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교회의 바르멘 신학 선언
1.저자와 배경
바르멘 선언은 19세기 자유주의의 낙관적인 인간관과 사회관, 그리고 19
세기 자유주의 신학의 낙관주의 신학을 비판하고 나온 K.Barth의 작품으로
서 당시 반히틀러 운동에 가담한 고백교회의 여러 고백서 중의 하나이다.
바르트가 참여한 고백교회 운동은 19세기적 시대정신에 반대하였고,히틀러
의 낙관론적 이데올로기에도 반기를 든 것이다. 하지만 좀 더 정확히 말하
면 이 고백교회의 투쟁은 주로 히틀러 정권에 반대한 것이라기보다는 히틀
러의 이데올로기에 동조하는 교회 안에 있는 파괴적인 힘에 반대한 것이
다.(Edward Dowey)
바르멘 선언이 나오게 된 배경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독일 기독교인
들의 신앙운동 에 대항하여 1934년 5월 29-31일에 결성된 독일 복음주의 교
회 제1차 고백노회의 바르멘 신학 선언이 성립되어 마침내 받아들여지기까
지의 역사는 이 교회 내부의 교권투쟁의 역사와 상당히 일치한다. 독일이
세계 제1차 대전에서 참패한 후 생긴 커다란 공백을 히틀러가 악의 세력으
로 충만시키자, 압도적인 다수가 민족적이고 보수적인 성격을 갖고 있었던
독일 민족 대부분이, 아니 독일의 루터교인들과 카톨릭교인들 대부분이 히
틀러의 민족적국가사회주의(Nazism)에 찬성하여 그의 깃발 아래 모였다. 볼
셰비즘과 민주주의를 배격하고 독일의 기독교인들 은 모두 히틀러의 영도
력하에서 유토피아를 꿈꾸었던 것이다.
독일 기독교는 비판적인 시야와 예언자적 능력을 상실하였다. 복음은 문
화 속에 흡수되었고 소금은 그 맛을 잃었으며 누룩은 떡 덩어리를 변화시킬
힘을 잃었다. 독일 기독교인들의 신앙운동 에 대해 알트프로이센 연합노회
소속의 교회들이 즉각 저항하고 나섰으며 같은 생각을 가진 목회자들은 서
로 제휴하여 집단을 이루었고 활동단체를 이루었다.
이러한 독일 그리스도인 신앙운동의 이데올로기와 야만적인 권력정치에
대한 지역적 혹은 국부적저항은 특히 마틴 니묄러(Martin Niemoller)를 중
심으로 1933년 9월 11일에 목사들의 긴급연맹 이 창립된 것을 시작으로, 9
월 15일에는 라인 관구의 바르멘에서 칼 이머(Karl Immer)지도하에 개혁교
회 설교자 모임 이 결성되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1934년 1월 3-4일에 바
르멘 교구에서 제1차 개혁교회 독립노회를 결성하였으며, 2월 18-19일에는
개혁교회,루터교회,연합교회가 참여하여 제1차 라인란트 복음주의 독립노
회 가 개최되었다. 이와 유사한 독립노회들은 그후 베스트팔렌,베를린-브란
덴부르크,포메른에서 결성되었다.
그러나 이들의 행보가 순탄한 것만은 아니었다. 1933년 후반기 동안에 남
부 독일과의 연결은 느슨하였고, 1934년 초에는 뮐러의 계속적인 불법행위
와 기만술책으로 지도자들간의 분열을 맞는 위기도 있었다. 그러나 1934년
3월 14일베스트팔렌 관구 노회의 도르트문트에서 회장 코호(Koch)는 이제
신앙고백을 할 때가 왔다.오늘날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에 책임감을 늑기는
것은 우리들 각자의 권리요 의무다. 이렇게 요구되는 것을 침묵 가운데서
행해야 한다고 이의를 제기하면서 이러한 책임을 회피할 수 있는 사람은 하
나도 없다. 고 선언하였다. 그리고 3월 19일에는 남부독일 대표들이 라인-
베스트팔렌대표들과 프랑크프르트에서 회동하여 뮐러와 제국 교회 정부로부
터 기대할 것은 하나도 없다는 데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원칙적인 합의에
도 불구하고 강조점이 달랐던 이들에게 1934년 4월 뷔르템베르크주의 교회
들을 통제하도록 강요한 예거의 가혹한 행동과 야만적인 공격성은 즉각 신
앙고백에 충실한 모든 집단들을 또다시 집결시켰다.
4월 11일 교회 저항운동의 대표자들은 뉘른베르크에서 독일 복음주의 교
회 신앙고백 공동체 를 결성하였고, 3차 회의 에 걸친 논의 끝에 독일 복음
주의 교회 신앙고백 노회를 1934년 5월 29-31일에 바르멘에서 개최할 것을
결의 하였다. 이에 18개 지방 교회에서 파견된 138명의 총대가 모여 세 개
의 문서를 만들었다. DEK 고백노회의 법적 지위에 대한 선언 , DEK 고백
노회의 실제 활동에 대한 선언 , DEK의 현상황에 대한 신학적 선언 이 그
것이다.
