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0년에 개봉했던,‘희망의 별-이퀘지레템바’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이 영화의 주인공 임흥세 감독은 홍명보, 김주성과 같은 국가대표 선수들을 길러낸 유명한 축구감독입니다. 영화 제목 ‘이퀘지레템바’는 작품 속 배경이 되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한 초등학교 이름이자 아프리카어로 ‘희망의 별’이란 뜻입니다. 임 감독은 화려한 지도자 생활을 뒤로 하고 2006년 선교사가 되어 남아공으로 떠났습니다.
그리고 절망 가운데 있던 빈민촌과 소년원 아이들에게 축구로 희망을 전했습니다. 특히 올 1월에는 부모가 에이즈 환자이거나 자신이 에이즈 보균자인 아이들로 구성된 축구단을 만들었습니다. 에이즈에 걸린 아이들은 자신이 죽을 것이라는 생각에 절망부터 했지만 임 감독은 이런 아이들에게 희망을 심어주었습니다. 그는 아이들이 축구를 하면서 체력도 좋아졌지만, 웃음과 희망을 되찾은 게 가장 큰 성과라고 했습니다. “희망은 바로 희망 없음에서 태어나는 별”이라는 멋진 대사가 영화속에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희망 없는 곳에서 빛나는 희망의 별이십니다. 희망을 잃은 대한민국 이번 성탄절이 더욱 기대가 되는 이유입니다. 주님 오심을 기다리며 희망의 별이 되신 예수님을 모셔 들이는 예신 가족들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별을 바라보며 사는 사람
사실 우리는 별을 거의 보지 않고 살아갑니다. 언제나 별 볼일이 없죠. 가끔 밤하늘을 올려다봐도 별이 잘 보이지 않는 인천의 공기를 어떻게 해결할 수가 없어서 별보는 일을 그만두기도 합니다. 그런데 본문의 박사들은 별보고 사는 사람들이었습니다. 2절에 그들의 직업이 드러납니다.“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그들은 별을 관찰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오늘날 천문대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고대에는 굉장한 지위를 보장받았습니다. 별의 징조를 하늘의 징조로 여긴 고대의 왕들은 그들을 통해서 나라의 길흉을 판단하고 정치를 했기 때문입니다.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며 우리가 살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사실 우리는 재림의 주님에게는 별 관심이 없습니다. 우리의 현실과 미래에 관심을 갖고 살아갑니다. 우리 생각은 하늘에 대한 생각이 별로 없습니다. 인간이라는 존재의 한계는 손으로 만져지고 피부로 느껴지는 것에 더 마음을 주고 살아가는 육체적인 속성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동방박사들을 통해서 우리는 다시 오실 주님을 맞이하는 성도로서 별을 보고 살아야 한다는 하나님의 메시지를 읽을 수가 있습니다. 땅만 쳐다보고 살지 말고 별을 보고 살아라, 땅의 징조에 우리는 관심을 갖습니다. 내년에 집값은 어떻게 된대? 이자는 더 오르나? 세계 경제는 어떻게 될건가? 그러나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하늘의 별을 보고 하늘의 뜻을 살피는 그리스도인으로 살아라!
한 부자 노인이 있었습니다. 추수를 하고 큰 창고를 지어 그 모든 알곡을 다 집어 넣을 생각을 했습니다. 주님의 마음으로 창고를 짓는 대신 가난하고 궁핍한 사람들에게 그 많은 곡식을 나누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런데 노인의 욕심은 끝이 없습니다.
노인은 말합니다. “내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그런데 눅12:20절입니다.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자신의 하루 밤이 어떻게 될지도 모르면서 이렇게 사는 자를 가리켜서 성경은 어리석다고 탄식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두고두고 꼽씹어 음미할 가치가 있습니다. 한국축구가 브라질과의 16강전에서 져서 탈락했습니다. 수준 차이가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우리는 손홍민선수등 세계에서 경쟁력을 가진 선수가 몇 명 없는데 브라질은 11명이 모두 손홍민선수 수준이었으니 어려운 경기였습니다. 다들 전반전을 보고 주무셨지 싶습니다. 그런데 반전에 한 골을 넣었습니다. 점수를 더 주지 않은 선수들의 투지에 경의를 표합니다. 도전은 끝났고 월드컵 우승의 여정은 멀게만 느껴지지만 포기하지 않는다면 언젠가 한국이 월드컵에서 우승하는 날이 오지 않겠습니까?
