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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마리 마14:13-21(p.24)
13. 예수께서 들으시고 배를 타고 떠나사 따로 빈 들에 가시니 무리가 듣고 여러 고을로부터 걸어서 따라간지라
14.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그 중에 있는 병자를 고쳐 주시니라
15. 저녁이 되매 제자들이 나아와 이르되 이 곳은 빈 들이요 때도 이미 저물었으니 무리를 보내어 마을에 들어가 먹을 것을 사 먹게 하소서
16. 예수께서 이르시되 갈 것 없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17. 제자들이 이르되 여기 우리에게 있는 것은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뿐이니이다
18. 이르시되 그것을 내게 가져오라 하시고
19. 무리를 명하여 잔디 위에 앉히시고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매 제자들이 무리에게 주니
20. 다 배불리 먹고 남은 조각을 열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
21. 먹은 사람은 여자와 어린이 외에 오천 명이나 되었더라. 아멘
얼마전 미국 플로리다주 라르고라는 도시에 살고 있는 ‘율리아 욘코브스키’라는 할머니는 은행 입출금 기계(ATM)에서 필요한 돈을 빼내다가 자기 통장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1조 1325억원’이란 돈이 들어와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미국 루이지애나주에 사는 ‘대런 제임스’리는 사람도 입출금 기계(ATM)에서 필요한 돈을 빼내고 잔고를 확인해 보니 동그라미가 너무 많아 수십번을 세어봤다고 합니다. 작으마치 57조원의 돈이 자기 통장에 들어와 있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임스’씨는 혹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재벌 삼촌이 한분 계셨는데 그 삼촌이 유산을 남긴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합니다. 은행에 확인을 해보니 은행의 실수로 이런 돈이 입금된 것이었습니다.
은행의 실수요 또는 누군가의 실수로 내 통장으로 어마 어마한 많은 돈이 들어오는 경우는 이처럼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작은 돈이 뻥튀기처럼 갑자기 몇 천배로 늘어나거나 불어나는 그런 것은 없습니다.
마술사가 천원짜리를 자기 머리카락에 쓱 한번 문지른 후에 손을 펼쳐보면 천원짜리가 만원짜리가 되어 있는 그런 마술이 있습니다만 그것은 사람들의 눈을 속이는 속임수일뿐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기록된 예수님이 행하신 기적은 마술도 아닙니다. 실수로 된 것은 더더욱이나 아닙니다.
예수님은 천지를 창조하신 분이십니다. 창조의 능력을 가지신 예수님께서 행하신 기적을 본문 말씀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떡5개와 물고기 2마리..., 요한복음에서는 이 떡을 보리떡이라 했습니다. 그리고 물고기 2마리..., 주석가들은 이구동성(異口同聲)으로 말하기를 이 정도 음식은 어린아이들이 먹을 한끼 정도의 도시락이라 하였습니다.
어린아이의 한끼 먹을 도시락 정도의 음식이라는 말은 음식이 많지 않다는 것을 말합니다.
떡5개와 물고기 2마리의 적은 음식으로 여자와 아이들을 빼고 남자들만 5천명이었는데, 남자 5천명이 원한대로 배부르게 먹고도 남은 조각이 12바구니였습니다.
이 기적이 오늘 저와 여러분에게 주시는 메시지가 무엇인지를 말씀을 받으시므로 우리 삶에도 기적같은 주님의 축복이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 먼저 13절과 14절 말씀을 봅니다.
13. 예수께서 들으시고 배를 타고 떠나사 따로 빈 들에 가시니 무리가 듣고 여러 고을로 부터 걸어서 따라간지라
14.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그 중에 있는 병자를 고쳐 주시니라
예수님은 제자들을 좀 쉬게해 주려고 제자들과 함께 배를 타고 조용한 곳을 찾아 가셨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어떻게 알고는 예수님 계신 그곳으로 여자 남자 아이들까지 합치면 적게 잡아도 만명 정도가 찾아왔습니다.
