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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주렁박님.
주 안에서
복음의 친밀한 교제에 있음을
주께 감사드립니다.
아직은 무덥지만,
이제 가을도 눈 앞에 두고 있는 터라
님의 닉네임인 주렁박을 보면서
초가삼간 지붕에 얹혀 주렁 주렁 보일 주렁박이 연상됩니다.
이런 초가집을 요즘은 민속촌이 아니면 볼 수 없는게 아쉽습니다만....
님은,
“여러 목사님들의 설교를 듣다보면 종종 "타락한 천사장의 이름을 루시퍼" 혹은 그냥 "루시퍼"라고 하는 것을 종종 듣게 됩니다. 신구약 성경을 검색하면 "마귀 또는 사단, 옛 뱀"이라는 용어는 찾을 수 있으나 "루시퍼" 라고 하는 것은 찾을 수 없었습니다. 어느 선생님께서는 타락한 천사장의 이름을 "루시퍼"로 부르는 것이 로마 카톨릭에서 시작되었다고는 하는데, 정확한 의미와 쓰임을 알고 싶습니다. 구약성경 이사야서 14:12~15(바벨론의 멸망에 대한 예언의 말씀)에서의 계명성(새벽 별)을 금성이라 하고 금성의 이름이 루시퍼이기 때문에 타락한 천사장의 이름 즉 사단을 "루시퍼"라고 부른다면 요한계시록 22:16에 예수님을 새벽별(계명성, 금성-루시퍼)이라고 하신 부분과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요?”
라고 하면서 마귀 또는 사단을 루시퍼라고 하는 근거가 무엇인지를 질문하였습니다.
먼저 답변부터 드립니다.
님이여,
마귀 또는 사단을 루시퍼라고 하는 근거는 성경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러니까 마귀 또는 사단을 루시퍼라고 하는 말은 성경적 근거가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말입니다. ‘루시퍼’ 라고 하는 말은 마귀 또는 사단을 지칭하는 것으로 사용되고 있는 용어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님은 “신구약 성경을 검색하면 "마귀 또는 사단, 옛 뱀"이라는 용어는 찾을 수 있으나 ‘루시퍼’ 라고 하는 것은 찾을 수 없었습니다” 라고 하였습니다만, 이는 ‘루시퍼’라고 하는 말이 성경에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님은 ‘루시퍼’ 라고 하는 말을 전혀 찾을 수 없었던 것은 지극히 당연합니다. 왜냐하면요. 님은 아마도 한글개역성경이나 한글개역개정성경인 한글성경에서 ‘루시퍼’라고 하는 말을 찾아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실 한글성경에서도 전혀 찾아볼 수 없는 것은 아닙니다. 님이 본 한글성경은 우리 한국교회에서 예배시에 사용하고 있는 공적인 한글번역성경인 한글개역성경(또는 한글개역개정성경)이기 때문이며, 이곳에서는 ‘루시퍼’ 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지 않고 “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여”라고 번역하고 있으며, 바른성경도 “새벽의 아들 ‘계명성’아” 라고 번역하였습니다. 그러나 역시 한글번역성경 중의 하나인 한글킹제임성경, 킹제임스흠정역, 에서는 “오 아침의 아들 ‘루시퍼’야”라고 번역하고 있으며, 현대인의성경은 ‘샛별같은 바빌론 왕아’로, 표준새번역 및 표준새번역개정성경, 쉬운성경은 “너, 아침의 아들, ‘새벽별아’ ” 또는 “아침의 아들, 오 ‘새벽별이여’ ”로, 현대어성경은 “너 새벽을 여는 샛별 ‘바벨론아’ ”, 공동번역은 “너 새벽 여신의 아들 ‘샛별’아” 라고 각각 번역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한글번역성경인 각각을 보면, ‘계명성’, ‘루시퍼’, ‘바벨론’ 또는 ‘바빌론 왕’, ‘새벽별’ 또는 ‘샛별’로 다양하게 번역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각각은 서로 다른 뜻의 것이 아닌 같은 동일한 것을 표현을 달리 하여 묘사하는 것으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벨론’ 또는 ‘바벨론 왕’을 지칭하는 것입니다.
