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신라 국학과 인재양성』中]백제의 오경박사제도와 교육기관의 존재

고구려와는 달리 백제의 경우는 교육기관을 설립했다거나 왕이 친히 교육기관을 둘러봤다거나 하는 기록이 등장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교육기관이 없었을까하고 생각한다면 그렇진 않을 것이다. 책 『신라 국학과 인재양성』에서 언급된 내용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삼국사기』「고구려본기」를 보면, 소수림왕 2년(372)에 태학을 세웠다는 기록이 보인다. 그러나 백제 관련 사서에서는 교육기관의 명칭이나 관련 기록이 보이지 않았다. 그나마 주목되는 것은 박사의 존재였다. 한성시기 박사 관련 사료는 다음과 같다.    A-1. 근초고왕 30년(375년) 『고기(古記)』에 이르기를, 백제는 개국이래 문자의 기사(記事)가 없었으나, 이때에 이르러 박사 고흥(高興)을 얻고서 비로서 서기(書記)가 있게 되었다. 그러나 고흥은 일찍이 다른 서적에 보이지 않으니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없다.  『삼국사기』 권24, 「백제본기」근초고왕 30년조      A-2. 응신천왕 15년 가을 8월 임술삭 정묘. 백제왕이 아직기(阿直岐)를 파견하여 좋은 말 두마리를 바쳤다. 이에 경의 언덕 위에 마굿간에서 기르게 하였다. 그리하여 아직기로 하여금 말먹이는 일을 관장하게 하였다. 그러므로 그 말을 기른 곳을 일러 구판이라고 한다. 아직 기는 이 또한 경전도 잘 읽어서 태자 토도치랑자의 스승으로 삼았다. 이에 천황이 아직기에게 묻기를 "그대보다 뛰어난 박사가 또 있는가."라고 하였다. 대답하기를 "왕인(王仁)이란 사람이 있습니다. 이 분이 뛰어납니다."라고 하였다. 이 때 상모야군의 선조인 황전별과 무별을 백제에 보내어 왕인을 불러오게 했다. 아직기는 아직기사의 시조이다. 『일본서기』권10, 응신천황 15년조    A-3. 응신천황 16년 봄 2월. 왕인이 오자 태자 토도치랑자가 스승으로 삼았다.  여러 전적을 왕인에게서 배워 통달하지 못한 것이 없었다. 이른바 왕인은 바로 서수 등의 시조이다. 『일본서기』권10, 응신천황 16년조    사료A를 통해 백제에 박사라고 칭하는 학사들이 있었으며, 이들은 국왕의 명령에 따라 역사서를 편찬하거나 왜국에 파견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A-1에 보이는 박사 고흥은 낙랑이 고구려에 병합된 뒤에 백제로 망명해 온 한인漢人이었을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백제로 온 고흥은 근초고왕에게 기용되어 박사로 임명되어 사서의 편찬에 관여하였을 것이다. 이 같은 그의 임무는 고구려의 영양왕 10년(600)에 태학박사太學博士 이문진의 임무와 같은 것이었다. 학관의 사서 찬술은 한漢 이래로 그런 제도가 있어왔다. 고구려의 역사서를 편찬한 태학박사 이문진의 사례를 통해 박사 고흥의 역할을 추측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백제의 교육기관 논의와 관련하여 중요한 문제는 사료에 보이는 박학다식한 학사인 박사가 단순한 국왕의 자문관이었는지, 학문과 교육에 종사하는 제도상의 관인官人이었는지 하는 것이다. 그런데 박사 고흥 뿐 아니라 박사 아직기와 왕인의 존재, 그리고 그들의 파견 주체가 근초고왕이라고 한 점과 이들이 왜국에 파견되어 유학을 가르치는 것을 통해 보았을 때, 박사를 단순한 국왕의 자문관이었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중국 고대의 박사제도를 간략히 살펴보면, 박사제도는 전국시기의 제나라와 노나라에서 기원하였다. 진시황이 전국을 통일한 후 전국시기의 박사제도를 계승하여 중앙에서 6개국의 박사를 소집하였는데, 모두 70여명이나 되었다. 진대의 박사는 일종의 문관으로 그 직무는 '정사를 논하고 자문을 구하며 고전을 장악하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한 무제 건원 원년(기원전 136년)에 들어와서 진대의 소위 '잡학박사'의 성격을 탈피하고 태학에 오경박사를 둔 것이 교육기관에 박사를 둔 기원이 되었다. 한 나라 경제 때, 동중서가 박사가 되어 제자를 강의하였다. 그러다가 한 무제 초에 동중서가 현량대첵에서 정식으로 태학을 설립할 것을 건의하였다. 원삭 5년(기원전 124) 6ㅅ월 승상인 공손홍의 건의로 무제는 정식으로 태학을 설립하여 박사관에 제자 50명을 두고, 더불어 학사學舍를 지어 태학생에게 공부하고 생활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였다.   