예수님은 이처럼 찾아온 큰 무리들을 보시고,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불쌍히 여기신 예수님은 무리 중에 있는 병자들을 먼저 고쳐 주셨습니다.
[막6:34절] 말씀에 보면, 마태복음 보다는 예수님을 찾아온 이 큰 무리들을 향한 주님의 마음을 좀더 깊이 있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그 목자 없는 양 같음으로 인하여 불쌍히 여기사 이에 여러 가지로 가르치시더라” 하였습니다.
양이나 애완견은 주인이 없어지게 되면 당장 불쌍해 집니다. 먹을 꺼리를 챙겨주던 목자나 주인이 없게되면 양이나 애완견은 당장 굶게 됩니다. 그리고 다른 짐승들로부터 해를 당하게 되거나 힘센 짐승들의 먹이가 될 수 있습니다.
찾아온 무리들을 예수님이 불쌍히 여기신 것은 저들의 형편을 잘 아셨기 때문입니다.
저들은 세상에서 의지 할 사람도, 의지 할 그 무엇도 없는 불쌍한 사람들이라는 것을 예수님 은 아셨습니다.
예수님은 저들이 가난에 지치고 힘들어하는 것을 잘 아셨습니다.
저들이 온갖 병으로 고통 당하고 있음을 예수님은 잘 아셨습니다.
예수님을 찾지 않고는 찾아갈 곳이 없는 불쌍한 사람들이라는 것을 예수님은 아시기 때문에 그들을 불쌍히 여겼습니다.
예수님이 불쌍히 여겨주시는 자들은 틀림없이 은혜를 받게됩니다. 치료를 받게됩니다. 배고픔을 면하게 됩니다.
지금도 목자 없는 양같이 유리방황하다가도 예수님을 찾아가게 되면 예수님은 불쌍히 여겨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세상에서 의지할 것을 찾지 마시고 예수님을 찾기를 바랍니다.
. 두 번째로 15절에서 17절 말씀까지를 보겠습니다.
15.저녁이 되매 제자들이 나아와 이르되 이 곳은 빈 들이요 때도 이미 저물었으니 무리를 보내어 마을에 들어가 먹을 것을 사 먹게 하소서
16.예수께서 이르시되 갈 것 없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17.제자들이 이르되 여기 우리에게 있는 것은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뿐이니이다
병자들을 고쳐주시고 그리고 말씀을 전하여 주시다가 보니 날이 저물어졌습니다.
이곳에 모인 만 여명 중에는 아침도 먹지 않고 예수님을 찾아 온 사람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점심은 모두가 건너 뛰었습니다.
그리고 저녁때가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그제서야 배고픔이 밀려들었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께 “이 곳은 빈 들이요 때도 이미 저물었으니 무리를 보내어 마을에 들어가 먹을 것을 사 먹게 하소서”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갈 것 없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12제자 중에 빌립이 “이 사람들에게 떡을 조금씩이라도 먹이자면 200 데나리온 어치를 사온다 해도 모자라겠습니다." 하고 대답하였습니다.
빌립의 이 말은 200 데나리온의 돈도 우리는 없잖습니까? 그런 말입니다. 저들에게 떡을 사서 먹일 돈도 없는데 우리들이 어떻게 무리들을 먹일 수 있습니까? 라고 말한 것입니다.
※. 우리는 여기서 기억할 것이 있습니다.
”저들을 보낼 것 없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하신 것은 에수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 ”저들을 보내지 말고, 너희들이 먹을 것을 주라“하신 것은 빌립이 어떻게 하는가를 시험하고자 함이었습니다.
그런데 빌립은 할 수 없다라고 말했습니다.
”저들을 보내지 말고, 너희들이 먹을 것을 주라“하신 분이 예수님이시기 때문에 '할 수 있다 없다'라는 판단을 내릴 것이 아니라 예수님에게 저들을 보내지 않고도 먹을 수 있게 하실 능력이 있으시고 계획이 있으신 것을 믿고 예수님께 기도했어야 했습니다.
