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오노 나나미의 ‘남자들의 밀라노’
나의 저서 ‘남자들에게’를 읽은 사람들 중 몇몇은 내가 와이셔츠가 어떻다느니 넥타이가 어떻다느니 하면서 일본 남자들에게 까다로운 주문을 한 것처럼 느낀 듯하다. 하지만 그것은 지레짐작일 뿐이다. 나는 그 책에서 남자의 매력이란 결국 자신의 머리로 생각할 수 있고 그 생각을 자기 나름의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으며 그에 따른 자기만의 독특한 스타일을 갖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니 키가 작든 머리숱이 적든 배가 나왔든 그런 것을은 남자의 매력에 결정적인 해를 끼치는 요소가 될 수 없다. 어는 영화에서 성숙기에 달한 여자가 젊은 남자에게 한 다름과 같은 말이 기억에 남아 있다.
“근육만으로 남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엄청난 착각이야.”
근육만으로 남자가 될 수 없다는데 하물며 ‘옷’만으로 남자가 될 수 있으랴. 나는 이렇게 믿는 사람이니 남성의 패현 운운하기에 조금도 적합하지 않다. 그런데 여성잡지 <CREA>에 ‘여성 패션은 지나치게 천편일률적이다. 남성의 패션에 대해서라면 뭐라 말할 수 있다.’ 하며 원고 청탁을 수락한 것은 바로 나 자신이다. 그런 사연으로 남성 패션하면 이미 대세로 정착한 밀라노로 향하게 된 것이다.
남성 패션에 푹 절어 지낸 일주일의 결론부터 먼저 말하자면 이렇다. 남자에게 옷이란 자기표현 더하기 무장이라 여겨도 좋지 않을까? 밀라노라는 도시의 성격 때문에 이런 결론에 도달했는지도 모르겠다.
이탈리아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도시가 몇 군데 있다. 로마, 피렌체, 베네치아 그리고 밀라노, 단 밀라노는 앞의 세 도시와는 한 가지 점에서는 완전히 다르다.
로마와 피렌체, 베네치아는 모두 문화와 문명의 꽃을 활짝 피웠던 시대가 있는데 반해 밀라노는 아직 그런 적이 없다. 현재의 밀라노는 이 세 도시에 비하면 단연 풍요롭지만 도시가 풍요로웠다고 해서 문화와 문명이 시대를 맞았다고는 할 수 없다. 이탈리아에는 밀라노보다 규모는 작아도 풍요로운 도시가 몇 군데나 있기 때문이다.
문화와 문명의 꽃을 피운 도시라 할 수 있으려면 한 시대를 창조한 역사가 있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밀라노는 아직 그 최고의 찬사를 받지 못했다.
그 이유는 황제와 교황이 군림했던 로마는 별개로 치더라도 밀라노의 역사가 피렌체나 베네치아와 달랐기 때문일 것이다.
밀라노라는 도시에는 피렌체나 베네치아처럼 스스로 재능을 발휘하여 물적으로나 심적으로나 풍요로움을 누린 중산계급이 형성된 적이 없었다. 르네상스는 자유 시민이 창조한 문화 문명이다. 오랜 세월 군주제하에 있었던 밀라노에서 르네상스는 그 꽃을 피우지 못했다. 레오나르드 다 빈치가 한때 머물렀던 곳으로 알려져 있기는 하나 정작 레오나르드를 키운 곳은 피렌체 였다.
게다가 장기간 외국 세력의 지배를 받고 있었다는 점에서도 피렌체나 베네치아와 다르다. 밀라노는 중세의 봉건제에서 벗어난 후에도 프랑스에 이어 에스파냐이 지배를 받았고, 그 후에도 나폴레옹으 점령에 이어 불과 백 년 전까지만 해도 오스트리아 제국의 변경으로 존재했다. 요컨대 밀라노는 경제적인 번영을 누렸을 지언정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그 번영의 에너지를 창조 활동에 투입할 수 있는 민족적 의식을 경험한 적이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런 밀라노가 오늘날에 이르러 변화하고 있다. 밀라노가 현대에 이르러 비로소 최고의 시대를 맞이한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탈리아의 대도시 중에서는 유럽의 중심인 북유럽에 가장 가깝다는 점, 이 이점을 머지 않아 실현될 EC 통합 시대에 더욱 큰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그러니 이 밀라노의 중심부에 전선에 설치된 작전본부 비슷한 활기가 넘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작전본부’에 출입하는 남자들의 복장에서 옛 전사들이 걸쳤던 실용적이며 번쩍거린는 갑옷을 연상하게 되는 것 또한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그러고 보면 중세 르네상스 시대를 통해서 밀라노의 특산믈은 강철로 만든 갑옷이었다.
