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1(문무왕 1).
백제의 승려·부흥운동가.
660년(의자왕 20) 나당연합군은 백제를 멸망시킨 뒤 당의 유인원(劉仁願)과 신라의 김인태(金仁泰)로 하여금 사비성(泗
城)을 지키게 했고, 웅진도독(熊津都督)으로 왕문도(王文度)를 임명했다. 그는 백제의 왕족 복신(福信), 장군 흑치상지(黑齒常之) 등과 함께 임존성(任存城:지금의 충남 대흥)을 근거지로 백제 유민들을 모아 나당연합군과 싸워 200여 성을 회복하고, 사비성을 포위·공격하기도 했다. 그러나 증강된 나당연합군의 압박으로 힘이 약화되어, 고구려에 응원을 청하고 기회를 엿보던 중 일본에 가 있던 왕자 부여풍(夫餘豊)이 원병을 이끌고 오자 다시 세력을 정비하여 금강 동쪽의 여러 성을 점령했다. 풍을 왕으로 추대하고 자신은 영군장군(領軍將軍)이라 칭하면서 주류성(周留城:지금의 충남 한산)을 근거지로 부흥운동을 계속했다. 그러나 복신과 도침 사이에 반목이 생겨 도침은 복신에게 피살되었고, 그뒤 복신도 풍왕에게 죽음을 당하는 등 부흥운동 내부에 분열이 일어나 단결을 잃고 세력이 약화되고 말았다. 그뒤 두 성의 함락과 함께 백제부흥운동은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백제부흥운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