지금까지 병자들을 고쳐주시는 예수님을 곁에서 보았으면서도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믿지를 못한 것입니다.
⤳. 이제 이 문제를 풀어가기 위하여 예수님은 [막6:38절에 보면] ”이르시되 너희에게 떡 몇 개나 있는지 가서 찾아 보라“하셨습니다.
그제서야 제자들은 떡 가진 자가 있는지를 알아 보기 시작했습니다.
안드레가 떡 가진 한 아이를 찾아냈습니다.
[요6:8절과 9절]을 보겠습니다.
8.제자 중 하나 곧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가 예수께 여짜오되
9.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사옵나이까.
안드레는 보리떡 5개와 물고기 2마리가 있다는 것을 예수님께 말씀 드리면서도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사옵나이까?“라고 말했습니다.
우리식으로 말하자면 ‘누구 입에 부치겠습니까?’ ‘있으나 마나가 아닙니까?’..., 이런 말인 것입니다.
안드레의 이런 염려는 다 쓸데없는 염려였습니다.
. 세 번째로 18절에서 19절 말씀까지를 보겠습니다.
18.이르시되 그것을 내게 가져오라 하시고
19.무리를 명하여 잔디 위에 앉히시고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매 제자들이 무리에게 주니
눅9:14절 말씀에 보면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사람들로 하여금 떼를 지어 한 오십 명씩 앉혀라 하고 명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일에는 질서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무질서의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고전14:33절 말씀에.”하나님은 무질서의 하나님이 아니시요 오직 화평의 하나님이시니라“하였습니다.
봄 다음에 여름 여름 다음에 겨울..., 하나님은 자연의 흐름도 질서있도록 하셨습니다. 아침의 해는 항상 동쪽에서 서서히 뜹니다. 그 해가 서서히 하늘 중천에 떳다가 서서히 서산으로 넘어갑니다. 매일 매일 이 질서가 무너지지 않고 있습니다.
신앙생활도 질서있게 잘 하시기를 바랍니다.
말씀을 가르치는 자를 존경하며 지도를 받는 것이 질서입니다.
내 마음대로 하는 것은 훌륭한 신앙이 아닙니다.
낮 동안은 병자들이 고침 받는 것을 보면서 무리들은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또한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은혜을 받느라 배고픈 것도 잊고 있었으나, 날이 저물어가자 만명 정도의 사람들이 웅성 웅성 하기 시작했습니다.
배도 고파오고..., <집에 가야되나 말아야 하나 이런 생각으로 일어 섰다가 앉았다가 하는 사람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또는 해가 저물어가니까 여기 저기서 아이를 찾느라 ‘아무것이야’하고 이름을 부르는 사람도 있었을 것입니다.>
같은 동네서 온 사람들을 같이 가든지 어떻게해 보려고 동네 사람들을 찾느라 ‘아무것이 아버지요’ ‘아무것이 엄마요’ 하고 부르면서 왔다 갔다 하는 사람도 있었을 것입니다.>
낮동안 예수님에게만 집중하던 무리들이 날이 어두워오자 달라졌습니다. 무질서하게 되었습니다.
※. 무질서라는 것은 생각이 각각 다른 것이 무질서입니다.
군인들이 열(列)과 오(伍)를 잘 맞추어, 한 사람처럼 행진을 할지라도 머리 속에 생각이 다 다르다면 그 군대는 무질서한 군대입니다.
지금의 상황을 주도하시는 분이 예수님이셔야 합니다. 예수님이 일을 주관해 가시도록 우리 모두는 앉아야 합니다. 일어서서 일하시는 분이 예수님 한분이셔야 합니다.
우리는 주님이 말씀하실때까지는 앉아야 합니다. 앉아서 우리는 예수님의 입과 예수님의 손이 하시는 것을 바라봐야 합니다.
