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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제목 : 큰 산아 네가 무엇이냐, 네가 스룹바벨 앞에서 평지가 되리라
설교본문 : 스가랴 4:6~14(느헤미야 6~8장, 스가랴 3~4장)
설 교 자 : 송호영 목사
설 교 일 : 2026년 10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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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사람에게는 어떤 일이 일어나나요?
오늘은 먼저 느헤미야와 에스라를 통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살펴보고,
이어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사람에게 어떤 복을 주시는지를 스가랴서의 말씀을 통해 살펴보겠습니다.
제1부 : 유다 공동체를 세우는 느헤미야
1. 성벽 재건 공사를 완료함
1) 성벽 공사가 드디어 끝이 났습니다.(느 6:15)
15. 이렇게 하여 성벽 재건 공사가 52일 만인 엘룰월 25일에 끝나매
산발랏과 도비야와 게셈이 끝없이 조롱과 협박을 하며 방해를 하였음에도
성벽 공사가 52일 만에 모두 끝이 났습니다.
둘레 약 4km로 추정되는 예루살렘 성은 작은 성이 아니고,
더구나 산악 지형임에도 이렇게 빨리 끝낼 수 있었던 것은,
온 백성들이 자기들의 일을 뒤로하고 오직 성벽 쌓는 일에만 몰두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기간 동안에 하나님께서 원수들의 방해를 막아주셨기 때문입니다.
2) 성벽 공사를 완료하자 주변 민족들이 듣고 두려워하며 낙담함(16절)
16. 우리의 모든 대적과 주위에 있는 이방 민족들이 이 소식을 듣고 다 두려워하고
크게 낙담하였으니, 그들이 우리 하나님께서 이 역사를 이루신 것을 앎이니라.
성벽 공사가 완료되자 산발랏의 일행은 물론
주변의 이방 나라들까지도 모두 두려워하며 크게 낙담했습니다.
이 일이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된 일이며,
하나님의 도우심이 아니라면 포로 백성으로 성읍을 건설한다는 것이
불가능한 일임을 그들도 알았기 때문입니다.
2. 잘못된 유착 관계
1) 도비야와 동맹관계를 맺은 유다의 귀족들(느 6:17~19)
17. 또한 그 무렵에 유다의 귀족들이 여러 번 도비야에게 편지하였고
도비야의 편지도 그들에게 이르렀으니
18. 도비야는 아라의 아들(아라의 자손) 스가냐의 사위가 되었고,
도비야의 아들 여호하난도 베레갸의 아들 므술람의 딸을 아내로 맞이하였으므로
유다에서 그와 동맹한 자가 많음이라.
19. 그들이 도비야의 선행을 내 앞에 말하고(내 앞에서 공공연히 도비야를 칭찬하고),
또 내 말도 그에게 전하매(내가 하는 말은 무엇이든지 다 그에게 일러바치매)
그래서 도비야가 내게 편지하여(나에게 협박편지를 여러 통 보내서)
나를 두렵게 하고자 하였느니라.
느헤미야의 성벽 건설을 계속 방해했던 암몬 사람 도비야는
아라의 자손 스가냐의 사위였습니다.
도비야의 장인 스가냐는 동문지기(동문 문지기)이고,
스가냐의 아들 스마야는 성벽 건설에 참여했습니다(느 3:29).
또 도비야의 아들 여호와난도 므술람의 딸과 결혼했다고 했는데,
므술람은 성벽 건설을 할 때
두 몫이나 참여했던 제사장 중 한 사람입니다(느 3:4, 30).
도비야는 이들을 통해서 느헤미야에 대한 일들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도비야는 유다의 귀족들과 혼인하여 동맹관계를 맺고는
이 사람들을 통하여 느헤미야의 동태를 살피고,
이 사람들을 통하여 느헤미야를 조롱하고 협박하는 일을 했습니다.
