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황녀이자 오스트리아 대공비 알렉산드라 파블로브나((1783-1801)
1783년 8월 9일 출생. 1801년 3월 16일 사망.
러시아 황제 파벨 1세와 뷔르템베르크 공녀이자 황후인 마리아 조피 사이에 태어난 딸들 중 첫째.
1799년 10월 30일 오스트리아의 요제프 대공과 결혼하였다. 1801년 딸 알렉산드리네를 낳았으나 아이는 태어나자마자 죽었고 그녀 또한 이 출산으로 인하여 사망하였다.
러시아 황녀이자 메클렌부르크-슈베린의 공비 옐레나 파블로브나(1784-1803)
1784년 12월 24일 출생. 1803년 9월 24일 사망.
러시아 황제 파벨 1세와 황후 마리아 조피 사이의 둘째딸. '옐레나'란 이름은 그녀의 할머니인 예카테리나 2세 여제가 지은 것으로 여제가 자신의 손녀딸을 '트로이의 헬레네'와 같은 미인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옐레나는 1799년 10월 23일(4월 12일) 메클렌부르크-슈베린의 프리드리히 루트비히 공과 결혼하였으며 남편과의 사이에 아들 하나를 두었다. 옐레나는 결혼한지 5년째 되던 해인 1803년 세상을 떠났다.
러시아 황녀이자 작센-바이마르의 대공비 마리아 파블로브나(1786-1859)
1786년 2월 15일 출생. 1859년 6월 23일 사망.
러시아 황제 파벨 1세와 마리아 조피 황후 사이의 셋째딸. 어린 시절 마리아는 천연두에 걸려 고생했는데 이때 얼굴에 흉터가 생겼다. 하지만 나이를 먹고 성숙해진 그녀는 매우 매력적인 여성이 되었으며 '가문의 진주'라고 불렸다. 마리아는 사내아이 같은 버릇을 많이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녀의 어머니와 가정 교사들은 이를 염려하였다. 할머니였던 예카테리나 여제는 자신의 손녀딸인 마리아가 진짜 dragoon(기병 혹은 사나운 사람)처럼 행동했다고 적고 있다. 또한 여제는 '마리아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았으며 마리아가 하는 놀이들은 사내 아이들의 그것과 비슷했다.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포즈는 자기 엉덩이에 손을 올려놓는 것이었다'라고 말했다.
마리아의 가정 교사들이 굉장한 노력을 기울인 끝에 마리아의 나쁜 습관들을 고치는데 성공했지만 그녀의 솔직한 성격과 당시 남자들의 일로 여겨지던 진지한 학문을 좋아하는 것은 바꾸지 못했다.
1804년 8월 3일 마리아는 작센-바이마르 대공국의 후계자인 카를 프리드리히와 결혼하였다. 이후 그녀는 독일 예나 대학 교수들의 수업을 들었고 괴테, 쉴러, 비일란트를 비롯한 당시 독일의 뛰어난 지성들을 만났다. 쉴러는 그녀가 음악과 미술에 큰 재능을 갖고 있으며 독서를 정말로 좋아한다는 것을 인정하였다. 괴테는 마리아를 그의 시대에서 가장 걸출하고 훌륭한 여성들 가운데 하나라고 일컬었다.
러시아 황녀이자 올덴부르크 공비 예카테리나 파블로브나(1788-1819)
1788년 5월 21일 출생. 1819년 1월 19일 사망.
러시아 황제 파벨 1세와 마리아 조피 황후 사이의 넷째딸. 1809년 8월 3일 올덴부르크의 공작 페터 프리드리히 게오르크 폰 홀슈타인-올덴부르크와 결혼하였는데 페터는 트바 지방의 총독으로 임명된 사람이었다. 나폴레옹 전쟁 동안 그녀는 특수 기병 연대를 조직하기도 했다. 남편이 죽은후 예카테리나는 1816년 1월 사촌인 뷔르템베르크의 왕자 빌헬름과 재혼했다. 이후 빌헬름은 뷔르템베르크의 왕이 되어 빌헬름 1세라 불렸다. 예카테리나는 첫 남편과의 사이에는 두 아들을, 두번째 남편과의 사이에선 두 딸을 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