 이룬 건물들을 건축했다.
가우디의 건축물에는 직선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자연에는 직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괴테 자연론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어떤 건축사조에도 속하지 않았던 가우디에게 스승이 있다면 그건 '자연'이었다.
사실 과학기술은 한계에 부딪칠 때마다 자연에서 그 해결책을 찾아왔다. 자연은 단순한 재료, 단순한 방식으로 가장 효과적인 결과물을 얻어낸다. 최근 과학계에선 자연에서 영감을 얻는 생체모사(Bioinspiration)와 자연을 모방하는 바이오미메틱스(Biomemetics: 생물체가 가진 유용한 기능을 모방하여 인간 생활에 적용하는 기술)에 관한 관심이 더욱 높아지고 있다. 소리를 내지 않고 하늘을 나는 외양간 올빼미, 깊은 바닷속에서 소통하는 돌고래, 어둠 속에서 청각을 이용해 길을 찾는 박쥐, 물방울을 이용해 표면 오염을 제거하는 연꽃잎 등은 수많은 공학품에 영감을 주고, 해결책을 알려주고 있다. 가우디는 이러한 생체모사, 모방의 선구자로 여겨진다.
가우디의 건물 내부에는 동물의 뼈, 야자수, 곤충, 해골을 연상할 수 있는 부분이 많다. 성가족 교회 본당 회중석 천장은 식물 줄기를 지지하는 잎사귀에서 모티브를 얻은 것이다. 타일로 장식된 화려한 외관은 집을 지은 뒤 조개껍질로 인테리어를 하는 정원사 새를 닮았다. 그는 아무리 아름다운 돔이라도 해골의 내부에 비할 수 없고, 산이 가진 완벽한 안정성을 따라갈 건물은 없다고 여겼다.
가우디 건축은 인간이 만든 어떤 기하학적인 건축보다 동물의 건축에 가까워 보인다. [생물의 건축학]의 저자 하세가와 다카시(長谷川堯)는 가우디 건축과 동물의 둥지가 연결 되는 두 가지 점을 지적한다. 하나는 동물의 둥지를 닮은 내부와 외부다. 동물의 둥지는 자연에서 재료를 끌어모아 조립하기 때문에 겉으로 보기엔 옹색하고 기이한 모양이지만, 내부는 둥지 주인의 생활과 재난 대비에 알맞은 공간이다. 가우디의 건축물 역시 겉모습이 낯설고 기이한 것과는 달리 내부는 온화하고 쾌적한 느낌을 준다.
성가족 교회를 비롯한 그의 건축물 중 비센스 주택(1878-1880), 구엘 저택(1885-1889), 구엘 공장단지 내 지하경당(1898-1914), 구엘 공원(1900-1914), 카사 바트요(1904-1906), 밀라 주택(1905-1910), 성가족성당 탄생 입면 및 지하경당(1884-1926) 등 7개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돼 있다. 그는 현재 20세기가 낳은 가장 독특하고 천재적인 건축가로 추앙 받고 있다.
“모든 것은 자연이 써 놓은 위대한 책을 공부하는 데서 태어난다.
인간이 만들어 내는 작품은 모두 이 위대한 책에 쓰여 있다.
이 책은 전 인류에게 주어져 있으나,
이것을 읽는 데는 노력이 필요하며
또 노력을 기울이기에 합당한 책이다.”
-안토니 가우디(Antoni Gaudí, 1852~1926)
✺ [끊임없이 상상하는 헤라클레스(Heracles) - 안토니 가우디 2부]
✺ KBS1 <예썰의 전당> [40회] 건축물에 자연의 숨을 불어넣다, 안토니 가우디 이 코르네트(Antoni Gaudí i Cornet) 1부
[끊임없이 싸우는 헤라클레스 안토니 가우디 1부] 가우디는 단단한 신념으로 틀을 깬 천재 건축가이다. 가우디의 건축물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무려 7개나 등재될 만큼 유일무이한 가치를 지닌다. 또한 그는 그리스 신화 속 영웅, 헤라클레스와 같은 불굴의 의지로 꿈꾸던 건축을 실현해냈다. 지금부터 헤라클레스 가우디가 편견과 싸우고 한계를 뛰어넘어 쌓아 올린 세기의 역작들을 만나본다.
✺ <예썰의 전당> 마흔 번째 주제는 단단한 신념으로 틀을 깬 천재 건축가, 가우디는 그리스 신화 속 영웅, 헤라클레스와 같은 불굴의 의지로 꿈꾸던 건축을 실현해냈다. 지금부터 ‘헤라클레스’ 가우디가 편견과 싸우고 한계를 뛰어넘어 쌓아 올린 세기의 역작들을 만나보자.
✵ 예썰 하나, 가우디의 스승이 ‘이것’?! 모두를 당황하게 만든 스승의 정체는
가우디의 건축물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무려 7개나 등재될 만큼 유일무이한 가치를 지닌다. 바르셀로나 필수 여행 코스로 꼽히는 성당 ‘사그라다 파밀리아’엔 ‘인간이 만든 최고 조형물’이라는 수식어까지 붙는데. 이러한 건축물을 탄생시킨 가우디에겐 뮤즈이자 스승이었던 ‘특별한 존재’가 있었다. 그 정체를 확인한 출연자들은 모두 당황을 금치 못했는데. 이는 가우디의 스승이 사람이 아닌 ‘이것’이었기 때문. 가우디가 영감을 얻고, 끊임없이 닮고자 했던 스승의 정체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 예썰 둘, ‘신념의 건축가’ 가우디, 대학 시절 과제 두고 교수와 싸우기까지?