2) 아직도 벗지 못한 혼합주의
이 사람들이 도비야와 혼인동맹을 맺기 전에는 신실한 믿음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자원하여 동문지기가 되고,
성벽건설도 두 몫이나 할 정도로 열정을 가진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도비야와 가깝게 지내면서 현실주의적인 타협과 인맥 정치를 경험하게 되고,
그렇게 서서히 신앙의 신실함을 잃어버립니다.
이들은 성벽 건설에 참여하면서도
느헤미야 옆에서 공공연하게 도비야를 칭찬하는 말을 했습니다.
그리고 도비야의 말을 듣지 않는 느헤미야에게 은연중에 압력을 넣었습니다.
어찌 보면 도비야보다 이런 자들이 더 악한 자들입니다.
내부에서 무너지게 하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 묵상 : 한 발은 신앙에, 한 발은 세상에 두는 자가 되지 마십시오.
본문의 경우처럼 도비야는 분명히 이스라엘의 대적자인데
그가 세상에서 세력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그와 동맹을 맺는 것은,
하나님과 마귀를 동시에 섬기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싫어하는 일은 돈을 많이 버는 일이라고 해도 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일은
부와 명예와 권세 등 그 무엇이 있다고 할지라도 가까이해서는 안 됩니다.
가령 그리스도인이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 우상 앞에 나가 절하는 것과 같은 일을 하거나
선거에 이기기 위해 없는 말까지 지어내며 공격하는 짓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손해를 보는 한이 있더라도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일에는 참여하지 마십시오.
3. 예루살렘에 파수꾼을 세움
성벽을 완성했으니 이제 느헤미야는 페르시아의 황제에게 가야 할 때가 왔습니다.
그러나 예루살렘 성은 큰데 그 안에 사는 자는 얼마 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느헤미야는 성을 안정하게 지킬 방안을 마련해 줍니다.
1) 예배를 바로 세움(느 7:1)
1. 성벽이 건축되매 문짝을 달고, 문지기와 노래하는 자들과 레위 사람들을 세운 후에
느헤미야는 먼저 예배가 바로 드려지도록
성전 문지기와 노래하는 자(성가대)를 세우고 레위인을 세웁니다.
제사장은 이미 세워져 있으니 성전 문지기가 성전을 지키고,
성가대가 찬양을 하며, 레위인이성전의다른일을맡으면
예배드리는 일은 차질 없이 진행될 수 있을 것입니다.
2) 예루살렘의 지도자와 파수꾼을 세움(2~3절)
2. 내 아우 하나니와 영문의 관원(예루살렘 성의 사령관) 하나냐를 세워
예루살렘을 다스리게 하였는데,
하나냐는 충성스러운 사람이요 하나님을 경외함이 무리 중에서 뛰어난 자라.
3. 내가 그들에게 이르기를 “해가 높이 뜨기 전에는 예루살렘 성문을 열지 말고
아직 파수할 때에 곧 문을 닫고 빗장을 지르며, 또 예루살렘 주민이
각각 자기가 지키는 곳에서 파수하되(자기가 지키는 지정된 처소에서 경비를 서되)
자기 집 맞은편을 지키게 하라(자기 집 가까운 곳에서 경비를 서도록 하라)”하였노니
느헤미야는 하나니와 하나냐를 세워 예루살렘을 다스리게 합니다.
하나니는 느헤미야의 아우이고,
하나냐는 하나님을 경외함이 무리들 중에 뛰어난 자라 했습니다.
그리고 그 지도자들에게 해가 높이 뜨기 전에는 예루살렘 성문을 열지 말고,
문지기가 문을 지키고 있을 때 성문을 닫고 빗장을 지르라고 했습니다.
보통 성문은 아침 해가 뜰 때 엽니다만,
아직 예루살렘에 사람이 적으니 해가 중천에 떠서
예루살렘 시민들이 모두 밖으로 나왔을 때 성문을 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문지기가 있을 때 문을 닫으라는 것은
사람들이 다 들어가기 전에 성문을 닫아서 적들이 틈을 타지 못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 유다 공동체를 바로 세운 느헤미야
느헤미야는 단지 성벽을 세우기 위해 온 것이 아닙니다.
