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개인 정보 노출로 한바탕 소동이 났었다. 금융사기를 당할뻔한 정신 번쩍 나는 사건이었다. 신분증부터 거래하는 은행 계좌까지 다 변경하고 휴대전화도 초기화시켰다. 오래 묻은 때를 닦아내는 개운한 마음도 들었다. 정신 놓고 살지 말라는 엄마의 말씀이 생각나서 울적해지기도 했다. 그렇지만 오래 마음에 담아 두지는 않았다. 더 큰 일을 당하지 않은 것만으로 감사한 일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제 행정복지센터에서 주민등록증을 찾아가라는 문자가 왔다. 당장 찾으러 가지 않아도 되는데 마음이 급해졌다. 날씨가 맑으면 걸어서 다녀오면 되는데 며칠째 바람도 불고 비도 내리는 을씨년스러운 날이 이어지고 있다.
최근에 산책 중에 개가 달려들어서 심장이 쪼그라지는 일이 있었다. 그날 덩친 큰 개가 내 옷을 물어뜯었다. 돈을 제법 내고 산 겨울 점퍼이다. 아랫단을 물어서 오리털이 삐져나온 것이다. 속은 상했지만, 주인에게 변상을 요구하기도 그렇고 그때 상황에서는 물리지 않은 것만도 감사해서 정신없이 집으로 오기 바빴다. 그때 알았어도 주인에게 변상하라고 못 했을 것이다. 수선집에 맡겼는데 흔적이 남을 거라고 했다. 이렇게 된 이상 마음을 내려놓기로 했다.
비가 추적추적 내려도 마음은 설렜다. 옷도 찾아오고 주민등록증도 찾아왔다. 다시 새롭게 시작하는 기분이 들었다. 묵은 먼지를 툴툴 털어내고 헐렁해진 신발 끈도 다시 묶고 천천히 다시 걷자고 다짐했다. 수선집 아저씨가 점퍼도 말끔하게 수선해 주어서 예쁘게 입고 다닐 수 있다. 날씨는 우중충하고 무겁지만, 신분증도 사진을 다시 찍어서 새로 발급받았고 웃푼 ‘개 사건’에 아끼던 옷이 망가졌는데 감쪽같이 수선을 해서 가져왔으니 완전히 속까지 다 뒤집어 씻어낸 개운한 하루다. - 2024년2월21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