예수님은 웅성 웅성거리는 무리들을..., 잔디밭에 먼저 앉히도록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12명의 제자들은 갑자기 더 바빠졌습니다. 만명의 무리를 50씩 100명씩 앉도록 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아무튼 제자들은 사방 팔방 뛰어 다니면서 무리를 명하여 잔디 위에 전부 질서정연하게 앉도록 하였습니다.
이렇게 무리들이 잔디 위에 질서정연하게 다 앉은 후에야, 예수님은 아이에게서 받은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매 제자들이 무리에게 주니 다 배블리 먹었습니다.
예수님은 남은 조각을 버리지 말고 거두라 하셨습니다. 그래서 남은 조각들을 거두어 보니 12바구니에 가득차게 거두었습니다. 그리고 원하는대로 배블리 먹은 사람은 여자와 어린이 외에 5천명이나 되었더라 하였습니다.
⤼. 이 기적에서 우리가 마지막으로 살펴 볼 말씀은 예수님은 지금도 예수님을 찾는 자들에게 즉 은혜를 사모하는 자기 백성들에게 은혜를 베푸실때에..., 꼭 물으시는 것이 있습니다.
”너희에게 떡 몇 개나 있는지 가서 찾아 보라“라고 말씀하셨듯이 ”너에게 있는 것이 없느냐? 그것을 가져오라“ 라고 말하십니다.
나무에 불이 붙게하려면 필요한 것이 불쏘시게입니다.
요즘 사람들은 불쏘시게 하면 잘 모를 수가 있습니다. 나무에 불을 부치려면 그 나무에 불을 붙게하는 불쏘시개가 필요합니다. 주로 종이같은 것이 불쏘시게가 됩니다. 종이에 먼저 불을 부친후에 종이에 붙은 그 불을 나무에 갖다대면 나무에 불이 옮겨 붙습니다. 나무에 불을 부치려면 반듯이 불쏘시개가 필요합니다.
어린아이가 예수님의 제자 안드레에게 주었던 떡5개, 물고기 2마리가 불쏘시게 였습니다.
좋은 비유는 아니지만 2019년 4월에 강원도에 큰 산불이 일어났습니다. 산을 몇 개나 태우고 집들을 수십체 태우게된 그 불이 처음부터 큰 불이 아니었습니다. 처음 불이 시작된 것은 도로변의 전봇대에 달려있던 전기개폐기에서 불똥이 뛰어 그것이 도로변에 있던 잡풀들에 붙더니 급기야는 산을 몇 개나 태우고 동네를 태우는 그 불이 된 것입니다.
전가 스파크로 일어난 작은 불똥들이 산을 태우는 불쏘시개가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에게 달라고만 할것이 아닙니다.
비록 작을지라도 내게는 소중하고, 내게는 아까운 것이고, 내게는 지금 당장 없으면 않되는 이런 것이 있다면 그것을 주님이 찾으신다면 주님께 내어 놓아야 합니다.
물론 예수님은 불쏘시개가 없어도 세상을 다 태울 수 있도록 불을 일으키실 수가 있으시지만 우리들로 하여금 그 일에 같이 하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나사로의 굴로된 무덤의 입구를 돌로 막아놓은 그 돌을 옮겨놓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죽은 자를 살리시는 그 능력으로 돌을 굴러버리실 수 없겠습니까? 그럼에도 사람들에게 돌을 굴러내도록 하셨습니다.
가나 혼인 잔치집에서는 포도주를 만들어 주실 때 하인들에게 물두멍에 물을 채우라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무리들에게 배브르게 먹여주실 것을 이미 생각하시고, 이 기적을 작은 음식을 받으시므로 하시기로 이미 생각하시고는 ”너희에게 떡 몇 개나 있는지 가서 찾아 보라“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가져온 것이 떡5개와 물고기 2마리 였습니다.
지금 먹어야 할 사람은 남자 장정만도 5천명입니다.