땅에서 눈을 들어 하늘을 보면 그 신비 속에 하나님의 손길이 보입니다. 인간의 계획과 일이 아닌 하나님이 움직이시는 수많은 별들을 보며 꿈을 꾸게 됩니다.
동방박사들은 하늘을 보고 살았기 때문에 하늘의 징조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징조를 쫓아서 먼 길을 찾아왔습니다. 대략적으로 1,500km, 낙타를 타고와도 두달 가량 걸리는 그 길을 하늘의 뜻을 찾기 위해 왔습니다. 우리에게도 재림의 주님을 기다리며 주님의 뜻을 찾기 위한 마음으로 베들레헴을 찾아오는 영적인 순례의 여정이 성경안에서, 기도의 생활에서, 세상의 삶에서 실천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다시 오실 주님을 맞이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박사들이 보여준 이 모습을 마음에 깊이 새기며 오늘도 하늘의 별,그 뜻을 찾으며 사는 성도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길은 성경 안에 있습니다.
운전을 하는 분들은 다 경험해보셨을 것입니다. 아무리 네비 양이 친절하게 안내를 해도 순간적으로 이길 인지, 저 길인지 헷갈려서 길을 잘못든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젊고 패기가 있을수록 어른들이나 주변 사람들의 충고에 귀를 닫습니다. 우리가 생각할 때 존경할만한 어른이 많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인간의 속성상 자신이 항상 자신의 주인으로 살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를 유혹해서 하나님에게서 떼어 놓은 마귀의 변하지 않는 확실한 전략입니다. 항해하는 배는 항상 등대를 기준으로 방향을 잡습니다. 그래야 가장 안전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하나님을 인생의 등대로 삼고 살아가도록 디자인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창조 이래로 수많은 사람들을 인도하셨습니다. 안전한 항해를 도우셨고 평안의 항구에 안착하게 도우셨습니다.
우리는 지혜로운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지혜의 근본은 자신을 겸손히 낮추고 하나님을 인생의 주인으로 모시는 것 입니다. 저도 코로나 19를 지나면서 목회의 길을 잃었습니다. 투지도 꺽이고, 마음도 상하고, 무척 힘이 들었습니다. 그래도 정말 감사한 것은 금요기도회와 새벽기도회를 멈추지 않고 달려온 그 힘이 오늘의 저를 지탱하고, 예신교회를 지탱한 힘이라고 믿습니다. 물론 여러분들의 기도와 사랑도 잊을 수 없습니다. 이제는 희미하지만 길이 보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교회들과 목회자들과 성도들의 힘찬 사역이 멈췄던 시간이지만 우리 하나님은 계속 일하셨습니다.
박사들이 별을 보고 팔레스타인까지 왔습니다. 그런데 중간에 그 별이 사라졌습니다. 그들은 길을 잃었습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의 헤롯 궁으로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물었습니다.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냐?”생각해보십시오. 현재 왕위에 있는 사람에게 유대인의 왕이 어디서 났느냐?고 묻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입니까? 이 질문은 결국 학살을 가져왔습니다. 2:16절입니다. “헤롯이 박사들에게 속은 줄 알고 심히 노하여 사람을 보내어 베들레헴과 그 모든 지경 안에 있는 사내아이를 박사들에게 자세히 알아본 그 때를 기준하여 두 살부터 그 아래로 다 죽이니”길을 잃는다는 것이 얼마나 큰 비극을 가져올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세월호를 통해서 수백명의 별처럼 빛날 영혼들을 잃은 대한민국이 여전히 길을 찾지 못해 소중한 젊은이들을 잃는 일이 반복되고 있어서 너무 안타깝고 마음이 아픕니다.
여러분! 우리도 세상을 살아가면서 길을 잃을 때가 있습니다. 그때 여러분의 인생이라는 항해의 등대가 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길을 다시 찾아야 합니다. 세상에 똑똑한 사람들이 여러분의 길을 찾아주지 못합니다. 그리스도인들도 다 길을 찾고 살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길이 보이지 않아 깜깜한 어둠속에 머물며 안타까운 마음으로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여러분은 길을 찾아 그 길을 확신을 갖고 힘차게 걷고 있습니까? 세상에서는 우리의 길이 보이지 않습니다. 아니 찾을 수 없습니다. 헤롯궁의 사람들도 그리스도가 어디서 나실지 몰랐습니다. 헤롯은 신하들을 불러 모았습니다.
