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는 자타가 공인하는 아마야구 세계 최강국이다. 이번 대회 결승에서도 파나마를 4-2로 꺾으면서 8회 연속 우승컵을 차지해 감히 아무도 넘볼 수 없는 위치에 올랐다. 쿠바인들에게 야구는 국기(國技)다.
아바나 시내를 걷다보면 곳곳에서 야구를 하는 아이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쿠바에는 한국의 프로팀에 견줄 수 있는 16개 국립 클럽팀이 있다.
14개 각 시·도를 대표하는 팀이 하나씩 있고, 수도 아바나와 유벤투드 아일랜드에 2개팀 등 모두 16개팀이 동부와 서부로 8팀씩 나눠 한 시즌을 난다. 10월에 시작해 이듬해 3월까지 총 90경기를 치른다.
플레이오프를 거쳐 2개팀이 최종 7차전의 내셔널 챔피언십시리즈를 치른다.
미국이나 한국의 프로야구와 큰 차이가 없다. 다만 사회주의국가라 프로가 아니라는 점은 분명 다르다. 또 쿠바 국영방송이 시즌 동안 1주일에 적어도 네 번 이상 경기를 전국에 생중계를 한다는 점도 우리와 다르다.
쿠바 야구가 강한 것은 미국의 ‘팜 시스템’만큼이나 하부구조가 탄탄한 덕분이다.
쿠바는 1870년대에 야구를 시작했다. 그 이전에도 ‘바토스’(소프트볼과 비슷한 게임)라고 불리는 비슷한 놀이가 있어 야구가 쉽게 사랑받을 수 있었다.
초등학생의 반 이상은 야구 글러브를 끼고 하루를 보낸다.
재능 있는 아이들은 체육전문학교에 입학하거나 1200여개에 이르는 상급학교에서 야구 선수로 뛴다.
쿠바는 1959년 혁명으로 미국과 교류가 끊기기 전까지 토니 페레스(신시내티) 토니 올리버(미네소타) 루이스 티안트(보스턴) 등 정상급 선수들이 메이저리그를 주름잡았다.
혁명 후에도 ‘똑딱배’에 몸을 싣고 망명한 선수들이 야구의 본고장인 미국에서 이름을 떨쳤다.
쿠바 대표팀 출신 리반 에르난데스(플로리다)는 1997년 내셔널리그 챔피언결정전과 월드시리즈 MVP를 거머쥐며 팀을 월드시리즈 정상에 올려놨다. 그의 이복형인 올란도 에르난데스도 동생에 이어 메이저리그에서 뛰었다. 지난해 말 4년간 3200만달러의 조건으로 양키스 유니폼을 입은 호세 콘트라레스도 쿠바 망명자다.
일본에서도 쿠바 선수들이 뛰고 있다. 지난해 주니치에 입단한 오마르 리날레스가 대표적이다. 올해 서른다섯살인 리날레스는 열일곱살 때부터 쿠바 국가대표로 이름을 날렸던 슬러거다. 야구 덕분에 우리로 치면 국회의원까지 지냈을 정도다. 미국에서 뛰고 있는 쿠바 출신들이 망명객 신분이라면 일본에서 뛰고 있는 이들은 ‘합법적’으로 바다를 건넜다는 점에서 다를 뿐이다. 쿠바·일본간 선수협정에 따라 일정액의 보수를 받는 이들은 이 돈을 정기적으로 고국에 보낸다. 쿠바는 오랜 경제 봉쇄 탓에 삶이 넉넉지 않다.
선수들이 미국에 또는 일본에 건너가면서 ‘야구 수출’로 돈을 번다는 오명을 쓰고 있지만 아무튼 쿠바 야구는 누가 뭐래도 세계 최고 수준이다. 특이 쿠바인들의 야구사랑은 세계에서 제일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쿠바 야구의 힘은 야구 사랑에서 나온다. 위기에 빠진 한국 야구가 명심해야 할 대목이다. 멀어져가는 팬들의 사랑을 돌려야 한국 야구가 강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