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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짐승 위에 올라앉은 한 여자
(요한계시록 17-18장)
세키네요시오
1. 요한, 성령에 이끌려 광야로
계시록은 차츰 마지막을 향해 걸음을 재촉합니다. 특히 17-18장은 바빌론이 멸망 당하는 환상을 요한이 보게 되는 곳으로, 계시록의 절정 부분 중 하나입니다. 물론 최대의 절정은 21-22장이지만, 이곳도 중요합니다. 먼저 17장부터 차례로 보겠습니다.
지금까지 하나님의 진노 가득한 일곱 대접을 든 천사들이 차례로 등장하면서, 큰 재앙이 이어지고 세상은 혼란에 빠졌습니다. 그렇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사람들은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요한은 지켜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일곱 대접을 든 천사 중 하나가 요한을 불러 말합니다.
“많은 물 위에 앉은 큰 음녀에 대한 심판을 보여줄 테니, 이리로 오라.”
요한은 영에 이끌려, 그 천사를 따라 광야로 향합니다. 광야는 지금 일어나고 있는 사건의 진상을 제대로 확인할 수 있는 곳입니다. 세상의 번잡함에서 떠나 하나님 계신 곳으로 조용히 물러서서 주의 영의 은혜를 받는 곳입니다. 이는 마치 주 예수께서 마을을 떠나 광야로 나가거나 산에 올라 오직 아버지 하나님과만 지냈던 일을 떠오르게 합니다.
광야에서 요한이 본 것은 붉은 짐승에 올라탄 한 여자였습니다. 이 여자를 태운 붉은 짐승의 온몸은 하나님을 모독하는 수많은 이름으로 덮여 있었고, 일곱 머리와 열 뿔이 있었습니다.
여러분 혹시 일곱 머리와 열 뿔을 가진 짐승이 기억나십니까? 13장에 있습니다. 바다에서 올라오던 바로 그 짐승입니다. 천상의 싸움에서 패배하고 미카엘과 그 무리에게 쫓겨나 지상에 떨어졌지만, 용에게 그 힘과 왕좌와 큰 권위를 부여받았던 그 짐승입니다.
13장에ㅓ는 그 짐승이 붉다는 말이 없었습니다. 이 짐승은 거룩한 무리와 싸워 이기도록 허락을 받았고, 모든 민족과 언어가 다른 국민을 지배할 권위까지 받았습니다. 이 짐승이 붉다고 드러낸 까닭은 아마도 주의 종들의 피를 흘리게 한 존재임을 강조하기 위해서가 아니었을까요? 어쨌든 나쁜 느낌을 풍깁니다.
2. 가증한 자들의 어머니
주의 충실한 자녀들이 흘린 피로 물든 이 짐승을 올라탄 여자는 자주색과 붉은색 옷을 입고 있습니다. 게다가 금과 보석과 진주로 몸을 장식하였고, 자신의 가증스럽고 음란한 행위로 더럽혀진 금 대접을 손에 들고 있었습니다. 이마에는 비밀에 싸인 이름이 적혀 있었는데, ‘큰 바벨론, 음란한 여자들과 지상의 가증스러운 자들의 어미’였습니다. 그뿐 아닙니다. 이 여자가 거룩한 무리와 그리스도 증인의 피에 취해 있었습니다. 요한은 바로 눈앞에서 이를 목격했습니다.
이렇게 기괴한 자가, 하나님이 창조하신 인간의 생활터전에서 가장 신성하고 고귀한 ‘어머니’라는 이름을 부끄러움도 없이 천연덕스럽게 쓰고 있다니…. 그런 세상이 앞으로 도래한다는 생각만으로도 몸이 떨릴 지경입니다. 그런 세상은 반드시 멸망 받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3. 도깨비처럼 꾸민 여자
요한은 이 도깨비처럼 꾸민 여자를 보고 깜짝 놀랍니다. 그러자 천사가 수수께끼 같은 말을 던집니다.
“왜 놀라는가? 내가 이 여자의 비밀과 일곱 머리와 열 뿔이 있는 짐승의 비밀을 알려 주겠다. 네가 본 짐승은 예전에는 있었지만, 지금은 없다. 이윽고 저 심연에서 올라오겠지만 결국에는 사라지리라.”
이 여자는 ‘큰 바빌론’이라 했습니다. 큰 바빌론은 당시 제국의 수도였던 로마를 말합니다.
4. 폭군 네로
악명높은 네로는 16세에 로마의 황제가 되었습니다. 처음 5년은 충직한 신하들 덕택에 ‘최선의 시대’라 칭송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후반에는 스스로 성적 광증이 지나쳐 폭군이 되었고, 그리스도교인을 박해하고, 결국 민중의 항거에 부딪혀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고 전해집니다. 그런데 사람들 사이에서, 네로는 죽지 않았고 다시 살아온다는 소문이 무성했다고 합니다.