2.특징
본 선언문의 특징을 세 가지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본 선언문은 고
대 교회의 신조들과 교회의 신앙고백들 위에 기초하고 있다. 2)이 선언문은
교회의 연합 메세지였으며 긴급한 상황에 대면하는 교회제도를 낳았다. 이
선언은 루터교회와 개혁교회 및 연합교회 모두가 공동으로 고백하는 메세지
를 내포하면서도 각 교파의 특징있는 고백을 허용한다. 이는 교회의 영구적
인 일치를 가져오지는 못했지만 에큐메니칼 운동에 공헌하였다. 3)본 선언
은 국가화한 교회일치를 거부하여
독일의 국가교회인 독일 기독교인들 에 대하여 공식적으로 반대하고 있다.
3.내용 구조와 내용 분석
바르멘 신학 선언의 내용 전부를 볼 수가 없어서 이형기 교수의 신앙 고
백서 에 나와 있는 1. 독일내의 개신교 교회들과 기독인들에 대한 호소 와
2. 독일 개신교회의 현상황에 관한 신학선언 에 대한 부분만을 다루고자 한
다.
본 선언문은 1. 호소 부분에서 교회의 일치는 국가가 이데올로기에 입각
하여 주도함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직 성령을 통한 말씀에 대한
신앙 으로만 가능하다고 고백하였다. 2. 신학선언 은 모두 6항목으로 구성
되어있으며 각 조항은 성경구절,명제,히틀러주의와 이에 동조하는 교회에
대한 반박으로 되어 있다.
제1항목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유일한 구주이심을 밝히고(요14:6,10:1,9)
이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가죽든지 살든지 청종하면서 신뢰하고 순종해야
할 하나님의 한 말씀 이라고 못박고 성경 안에서 우리를 위하 여 증거되시
는 분은 예수 그리스도 라고 고백했다. 즉, 본 항목은 오직 그리스도 , 오
직 성경 이라는 종교개혁 신학의 부르짖음을 확인하고 있다. 또한 교회의
선포는 오직 이 하나님의 한 말씀 을 떠나서는 있을 수 없다고 하면서, 이
말씀은 특별하고 유일무이한 계시로서 성경과 더불어 모든 자연 계시와 역
사로부터의 계시를 거부한다. 말하자면 국가와 역사가 하나님의 계시라고
하는 입장에서 볼 때에 히틀러와 그 민족적 국가사회주의는 역사를 통한
하나님의 계시가 될 수도 있는것이지만, 정치,경제,군사적 세력이나 혈통,
조국,인종적 순수성
등은 결코 성경이 증언하는 진리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 명제는 당므 5항목
의 기초가 되었으며, 히틀러에 반대하는 명제로서 예수 그리스도와 성경을
내세우고 있으며,구약을 무시하는 친히틀러 신학자들에 반하여 성경 저체의
중심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강조하였다.
제2항목은 하나님의 하나의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복음이시요, 이 예
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모든 삶을 주장하시는 바(고전1:30) 하나님의 요
구라고 하는 종교개혁 신학과 성경의 중심을 말한다. 이것은 복음과 율법
이라고 하는 신학적인 주제로서 웨스터민스터 신앙고백서의 제 1항목에 나
오는 성경의 중심인 신앙과 행위 이다. 즉, 이는 복음을 통하여 성령의 역
사로서 은혜로 말미암아 구원얻은 믿음의 성도들(신앙)은 예수 그리스도를
삶의 모범으로 삼아야 한다(행위)는 말과도 같다. 믿는 사람들은 교회 안에
서나 히틀러가 주장하는 일반역사의 장 속에서도 예수 그리스도의 요구와
성경의 요구에 따라살아야 한다. 그래서 히틀러와 히틀러를 옹호하는 교회
에대하여 본 명제는 국가와 역사, 그리고 사회의 모든 차원에서도 예수 그
리스도의 통치와 요구는 적용되어야 함을 강조하였다. 사실상 히틀러 정권
은 독일 교회로 하여금 복음을 순수하게 설교할 것만을 허락하고 교회의 정
치,사회 참여를 정식으로 금하였다(1934). 칭의는 개인구원에 안착하지 말
고 교회 외적 성화인 공적인 윤리의 차원으로 이어져야 하기에 1936년 고백
교회는 반유대주의,강제 수용소,국법 위에 있는 비밀 경찰 등에 반대하는
문서를 히틀러에게 보냈다.
