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7. 8. 물날. 날씨: 새벽에 내린 비로 땅이 촉촉하다. 아침 나절 가는 비가 오더니
낮부터 그쳐서 아쉽다.
아침열기-신문만들기-목공(5,6학년)-점심-청소-맑은샘회의-마침회
[확신이 있는가]
장마가 새로운 형태로 오고 있다. 이른바 마른 장마다. 장마란 말도 이제 게릴라성 폭우, 다른 말로 하면 갑자기 쏟아지는 큰비로
바뀌었는데 그것도 해마다 다르게 온다. 태풍이 올라와 한 방 크게 훑기도 하겠지. 가는 비라도 와서 좋다. 텃밭 애들이 얼마나 기다리는 비인가.
농사짓는 분들이 가뭄 때문에 애가 타는데. 중부지방은 아직도 큰 일이다.
아침 일찍 둘러본 텃밭을 보니 토마토를 따야 되어 아침에는 마을 걷기를 하지 않고 텃밭 가서 토마토를 따는데 두 아이가 오지를 않는다.
소쿠리 들고 성범이랑 텃밭쪽으로 가면서 뒤에 오는 원서와 민주에게 어서 오라고 말하고 먼저 갔는데 기다려도 오지를 않는 거다. 높은 학년이고
다시 데리러 갈 시간은 없어 오겠지 하고 토마토를 따는데 발걸음 소리가 없다. 끝내 토마토 따고 순치기 한 뒤 9시 10분쯤 학교에 들어서니
학교 움집 쪽에서 쭈빗쭈빗 어색하게 우리를 맞는다.
왜 텃밭에 오지 않았느냐고 기다렸다고 말하며 좀 큰 목소리로 말했더니 말을 하지 않는다. 선생이 야단치는 줄 알고 민주는 한 쪽에 가만히
서 있다. 며칠 전에 아침 산책 안하면 안되냐고 물을 적이 있어 이번에도 그런 마음인 줄 알고 한 소리 한 건데 가만히 있다. 두 아이 다
불편한 상황에서는 뚜렷하게 말을 하지 못하는 성격인줄 알기에 교실로 올라와 이야기를 나눴다.
"왜 뒤따라 오지 않은 거니?"
"아니 땅보고 걷다 보니 선생님이 안 보여서 어디로 간 줄 몰라서 못갔어요."
"어 분명히 내가 너를 보고 말하고 갔는데. 그래서 그냥 학교에만 있었어? 혹시 산책하기 싫어서 그런 건 아니고."
"찾으려고 성범이집 쪽으로 걸어갔는데 없어서."
"음 그렇군. 선생님이 소쿠리 들고 가면 텃밭 가는 거라고 생각을 못했어?"
"아니 못봤어요."
"그래 우리를 찾아 다니다 못왔다 그거지. 그럼 선생님이 사과해야겠네. 괜히 야단치듯 큰 소리로 말해서 미안해. 오늘 일은 미안한데
선생님은 진짜 궁금해. 아침 산책을 정말 즐거워하고 좋아하더니 요즘은 더워서 즐겁지 않은가봐. 선생님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더우나 추우나
우리가 밥 먹듯이 아침에 함께 걸으며 두런두런 이야기 나누며 하루를 여는 게 아침열기 공부 가운데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말이야. 요즘은
너희들이 더울까봐 산딸기도 따러가지 않고 아침 산책을 금세 마치고 오는데 너희들도 선생님 기다리게 하지 말고 같이 얼른 다녀와 교실에서 더
재미난 걸 하면 어떨까? 정말 산책이 싫다면 아침산책을 다른 공부들로 바꿀 수는 있어."
아이들이 좋아하는 걸로만 학교 활동을 모두 채울 수는 없다 하지만 이럴 때는 차분히 하나하나 설명을 하고 서로 같이 다음 계획을 결정해야
한다. 그동안 민주는 가방에서 비닐에 담아온 자두 네 개를 꺼내놓고, 물병을 꺼내더니 비닐에 산딸기효소라고 쓰고 있다. 선생이 이렇게 말을 많이
할 때면 진지하게 들어주는 아이들이라 아침 산책길에 생긴 서로 오해는 풀렸다. 민주가 가져온 맛있는 새참을 먹으니 금세 분위기가 환하다. 이래서
아이들 세상은 좋다. 천자문과 피리, 책읽기를 마치고 쉬다가 5,6학년이 함께 하는 목공 수업에 들어간다.
10시 30분 1층 강당에서 집짓기 설계 공부를 한다. 김현동 목공 선생이 보내준 여러 형태 통나무집을 보고 우리가 짓고 싶은 집의
크기, 높이를 정하고, 지붕의 형태와 벽 모양까지 정하고, 미리 준비한 골판지로 실제 크기를 축소한 비율로 집 모형을 만들어본다. 세 모둠으로
나눠 작업을 하는데 아주 익숙하다. 학교 설계 모형 만들기도 해보고, 평상 만들기 모형도 제작해본 경험이 있어 어려워 하지 않는다. 먼저 바닥을
만들고, 기둥을 세운다. 기둥 위 지붕얹을 틀을 잡고 지붕 골조를 마무리 하는 것 까지다. 벽을 세우는 건 다음에 하기로 했다. 아이들이
작업하는 동안 김현동 선생과 큰 골조에 들어갈 목재를 가늠해보고, 우리에게 있는 통나무를 얼마나 쓰임새 있게 다듬을 수 있는지 살펴봤다. 옮길
수 있는 통나무집이니 되도록 무겁지 않도록 해야 하는 것과 도구들도 미리 챙겨야 한다. 차츰 단계를 높여 집을 지어가는 목공 수업 재미가 좋다.