가우디의 확고한 건축관은 건축학교 교수들의 눈총에도 꺾이지 않았다. 교수들의 설계를 거침없이 비판하고, 관례보단 자신의 신념을 따랐던 가우디. 대학 시절, 그가 제출한 묘지 정문 설계도는 깜짝 놀랄 만큼 독특하다. 가우디의 설계도엔 묘지 정문뿐 아니라 묘지로 가는 길과 영구차, 상복을 입고 애통해하는 사람들까지 그려져 있다. 당시 과제를 받아 본 교수는 설계도 수정을 요구했으나, 상대는 신념의 가우디. 그는 자신의 철학을 꺾지 않았으며, 교수와의 다툼 끝에 시험장을 박차고 나왔다는데. 가우디는 어째서 이토록 독특한 묘지 설계도를 고수했던 걸까?
✵ 예썰 셋, 회반죽에 나체의 인부를 앉히기까지?! ‘괴짜’ 같은 가우디의 건축법엔 어떤 철학이?
어떠한 역경에도 건축을 향한 이상을 꺾지 않았던 가우디. 그는 산을 깎지 않기 위해 자연의 곡선을 따라 길을 냈으며, 나무를 베지 않기 위해 설계를 다시 하기도 했다. 또한 인체공학적 벤치를 만든다며 나체의 인부를 회반죽 위에 앉히기까지 했는데. 건축의 한계를 넘어서는 ‘괴짜’ 같은 건축법엔 가우디의 어떤 생각이 담겨 있던 걸까?
✺ KBS1 <예썰의 전당> [40회] 건축물에 자연의 숨을 불어넣다, 안토니 가우디 이 코르네트(Antoni Gaudí i Cornet) 1부 다시보기
✵ <예썰의 전당> 마흔한 번째 이야기는 한계 없는 상상력의 소유자, 스페인을 대표하는 천재 건축가인 안토니 가우디는 바르셀로나 곳곳에 자신의 건축물을 남겼다. 가우디의 건물에 보이는 독특한 상상력과 헤라클레스(Heracles)*와 같은 굳건한 의지는 보는 이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내는데. 스페셜 게스트 김자영 건축학 교수와 함께 가우디의 다채로운 건축세계로 떠나보자!
✵ 예썰 하나. ‘카사 바트요(Casa Batlló)’에는 ‘용의 비늘’, ‘제물의 해골’이? 가우디에게 영감을 준 ‘전설’의 정체는?
바트요의 집이라는 뜻의 ‘카사 바트요’는 형형색색의 세라믹 타일로 장식된 화려한 외관이 유독 눈에 띈다. 얼마나 화려한지 타일에 반사된 빛 때문에 눈이 부실 지경. 그런데 가우디가 카사 바트요를 만들 때 영감을 받은 한 ‘전설’이 있다. 한 기사가 용에게 제물로 바쳐진 공주를 구해냈다는 ‘산 조르디(Sant Jordi) 전설’*이다. 그래서인지 카사 바트요 곳곳에는 ‘용의 비늘’, ‘용을 찌른 창’, ‘희생된 제물의 해골’ 등 전설과 관련된 상징물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가우디의 독특한 상상력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한 편의 전설 같은 작품, 카사 바트요를 자세히 뜯어본다.
✵ 예썰 둘. “그렇게 만들면 돈 못 줘!” 의뢰인vs가우디, ‘카사 밀라(Casa Milà)’를 두고 7년간 법정공방 벌인 사연은?
‘그라시아 거리에 자기 건축물이 없는 건축가는 어디 가서 명함도 못 내민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각양각색의 건물들이 즐비한 그라시아 거리. 가우디는 이곳에 카사 바트요 뿐만 아니라 카사 밀라라는 건물도 지었다. 바위산에 일렁이는 빛의 물결을 담아낸 카사 밀라의 굴곡은 마치 진짜 산을 옮겨놓은 듯하다. 그런데 건축 당시 카사 밀라는 논란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카사 밀라의 아름다움에 매료된 이들이 있는가 하면, 비행기 격납고, 고기파이, 벌집 등으로 부르며 조롱하는 시선도 있었기 때문이다. 카사 밀라를 둘러싼 논란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가우디는 건물주인 밀라 부부에 맞서 7년간의 길고 긴 소송을 치러야 했다. 카사 밀라를 두고 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던 걸까?
✵ 예썰 셋. 성당이 ‘옥수수 모양(?)’인 이유? ‘미완의 역작’ 사그라다 파밀리아(Temple Expiatori de la Sagrada Família)에 숨은 과학적 비밀은?
