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와 함께 가는 길...
그리고 삶 .9
치매에 걸리지 않는 직업은 없다 (1)
우리가 치매에 대해 이야기할 때 이태영 변호사가 많이 거론됩니다.
이태영 변호사...
대한민국 여성사에 커다란 족적을 남긴 최초의 여성변호사이자 사회운동가였던 이태영 변호사와 치매가 따라 다니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1914년 8월 10일 평안북도
운 산군 북진면에서 출생한 이태영변호사는 1998년 84세의 나이로 별세했습니 다.
공식적인 사인 병명은
알츠하이머 치매의 진행으로 인한 사망이었습니다.
수많은 저서를 쓰고 최초의 여성 변호사가 되기까지 공부를 했지만 치매에서 벗어나지는 못했습니다.
일제 강점기에 태어나,
조국의 모든 고비를 그대로
겪 어온 이태영변호사는
여성들의 귀감이기도 했습니다.
이화여대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나서 33세의 나이에 다시
서 울대학 법학과에 입학하여 1952년, 제2회 고등고시 사법과(지금의 사법고 시)에 합격한 최초의 여성이 되었습니 다.
그러나 이승만 대통령의 반대로
판 사에 임용되지 못하고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변호사가 되었지요.
최초라는 수식어를 이태영여사처럼 많이 받은 사람도 드물겁니다.
서울대학교의 최초의 여대생이었고,
야당 인사인 남편 정일형 을 미워하던 이승만의 반대만 아니었다면 대한민국 최초의 여판사가 되었을 겁니다.
지금 대한민국의 모든 여성들, 특히 불합리한 제도의 희생이 강요되었던 여성들의 인권이 오늘날 이만큼이나 신장된 것은 이태영여사의 절대적인 노력과 투쟁 덕분임을 아는 여성들이 얼마나 될른지 모르겠습니다.
최초의 여성 변호사는 자신에게 찾아 오는 많은 여인들 의 고통을 알게 되었고, 이 땅의 여성들의 억울함을 풀어 주겠노라는 일념으로 일생을 살아가게 됩니다.
1956년 여성 법률 상담소 (현 한국 가정 법률 상담소 )를
세운 것을 필두로 이태영 여사의 업적은 말로 다할 수가 없습니다.
1989년에 오랜 투쟁 끝에 대법원으로부터 -이혼녀 재산 분할 청구 권-과 -모계 부계 친족의 범위는 8촌이내-의 법을 인정 받았습니다.
호주제 폐지 운동에도 전념했으나 그 개정을 보지는 못하고 돌아 갔습니다.
1975년 막사이사이상을 수상했으며,
1989년 브레넌 인권상을 수상하는 등 한국 여성으로서는 생각할 수 없었던 많은 업적을 이룬 이태영 변호사.
1995년 가정법률 사무소장직을 사위 김흥한에게 물려주고 은퇴한 얼마후 알츠하이머성 치매에 걸렸습니다.
이후 돌아가실 때까지 삼년여의 시간을 정말 참혹한 치매의 모습을 보였다고 합니다.
가족들을 그렇게 사랑하고 언제나 온화함으로 자식들을 감싸던 이태영 여사는 마치 다른 사람이 된 듯 했습니 다.
주변의 사람들은 이해할 수가 없었 습니다. 어떻게 이태영 변호사가 치매에?
팔순이 넘어서까지 청년 못지않은 기억과 행동력을 보이던 이태영여사의 치매는
충격이기도 했습니다.
더구나 여사는 정말 나쁜 치매의 온갖 모습을 보여 가족들의 절망과 충격은 더 컸습니다.
호스피스 교육과 치매에 대한 공부를 하면서 이태영여사의 치매는 알츠하이머성 치매의 나쁜 예후임을 알게 되었습 니다.
정말 존경하던 분이어서 마음이
참 많이 아팠습니다.
치매에 걸리지 않기 위해서는 뇌를 끊임 없이 자극해야 한다고 하는데 그렇게 머리를 많이 쓴 여사는
왜 치매에 걸렸을까요?
평균 수명이 늘어나는 현대 사회의 치매 의 원인은 많습니다.
그러니까 치매에 걸렸지가 아니라, 그렇게 했어도 치매에 걸렸다가 되는 시대입니다.
스트레스,운동부족,뇌세포의 파괴, 음주 와 흡연...그런데 이 범주에 해당이 안되어도 치매는 찾아 옵니다.
어떤 직업 , 어떤 생활을 해도
마치 복골복처럼 찾아 오는 치매에 대해 우리는 무방비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태영여사는 길고긴 힘든 시간들을 내려 놓고 편안하고
사랑 받는 행복한 노후를 생각했을 겁니다.
누군가가 이태영여사에게 당신은 치매에 걸릴 것이고 그것 때문에 죽을 것이 라고 말했다면
본인은 물론, 아무도 믿지 않았을 겁니다.
그러나 은퇴와 함께 치매는 찾아왔고, 여사는 가족들의 마음 에 무서운 상처를 만들고 돌아 갔습니다.
이태영여사 뿐입니까?
유명한 많 은 인사들이 치매에 붙들려 자신의 생의 마지막을 형편없이 구기고 말았습니다.
성직자,정치인,의사 , 판사 재벌의 총수 ...치매는 어떤 직업도 가리지 않고 어떤 사람도 가리지 않고 공격합니다.
눈부시게 발전하는 의학의 덕분으로 나날이 수명이 길어가는 현대인들의 무서운 재앙입니다.
글ㆍ권영심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