님이 한글개역 또는 개역개정성경에서는 보지 못했습니다만, 여러 목사님들이 ‘루시퍼’라는 말을 사용하여서 말하고 있는 것은 이사야 14:12에서 사용되고 있는 ‘바벨론(왕)’을 지칭하는 것으로 ‘새벽별’ 또는 '계명성‘을 뜻하는 히브리어 ’헬렐‘(lleyhe)을 70인경(LXX역본)에서 ’헤오스포로스‘(eJwsfovro", 빛을 발하는 자)로 번역하였고, 이것을 라틴어 벌겥역에서는 ‘빛을 내는 자’라는 의미에서 ‘루시퍼’(Lucifer)로 번역하였습니다. 따라서 여러 목사님이 ‘루시퍼’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은 이러한 이해를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말입니다. 여러 목사님들이 굳이 ‘루시퍼’ 라고 하는 말을 하는 것을 가지고 시시비비를 논할 일은 아닙니다. (번역)성경에서 찾을 수 없는 것이 아니며, 따라서 없는 말을 하거나 틀린 말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그분들이 ‘루시퍼’라고 하는 말을 사용하는 것은 잘못되었습니다. 그것은 용어가 잘못되어서가 아니라, 님이 지적하였듯이 이 ‘루시퍼’라는 말을 설교에서 "타락한 천사장의 이름이 루시퍼이다" 라고 말하며, 이 ‘루시퍼’를 천사장의 타락 기원으로 보면서 마귀 또는 사단의 기원을 ‘루시퍼’ 라고 말하여서 마귀 또는 사단이 ‘루시퍼’ 라고 말하고 있는 형편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타락한 천사장 또는 마귀, 사단이 ‘루시퍼’ 라고 하는 한에는 이것은 분명 ‘루시퍼’를 잘못 알고 있는 것이며, 그래서 설교에서 잘못 말하고 있는 참으로 그릇된 것입니다.
이에, 우리는 왜 그런가를 알아야 하겠습니다. 다시 말해서, 왜 타락한 천사장이나 또는 마귀라고도 하는 사단을 ‘루시퍼’ 라고 말하면 안 되는지, 왜 타락한 천사장이나 또는 마귀라고도 하는 사단을 ‘루시퍼’라고 말하면 틀리는 것인지를 ‘루시퍼’가 말해지고 있는 성경인 이사야 14:12-15의 본문의 이해를 통하여 명확히 알아야 할 것입니다.
‘루시퍼’가 말해지고 있는 이사야 14:12-15은 바벨론 왕에 대한 조롱의 노래에서입니다. 이 노래는 바벨론의 멸망과 남유다의 구원을 예언하고 있는 이사야 14장 전체 내용의 한 일부분입니다. 이사야 14장은 앞장인 이사야 13장에서 다루어진 이스라엘 선민 역사에 있어서 큰 전기를 이루는 바벨론을 하나님께서 멸망시키실 것을 선언한 것을 잇는 것으로, 바벨론 땅에서 포로 생활을 하고 있는 야곱의 후손인 이스라엘을 하나님께서 긍휼히 여기셔서 그들을 다시 택하여 그들에게 주어진 이스라엘 땅으로 데려가실 것이란 이스라엘의 선민 지위 회복과 귀환을 약속하시는 것(14:1-2)과 그날이 오면 이스라엘을 바벨론으로부터 해방시켜 주실 것이니 이스라엘이 지금은 자신들을 포로로 붙잡고 있으나 그들이 바벨론 왕을 조롱하여 부를 노래(14:3-23)를, 그리고 또한 바벨론과 함께 이사야가 활동하던 당시 중근동의 가장 큰 강대국이었을 뿐만 아니라 북이스라엘은 물론 남유다에 있어서도 가장 큰 위협 세력이 되고 있는 앗수르에 대한 멸망(14:24-27)과 이들 나라와 함께 큰 세력을 형성하고 블레셋의 멸망이 선언되고 있는 것에서 남유다의 구원이 예언되고 있습니다(14:28-32).