그 5천명에게는 떡5개와 물고기 2마리는 있으나 마나입니다. 없는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은 아무것이 없을지라도 5천명을 배부르게 먹일 수가 있으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온 후에 광야를 지날때에..., 적어도 200만명 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매일 매일 만나를 주셨던 분이 예수님이셨습니다.
천지를 창조하신 주님이 떡5개 물고기 반찬 두어마리 없어도 5천명 아니라 5만명일지라도 먹여주실 수가 있으십니다.
그럼에도 예수님은..., 우리들 편에서 예수님을 믿음으로..., 예수님 손에 드리는 것이 있도록 하십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일에 우리들이 동참하기를 원하십니다. 믿음으로 하나님의 역사하심 속에 우리가 들어가기를 원하십니다.
엘리야 선지자가 기근때에 사르밧으로 가게됩니다. 사르밧의 성문에 이를 때에 한 과부가 그 곳에서 나뭇가지를 줍고 있는 것을 보고는 엘리야는 ”나를 위하여 작은 떡 한 개를 만들어 내게로 가져오라“ 하였습니다.
작은 떡 하나는 이 여자가 만들어 갖고 올 수는 있었습니다. 비록 떡은 작지만 이 떡은 이 여자에게게는 그의 전부 였습니다. 마지막 남은 생명과도 같았습니다. 그것을 사르밧 여인은 하나님께 믿음으로 바쳤습니다.
작은 떡 하나가 믿음의 불쏘시개가 되어, 기근이 끝나는 날까지 가루 통에 가루가 떨어지지 않게 되었고,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않게 되는 복을 받았습니다.
보리떡 5개와 물고기 2마리를 바친 사람은 한 아이였습니다.
이 아이에게는 보리떡 5개와 물고기 2마리가 자신이 가진 전부였습니다.
”너희들에게 떡 몇 개나 있는지 가서 찾아 보라“ 는 예수님의 말씀에 제자들은 무리들 속으로 들어갔어 ”여러분 혹시 떡을 갖고 있는 분이 계십니까? 예수님이 알아보라 하였습니다“라고 소리쳤을 것입니다.
그때 한 아이가 안드레에게 ”아저씨 여기 있어요 하고 보리떡 5개와 물고기 2마리가 담겨있는 도시락을 내밀었을 것입니다.
욕심은 아이라고 없는 것이 아닙니다. 배고프면 참지 못하는 것은 어른보다 아이입니다. 이 아이도 지금까지 아무것도 먹지 못했습니다. 어른들 보다 더 배가 고팠을 것입니다.
그런데 왜 지금까지 자기가 가지고 있는 떡과 물고기 반찬을 먹지 않았을까요?
저는 이렇게 추측을 해봅니다.
이 아이 역시 예수님이 병자를 고쳐주시는 것을 보면서 놀라워했을 것이며, 예수님 말씀을 전하실때에 그 말씀에 빨려들어가듯 은혜를 받느라 도시락 먹는 것 조차 잊어 버렸던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아무튼 배가 고픈 이 아이가 자기가 지금까지 꼭 간직하고 있던 자기 도시락을 누구에게 내어놓는다는 것은 사르밧 과부가 엘리야 선지자에게 대 기근의 때에 양식 구하기가 하늘의 별을 따는 것 만큼 어려울 때에 마지막 남은 가루로 떡 하나를 만들어 대접한 것 만큼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아이는 예수님에게 드렸습니다. 제자 안드레가 “여러분 예수님이 먹을 것이 있는가 알아보라 하셨습니다”하고 외치면서 다닐 때, 이 아이가 듣고는 자기의 전 재산을 드린 것입니다.