앞에서 천사가 요한에게 말했던, ‘이전에 있었지만 지금은 없고, 이윽고 심연에서 나오겠지만, 결국은 소멸하는 짐승’이라는 수수께끼를 풀이해 봅니다. 아무리 대로마의 황제라 해도, ‘지금도 계시고, 이전에도 계셨고, 앞으로 오실 전능자, 곧 알파와 오메가이신 참 하나님’과는 비교할 수 없는 멸망 받을 존재로, 애처로운 인간일 뿐이라고 말한 게 아니었을까요?
그러나 지상에 사는 자로서 천지창조 때부터 생명책에 그 이름이 기록되지 않은 자들은 절대로 알아보지 못하는 이 짐승이 드디어 심연에서 그 모습을 드러내니 놀라울 뿐입니다. 이는 과거의 폭군이 다시 등장하는 것 같이 두려운 광경입니다.
5. 도미티아누스는 네로의 환생인가?
천사의 설명이 이어집니다.
“짐승의 일곱 머리는 이 여자가 앉아 있는 일곱 언덕이다. 그 언덕 위에 큰 바빌론이 서 있다. 그 언덕에 차례로 7인의 황제가 설 텐데, 다섯은 벌써 지나갔고 한 사람은 현재 왕위에 있다. 다른 한 사람은 아직 나오지 않았는데, 그는 짧은 기간 왕위에 있을 것이다.”
즉 새 왕은 계속 등장하겠지만 그들의 권력이 짧다는 말일까요? 황제라 했지만, 사실은 로마제국의 한 지방을 다스리는 이도 왕이라 불렀으므로 과연 누구를 가리키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중 AD80년 즉위한 도미티아누스는 황제의 신격화를 강력하게 추진했던 사람으로 유명하며, 우상 숭배를 거부한 그리스도인을 무섭게 박해하였습니다. 사람들은 그 도미티아누스가 네로의 환생이라 믿었습니다.
6. 짐승과 열 왕의 반란
천사의 말대로, 요한이 본 열 개의 뿔은 열 왕을 가리킵니다. 이 왕들은 하나같이 자신의 힘과 권력을 짐승에게 넘겼습니다. 그들은 어린양과 싸우지만, 주의 주, 왕의 왕이신 어린양을 이길 수 없습니다. 어린양과 함께 있는 자, 부름 받고 선택받은 자, 충실한 자들도 승리를 얻습니다.
이때 천사는 요한에게 다시 말합니다.
“네가 본 물, 저 음녀가 앉은 자리는, 많은 나라와 군중, 국민, 다른 언어의 민족이다. 또 열 뿔과 그 짐승조차도 이 여인을 미워하여, 한마음으로 여자의 옷을 벗기고 그 살을 먹고 불로 태운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이 성취될 때까지, 하나님은 그들이 마음을 하나로 뭉쳐 그 길로 가게 한다. 즉 열 뿔은 자신의 지배권을 짐승에게 넘기고 마는 것이다.”
지금까지 ‘큰 바빌론, 음란한 여인, 이 땅의 가증한 자들의 어미’로까지 불렸던, 저 붉은 짐승에 올라타 힘을 과시하던 여자에게 반전이 일어납니다. 여자를 태우고 다니며, 지금까지 복종하던 짐승이 여자를 미워하면서 반역하고 대들기 시작합니다. 그녀의 옷을 벗기고, 그 살을 먹으며, 불로 태웁니다. 마치 지금까지 잘 따르던 자신의 주인이나 다름없는 여자를 배신하는 것입니다.
이 의아한 상황을 설명하듯이 천사가 요한에게 말합니다.
“하나님의 뜻이 성취될 때까지, 하나님이 왕들의 마음을 하나로 움직여 짐승에게 그 지배권을 넘겨주게 할 것이다.”
어느 주해자는, 하나님은 자신을 배반했던 바빌론을 벌하기 위해 사탄의 세력을 이용한다고 풀이하였습니다.
7. 대 바빌론, 큰 음녀의 정체
천사는 이렇게 덧붙입니다.
“네가 본 여자는 지상의 왕들을 지배하고 있는 큰 도시이다.”
이는 계시록의 핵심을 이해하는 열쇠가 되는 말입니다. 우리는 이 부분을 읽을 때마다, ‘여자, 음녀’라는 단어에 여성 비하의 뉘앙스가 있어 계속 뭔가 부담을 느껴왔습니다. 그런데 그 단어가 실은 ‘도시’를 뜻한다고 알려 줍니다. 인간의 온갖 욕망으로 가득한, 공포의 덩어리인 이 세상입니다. 지금까지 수없이 나왔던 ‘음란한, 큰 음녀, 여자’ 이 단어가 통용되던 세계는 극심한 물질숭배와 인간의 욕망 때문에, 하나님 아닌 것을 신으로 모시는 우상 숭배가 만연한 세상입니다.