남과 다른 독특한 상상력의 소유자였던 가우디. 그는 건축을 향한 굳은 의지로 자신의 상상을 실현할 수 있는 건축가였다. 그런 가우디를 잘 표현하는 건축물이 바로 ‘사그라다 파밀리아(Sagrada Família)’다. 이 성당은 공사 시작 후 14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지어지고 있어 가우디가 남긴 ‘미완의 역작’이라 불린다. 가우디만의 독특한 건축요소가 모두 녹아있는 사그라다 파밀리아지만, 특히 외벽의 곡선 형태는 당시로서 파격적인 선택이었다. 기존 고딕 양식의 직선 형태를 잘 보여주는 노트르담 대성당과 비교해보면 마치 옥수수(?) 같은 사그라다 파밀리아의 모습은 더욱 눈에 띈다. 그런데 이러한 곡선 형태는 가우디가 자신의 상상을 실현하기 위해 ‘과학적 원리’를 활용한 결과물이라는데. 사그라다 파밀리아에 숨은 과학적 비밀은 무엇일까?
* 헤라클레스(Heracles): 제우스는 알크메네와 낳은 아들 헤라클레스를 사랑하여 뛰어난 힘을 주고 왕위를 약속했지만 아내 헤라의 질투로 이루지 못한다. 헤라가 늘 헤라클레스를 위험에 빠뜨리려 해서 그는 끝없이 모험을 해야만 했다. 후대 사람들은 이 모험을 12가지 사역이라 하는데 힘과 용기로 시련을 극복한 이야기들이다.
* 산 조르디(Sant Jordi)란? ‘조르디(Jordi)’는 기독교의 성인 ‘게오르기우스(Georgius; St. George)'의 까딸란(Catalan; 스페인 까딸루냐 지방의 언어) 명칭인데, 성 게오르기우스는 스페인 카탈루냐주의 수호성인으로 카탈루냐 사람들에게 ‘산 조르디(Sant Jordi)’라고 불린다.
“산 조르디(Sant Jordi) 전설은
기사와 용의 치열한 전투 후에
야수가 날카로운 창을 통해 떨어지면서
피가 흘러 4월에 피는
장미에 흘렸다.
그 후 4월23일 산 조르디날
장미를 주는 풍습이 생겼다.
-Google“
✺ KBS1 <예썰의 전당> [41회] 건축물에 자연의 숨을 불어넣다, 안토니 가우디 이 코르네트(Antoni Gaudí i Cornet) 2부 다시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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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카사 바트요(casa batlló) 1904-1906
카사 바트요(Casa Batlló)는 1904년에 리모델링 설계를 시작해서 1906년에 준공시킨 가우디의 아르누보(Art Nouveau) 스타일 마스터피스(Masterpiece)이다. 이곳 섬유업계의 거물인 바트요씨의 가족을 위한 저택이다.
카사 바트요는 1870년대 세워진 건물을 1906년 안토니 가우디가 완전히 리모델링한 공동주택 건물이다. 기이한 외관 때문에 이 지역에서는 "뼈의 집(House of bones) 이라고도 불린다. 바르셀로나의 패션번화가인 디 그라시아 거리에 있다. 가우디의 다른 건물과 마찬가지로 스페인의 아르누보 양식인 모더니스메(Modernisme) 스타일이다.
저층부의 창들은 오벌(oval) 형태에 사람의 뼈같은 창틀 트레이서리(tracery)을 사용했다. 직선은 거의 없이 휘어지는 커브의 곡선들로 채워진다. 파사드 벽체는 형형색색의 깨진 유리와 타일 조각으로 모자이크처럼 수채화같이 하얀 벽위에 부착하며 장식되었다. 둥글게 솟아오른 지붕은 용의 모습에 비유된다. 왼쪽에 솟아오른 네(4)방향 십자가의 탑은 이곳 카탈루냐 지방의 수호신인 세인트 조지(saint george)가 하늘을 날라 용의 등을 예리한 창(또는 검)으로 찌르는 모습이라고 한다.
지하1층과 지상 6층으로 구성되어있다. 6층과 용의 등어리와 흡사한 모양의 지붕은 리모델링시 증축된 것으로 보인다. 32m 높이의 타워 부분에는 천창이 있는 중정이 있다. 자연광을 끌어들이는 광정(lightwell)이다. 2층은 바트요씨네 가족이 사는 주층(piano nobile)이다. 서쪽으로 밖으로 나가면 부지 안쪽의 저충부 루프가든이 펼쳐진다. 고층부에는 포물선 아치의 지붕층을 증축하여 건물 높이도 32m 로 높아졌다.
지붕 왼쪽의 십자가타워는 이곳 바르셀로나의 수호 성인 세인트 조지(saint george)의 검이다. 이곳 전설에 의하면 흉칙한 괴물인 용이 시민들을 괴롭히며 하루에 한사람씩 잡아먹구 있었다. 이곳의 공주 차례가 되어 공주가 잡혀먹일려고 하는 순간에 백마를 탄 세인트 조지가 나타나서 검으로 용을 찌르고 공주를 구해냈다. 이 때 용의 몸에서 빨간 장미가 쏟아졌는데 한 송이를 공주에게 주었다. 이런 전설로 매년 4월23일 에는 이 건물은 장미로 뒤덮힌다. 또한 이 집을 "용의 집"이라고 하기도 한다.(from the geographical cure, 2021)
둥근 타워(검) 벽에는 3개의 이름이 새겨져있다. JHS(예수), M(마리아), JHP(조셉 ). 카톨릭 신앙이 두터운 가우디의 표현 방식이다. 당시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도 건립되고 있었다.