평상 제작도 뿌듯하고, 이엉얹는 작업과 바닥을 깔아야 하는 일이 남은 움집에 이어 진짜 집을 짓는 일을 아이들이 할 수 있는 기회는 교육과정의
새로운 확대이다.
낮 공부 맑은샘회의에 들어가기 앞서 아이들에게 맑은샘회의에 대한 당부 말을 제법 길게 했다. 맑은샘회의를 지루해 하는 아이들이 있고,
낮은 학년들은 아직 길게 앉아있기 어려운데 아이들은 끊임없이 할 이야기를 쏟아내고 서로 발표를 하려하니 회의를 이끄는 6학년들이 미리 그걸
생각해 놓고, 중간 중간 동생들이 집중할 수 있도록 손뼉도 치고, 같은 이야기가 반복되어 모두가 힘들지 않도록 진행을 해달라는 부탁을 했다.
그 덕분인지 사회를 맡은 지우와 회의를 이끄는 6학년들이 동생들을 챙겨가며 보통보다 조금 일찍 회의를 마친다. 해마다 평가 때마다 늘 나오는
말이지만 회의를 이끄는 6학년은 따로 회의 이끄는 공부를 따로 할 필요가 있다. 다른 학교 회의 진행도 보고, 과천시의회 의원들 회의도
참관하고, 회의에 쓰이는 말들도 정리해봐야 한다.
학교를 마치고 한 시간 걸려 큰 아이 인턴십 발표회가 있는 남양주 산돌학교에 가서 저녁을 먹는다. 언제나 학교 풍경은 평화롭고 마주치는
눈길마다 인사를 잘하는 아이들이 반겨주고 운동장에 있는 웅장한 나무들은 사람을 안아주는 듯 하다. 시골에 있는 기숙학교들이 대체로 자연
속에 있지만, 5년제 비인가 중고통합과정을 운영하는 산돌학교도 뒤로는 큰 숲과 아이들이 헤엄치며 노는 큰 개천이 바로 앞에 있다. 7시부터
시작된 인턴쉽 발표회가 11시가 다되어 끝났다. 한 달 동안 학교를 떠나 배우고 싶은 곳에서 색다른 경험과 자신을 들여다볼 수 있는 인턴십
교육과정은 대안중등학교에서 보편이 된 진로 탐색인데, 한 달 동안 배우고 느낀 것들을 모두 앞에서 발표하고 정리하는 기회는 아이들을 또 다르게
볼 수 있고 스스로 성장할 수 있는 자리이다. 출판사, 공방, 장애인단체, 인테리어, 인문학아카데미, 극단, 게임 개발업체, 음식업체,
댄스회사, 동대문의류패션디자인, 시민단체, 도시대안학교, 시골동동체, 카센터, 심리상담센터에서 한 달 동안 아이들은 많은 것을 보고 배우며
자신의 앞날을 위한 속살을 채워왔다. 해마다 졸업반 아이들 인턴십 현장은 많이 비슷하고 보통 예술 분야가 많은데 학문 분야쪽으로도 더 많은
영역이 개척되고 있다. 아침 일찍 출근해 저녁 늦게까지 세게 일하고 온 친구들도 있고, 느긋한 형태로 다녀온 아이들도 있다. 세상이 녹녹치
않음을, 앞날을 위해 다시 스스로 인턴쉽을 계획하려고 한다는 아이들 말을 들으니 정말 졸업하는 구나 싶다. 졸업을 앞두고 오랜만에 아이들을 길게
보니 아이들 성격도 다시 보이고 훌쩍 자란 모습에서 색다른 매력을 본다. 인턴십 한 달이 조금 짧다는 생각을 말했더니 찬성하는
분들이 많다. 쉽지 않겠지만 한 학기나 두 달은 넘는 형태가 인턴을 받는 회사에서도 도움되겠고, 아이들이 배우는 깊이와 사회와 진로 탐색에
쓸모가 있지 싶다. 인턴십 발표 현장에서 아이들의 자신있는 발표와 자유롭고 웃음 가득한 얼굴에서 대안중등의 힘을 본다. 이렇게 청소년기를 빛나는
별처럼 아름답고 소중한 추억으로 가득채우고, 평생을 함께 살아갈 친구들을 깊이 사귀고, 앞날에 대한 설렘으로 가득한 청춘들을 본 적이 있던가.
내 학창시절엔 꿈도 꾸지 못했던, 99프로 제도권 교육아래에서 살아가는 아이들은 상상하지 못하는 청춘의 삶이 있다. 우리 대안 교육에 대한 확신을 가질
필요가 있다. 교육 주체들이 서로 배우고 자라며 행복함이 교육의 희망이다. 우리가 있는 곳에서 희망을 만들고 온 세상을 위한 꿈을 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