천사가 전하고자 하는 건 간단합니다. 지금까지 짐승과 그 수하의 왕들을 지배하고 있던 저 큰 음녀가 드디어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게다가 그 심판은 지금까지 여자를 따르던 짐승과 왕들이 마음을 돌려, 이제는 짐승을 신으로 추종하는 상황에서 일어납니다. 지금까지 인간을 지배하던 욕망, 우상의 실체가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선다는 말입니다.
즉 온갖 물질적인 욕망으로 팽창일로에 있던 대로마제국의 정체가 바로 그 큰 음녀이며, 드디어 때가 와서 그 여자를 따르던 짐승과 왕들의 마음을 하나님께서 돌려세웁니다. 그리하여 큰 바빌론이 드디어 멸망에 이르는 하나님의 계획이 성취됩니다.
8. 물 위의 큰 바빌론이란?
지금까지 음녀, 대음부라 불렸던 ‘물 위에 앉은 존재’가 인격을 가진 존재가 아니라, 물질적인 부를 향한 인간의 욕망이었습니다. 이 욕망을 상징하는 도시를 왜 ‘물과 바빌론’이라 하고 그 위에 앉아 있다고 했는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포로로 끌려갔던 바빌론은 메소포타미아의 두 강,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 사이에 있어, 물이 풍부하고, 교통이 발달하여 물질적으로도 풍요로운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예레미야가 바빌론에 대해서 한 예언을 봅시다.
“너희는 바빌론으로부터 도망쳐 목숨을 구하라. 바빌론은 악 가운데서 멸망한다. 지금은 주께서 바빌론에 등을 돌리고 복수하려 하신다. 바빌론은 주의 손안에 있는 금잔이다. 온 세계는 이에 취했고, 나라들은 그 술을 마시고 미쳐 버렸다. 풍요로운 땅에 사는 부자들이여. 너희 앞에 종말이 도착했다.”(렘 51장)
위의 글에 ‘물 위에 앉은 바빌론’의 의미가 잘 드러나 있습니다. 이 바빌론은 계시록 시대의 로마제국입니다. 그 증거는 세 가지로 말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우상 숭배가 극에 달한 황제 예배이며, 둘째는 그리스도인의 박해, 셋째는 지상의 부를 향한 멈추지 않는 욕망과 경쟁이 그 이유입니다.
이는 천사가 요한에게 한 말 그대로입니다. “너희가 본 여자는 이 땅의 왕들을 지배하는 저 큰 도시이다.” 이 음녀가 다스리던 큰 바빌론의 멸망은 18장에서 본격적으로 전개됩니다.
10. 무너졌다, 대바빌론이 무너졌다.
18장은 지금까지의 천사를 대신하여, 큰 권위를 가진 제3의 천사가 하늘로부터 와서 외치는 소리로 시작합니다.
“무너졌다, 대바빌론이 무너졌다. 모든 나라의 백성들아. 도망쳐라. 그의 죄에 묻히지 않도록 하라. 그의 죄가 쌓이고 싸여 하늘에까지 닿아 하나님이 그 불의를 아시게 되었다. 불행하다, 불행하다! 큰 도시, 강한 도시 바빌론이여. 너는 순식간에 멸망하리라.”
여기서는 이상할 정도로 부자라든가 상인, 화려하고 경제적인 활동을 세세하게 나열하고 있습니다. 그 당시 로마는 마치 큰 바빌론같은 대도시였으며, 메가폴리스로서 비교할 곳이 없을 정도로 화려한 도시였습니다. 그 안에는 무섭도록 어두운 인간의 물욕이 소용돌이치고 있었습니다. 로마는 세상의 온갖 진귀한 물건과 보물들이 모여들었고, 사람들은 그것을 차지하려고 부를 축적하였습니다. 그 로마, 대바빌론이 하루아침에 망한다고 합니다. 그때 상인들은, ‘저 많은 보물이 한순간에 사라져버리다니….’하고 말하며, 두려워 멀리 서서 하염없이 울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또 다른 강한 천사가 갑자기 큰 돌을 들어 바다에 던지며 이렇게 말합니다.
“큰 도시 바빌론은 이렇게 던져져 다시는 볼 수 없으리라. 수금의 연주 소리나 노래하는 소리, 피리와 나팔 소리, 신랑과 신부의 웃음소리도 더 이상 들을 수 없다. 장사치들이 이 땅의 권력자가 되어 상술로 꾀어내서, 많은 나라의 사람들이 그 유혹에 빠져들었다. 그들은 예언자와 거룩한 자들과 순교를 당한 자들의 피를 이 도시에서 흐르게 했다.”
나에게는 이 장면이, 유일한 하나님이시며 진정한 구원의 주님인 그분을 잊어버리고 만 현대인의 인간중심주의적 물질 만능의 우상 신앙의 말로를 암시하고 있는 듯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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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점점 세상은 인간중심적이요 물질주의로 빠질 것이다. 그것은 세상의 마지막이 점점 다가오는 표적일 것이다.
일본에 문맹인 저도 이런 글을 읽을 수 있어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