그렇다. 지금 밀라노 남성들의 패션은 현대 전사들의 갑옷인 셈이다. 그렇다면 현대 밀라노 전사들은 어떤 무장을 선택할까?
새빌로로 대표되는 영국 신사복에 도전하고 싶다면 ‘아르미니’를 입으면 된다. 어깨를 다소 웅크리고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걸어야 하는 불편함이 따르고 적정 가격 이상으로 값이 비싸다는 불편함도 참아내야 하지만 남성 패션의 혁명이라는 점만은 확실하다.
아르마니처럼 자의식이 과도한 패션은 싫다는 남자에게는 ‘로메오 질리’가 좋을 것이다. 장난꾸러기이고 싶은 남자에게는 자기 만족을 선사해 줄뿐 아니라 패션 저널리스트라 일컬어지는 전문가의 눈에도 가능성은 충분하다.
천박하게 보일 위험을 감수하는 한이 있어도 어떻게든 자기 주장을 하고 싶은 과시형에게는 ‘베르시체’를 권하고 싶다. 물장사에 투신하는 (요즘 유행하는 부동산 업자도 포함된다.) 청년 실업자의 유니폼 같은 감이 있다.
‘아메리카 지글로’라는 영화에서 지골로 역을 맡은 남자 배우가 입은 옷이 모두 아르마니였다는 사실에는 좀 납득이 가지 않았다. 베르사체로 했어야 하지 않았나 싶은 생각이 들어서 였다. 그런데 잘 생각해보니 수긍이 가는 선택이었다. 얼핏 봐서 지골로적인 것은 진정한 지골로일 수 없다. 아르마니 정도가 적당할 것이다. 공격 목표가 여자라는 차이는 있지만 지골로 또한 전사의 일종임은 분명하다.
이미 자신의 시대를 창조한 발렌티노는 이곳 밀라노에서는 성공한 자의 여유마저 느끼게 한다. 굳이 자기를 주장할 필요는 없지만 값비싼 브랜드 제품을 좋아하는 남성에게는 가장 적합하다. 게다가 발렌티노는 본질적으로 여자 옷을 만드는 작가이다.
본질적으로 여자 옷을 만드는 작가라는 점은 ‘페레’도 마찬가지이다. 이 사람이 만드는 남성옷은 멋진 여자를 정중하게 에스코트하는, 여자에게 우선권을 주어도 상관없다 하는 친절하고 자신감에 넘치는 남자에게 어울린다. 그 때문인지 오만과 불안 사이에서 흔들리는 것이 특징인 젊은 남자가 입을 옷은 아니다.
반대로 본질적으로 남성 옷을 만드는 작가인 아르마니의 패션을 말할 때 대체로 입기 편한 옷이라는 일치된 의견을 보이는데 내게는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은 함정으로 보인다.
아르마니의 특질은 그 옛날의 공산주의와 흡사하다. 누구든 한때는 물들고 마는 유의 매력적인 착각, 유토피아니까 그 한 시기가 지나면 졸업하는 이도 있거니와 하지 않은 이도 있을 것이다. 아무리 입기 편하다고 해야 잠옷을 능가할 수는 없다. 게다가 남자의 옷은 남자의 무장이다. 남자가 하나에서 열까지 딱딱함을 내던진 옷을 걸치고서 과연 진정한 무사가 될 수 있을까? 여자인 나로서는 남의 일이지만 걱정스럽다.
‘크리치아 워모’를 찾았을 때의 일이다.
나는 이 브랜드의 남성복에는 별 흥미를 느끼지 못했는데 아틀리에가 발표한 남성 화정품 광고에는 관심이 갔다. 그 광고는 세 남자의 사진을 각기 따로 사용했다. 제임스 딘, 물리학자 아인슈타인, 그리고 아마도 삼십대였을 케리 쿠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