제가 옛날 옛날에 시골에서 주일학교에 다닐적에..., 그 당시 주일학교에서는 공과공부 시간때에 헌금을 선생님이 받아서 출석부에 적었습니다. 부모님이 교회 다니시지 않는 아이들은 10환 헌금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 당시는 화폐개혁 전이라 제일 작은 돈이 10환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주일날 제 친구가 헌금 시간에 일어서더니, 자기 바지 주머니에 넣어두었던 구술을 털기 시작했습니다. 바지 주머니에 있던 구슬을 다 꺼내어 이것 하나님께 드리겠어요 하는 것이 었습니다. 그리고 다른 한쪽 바지 주머니를 털기 시작했습니다. 그 주머니에는 가게에서 파는 그림 딱지.., 그때는 ‘떼기’라고 그랬습니다. 그걸 털어서 이것도 하나님께 드리겠어요 라고 했습니다.
그 친구는 우리 동네에서 구슬치기와 딱지 따먹기에는 제1인자였습니다. 누구보다도 구슬과 그림 딱지를 애지중지 하던 친구였는데 그걸 헌금으로 드리는 것을 보고 선생님은 기겁을 했지만 우리는 전부 놀랐습니다. 저 보물들을 헌금으로 바치다니 하고 우리는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습니다.
지금 우리들도 내가 가진 것 중에 가장 중한 것을 드려보시기 바랍니다. 우리 삶에 기적이 일어날 것입니다. 그것이 양적으로 크거나 값이 나가는 것을 말하지는 않습니다.
내손에서 놓치기 싫은 것을 말합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그것이 드라마일 수 있습니다. 기도할 시간은 없어도 드라마는 봐야하고, 주일 예배는 기다려지지 않으면서 주말 드라마를 보려고 월요일부터 기다린다면 그것을 주님 앞에 포기해 보시기 바랍니다.그리고 기도하며 예배를 사모해 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삶에 예수님께서 기적을 주실 것입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예수님은 불쌍한 자들을 불쌍히 여기십니다. 예수님을 찾아오는 불쌍한 자들을 그냥 돌려보내지 않으시는 사랑이 많으신 예수님이십니다.
외로우십니까? 몸에 병으로 힘드십니까? 자녀 문제로 마음이 힘드십니까? 직장 문제로 힘이 드십니까? 마음이 상하고 힘든 일이 있으십니까?
또는 믿음을 원하지만 믿음이 작아서 흔들리십니까?
지금처럼 예배에 나오는 것이 예수님을 찾아온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앉아 있는 것이 예수님을 찾아온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은헤를 주려 하십니다.
그런데 우리 편에서 예수님께 불쏘시개를 드려야 합니다. 그것은 금과 은이 아닙니다. 지금 내게는 소중한 것입니다. 마지막 남은 가루 한웅큼과 기름 병에 남은 기름 한 방울일 수도 있습니다.
5천명이 먹일 양식에 비하면 있으나 마나한 보잘 것 없는 것일 수도 있지만 내게는 귀한 것이라면 그것을 예수님이 원하신다면 예수님께 드려보시기를 바랍니다.
ㅇ.그것이 시간일수도 있습니다.
ㅇ.실제로 지갑속에 마지막 남은 얼마의 돈일수도 있습니다.
ㅇ.예수님 보다 더 사랑하는 무엇일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이 그것을 찾으십니다. 내어 드려 보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역사하시도록 우리는 질서정연하게 앉아야 합니다. 예수님만 서시어 축복의 기도를 하시도록 우리는 앉아서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을 듣고 기다리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저와 여러분의 신앙 생애에 창조주가 되시는 예수님의 손길이 함께 하시고, 우리의 자녀들과 지금 교회 안에서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함께 하시므로..., 저들을 통해 영의 양식과 함께 육의 양식를 수많은 사람들에게 풍성하게 먹이고도 12광주리가 남아서 땅끝까지 퍼주고 날라주는 일들이 예수님의 축복으로 일어나기를 기원합니다.
그리고 우리들의 기도의 제목으로 삼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권면합니다.
이스라엘아 여호와를 바랄지어다 여호와께서는 인자하심과 풍성한 속량이 있음이라
그가 이스라엘을 그의 모든 죄악에서 속량하시리로다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시온 산이 흔들리지 아니하고 영원히 있음 같도다
산들이 예루살렘을 두름과 같이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두르시리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