“왕이 모든 대제사장과 백성의 서기관들을 모아 그리스도가 어디서 나겠느냐 물으니, 이르되 유대 베들레헴이오니”이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안에서 그 답을 찾았습니다. 헤롯은 나쁜 왕이지만 그의 태도는 우리가 본받아야 합니다. 대제사장들과 서기관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안에서 길을 찾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길을 잃었을 때 어떻게 다시 길을 찾습니까? 저는 말씀을 읽으며 기도합니다. “하나님, 제가 길을 잃었습니다. 주님께서 다시 길을 찾게 해주십시오.”세상에서 길을 찾으려고 하지 마십시오. 세상의 지식과 경험이 우리에게 올바른 길을 찾아주지 못합니다. 오직 성도는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자신의 인생과 가정을 위한 길을 찾아야 합니다.
밧세바 때문에 길을 잃은 다윗은 하나님 앞에 부르짖습니다. 시51:10-12절“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켜 주시고 자원하는 심령을 주사 나를 붙드소서.”주님께서 그의 마음의 등대가 되셔서 그의 남은 인생을 인도해주셨습니다. 주의 말씀 안에서 길을 찾으며 다시 오실 주님을 맞이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부탁합니다.
다른 길로 가는 복을 주십니다.
예수님을 기다렸던 시므온은 하늘의 위로를 위해 기도하며 주님을 기다렸습니다. 의롭고 경건한 삶을 통해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으며 주님을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주의 구원을 눈으로 보는 복을 누렸습니다. 동방박사들은 하늘의 징조를 바라보며 주님을 기다렸습니다. 길을 잃었을 때 하나님의 말씀안에 있는 길을 찾아 주님을 경배했습니다. 그리고 다른 길로 인도하심을 받는 복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헤롯의 마음이 주님의 마음과 같지 않다는 사실을 압니다. 헤롯은 하늘이 낸 왕을 죽여서라도 자신의 왕위를 지키고 싶었습니다. 정권이 바뀌면 늘 되풀이 되는 전 정권에 대한 복수는 우리나라에서 없어져야 할 일입니다. 잘한 것들을 계승해서 역사의 발전을 이루어야 하는데 새로 정권을 잡으면 전에 했던 일을 다 지우고 새 일을 하려고 하니 문제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이게 전통이 돼서 70년이 되었습니다. 좋은 것, 잘한 것만 받아서 이어가면 됩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새로 임원되신 분들은 지난 기에 수고하고 애쓴 것들 잘 계승하셔서 복을 누리시기를 부탁합니다. 하나님은 박사들의 수고와 애씀을 보았습니다. 어디 쉬운일이겠습니까? 자기 자리를 비우고 4-5달을 페르샤와 아무 상관이 없는 유대인의 왕을 경배하기 위해서 먼 길을 떠나는 것은 모험입니다. 자기 자리를 잃을 수도 있는 일입니다. 더구나 유대인왕으로 태어난 아기를 경배하기 위해 황금과 유향과 몰약등 보물을 준비했습니다. 게다가 자칫 잘못하면 헤롯의 음모에 빠져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일이었습니다.
헤롯은 전혀 경배할 마음이 없었지만, 박사들에게 자신도 아기에게 경배할테니 아기가 태어난 곳을 자기한테 알려달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그 아기를 죽일 마음뿐이었습니다. 순수한 박사들은 헤롯이 당부한대로 헤롯 궁에 들렀다가 고국으로 돌아갈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밤에 하나님은 꿈을 통해서 그들에게 다른 길을 제시하셨습니다. “그들은 꿈에 헤롯에게로 돌아가지 말라 지시하심을 받아 다른 길로 고국에 돌아가니라.”박사들은 베들레헴 동쪽의 광야로 갔습니다. 그 길은 험한 길이지만 디르도시(Deri Dosi)를 지나는 새로운 길이었고 안전한 길이었습니다.
그들이 베들레헴을 찾아올 때는 하늘의 징조를 보이는 별을 따라 왔습니다. 그러나 고국으로 돌아갈 때는 하나님의 지시하심을 받아 갔습니다. 즉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는 삶을 살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동방박사들의 삶에 일어난 변화요, 이 세상에 오신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의 변화입니다.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는 우리 모두에게 이 은혜가 임하기를 축원합니다. 본향에 이를 때까지 세상의 음모에 빠져 화를 입지 않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통해서 안전하고 평안한 주님이 예비하신 다른 길을 걷는 인생을 살아가기를 축원합니다.
하늘의 뜻을 구하며, 성경안에서 바른 길을 찾으며, 주님의 인도하심으로 예비하신 길을 걷는 복을 누리는 예신 가족들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