그 후 위진시대에는 장기간의 혼란으로 유학이 쇠퇴하고 학교의 설립과 폐지가 빈번하였다..... (생략)  기존의 연구사에서도 근초고왕대에 보이는 박사에 주목하여, 근초고왕대에 동진의 태학이나 고구려의 태학을 모델로 유학교육을 하는 국가적 교육기관이 설치된 것으로 본 견해들이 있었다. 근초고왕 28년(378) 2월 동진에서 조공사가 귀국한 후에 관학이 창설되고, 그 청사진은 동진의 태학제도였을 것으로 파악하였다. 그리고 학교의 명칭도 고구려의 제도와 같은 태학으로 칭하였을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이에 대해 근초고왕대에 설치된 박사가 중국의 오경박사나 고구려의 태학박사처럼 공적인 교육기관에서 학문과 교육을 담당하는 학관으로 역할하였는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였다. 중국이나 고구려의 경우, 불교의 수용과 함께 유학의 장려와 태학의 설치가 국가적 차원에서 이루어진데 반해 백제는 침류왕대에 가서야 불교의 수용이 이루어지고 있어 차이가 있다고 본 것이다. 또한 근초고왕이 372년 동진 간문제로부터 '진동대장군 영낙랑태수'라는 관작을 받은 이후 더 이상의 교섭이 진전되지 못하였고, 고구려는 369년 이래 계속 적대적인 관례를 유지하고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박사제도를 동진이나 고구려와 직접 연관시키기에는 근거가 불충분하다고 보았다....  그런데 근초고왕대에 영역이 크게 확대되고 지방통치 조직 등이 마련되는 것을 통해 볼 때, 이 시기에 국가 통치의 기본 규범이 되는 율령도 반포된 것으로 추측해볼 수 있다. ... 근초고왕대에 국가 차원의 교육기관이 설립되었다고 말하는 것은 무모하지 않을 것이다. 고구려와 백제 국가의 발전 경향성, 그리고 고대 국가 정비과정에 있어서 관료양성의 필요 등을 생각한다면, 왕실이나 귀족층을 중심으로 한 유교 교육의 존재 가능성을 충분히 생각할 수 있다.  또한 백제는 다른 나라에 비해 한군현계와의 접촉이 활발했으며, 백제에는 한군현계 지식인이 많이 거주하고 있었다. 한군현의 쇠퇴기는 물론 3세기 말에 백제와 대방군과의 우호관계가 형성되면서 한군현계 주민들의 백제 이주가 더욱 조장되었을 것이다. 한군현계 출신의 관인들은 중국의 교육제도를 경험하였을 것이며, 경서와 역사에 능통하고 행정실무에도 밝고 중국어를 구사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중국 사정에도 정통하였기 때문에 백제의 국가체제 정비나 대외관계 업무를 추진하는데 기여하였을 것이다.」 요약하면 이렇다.   ●백제의 교육기관과 관련된 논의에서는 근초고왕 대에 왕인, 아직기, 고흥 등의 '박사'들을 주목해야하고 또 교육제도를 도입했다고 볼 수 있다.  ●기존연구에서는 중국에서 도입했을 것이나, 고구려에서 도입했다고 보기도 한다. ●그렇지만 동진도입설, 고구려도입설은 백제의 외교상태나 고구려와의 국가갈등 상태상 어려워보인다. ●백제가 확장하면서 한군현과 접촉하면서 한군현출신의 한계 관인들을 등용했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는것. 흥미로운 이야기인데 더욱 흥미로운건 관련 묘지가 있다고 한다. 바로 진법자 묘지인데 해당 묘지에 대해서 이렇게 언급하고 있다. 「묘지에서 백제의 교육제도와 관련하여 주목되는 것은 '증조인 춘은 본방의 태학정의 은솔이다.'라는 구절이다. 『진법자 묘지』에서 '태학'이라는 명칭과 태학정이라는 관직까지 확인되었기 때문에, '박사' 관련 자료만이 아니라 좀 더 폭넓은 시각을 가지고 백제의 교육기관과 관료의 양성 선발 문제를 볼 수 있게 되었다. 진법자의 증조인 진춘이 역임한 '태학정'과 '은솔'을 통해 백제의 관학기관이 태학이었고, 태학정이 태학의 장관일 것이라는 점에 견해가 일치하고 있다.」 태학이라는 명칭에 대해 추정이 아닌 명문을 통해서 실제로 태학정이라는 관직까지 존재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진법자의 출생년도인 615년을 기준으로 증조부 진춘이 은솔과 같은 고위관직에 오른 나이를 유추할 경우 565~595쯤이라고 본다면 대략 위덕왕 시기이다. 위덕왕은 성왕의 아들이자 관산성 전투에서 부왕이 자신을 구하기 위해 오다가 매복에 걸린 내력을 알고 있는 군주였다. 무령왕대에서 성왕 시기의 일본서기 기록에서는 '오경박사'라는 기록이 여러차례 등장한다.(<strike>"아아 이것이 《역경(易經)》《서경(書經)》《시경(詩經)》《예기(禮記)》《춘추(春秋)》라고 한다."</strike>) 백제는 관련 기록이 매우 적은 편이지만 일본서기까지 찾아내면 꽤 풍부한 기록이 나온다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