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눈물의 씨앗'이란 노래가 있다.
이 세상에' 나훈아'를 알린 노래라고 기억된다.
"어느 날 당신이 나를 버리지 않겠지요
서로가 헤어지면 모두가 괴로워서 울 테니까요."
이런 가사로 끝맺는 노랫말은 사람들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그 노래가 생각나 오랜된 레코드판을 찾았다.
비록 턴테이블이 없어 듣지는 못하지만, 잘 생긴 나훈아의 튼튼한 치아가 가지런한 모습을 본다.
세월이 많이 흘렀다.
이젠 나훈아도 백발에 흰수염 가득한 노인네의 모습으로 변했다.
앳된 청년이 70대 노인네가 됐으니 얼마나 많은 세월이 흘러갔나!
또 한 사람 ㅡ
나훈아와 쌍벽을 이룬 인물이 '남진'이다.
나훈아보다 훨씬 잘 생겼고, 노래도 더 잘 불렀다.
나훈아는 거칠게 보였고, 남진은 귀공자처럼 보였다.
그 두 사람은 부르는 노래마다 히트곡이 되어 우리의 마음을 흔들어놓았다.
나훈아는 영화에 출연을 했는지 모르지만, 남진은 몇 편의 영화에도 출연했다.
내 가물거리는 기억으로는 '고향무정'이란 제목의 영화를 본 것 같다.
내용은 어떤 것인지 기억은 전혀 없다.
영화 두 가지를 동시상영하는 삼류극장에서 본 것 같다.
'앨비스 플래슬리' 옷모양을 본 뜬 남진은 나의 우상이었다.
나훈아 리사이틀이 열리는 극장에서 누군가 나훈아 얼굴을 면도칼로 그은 사건이 터졌다.
세간에서는 남진측 누가 사주를 했다는 말도 흘러나왔지만 근거없는 헛소문으로 끝났다.
남진이 월남에서 돌아와 제대를 할 무렵 나도 군대를 갔다.
월남을 지원했다.
그 놈의 돈이 뭔지, 돈 많이 벌어 어머니를 호강시키겠노라고.
어쩌면 죽을지 몰라도, 국가에서 나오는 유족연금이라도 어머니가 쓰시며 행복하게 사시라고.
평생 고생만 시킨 내 어머니를 위해 목숨은 아깝지 않았고 두려움도 없었다.
어머니가 행복만 할 수 있다면 어떤 고난도 이겨내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돈도 못 벌고 모진 목숨은 죽지도 않았다.
제대를 한 후, 어머니 돌아가실 때까지 내가 모셨다.
내가 모신 게 아니라, 내 아내가 모셨다 해야 옳다.
내 아내는 착했고, 내 머리카락을 뽑아 짚신을 삼아 신기고 싶도록 잘 모셨다.
못된 짓만 한 나였어도 어머니 공경만큼은 게을리 하지 않았던 내 아내다.
그 아내가 오늘 새벽 강원도를 갔다.
동네 아줌마들과 함께 원주 소금산 어디에 명물로 등장한 출렁다리를 보러 간다고 했다.
아침 일찍 떠났기에 해 놓은 밥을 먹고 유리창을 열고 청소를 했다.
봄비 내린 촉촉한 공기가 방 안으로 들어온다.
어제 떠난 손주 녀석들이 많이도 어지럽혔다.
깨끗함은 좋다.
전쟁터 같던 집 안이 거울처럼 맑게 보인다.
모든 정리가 끝나고, 점심을 먹고 컴에 앉아 나훈아와 남진의 노래를 듣는다.
젊은 시절 즐겨 듣던 나훈아와 남진의 노래가 듣고 싶었던 것이다.
이상하다.
노래는 예 그 노래이건만 듣는 감흥이 달라진 것을 느낀다.
남진의 노래보다 나훈아의 노래가 더 좋다.
내 우상이었던 남진의 노래가 이젠 내 취향에 맞지 않는 것을 느낀다.
나훈아 리사이틀 공연을 보니 중년 여성들이 까무러치며 광란하는 모습이다.
왜 백발의 나훈아를 저렇게 좋아 난리를 부릴까?
수 년 전, 나훈아가 기자들 앞에서 허리띠를 풀러 그럴까?
분명히 그 때 허리띠를 풀러 바지를 내리지 않았는데.....!!
나이를 먹어가면 노래 취향도 달라지나?
나는 분명 남진 노래가 더 좋았는데, 나훈아 노래가 더 좋아진다.
나와 비슷한 나이를 먹은 또레 여편네들 생각이 났다.
이제는 고인이 된 무하마드 알리가 오니 입맞춤 한 번 하려고 호텔까지 떼거지로 몰려간 여편네들 ㅡ
영국의 유명가수가 '클리프 리차드'가 시민회관에서 공연을 할 때, 무대 위로 올라온 팬티만 한 차로 실을 정도였다고 한다.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여성들이 무대로 팬티를 벗어 던지는 심리를 이해할 수 없다.
그때가 1969년도이다.
그 나이를 먹고 아직 살아있다면 60대 후반부터 70대 초반일 것이다.
나훈아에게 광란하는 여성들 세대이다.
할머니가 된 그분들 대단하시다.
지금까지 나훈아에게 열광하고 있으니.
그 당시 범띠 가시내란 노래가 유행됐다.
지금 한국 나이로 본다면 69세일 게다.
바람등이가 그 나이에 참 많았다.
50년 호랑이띠부터 55년 양띠까지.
1/3은 바람둥이었다.
첫댓글 그극장,그사람들. 그환호,, 마치 미친 열병을 앓던 소녀들의 환호가..다시 보인다.
나훈아 남진 인기좋던시절이생각나는군요 그시절에 많은 노래따라불렀었는데 지금은 잘안불러지는군요
그노래부르며돌아다니던 젊은시절이그립군요 4월도시작되었고요 좋은 4월달되세요
두 가수가 한참 날릴 때 저는 좀 어렸지만 그 열기는
기억합니다, 나훈아쑈할 때 대구 만경관앞은 그야말
로 인산인해였는데 어린 저는 전쟁난 줄 알았습지요^^
세월이 흘러 고향역은 저의 노래방 18번이 되었습니다..
남진 나훈이 를 생각하시는 회원님은 중년이내용 ㅎㅎ
지금 현재의 남진님과 나훈아님...
두분 모습좋아여~ 지는 "님과함께...
오늘은 날씨가 고르지못하고 천둥도 치고 요란스럽드라고요~ㅎ
좋은님들 고운밤 되세여~
핸드폰이 없던 시절. TV 보급도 잘 않된 시절인 60년대 후반에서 70년대 초반시대에는 영화와 음악이 최고의 오락 이었습니다, 남진이 부산 보림극장에서 쇼를 할때 입석을 팔았기에 극장안은 만원 입석버스 처럼 복잡했는데, 멀리 마산 창원공단 등에서 올라온 여성들이 울며 불며 열광하던 그 모습이 그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