그리고 이 중에서 바벨론 왕에 대한 조롱의 노래인 14:12-15에서는 바벨론의 교만을 저주하는 것으로 계속되는데 독특한 풍자적 시로 되어 있다. 여기에서 바벨론을 ‘새벽의 아들, 계명성아’(개역성경, ‘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여’)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새벽(아침)’은 동이 트는 장면을 표현하는 것으로서 동이 트는 새벽녘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계명성’이란 단어는 ‘빛나다’는 의미를 지닌 단어에서 나온 것으로 밤 하늘에 사람의 육안으로 보기에 가장 밝은 별인 ‘금성’(Venus)을 의미하는 것으로, ‘빛을 발하는 자’(shinning) 곧 ‘별’을 말합니다. 앞에서 설명을 드렸듯이 70인경에는 ‘빛을 지닌 자’(light-bearer)의 뜻으로 ‘헤오스포로스(eJwsfovro")로 번역하였고, 라틴어 벌겥역에서는 ‘빛을 내는 자’라는 의미에서 ‘루시퍼’(Lucifer)로 번역하였습니다. 이 영향을 받은 킹제임스흠정역(KJV)과 한글킹제임스성경은 그대로 따라 ‘루시퍼’(Lucifer)로 번역하였습니다. 그러한 것을 한글성경인 개역성경과 개역개정성경은 ‘아침을 여는 별’이라 하여 ‘샛별’(새벽별)의 뜻으로 ‘계명성’이라고 번역하였습니다. 이 ‘계명성’은 이사야 14장 본문의 내용에서는 멸망하여 몰락하게 될 교만한 바벨론(바벨론 왕)을 지칭합니다.
그런데 전통적으로 ‘계명성’을 ‘사단’을 이르는 또 다른 명칭으로 말해왔습니다.특히 유대교의 사단에 대한 전승에 따르면, 계명성(Lucifer)는 원래 일곱 천사장들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신임을 가장 많이 받던 가장 영화롭고 높은 위치를 차지하는 천사장이었다고 합니다. 그런 그가 자신의 찬란한 아름다움에 사로잡혀 자신도 하나님처럼 되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였으며, 그래서 하나님과 같이 되고자 하여 하나님의 보좌를 찬탈하기 위해 자신이 거느리고 있던 수종 천사들을 대동하고 하나님께 반기를 들다 다른 천사장인 미가엘에게 대패하여 지옥으로 떨어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이러한 유대교적 전승의 영향을 개신교도 받아 계명성(Lucifer)은 사단을 지칭하는 것이라고 말해 오고 있는 형편입니다. 그러니 이는 잘못된 이해에 따른 것이라고 할 것입니다.
하지만 말입니다. ‘루시퍼’ 라고 말해지는 ‘계명성’(새벽별)은 새벽녘에 가장 밝게 빛나는 금성인 별인데 이것은 가장 교만한 자를 비유하기 위해 도입한 상징적 표현입니다. 금성은 해가 뜨기 직전 새벽녘에 하늘에서 가장 밝은 별이지만, 아침에 동이 트기 무섭게 그 빛은 완전히 사라지고 맙니다. 이는 바벨론 왕의 교만이 얼마나 허무한 것인지를 보여주기 위한 표현으로 금성이 태양 빛 아래 그 빛을 잃어버리듯이 스스로를 높여 영화를 내세웠던 것은 하나님의 영광 앞에서는 한 순간에 무너지고 말것을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찌 네가 하늘에서 떨어졌느냐?” 라고 말하며, 이것은 “민족들을 굴복시키던 네가 어찌 이제는 찍혀져 그 땅에 쓰러졌느냐?”라는 구절과 동의적 대구를 이룹니다. 여기서 ‘민족들을 굴복시키던 네가’(개역성경, ‘너 열국을 엎은 자여’)란 호칭은 새벽의 아들 계명성에 대한 보충적 설명으로서 고대 근동에서 패권을 장악했던 바벨론 왕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엎은 자여’ 라는 말이 ‘싸워서 무찌르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으로서 무력을 앞세운 세계 정복자를 의미하는 표현으로 자주 사용되고 있는 것에서도 확인됩니다.