안토니 가우디의 엄청난 상상력이 카사 바트야의 서정적이고 예술적인 디자인에서 유감없이 발휘됐다. 동물의 형태, 포도나무 넝쿨같은 커브, 뼈와 해골의 모습 등을 조합하고, 세라믹 타일과 유리조각 등을 이용하여 창조해낸 이 걸작품은 언제나 방문객의 입을 다물지 못하게한다.
가우디의 디자인은 아르누보의 모든 것을 보여준다. 둥글고 휘어지고 비틀어지는 식물과 자연 생태계의 형태에서 영향을 받은 아르누보(art nouveau)는 1890년대부터 프랑스의 장식예술가들이 시작했다. 카탈루냐 지방에서는 이 양식을 모더니스메(modernisme)라고 했다.
카사 바트요에서 가우디는 흐르는 곡선과 곡면, 다양한 패턴과 색상 등 그의 최대 관심사를 탐구하며 마음껏 표현했다. 직선은 찾기 힘들다. 배제하려고 했다. 자연의 형상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신고전주의 양식의 점잖은 옆집들과 크게 대조를 이룬다.
동측 전면 파사드는 놀라울 정도로 벽체의 텍스처와 색상 그리고 형태가 시너지효과를 내면서 동화나 꿈같은 환상적 생각에 빠지게 한다. 가면같은 발코니의 난간들과 뼈 모양의 부재들로 이루어진 현관 중앙부는 의인화된 이미지를 만든다. 눈썹, 쇄골, 격막 등 인간의 신체에서 따온 이미지처럼 보인다.
벽체 상부로 계속 올라가면 지붕에서는 파충류의 피부를 보는 듯한 착각을 일으킬 정도로 시선을 사로잡는다. 드라마틱하게 솟아오른 등어리는 정면쪽으로는 아르마딜로(armadillo)를 연상시키는 철갑 비늘(기와장)로 덮혀있다. 녹색에서 청색, 적색으로 변하는 비늘이다. 배면쪽으로는 주황색에서 하얀색으로 변하는 유리와 세라믹타일 조각의 광이나는 표면이다. 척추는 녹색과 청색의 둥근 척추마디로 구성이 되는 데 이런 형태가 자연히 생물체일거라고 추측케한다. 반면에 지붕과 벽체가 만나는 굽이치는 처마선에서는 파충류의 뼈와 마디가 붙은 것 처럼 장식했다.
가우디의 작품에서 늘 그렇듯이 거의 무의식적으로 나타나는 종교적 이미지가 있다. 파사드 여러 곳의 조그만 디테일에서 뿐만 아니라 파사드 상단에 종교적 이미지와 텍스트가 새겨져있다. 지붕 왼쪽의 타워 꼭대기에는 4방향의 십자가가 있다. 이 것은 종교가 유머와 팬타시 그리고 가끔 엉뚱함을 포용할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동시에 신에 받치는 메시지도 포함한다. 언제나 신의 이름으로 건물을 짓는 것이지, 가우디 자신의 개인적 명예나 부를 위해서가 아니다.
가우디가 당시로서는 바르셀로나에서 매우 드문 첨단 난방시스템을 사용하면서 배기구와 연통이 필요했다. 가우디는 이런 새 설비시설물을 그의 재능과 상상력을 피는데 이용했다. 동화같은 기막힌 형태와 구조로 변모시켰다. 굴뚝들은 지붕에서 비스듬하게 빗겨서 시작하여 곧 수직으로 곧장 하늘을 향한다.
예술가로, 토털 다자이너로서, 혼이 들어간 디테일과 마감재의 선택은 외관에서뿐만 아니라 내부에서도 계속된다. 가우디에게는 놀랍지도 않고 당연한 일이다. 인티리어가 어쩌면 더 디테일하고 열정이 들어있을지 모르겠다. 굽이굽이 물처럼 흐르는 벽체와 코너는 물론 섬세한 색상의 선택과 스케일의 변화는 정말 입을 다물지 못하게한다.
실내 인티리어도 거리에서 보는 파사드만큼 매력적이고 생동감이 있다. 굽이치는 지붕의 척추선은 계단실에서도 계속된다. 부드럽게 굽이치는 벽체는 비늘같은 표면으로 채워졌다. 직선이 아니고, 곡선으로 휘어지고 뺑뺑 감기는 장식적 형태는 문짝과 문틀, 내부 창, 몰딩, 가림막 등에서 놀랄 정도로 표현된다. 시선을 멈출 수 없다. 모두 자연의 형태에서 영감을 얻은 가우디의 아르누보 스타일이다.
가우디가 항상 주장하는 것 처럼, "새 창작품을 만들기위해 자연의 법칙을 구하려는 건축가(예술가)는 창조주이신 자연과 협업해야한다."
트렌카디스(trencadís)는 여러 색상의 유리와 타일 조각을 사용한 모자이크 표면처리방식으로 가우디의 중요한 디자인 툴이다. 카사바트요의 정면 파사드와 배면 등 대부분을 화려한 트렌카디스로 처리했다.