성벽 세우는 일을 통해 예배가 회복되고,
유다 백성들이 하나가 되게 하기 위해 온 것입니다.
지도자를 바로 세우고,
흩어진 제사장과 레위인을 바로 세워 예배가 회복되게 했으며,
파수꾼을 세워 성을 바로 지키게 했습니다.
제2부 : 에스라의 좌절과 회복
1. 에스라의 좌절 : 때로 선지자도 좌절합니다.
1) 13년 동안 에스라에 대한 기록이 없는 이유
에스라가 에스라서 9장에서 백성들 앞에서 여호와의 율법을 낭독하여 준 후에
백성들의 삶을 개혁하는 여러 일들을 행하였었는데,
그 후로 느헤미야가 와서 성벽을 건설하기까지 13년 동안
에스라에 대한 기록이 전혀 없습니다.
느헤미야가 와서 성벽을 건설하는 동안 산발랏과 도비야 일당의 공격을 막아내면서
다른 한편으로 농사까지 지어가면서 52일 만에 성벽을 건설하는 동안에도
에스라에 대한 기록이 없습니다.
그동안 에스라가 어디에서 무엇을 했는지,
페르시아에 있었는지 예루살렘에 그냥 머물러 있었는지 확인이 되지 않고 있습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가 어디에 있었든지 간에
에스라는 실망과 좌절에 빠져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2) 에스라의 절망과 좌절
에스라가 좌절한 이유는 그가 말씀을 전하였으나
백성들이 전혀 변화되지 않는 모습 때문입니다.
느헤미야 1:3의 말씀은 그동안 에스라가 겪은 고통을 한 구절로 짤막하게 설명합니다.
성벽이 무너져 있으니 주변 나라들의 방해로 예배조차 제대로 드려지지 못했고,
백성들은 다시 이리저리 흩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또다시 집이 불타서 예루살렘은 사람이 살지 못할 곳이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학사이며 대제사장인 에스라도 좌절할 수 있습니다.
에스라가 예루살렘에 올 때 과거 솔로몬 성전에 있던 성물들을 가지고 왔습니다.
스룹바벨에 의해 지어진 성전에 그가 가져온 성물이 들어가니
이제 예배드릴 수 있는 모든 조건이 다 갖추어진 것입니다.
그러나 주변 나라가 방해를 놓자 곧 무너지는 백성들을 보고 그는 절망에 빠집니다.
● 묵상 : 선지자도 좌절할 수 있습니다.
➀ 에스라가 좌절한 이유
에스라는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포로 된 이유를 잘 알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배반하고 말씀을 멀리했기 때문임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이 다시 회복되려면 하나님께로 돌아와야 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려면 말씀을 배우고 읽고 묵상해야 합니다.
그래야 자기들이 무엇을 잘못했는지를 알고 회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에스라가 처음 말씀을 전할 때는 말씀을 듣는 듯하더니
이런저런 방해를 받자 말씀 듣기를 거부하고 백성들이 다시 흩어져가고 있습니다.
말씀을 떠나서 포로가 되었는데,
포로가 된 상황에서도 말씀을 떠나면 이젠 죽는 길뿐입니다.
그러니 에스라가 좌절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전하고 외쳐도 듣지 않으니 좌절합니다.
이러면 안 되는데 점점 멸망할 짓들만 하고 있으니 절망이 되는 것입니다.
➁ 열심히 섬기는 자가 겪는 좌절
아예 신앙에 열심이 없는 자들은
백성들이 신앙이 자라지 않는 모습을 보아도 절망하지 않습니다.
자기도 신앙이 없으니 그저 그렇게 바라보는 것입니다.
에스라처럼 백성들을 변화시키려는 열정을 가진 자들이 이런 좌절을 겪습니다.