이렇게 ‘루시퍼’, 곧 ‘계명성’으로 표현되고 있는 민족들을 굴복시키던 바벨론은 그 교만함으로 조롱과 저주의 대상이 됩니다. 바벨론은 스스로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로 올라가서 내 보좌를 하나님의 뭇별 위에 높이며 내가 북쪽 끝, 신들이 모이는 산 위에 앉을 것이고 내가 높은 구름에 올라 지극히 높으신 자와 같아지겠다”(13절)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뭇별’(laeAybek]/kl])은 ‘영적 존재인 천사들’을 지칭한다고 보는 견해와 ‘열국의 왕’을 의미한다고 보는 견해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뒤이어 나오는 ‘북쪽 끝, 신들이 모이는 산 위’에 대등되는 표현입니다. ‘북쪽 끝’은 ‘북쪽의 후미진 곳에 있는’이라는 의미입니다. 그곳에 있는 신들이 모이는 산 위는 바벨론의 주신 ‘벨’(Bel)이 머무는 곳으로 여겨졌던 바벨론 북동 편에 있는 로반디스나 엘벤드 산으로도 볼 수 있고 팔레스틴의 북쪽 시리아의 자폰 산이나 카시우스 산을 의미하는 것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고대인들은 이 산에서 최고신이 주재하는 신들의 회의가 정기적으로 열렸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런데 바벨론 왕이 그러한 신화를 염두에 두고서 자신을 신들의 집회 위에 자리한 자로 여길 뿐만 아니라 또한 자신을 하늘의 별로 여겨 하늘까지 높은 곳으로 올라가 ‘하나님의 뭇별’보다 더 높은 곳에 자신의 자리를 두겠다고 여기는 것에서 하나님에게 대항하여 하나님보다 더 높아지고자 한다는 교만을 뜻하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이는 이어지고 있는 구절인 14절에서 “내가 높은 구름에 올라 지극히 높으신 자와 같아지겠다”라고 한 표현에서도 동일합니다. 바벨론 왕이 구름보다 더 놓은 곳으로 올라가겠다는 것은 ‘지극히 높으신 자와 같아지겠다‘ 라고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지극히 높은 자‘는 ’가장 높은 자‘(the Most High)라는 의미로 주권자 하나님을 지칭하는데 그분과 ’같아지겠다‘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과 자신의 높음을 비교하겠다는 것입니다. 이는 가장 높으신 하나님처럼 되겠다는 것이며 또한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과 맞서겠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그러나 그러한 바벨론 왕은 ‘스올, 곧 구덩이 밑바닥에 빠질 것’(개역성경, ‘음부 곧 구덩이의 맨 밑에 빠치우리로다’)으로 내동이쳐질 것입니다. 이는 바벨론 왕이 하나님과 대적하는 교만에 있는 결과는 가장 낮은 비참한 곳으로 곤두박질하는 형벌을 초래할 것임을 의미합니다. 바벨론 왕이 내려갈 곳은 ‘스올’로 묘사되고 있는데 본문에서는 이를 ‘구덩이 밑바닥’(구덩이 맨 밑)으로 다시 한 번 표현함으로써 바벨론 왕이 오르고자 하였던 ‘하나님의 뭇별 위’나 ‘북극 집회의 산 위’나 ‘높은 구름’의 자리와는 정반대의 가장 낮은 곳에 떨어지는 형벌을 받게 될 것을 강조하여 나타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바벨론 왕이 이 형벌의 저주에 처할 것임을 이스라엘 백성이 노래하여 부를 것에서 바벨론 왕이 어떤 조롱을 받게 될 것인지를 예언해 주시고 있습니다.
님이여,
이상에서 설명을 드린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루시퍼’는 결코 타락한 천사장, 곧 마귀(또는 사단)의 기원을 말해주지 않으며, 따라서 ‘루시퍼’는 마귀 또는 사단을 말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그럼에도 누군가가 ‘루시퍼’를 그렇게 말한다면, 이는 성경적 근거가 전혀 없는 자의적인, 그래서 자기 주관적인 말에 불과할 뿐입니다. 그런데 한국의 목회자들뿐만 아니라 대표적인 신학자 중에서도 ‘루시퍼’를 마귀의 기원으로 말하고 있는 형편입니다. 그만큼 성경 본문의 이해와는 상관없는 성경의 몰이해에 있다고 할 것입니다.
그런데 ‘루시퍼’를 이러한 이해에 있는 것은 교회사에서 보게 되는 오랫동안 교회가 가져온 이해에 따른 것입니다. 그래서 로마카톨릭교회에서나 개신교 모두에서 이사야 14:12에서의 ‘새벽별’은 ‘루시퍼’요, ‘루시퍼’는 마귀(또는 사단)이라고 말하며 가리키고 있는 형편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왜곡되어 잘못된 이해에서 벗어나 바른 이해에 있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다행스러운 것은 지금 (소수이지만)교회 중에서는 성경의 관점에서 바르게 말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과연 그래야 하지 않겠는지요.