6. 카사 밀라(Casa Mila) 주택 1905-1910
까사 밀라(Casa Mila)는 스페인어로 '밀라네 집'이라는 뜻으로, 밀라 가문이 까사 바트요를 보고 천재 건축가로 불리던 가우디에게 최고급 빌라를 만들어달라고 해서 설계된 건물이다. '건축은 살아 있는 유기체'라고 생각했던 가우디는 까사 밀라를 '산'이라는 주제로 설계했다. 실제 카탈루냐의 명물인 거대한 바위산, 몬세라트에서 영감을 받아 이를 모티브로 설계한 것이다. 그러나 당시에는 ‘채석장’ 같은 외관 때문에 대중들에게 비난을 받기도 했다. 그래서 지금까지 스페인 현지인들에게는 까사 밀라보다 라 페드레라(La Pedrera 채석장)라고 불리곤 한다. 1906년부터 건축된 곳으로 가우디는 건물의 건축 양식뿐만 아니라 집 안에 있는 문, 창문, 문고리 하나하나 각각의 용도에 맞게 디자인했다. 까사 밀라는1984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라 페드레라(la Pedrera)의 다락방. 가우디는 건물에 지붕이 두 개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여 평평한 벽돌로 두개의 포물선을 둥글게 만들어서 두 지붕 사이에 추위와 더위를 막을 수 있는 완충 공간을 만들어냈다. 고래의 갈비뼈와 유사한 형상이라는 평도 많다. 이 다락방은 현재 에스파이 가우디(Espai Gaudi)라는 이름으로 까사 밀라와 가우디의 설계 연구에 관한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가우디가 어떤 자연 요소에서 건축학적 영감을 얻어 설계했는지도 이해하기 쉽게 전시되어 있다.
자연에게 보내는 사랑의 편지, 라 페드레라(La Pedrera)
라 페드레라(La Pedrera)에 들어서면 하늘로 뚫린 원형 구조의 안뜰이 보인다. 까사 밀라에는 이렇게 원형으로 뚫린 안뜰이 두 개 있는데, 이 구조덕분에 건물과 하늘이 하나의 조화를 이룬 것처럼 보인다. 가우디는 건물 중간에 이렇게 공간을 뚫어놓아 모든 가구들의 창문으로 충분한 햇빛이 스며들 수 있게 했다. 자연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것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하던 가우디의 건축 철학이 부각되는 부분이다.
카사 밀라(라 페드레라, Casa Milà, La Pedrera)
까사 밀라 구석구석에서 드러나는 가우디의 건축 철학
까사 밀라가 처음 건축되었던 20세기 초의 거주 생활을 엿볼 수 있는 전시층. 까사 밀라는 다가구 주택이기 때문에 주주였던 밀라 부부를 제외한 나머지 가구들에는 세입자들이 들어와 살았다.
이곳은 아파트에서 가장 고상한 식당으로 당시의 모더니즘 양식의 가구들로 재현되어 있다. 그리고 이 방의 나무 바닥 패턴이 거실로 이어져 있어 미닫이문을 열면 한방으로 사용 가능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이처럼 가우디는 여러 가지 면에서 주민들의 편리성과 활용도를 생각하면서 집을 구조화했다. 그뿐만 아니라 주거민들의 생활 노선을 고려했다는 점. 예를 들어서, 하녀방, 주방, 아이들 방을 가까이에 위치시켜, 불필요한 시간 낭비와 이동을 줄일 수 있게 했다.
주방이나 내부 공간들의 문과 창문이 크게 뚫려 있다. 이는 창문으로 들어오는 자연광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서이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채광 때문인지 분위기가 더 고급스러워 보이는 느낌이 연출된다.
출구 우측 1층에 라 페드레라 카페(Cafe de la Pedrera)가 있다. 까사 밀라 1층에 위치한 만큼, 가우디가 설계했던 신비한 천장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공간이다.
가우디는 이런 말을 했다.
"제아무리 밝은 빛도 햇빛과 비교하면 웃음거리밖에 안 된다."
O'bon Paris'
까사 밀라는 당대에 굉장히 혁신적인 건물이라는 평을 받았다. 당대에 생각하지 못했던 유럽 최초의 주차장과 엘레베이터가 민간 건물에 설치되었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라 20세기 초 화장실에서 온수 보일러와 비데가 설치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현대의 주거시설에 버금가는 생활시설을 완비하고 있던 것이다.
카사 밀라 옥상.
카사 밀라(Casa Mila), 가우디가 건축물에 남긴 십자가 모양.
까사 밀라의 상징이자 자랑거리인 옥상. 조금씩 다른 형태로 자리 잡은 환풍구들은 각각 불, 공기, 땅을 상징한다. 아주 작은 환기창도 독특한 작품으로 만들어낸 가우디. 투구를 쓴 사람 형상의 굴뚝은 까사 밀라의 가디언들을 형상화한 것이다. 사실, 영화 <스타워즈> 감독은 이 가디언 굴뚝에 영감을 받아 스타워즈의 대표 캐릭터, 스톰크루퍼를 탄생시켰다는 비하인드스토리가 있다.
7. 성가족 성당 탄생 입면 및 지하경당 1884-1926
‘신이 지상에 머물 유일한 거처’, ‘미완성인 상태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건축물’. 이는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성가족 교회(사그라다 마필리아 Temple Expiatori de la Sagrada Familia)를 가리키는 말이다. 1882년 착공해 130여 년째인 2012년 올해도 여전히 공사 중이고 언제 완공될 지 기약도 없다. (2026년 이후 완공 예정) 전체 길이 90m, 전체 너비 60m, 신랑 너비 45m, 첨탑 총 18개(현재 11개 완성), 첨탑 높이 172.5m(예정)이다.