이런 좌절은 겪는 본인에게 큰 고통이 되지만,
하나님 보시기에는 이 좌절이야말로
하나님의 택한 백성임을 가장 분명하게 보이는 것입니다.
혹시 에스라처럼 주님을 바로 섬기지 못해 아파하고 고통스러워하고 있다면
하나님께서는 이런 것을 크게 기뻐하신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2. 하나님의 말씀을 향한 백성들의 간절함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에스라를 좌절과 절망에 빠지게 할 만큼 포로에서 돌아온 유다 백성들이 말씀을 멀리했고
에스라가 말씀을 보자고 해도 도망하기에 바빴는데,
그들이 먼저 에스라에게 와서 말씀을 읽어 달라고 요청한 것입니다.
1) 말씀을 읽어줄 것을 에스라에게 요청함(느 8:1)
(1절 성경구절 아래)
성벽 공사가 완료된 후 일곱째 달이 되었습니다.
유대인은 일곱째 달에 새해가 시작됩니다.
백성들은 새해가 시작되는 일곱째 달이 가까이 오자 일제히 수문 앞 광장에 모여
학사 에스라에게 여호와의 말씀을 가져와서 읽어줄 것을 요청합니다.
선지자가 겪는 좌절과 번아웃에 빠져 있는 에스겔에게
말씀을 읽어줄 것을 요청한 것입니다.
2) 모든 백성들이 일제히 모여서 : 말씀을 받을 준비가 되어 있음(1~2절)
1. 이스라엘 자손이 이렇게 각기 자기들의 마을에서 살고 있다가
일곱째 달이 되었을 때에 모든 백성이 일제히 수문(水門) 앞 광장에 모여
학사 에스라에게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명령하신 모세의 율법책을 율법책을 가져오기를 청하매
2. 일곱째 달 초하루에 제사장 에스라가 율법책을 가지고
회중 앞, 곧 남자나 여자나 알아들을 만한 모든 사람 앞에 나와서
이 모임은 에스라나 느헤미야가 주관한 것이 아닙니다.
백성들이 스스로 모여서 에스라에게 말씀을 읽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들이 이렇게 자발적으로 모인 것은 말씀을 듣고자 하는 열망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말씀을 받을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3) 그 율법책에 귀를 기울임 : 말씀에 대한 자세(3절)
3. 에스라가 수문 앞 광장에서 새벽부터 정오까지
남자나 여자나 알아들을 만한 모든 사람 앞에서 큰 소리로 낭독하니,
모든 백성이 그 율법책에 귀를 기울였는데
에스라가 급하게 나무로 임시 단상을 만들어 그 위에 올라가서 율법책을 낭독하자
모든 백성이 그 율법책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한 말씀이라도 놓칠세라 숨죽여 낭독하는 소리에 집중하며 들었습니다.
● 묵상 : 성벽 공사로 받은 은혜를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간절함으로 표현
에스라가 좌절할 정도로 말씀과 멀리 있던 백성들이
어떻게 이렇게 스스로 모여 말씀을 낭독해달라고 요청했을까요?
느헤미야의 주도로 성벽을 건설하는 동안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었으나 하나님께서 대적들의 공격을 막아주셔서
그 엄청난 일을 52일 만에 완성하게 하셨습니다.
그들은 그 받은 은혜를 말씀에 대한 간절함으로 표현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은혜를 주셨으니 이제 그들이 하나님께 응답을 해야겠는데,
무엇으로 응답해야 할지 모르니 하나님의 뜻을 알도록 말씀을 읽어 달라는 것입니다.
3. 말씀에 대한 백성들의 반응
1) 에스라가 책을 펼치자 모두 일제히 일어남(느 8:4~5)
4. 그때에 학사 에스라가 특별히(임시로) 만든 높은 나무 강단 위에 서서 율법책을 읽었으며,
그의 오른쪽에 선 자는 맛디댜와 스마와 아나야와 우리야와 힐기야와 마아세야요,
그의 왼쪽에 선 자는 브다야와 미사엘과 말기야와
하숨과 하스밧다나와 스가랴와 므술람이라.