제3항목은 그리스도는 말씀이시요(제1항목), 그리스도는 구주시요,동시에
주님(제2항목)이라 고백한 것에 이어 이 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시요, 교회
의 통치자이심을 말하고 이어서 종교개혁 신학에 입각하여 교회를 정의 한
다. 교회의 본질은 교회의 머리 되시며 주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선포와
세례와 성만찬의 집행이라고 규정한다. 루터교는 교회의 이 두표시에만 관
심하였으나 칼빈 등 개혁교회는 말씀에 대한 순종에도 관심하였으니, 본
바르멘 선언은 개혁교회의 특징을 나타내고 있다. 즉, 엡4:15-16에 근거하
여 교회가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에게까지 성장해야 한다고 말했고, 용서
받은 죄인인 교회는 죄악의 세상 한 복판에서 신앙과 순종으로 그리고 메시
지와 교회의 질서로서 증거해야 한다고 선포했다. 따라서 히틀러와 히틀러
를 따르는 교회에 대하여
고백교회는 교회의 머리,교회의 메시지 및 교회의 질서를 히틀러의 이데올
로기적-정치적 확신과 혼동해서는 안 된다고 경고한다.
제4항목은 계속해서 교회에 관하여 말하는데교회의 직책이나 직분을 맡은
사람들은
국가의 공직자들이나 히틀러에 동조하는 국가교회의 교직자들과는 달리 마
20:25-26에 근거하여 섬기는 자세를 지녀야 할 것을 촉구한다.
제5항목은 벧2:17의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왕을 공경하라. 에근거하여 국
가공동체의 권위와 임무 및 임무의 한계를 말한다. 제4항목은 교회의 직분
들에 대한 것이라면 본 항목은 국가 공직자들에 대하여 고백한다. 국가란
하나님으로부터 의와 평화를 마련하고 유지해 주는 사명을 받았다. 그래서
이 국가는 인간적인 판단과 능력에 따라 강제력을 사용해서까지 이 사명을
수행해야 한다 고 규정하면서 교회는 아직 구원 받지 못한 세상 속에서 살
면서 이 국가의 사명과 임무를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국가야말로 하
나님의 나라,하나님의 명령과 의,이에 따르는 통치자와 피통치자의 책임을
생각나게 한다. 따라서 국가는 자기의 권한과 의무를 망각하고 전체주의나
독재주의로 나감으로 교회의 사명과 권한을 침해해서는 안 된다. 본 항목은
교회와 국가의 엄격한 분리를 선언하면서 교회의 고유한 사명과 권한 및 국
가의 고유한 사명과 권한을 선포하고 있다. 국가는 결코 교회의 사명을 대
행할 수 없으며 교회의 고유한 권한을 침범해서도 안 된다.
제6항목은 하나님의 말씀이 유일무이하고,독립적이요,자유하다(딤후2:9)
는 사실을 말하면서 당시 히틀러와 히틀러를 따르는 교회의 소망들,목적들
및 계획들 에 반대하여 미래적 시야를 열어 보여 주었다. 즉, 하나님의 말
씀은 이 세상에 의하여 방해받거나 속박받지 않고 불신의 세상으로부터 믿
는 자들을 계속 자유케 하실 것이라는 종말적 소망을 지향한다. 구체적으로
는 이 하나님의 말씀의 자유는 결코 히틀러 정권과 히틀러, 추종하는 교회
세력에도 불구하고 종말적 미래를 향하여 자유케 하는 역사를 계속한다고
하는 것이다.
본 대회는 관련된 모든 사람들이 신앙과 사랑과 소망의 일치에로 돌아갈
것을 탄원하는 바이다
4.의의/비판
고대 교회의 신조들-삼위일체 신조,기독론-은 이단들의 도전에의 응전이
었다. 루터의 복음의 재발견 내지는 구원론 역시 로마 카톨릭의 잘못된 신
학전통에 대한 항거였다. 바르멘 신학 선언 역시 히틀러의 이데올로기에 반
대하여 작성되었은즉 일종의 이단에 대한 반응이었다.
본 선언은 19세기의 독일 자유주의 신학의 흐름을 역류하여 종교개혁 신
학과 고대 신조에 이어 성경으로 소급하였기에 현대 개혁신학의 방향을 재
조정한 것이나 다름없으며, 1967년도 미연합장로교의 신앙고백의 전주곡의
역할까지 했다. 또한 독재에 항거하는 고백교회의 행동으로서 본 바르멘 신
학 선언은 제3세계들의 반독재 신앙고백 형성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Martin Greschat는 제1차 고백노회의 대표자들은 원칙적으로 볼 때 긍정
적인 국가와 신앙고백 전선의 관계를 강조하기위해 큰 노력을 기울였으나,
그들은 민족적이고 보수적인 제반환경과 그 이데올로기를 받아들임으로써
인권이 침해되는 상황에 직면해서도 최종적인 결단을 내리지 못했다고 비판
한다. 이것은 그들이 반자유주의적이며 반의회주의적인 권위적 관헌국가에
동조한 결과요 그로 인해 치룬 값비싼 대가였다.
신앙고백이란 규범하는 규범인 성경과는 달리 규범된 규범으로서 특수한
역사적 상황이나 정치.사회적 상황에 대처하여 계속 반복적으로 작성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