성가정 대성전(Sagrada Famila) 1916년 모습.
가우디가 설계하고 건축한 성가정 대성전(Sagrada Famila),의 모습. 뼈 모양의 구조물이 눈에 띈다.
/바르셀로나 관광청/ 성가정 대성전(Sagrada Famila), ‘예수 탄생’, 파사드의 모습.
가우디의 늘어뜨린 모델을 재현한 것. 성가족 교회 박물관에 전시되고 있다.
그의 실제 작업 모델은 스페인 내전 중 소실됐다. 사진 제공 : 위키미디어.
공학적으로 더욱 중요한 또 하나의 특징은 가우디의 거대 건축물에 적용된 중력에 대한 고민이다. 인류가 만들어온 건축물은 다양하고 화려해 보이지만 실상 땅을 다지고 기둥을 세운 뒤 지붕을 얹는 방법이다. 하지만 동물의 건축은 이렇게 일으켜 세우는 방식이 아니라 ‘아래로 늘어뜨리는’ 방법을 택한다. 야자수와 바나나에서 섬유를 빼내 집을 뜨개질하는 베짜기새의 둥지가 대표적인 예. 가우디의 건축물에도 이런 늘어뜨리기 기술이 적용돼 있다.
가우디는 구엘 성지 교회의 매달린 사슬 형태를 만들기 위해 설계에만 10여 년의 시간을 바쳤다. 강철이나 시멘트 등의 공업화된 건축재료와 복잡한 구조학 계산 방식도, 컴퓨터를 통한 시뮬레이션도 가능하지 않았던 시대, 가우디가 거대한 건축물을 만든 힘은 모형을 이용한 구조실험에 있었다.
가우디의 건축물에는 아치형 다리가 거꾸로 매달린 듯한 형태가 보인다. 그는 쇠사슬을 묶는 고정점과 길이, 무게라는 3가지 요소를 고려해 가장 능률적인 아치 형태를 거꾸로 만드는데 성공했다. 천장에 매달린 쇠사슬이 늘어지고 서로 연결돼 하중을 버티도록 구성한 것이다. 이러한 해결책은 복잡한 이론이 아니라 모형을 이용한 실험을 통해 찾았다.
가우디는 긴 와이어로프의 마디마디에 모래자루를 달아 옆으로 당겨 그 견디는 힘의 구조를 계산했다. 그리고 그 모양을 건물 디자인에 그대로 적용했다. 모래 자루의 무게로 인해 로프가 늘어지는 모양에 따라 건물 전체의 구조가 결정됐고, 그 형태에 대한 압력과 하중을 계산해 기둥의 위치와 숫자를 정해 나갔다. 이렇게 만들어진 실험 모델을 180도 돌려보면 이 구축물의 윤곽선은 가우디가 그린 구엘 교회 스케치와 유사하다.
건물을 예술로 승화한 스페인 건축가 안토니 가우디(1852~1926년). 그는 여섯 살 때부터 관절염을 앓았다. 관절 통증은 가우디 일생 내내 완화와 악화를 반복하며 그의 생활을 고달프게 했다.
관절염은 역설적으로 그를 위대한 건축가로 만드는 데 기여했다. 가우디 작품에는 얼기설기 엮은 뼈 모양이 많은데 관절염을 앓았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다.
가우디는 관절통 때문에 학교 다닐 때 친구들과 어울려 운동을 하거나 같이 놀지 못했다. 당나귀를 타고 집 멀리 나와 자연에 머문 날이 많았다고 한다. 그 과정서 나무와 숲의 형태에 대한 관찰력과 분석력을 키웠고, 그런 능력이 독특한 형태의 작품 구성으로 이어졌다는 평이다. 그는 자연이 나의 스승이라고도 했다. 가우디는 엄격한 채식주의 식단을 평생 지켰고, 매일 산책을 즐겨 했는데, 통증을 줄이는 데 긍정적인 역할을 했다.
‘곡선의 미학자’로 불리는 가우디는 “직선은 인간의 선이고, 곡선은 신의 선”이라고 했다. 관절이 휘는 고통 속에서 위대한 창의력이 나왔다.
성가정 대성전(Sagrada Famila), ‘예수 탄생’, 1173x1393, 파사드에는 예수가 태어난 장면의 조각./
성가정 대성전(Sagrada Famila), ‘예수 수난’, 1808x2363, 파사드의 모습.
성가정 대성전(Sagrada Famila), ‘예수 수난’, 2278x1048, 파사드에 있는 조각들.
성가정 대성전(Sagrada Famila), 성당 내부 공사 중인 모습, 797x1200./
성가정 대성전(Sagrada Famila), 성당 안 가우디의 무덤, 1349x1745.
몬세라트의 로사리오(Rosary of Montserrat)
1918년부터는 자신이 평생동안 건축해온 성가정(성가족) 대성당 건설에 매진했지만 재정 문제로 인해 끝을 보지 못하고 1926년 6월 7일 성당에서 미사를 마치고 집으로 가던 길에 지나가던 노면 전차에 부딪혀 치명상을 당했다. 그러나 운전수는 지저분한 노숙인으로 생각하고 그를 길 옆에 팽개치고 노면 전차를 몰고 가버렸다.