5. 에스라가 백성이 다 볼 수 있도록 강단에 높이 서서 그 책을 펼치자
백성들이 모두 일제히 일어서니라.
6. 에스라가 위대하신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하매
모든 백성이 손을 들고 “아멘 아멘”하고 응답하고,
몸을 굽혀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여호와께 경배하니라.
아마도 에스라는 마지못해 나왔을 것입니다.
그 모임 자체를 그가 주도하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전에도 말씀을 읽었지만 아무런 열매가 없었으므로
이번에도 그럴 것이라 여기고 그저 책을 가져와 큰 소리로 낭독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에스라가 책을 펼치자 온 백성이 일제히 일어났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경외감을 표현한 것입니다.
포로 이후 이제까지 이스라엘 백성이 말씀을 낭독할 때
이렇게 일제히 일어난 적이 없었습니다.
2) 아멘으로 응답하고 엎드려 여호와께 경배함(6절)
(6절 성경구절 위에)
그가 책을 펼친 것을 보고 온 백성이 일제히 일어나자
학사 에스라는 여호와 하나님께 찬양했습니다.
에스라가 하나님의 은총을 찬양하자 온 백성이
“아멘 아멘”하고 응답하며 몸을 굽혀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여호와께 경배했습니다.
3) 에스라는 낭독하고 레위인은 말씀을 설명해 주고(7절)
7. 예수아와 바니와 세레뱌와 야빈과 악굽과 사브대와 호디야와 마아세야와
그리다와 아사랴와 요사밧과 하난과 블라야와 레위 사람들은
백성들이 제 자리에 서 있는 동안에 율법을 깨닫도록 설명해
에스라가 단 위에서 성경을 낭독할 때
에스라의 오른쪽에는 여섯 명이, 왼쪽에는 일곱 명이 서 있었습니다.
그리고 단 아래에는 레위인들이 백성들 사이를 돌아다니며
에스라가 낭독하는 말씀이 무엇인지 백성들에게 설명하여 주었고,
혹시 이방 지역에 살다가 히브리어를 잊은 자들이 있다면
그들이 아는 이방의 언어로 통역을 해 주기도 했습니다.
4) 말씀을 깨닫고 크게 기뻐함(8, 12절)
8. 하나님의 율법 책이 낭독될 때에 그들이 해석하고(통역하고)
그 뜻을 밝혀 설명하여 백성에게 그 낭독하는 것을 다 깨닫게 하니
12. 모든 백성이 곧 가서 먹고 마시며 나누어 주고 크게 즐거워하니,
이는 그들이 그 읽어 들려준 말씀을 밝히 깨달았기 때문이라.
이렇게 에스라는 낭독하고 레위인들이 설명해 주니
백성들이 그 말씀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말씀을 깨닫고 그들이 저지른 죄가 얼마나 큰지 알게 되자
그들은 통곡하며 울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느헤미야와 제사장 에스라가 그날은 여호와의 성일이니
그들이 죄를 지었음을 인하여 근심하지 말고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라고 외치자 백성들은 곧 그 말씀에 순종하고 크게 기뻐합니다.
4. 이날은 여호와의 성일이니 근심하지 말고 기뻐하라
1) 이날은 성일이니 여호와를 인하여 기뻐하라(느 8:10)
(10절 성경구절 아래)
“이날은 여호와의 성일이니 기뻐하라”
그들이 죄를 고통스러워하며 슬퍼할 때 주께서 이미 그들의 죄를 용서하셨습니다.
그들이 말씀을 듣기를 사모했고, 말씀이 낭독될 때 일제히 일어났으며,
에스라가 찬양할 때 엎드려 경배했고,
말씀을 통해서 죄를 깨달을 때 통곡하며 회개하였으니 죄가 용서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신 하나님께
큰 기쁨과 즐거움으로 영광을 올리라는 것입니다.
