윗그림은 벨기에 화가 엠마뇔 노트르만(Emmanuel Noterman, 1808~1863)의 1890년작 〈술마시는 원숭이들과 개(Drinking monkeys and a dog)〉이다.
이 께느른한 모깃글의 본문은 아래에 연결된 다른 모깃글 6편을 뒤따르며 에둘러 게슴츠레 참조하거나 상기시키려는 저의를 미미하게나마 함유한다.
☞ 생각능력; 생각의지; 사고력; “생각할 수 있는 특권”
☞ 인간 감각 감정 동물 데이빗 흄 이성 정념 노예 신분 계급, 인간원, 동물원
☞ 인간 창자의 연금술, 인체 혀 피부 감각 욕망 기관 권력 이동 노예 뇌장(생각기관)
☞ 철학 인문학 개념의 개념; 추상념; 관념; 인간두뇌해부도
☞ 한나 아렌트 자유 생각 방법 위험 무념 비판 사유 착각 과거 미래 사이 르네 샤르 고야 괴몽
☞ 니체 차라투스트라 모두에게 유익하되 아무에게나 읽히지 않을 탈투문체 인간 벌레 진화 원숭이
잉글랜드 생물학자·해부비교학자 토머스 헨리 헉슬리(Thomas Henry Huxley, 1825~1895)는 1863년판 저서 《자연에서 인간이 차지하는 위치(Man's Place in Nature)》 제2장 “인간과 하등동물들의 관계”에 다음과 같이 글썼다.
“(상대적으로) 큰 몸집을 가진 포유동물의 두뇌주름은 무수하다시피 많고, 그런 주름들을 매개(媒介)하는 뇌회(腦回; 뇌이랑)도 굉장히 많은데, 인간이 뇌주름과 뇌회를 가장 많이 겸비하고 이어서 영장류, 돌고래, 코끼리 순으로 많은 뇌주름과 뇌회를 겸비한다. 이들 포유류의 대뇌표면은 구불구불한 주름들로 복잡하게 구성된 완벽한 미로(迷路)처럼 보인다 ……. 원숭이의 대뇌표면은 인간의 축약된 대뇌표면처럼 보이고, 유인원의 두뇌표면은 원숭이의 것보다 더 복잡해서 인간의 것을 더 많이 닮은 듯이 보이는데, 특히 침팬지의 것이나 오랑우탄의 것은 인간의 것과 아주 미미한 측면들에서만 구조적으로 분간될 수 있다. …… 만약 개가 생각한다고 도저히 믿길 수 없다면, 개가 감각한다고 도저히 믿길 수도 없을 것이다.”
그리고 잉글랜드 자연학자·진화생물학자 찰스 다윈(Charles Darwin, 1809~1882)은 저서 《인간의 계보(Descent of Man)》(《인간의 유래》)의 1871년판 제1장(1874년판 제1부 제2장)에 다음과 같이 글썼다.
“개미의 뇌는 세상에서 가장 불가사의한 물질원소들 중 하나여서 어쩌면 인간의 두뇌보다도 더 불가사의할 것이다.”
개와 개미를 이렇게 관찰한, 적어도, 최소한, 오로지, 헉슬리와 다윈의 소견들만 감안되면, ‘동물의 생각은 감각과 똑같거나 아주 엇비슷하다’고 잠평(暫評)될 수 있든지 아니면 ‘동물의 생각기관과 감각기관은 똑같거나 아주 엇비슷하다’고 잠평될 수 있으리라.
이런 맥락에서, 적어도 한국에 여태껏 거주한 모든 이족보행포유개체(☞ 참조)의 생각은 감각과 똑같거나 아주 엇비슷했다고 단정될 수는 없어도, 그들 중에 적어도 몇 할(割)의 생각은 감각과 똑같거나 아주 엇비슷했으리라고, 그들의 생각기관은 감각기관과 똑같거나 아주 엇비슷했으리라고, 추정될 확률이 결코 0으로 수렴되지는 않으리라.
뭐, 아니면 말고! 그러거나 말거나, 그럴 확률이 2018년 6월 27일에 죡변의 자판질로써 끼적힌 〈인뇌(人腦)와 콘크리트(공구리)의 동역학(同疫學)〉이라는 모깃글(☞ 참조)과 당최 얼마나 서르 사맛디 아니할지 사맛딜지 여부는 과연 얼마나 생각되거나 감각될까?
아랫사진은 룩셈부르크 출신 미국 사진작가·화가·큐레이터(전시전문가) 에드워드 진 스타이컨(Edward Jean Steichen, 1879~1973)의 1905년작 〈자신의 조각품 “생각자” 앞에 앉아 같은 자세를 지어보이는 오귀스트 로댕(Auguste Rodin seen in a parallel pose with Le Penseur)〉이다. 프랑스 조각가 오귀스트 로댕(Auguste Rodin, 1840~1917)은, 한국에서는 이른바 〈생각하는 사람(남자; 인간)〉이라는 제목으로써 유명한 조각품 〈생각자(Le Penseur)〉를 애초에 구상하면서 또 다른 조각품 〈지옥문(La Porte de l'Enfer)〉의 문들보 위에 앉히기로 예정했다. 이런 사연과 조각된 인물의 몹시 불편한 자세가 ‘생각의 지옥스러운 불편함’을 암시할 확률은 과연 얼마일까? 설마, 0으로 수렴할 확률마저 있을랑가말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