사람들이 병원으로 데려가고자 택시를 찾았지만 역시 노숙인으로 생각한 기사들은 그냥 지나쳐 3번의 승차 거부 끝에 4번째로 잡은 택시 운전수가 겨우 운전했지만 병원도 2곳이나 진료 거부를 당해 빈민들을 구제하기 위한 무상 병원에 놔두고 가버렸다고 한다.
문제는 신분을 증명하는 것인데 병원에서 방치된 채로 있다가 겨우 정신을 차린 가우디는 병원 간호사에게 이름을 말하자 병원 관계자들은 경악을 하며 가우디의 친척들과 친구들에게 급히 연락했다고 한다. 서둘러 달려온 그들이 다른 병원으로 옮기자고 말했지만 가우디는 "옷차림을 보고 판단하는 이들에게 이 거지같은 가우디가 이런 곳에서 죽는다는 것을 보여주게 하라. 그리고 난 가난한 사람들 곁에 있다가 죽는 게 낫다"라며 그대로 빈민 병원에 남았고 결국 1926년 6월 10일 7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그를 죽게 만든 노면 전차 운전수는 파직과 동시에 , 승차를 거부한 택시 운전수 3명도 불구속 입건되었다. 결국 택시 운전수 3명과 그의 치료를 거부했던 병원은 막대한 배상금을 가우디 유족에게 지급하라는 판결을 받았다. 그리고 장례식은 1926년 6월 13일 많은 군중들이 모인 가운데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에서 성대하게 거행되었고, 유해는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 지하 묘지에 안장되었다.
가우디는 남긴 글은 거의 없다. 그가 기록물로는 20대에 그가 직접 7년간 사용했던 노트 한 권과, 장식예술 박람회의 관람하고 나서 잡지에 기고한 비평의 기사글, 개인적인 서신들이 고작이다. 건축적 내용을 담은 기록물로는 20대 가우디의 노트가 유일하다. 건축가 가우디의 건축적 고민들을 엿볼 수 있는 그의 노트는 <장식>이라는 이름으로 2014년 처음 우리말로 정식 번역되었고, 2015년에는 가우디의 애석한 죽음을 기리며 그의 동료들이 쓴 최초의 가우디 전기가 우리말로 번역되었다.
140년째 공사중… 가우디의 미완성작 성가정 성당, 2026년 완공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있는 성가정 대성전(Sagrada Famila) 전경. /위키미디어
140년 넘게 공사가 진행 중인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사그라다 파밀리아(성가정) 성당이 2026년 완공될 전망이라고 CNN이 2일(현지 시각) 보도했다. 사그라다 파밀리아는 아기 예수와 어머니 성모 마리아, 마리아의 남편 성 요셉의 성스러운 가족(성가정·聖家庭)이라는 뜻이다. CNN은 성가정 성당의 6개 중앙탑 가운데 마태오 탑과 요한 탑이 지난주 완공됐다고 보도했다. 2021년 성모 마리아 탑, 작년 루카 탑과 마르코 탑이 완공됐다. 마태오·요한·루카·마르코는 4대 복음사가(福音史家)다. 예수 그리스도 탑까지 계획대로 2026년 완공되면, 착공 144년 만에 바르셀로나의 대표 명소이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성가정 성당이 본모습을 갖추게 된다. 172.5m 높이 예수 탑이 완공되면, 독일의 울름 성당(161.53m)을 제치고 세계에서 가장 높은 성당이 된다.
성가정 성당 건설은 1882년 시작됐다. 당초 설계 책임자는 프란시스코 데 파울라 델 비야르 이 로사노(1828~1901)였으나 1883년 ‘건축 천재’ 안토니오 가우디 이 코르네트(1852~1926)가 자리를 넘겨받았다. 옥수수를 세운 모양으로 성당의 탑들을 설계한 실질적인 건축 책임자인 그의 이름을 따 이 성당을 ‘가우디 성당’이라고도 한다. 하지만 그는 성당을 20%도 채 짓지 못하고 43년 만에 전차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스페인 내전(1936~1939년)으로 공사가 중단되는 등 악재는 이어졌다. 가우디가 생전 설계한 모형이 소실되기도 했다. 우여곡절 끝에 1950년대 들어 공사가 재개됐지만, 공사 비용이 발목을 잡았다. 이에 입장권 판매 수익으로 공사 비용을 충당했다. 공사 중에도 유서 깊은 명소로 전 세계에 이름을 알린 이 성당은 1984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공사가 마무리 단계에 접어든 것을 기념해 성가정 성당은 복음사가 탑 4개 완공을 기념하는 미사를 내달 12일 열 계획이다. 성당의 목표 완공 시기인 2026년은 가우디의 사망 100주기이기도 하다.(출처: 조선일보 국제 유럽 2023년 10월 03일(화))
1. 비센스 주택(Casa Vicens) 1878-1880
카사 비센스(Casa Vicens) 는 1883년 스페인 사업가인 '마넬 비센스 이 몬타네르 의' 여름 별장으로 지었썼다. 카사(Casa)는 주택이라는 의미이고, 비센스는 소유주의 이름이다. 당시, 마넬 비센스는 유명하지 않았던 가우디에게 주택의 설계와 시공을 맡겼으며, 가우디의 화려한 건축 경력의 시작일 뿐만아니라. 모더니즘 건축의 첫번째 걸작으로 평가받습니다. 2005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당시 스페인은,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복합적인 예술인 무데하르양식이 유행하였다. 이슬람 사원의 느낌을 내고자, 건물 외벽을 도자기 타일로 마감하고, 탑과 망루를 설치하였다.