2)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 이것이 너희의 힘이니라(10, 12절)
10. 느헤미야가 또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가서 살진 짐승과 단것을 차려서
마음껏 먹고 마시되, 준비하지 못한 자에게는 나누어 주라.
이날은 우리 주님의 성일(거룩한 날)이니 근심(슬퍼)하지 말라.
여호와를 인하여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
(여호와를 기뻐하면 주께서 너희에게 힘을 주실 것이라.)”하고
12. 모든 백성이 곧 가서 먹고 마시며 나누어 주고 크게 즐거워하니,
이는 그들이 그 읽어 들려 준 말씀을 밝히 깨달았기 때문이라.
여호와를 즐거워하는 것이 우리의 힘입니다.
여기에서 ‘힘’이라는 것은 ‘방파제’를 뜻합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여호와를 즐거워하는 자를
하나님께서 지키시고 보호하신다는 뜻합니다.
나의 업적을 자랑하며 즐거워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자랑하며 기뻐합니다.
솔로몬처럼 자기가 만든 성전을 보고 자랑하며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의 죄를 용서하시니 기쁘고, 나를 사랑하시니 기쁘고,
나에게 새 생명을 주셨으니 기쁜 것입니다.
이런 자를 하나님께서 보호하시니,
하나님을 기뻐하는 것이 곧 우리의 힘인 것입니다.
5. 말씀에 따라 초막절을 지킴
1) 율법책에서 초막절의 절기에 관한 것을 발견함(느 8:13~15)
13. 그 이튿날 온 백성의 족장들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율법의 말씀을 밝히(더 자세히) 알고자 하여 학사 에스라에게 모여서
14. 율법에 기록된 것을 본즉 여호와께서 모세를 통해 명령하시기를
“이스라엘 자손은 일곱째 달 절기에 초막에서 지낼지니라” 하였고,
15. 또 일렀으되 “모든 성읍과 예루살렘에 공포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산에 가서
감람나무 가지와 들감람나무 가지와 화석류나무 가지와 종려나무 가지와 기타
무성한 나뭇가지를 가져다가 기록한 바를 따라 초막을 지으라 하라” 한지라.
2) 초막절을 지킴 : 말씀에 대한 즉각적인 순종(16절)
16. 이에 백성들이 나가서 나뭇가지를 가져다가 혹은 지붕 위에, 혹은 뜰 안에,
혹은 하나님의 성전 뜰에, 혹은 수문 광장에, 혹은 에브라임 문 앞 광장에 초막을 짓되
그들은 그 말씀을 들은 즉시 나뭇가지를 가져다가
혹은 지붕 위에, 혹은 뜰 안에, 혹은 하나님의 성전 뜰에,
혹은 수문 광장에, 혹은 에브라임 문 앞 광장에 초막을 지었습니다.
그들은 온 백성이 율법에 기록된 대로 초막절이 지켜지는 것을 보고
모두 함께 크게 기뻐했습니다.
3) 순종의 결과로 온 큰 기쁨(17절)
17. 포로로 사로잡혀 갔다가 돌아온 모든 사람이 초막을 짓고 그 안에서 지내니,
눈의 아들 여호수아 때로부터 그날까지 이스라엘 자손이
이처럼 성대하게 절기를 지킨 일이 없었으므로 이에 크게 기뻐하며
말씀대로 순종하니 그들 마음에 큰 기쁨이 솟아오릅니다.
이 기쁨은 세상 것을 얻었을 때 느끼는 기쁨과 그 차원이 다릅니다.
하나님께 용서받은 자의 기쁨,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의 기쁨,
나뿐 아니라 저 사람도, 이 백성 모든 자들이
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것을 바라보는 자의 기쁨입니다.
● 묵상 : 이 일을 위하여 에스라는 13년 동안 절망 가운데 있었습니다.
이 일은 에스라가 13년 동안 좌절과 절망을 겪으면서도
그 믿음을 포기하지 않고 하나님께 간구하여 기도한 열매입니다.