한편, 님은 “구약성경 이사야서 14:12~15(바벨론의 멸망에 대한 예언의 말씀)에서의 계명성(새벽 별)을 금성이라 하고 금성의 이름이 루시퍼이기 때문에 타락한 천사장의 이름 즉 사단을 "루시퍼"라고 부른다면 요한계시록 22:16에 예수님을 새벽별(계명성, 금성-루시퍼)이라고 하신 부분과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요?” 라고 하는 질문을 해 주셨는데, 이것의 이해는 어렵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말입니다. 이사야 14:12-15은 님이 말한 대로 바벨론의 멸망에 대한 예언의 말씀에서 되어지고 있는 것으로서 한 때 가장 흥왕하여 크게 세력을 떨치던 국가인 바벨론이 기세가 꺾여 힘을 잃고 멸망을 당할 것으로서 빛을 발하던 ‘새벽별’이 하늘에서 땅으로 떨어질 것을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만, 요한계시록 22:16인 “나 예수는 교회들을 위하여 내 사자를 보내어 이것들을 너희에게 증거하게 하였노라 나는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니 곧 광명한 새벽별이라 하시더라”에서의 ‘새벽별’은 예수께서 사도 요한에게 보여준 모든 계시에서 말씀해 주시고 있는 교회에 알려 해 주시는 일과 관련하여 예수님 자신이 누구인가를 알게 해주시는 것에서 ‘다윗의 뿌리’요 ‘그의 자손’이라고 말씀하며 그러한 자신의 존재를 ‘광명한 새벽별’, 곧 ‘빛나는 새벽별’로 표현하여 묘사하시는 것에서입니다. 예수님은 요한계시록에서 말씀되고 있는 자신이 그의 교회 앞에 빛나는 새벽별로서 예수님을 믿는 모든 자들이 따르며 그분의 바라봄에 있는 근원이 되시는 분이십니다.
이 ‘새벽별’에 대하여 필립 E. 휴스(Philip Edgcumbe Hughes)는 그의 저서 ‘요한계시록’(The Book of The Revelation)에서 “예수께서는 두아디라 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 이기는 자에게 ‘새벽별’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는데(계 2:28), 지금 그의 사도에게는 자신이 ‘광명한 새벽별’이라고 말씀하신다. 이러한 예수님의 자기 묘사에는 길고 긴 밤의 어두움이 곧 끝날 것이며 그림자나 끝이 없는 낮이 곧 동터올 것이라는 사실이 암시되어 있다. 예수님의 광명은 하나님 자신의 광명이다. 우리의 광명한 새벽별이신 그분의 비췸은 영원한 날이 밝아와 어두움의 그림자가 물러갈 때까지 계속되며 강화되고 지속될 것이다. 그 때가 되면 주 하나님과 어린 양의 영광이 세세토록 우리의 빛이 될 것이기 때문에 다른 빛이나 등잔이 필요 없게 될 것이다.”라고 말하였습니다. 예수님을 ‘광명한 새벽별’이라는 표현으로 왜 묘사하고 있는지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님이여.
이상으로 답글을 마칩니다.
본 답글이 ‘루시퍼’에 대한 바른 이해를 갖게 하는 것이 될 뿐만 아니라, 성경을 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의문을 갖는 해당 본문의 내용과 그 의미를 바르게 파악해야 할 중요성을 인식하는 한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성경은 이 성경을 보며 해석하는 자가 자기 임의적으로 그렇게 마음대로 해석하고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 말씀을 기록하신 본래의 의도를 좇아서 해석하고 설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성경적 관점에 의한 해석이란 다름 아닌 성경을 기록하게 하신 하나님의 본의를 무시하고 외면해서가 아니라 가장 충실하는 것에서 비로소 말해질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음을 본 답글을 통해서도 확인하게 됩니다.
주 안에서
평안을 빕니다.
첫댓글 목사님의 상세하고 친절하신 가르침에 감사드립니다.
미련한 인간이 아직도 욕심에 사로잡히고 교만한 마음을 버리지 못하였습니다.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깨닫고 깊은 은혜의 자리에서 기쁨이 충만하게 되기를 사모하며 겸손함으로 인도하심을 기도합니다. 목사님! 늘 가르치는 은사가 충만하시길 바라며 좋은 가르침에 거듭하여 감사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