비센스 주택의 외벽은 ,주변 잎과 잘 어우러지는 느낌을 준다. 지을 당시에, 해당지역의 종려나무 잎사귀를 본떠 만들었다고 한다.
카사 비센스의 외관 모습이다. 곡선과 화려한 색상의 배치를 통해, 화려함을 표현하였습니다. 특히 건물전체가 자연의 색상인 녹색, 흰색타일로 뒤덮여 있다.
내부도, 꽃의 알록달록함을 표현하듯이 다양한 색상이 잘 어우러지고, 건물외관과 내부의 연속성을 보여주고 있다.
2. 구엘 저택(Guell palace) 1885-1889
안토니 가우디가, 친구인 구엘을 위해 건축한 저택이다. 이곳에 방문하는 고객들의 동선을 고려한 실용적인 디자인과, 화려한 스테인스글라스, 카탈루냐 지방이 문양으로 화려함을 강조하였다.
목재, 석재, 철재등 다양한 소재로 건축물을 제작하여 독특하게 자연의 모습을 담았다. 1984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었다.
건물의 옥상에는, 박쥐모양의 조각상, 그리스 십자가가 장식된 피뢰침이 배치되었으며, 깨진 벽돌이나 타일로 마감하는 트렌카디스기법의 굴뚝이 약 20개가 있다.
3. 구엘 공장단지 내 지하경당 1898-1914
가우디 콜로니아 구엘(Colonia Guell)
가우디 콜로니아 구엘 내 성당
4. 구엘 공원(Park Güell) 1900-1914
구엘 공원(Park Güell) 입구
구엘 공원(Park Güell)의 인기 스타 도마뱀 분수
구엘 공원(Park Güell) 기둥 위 공간에는 벤치가 있어 휴식을 취할 수 있다. 모자이크로 장식된 벤치는 밑에서 볼 때는 난간으로 보인다.
구엘 공원(Park Güell)의 산책로 - 돌로 나무 모양을 만들었다.
스페인(Spain)은 유럽에서 가장 면적이 넓은 나라들 중의 하나로 이베리아 반도에 있으며 발레아레스 제도 및 카나리아 제도가 포함된다. 수도는 마드리드(Madrid)이다. 다양한 인종으로 구성어 있으며 공용어는 스페인어다. 화폐 단위는 유로(€)다. 양원제, 입헌군주국이다. 국민 대부분이 로마 가톨릭교를 믿는다. 서비스 산업과 경·중공업 및 농업을 기반으로 한 시장 경제가 발달했다. 포도주와 올리브유의 세계적 생산국이다. 남부의 코스타 델 솔 지역이 관광지로 유명하다.
스페인 카탈냐(Catalonia)는 스페인 북동쪽 지방으로 북쪽은 피레네 산맥을 기준으로 남북으로 프랑스와 경계를 이루고 동쪽과 남쪽은 지중해에 면하고 서쪽은 에브로 강 유역의 아라곤 지방과 발렌시아 지방에 접한다. 주도는 바르셀로나(Barcelona)로 바르셀로나·지로나·례이다·타라고나 4개 주를 포함한다. 카스티야 지역을 대표하는 마드리드와는 라이벌 관계고 유명한 엘 클라시코도 두 지역 간 자존심 대결이다. 면적은 32,108km²이고 7,523,000명이 거주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도 그렇고 스페인 내부에서도 바스크 지방과 함께 가장 분리주의 성향이 강한 지역으로 유명하다. 이들의 상징기는 노란색과 빨간색의 줄무늬로 이루어진 깃발이다. 북부 산악 지대는 겨울이 춥지만 지중해에 면한 지대는 지중해 특유의 온화한 기후가 나타나는 편이다.
바르셀로나(Barcelona)는 1882년에 착공한 엑스피아토리오데라사그라다파밀리아(성가족 교회 Temple Expiatori de la Sagrada Familia) 등은 기념비적인 건물이다. 아직도 공사 중인 이 거대하고 아름다운 교회는 안토니오 가우디가 설계한 건물 가운데 가장 잘 알려져 있다. 스페인의 다른 지역과 프랑스로 이어지는 철도망이 거미줄처럼 뻗어 있고, 프라트 국제공항이 있다. 바르셀로나 항은 17세기에 건설되었다. 1992년 제25회 올림픽 대회가 이곳에서 개최되었다.
[참고문헌 및 자료출처: KBS1 <예썰의 전당>, [40회] 건축물에 자연의 숨을 불어넣다, 안토니 가우디 이 코르네트(Antoni Gaudí i Cornet), (2023년 02월 19일 22:30 방송)/ 안토니 가우디. 《장식》(이병기 옮김. 아키트윈스. 2014년)/ 스페인 미술관 산책(최경화, 시공아트)/ 박영우 건축가/ Daum·Naver 지식백과/ 이영일 ∙ 고앵자, 채널A 정책사회부 스마트리포터 yil2078@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