그가 그 절망 속에서도 기도하니
하나님께서 이 일이 이루어지게 하셨습니다.
제3부 : 큰 산아 네가 무엇이냐, 네가 스룹바벨 앞에서 평지가 되리라
1. 넷째 환상 : 대제사장 여호수아
1) 유다 백성을 인도한 대제사장 여호수아
스가랴가 본 네 번째 환상은 대제사장 여호수아에 관한 것입니다.
여호수아는 스룹바벨과 유다 백성을 이끌고 유다로 온 대표적인 지도자입니다.
2) 여호수아 앞에 선 천사와 사탄(슥 3:1)
1. 대제사장 여호수아는 여호와의 사자(천사) 앞에 섰고,
사탄은 여호수아의 오른편에 서서 그를 대적하는 것을 여호와께서 내게 보이시니라.
➀ 여호수아를 돕는 주님과 그를 대적하는 사탄
스가랴가 환상 중에 보니 대제사장 여호수아가 여호와의 천사 앞에 섰고,
사탄은 그의 오른쪽에 서서 그를 대적하고 있었습니다.
여호수아 앞에 있는 여호와의 천사는 스가랴 1:11~12에서 본 바와 같이
하나님과 사람 사이를 중재하는 그리스도이십니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를 중재하시는 이는 오직 예수님 뿐이기 때문입니다.
주께서 여호수아를 돕기 위해 여호수아의 앞에 섰고,
사탄은 그의 오른쪽에서 그를 대적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대적한다는 것은 고발한다는 뜻으로,
사탄이 여호수아의 죄를 고발하려는 것은
여호수아를 파멸시켜 멸망하는 자가 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➁ 우리 곁에 있는 주님과 사탄
스가랴가 본 환상은 우리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우리를 돕기 위해 주께서 우리 곁에 계시고,
우리를 파멸시키기 위해 사탄도 우리 곁에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도 사탄도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기 전에는 우리를 돕지도 파멸시키지도 못합니다.
주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달리셨더라도
그것을 내 마음에 받아들이고 주님을 나의 구세주로 믿는 고백을 하지 않으면
주님의 피의 도움을 받지 못합니다.
또 사탄도 우리가 주님의 은혜 가운데 머물러 있으면
우리의 털끝 하나 건드리지 못합니다.
● 묵상 : 선택이 복과 저주를 결정합니다.
결국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주님의 도우심을 받을지, 사탄에게 미혹되어 파멸될지가 결정될 것입니다.
내가 주님의 뜻을 버리고 내 욕망을 따라 세상을 택하면
사탄이 내 안에 죄의 독을 더 집어넣고,
그러면 점차 주님을 섬기는 경건의 삶은 싫어지고 죄의 즐거움만 찾는 자가 되어
결국 멸망하는 자가 되고 맙니다.
그러므로 항상 주님의 은혜 가운데 머물러 있는 자가 되십시오.
3) 더러운 옷을 입고 있던 여호수아(4절)
4. 여호와께서 자기 앞에 서 있는 천사들에게 명령하사 “그 더러운 옷을 벗기라”
하시고, 또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 죄악을 제거하여 버렸으니
네게 아름다운(거룩한) 옷을 입히리라” 하시기로
그때 여호수아는 더럽고 냄새나는 옷을 입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유다 백성을 인도하는 지도자이며 대제사장인 여호수아조차도
그 시대의 죄에 자유롭지 못했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 역시 그때의 사람들처럼 더러운 죄에 빠져 있었습니다.
백성의 지도자까지 모두가 다 죄에 빠져 있었다는 것은,
바벨론에 포로 된 유다 백성 중에서
자신의 의로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들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를 바라볼 수밖에 없는 처지였습니다.
4) 여호수아를 정결케 하신 하나님(4절)
(4절 성경구절 위에)
그러나 여호수아가 비록 죄 가운데 있었을지라도
그의 마음속에 하나님을 향한 간절함이 있었고,
자기를 포함하여 유다 백성들이 저지르는 죄에 대한 애통함이 있었으므로
하나님께서 그를 받아주십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를 용서해 주시기로 마음을 먹으신 그때에도
사탄은 여호수아가 죄로 더럽혀진 옷을 입고 있다는 것만을 고발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사탄을 책망하십니다.
그리고 천사들에게 여호수아가 입고 있는 더러운 옷을 벗기라고 하십니다.
그의 죄를 벗겨주신 것입니다.
5) 스가랴의 중보기도(5절) : 하나님의 구원사에서의 사람의 역할
5. 내가 말하되 “정한(정결한) 관을 그 머리에 씌우소서” 하매
곧 천사들이 정한(깨끗한) 관을 그 머리에 씌우며 옷을 입히고
여호와의 사자(천사)는 곁에 서 있었더라.
이때 스가랴가 “그의 머리에 정결한 관을 씌우소서”하는 기도를 합니다.
그러자 천사들이 그의 머리에 깨끗한 관을 씌우고 거룩한 옷을 입혔습니다.
이 일은 하나님께서 이미 결정하신 일이었으나(4절)
스가랴의 중보의 기도가 있고 난 뒤에 이루어졌습니다.
우리의 중보기도가 필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 묵상 : 하나님께서 이미 결정하신 일이라도 사람의 중보기도가 있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결정하신 일이라도
사람의 중보기도가 있어야 그 일이 이루어집니다.
사람을 구원하시는 중요한 일에 사람이 참여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놓으신 것입니다.
우리가 누군가에게 복음을 전해야만 그가 구원을 받을 수 있고,
누군가에게 말씀을 가르치고 경건의 훈련을 하게 해야만
그가 주님을 만나는 길을 알게 됩니다.
그러므로 서로 중보기도 하기에 힘쓰십시오.
2. 미래의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여호수아
1) 하나님의 집을 다스릴 자(슥 3:6~7)
6. 여호와의 사자(천사)가 여호수아에게 증언하여 이르되
7.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네가 만일 내 도를 준행하며 내 율례를 지키면
네가 내 집을 다스릴 것이요 내 뜰을 지킬(돌볼) 것이며,
내가 또 너로 여기 서 있는 천사들 가운데서 자유롭게 왕래하게 하리라.
여호와의 천사는 하나님께서 대제사장 여호수아에게
그가 장차 하나님의 집을 다스릴 자가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고 전해줍니다.
하나님의 집을 다스린다는 것은 그가 대제사장의 직분을 다시 회복하여
사람들의 죄를 용서받게 하는 제사의 직분을 담당하게 될 것임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장차 여호수아가 천사들 사이를 자유롭게 왕래하는 자가 될 것입니다.
이것은 여호수아뿐 아니라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나라에서 모두 누리게 될 영광을 나타낸 것입니다.
구원받은 백성들이 주님의 나라에서 천사들 사이를 왕래하며
영원히 즐거움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2) 앞으로 나타날 일의 예표가 되는 사람들(8~10절)
8. 대제사장 여호수아야, 너와 네 앞에 앉은 동료들은 내 말을 들을 것이니라.
(여호수아와 여호수아 앞에 있는 여호수아의 동료들은 내 말을 들을 것이니라.)
너희는 모두 앞으로 나타날 일의 예표가 되는 사람들이라.
보라, 내가 내 종 싹을 나게 하리라(새싹이라고 부르는 나의 종을 보낼 것이라).
9.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너 여호수아 앞에 세운 돌을 보라. 한 돌에 일곱 눈이 있느니라.
내가 거기에(그 돌에) 새길 것을 새기며 이 땅의 죄악을 하루에 제거하리라.
(설명 : 내가 이 돌에 이 땅의 죄를 하루 만에 없애겠다는 글을 새겨 놓겠다는 뜻.)
10.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날이 오면 너희가 각각
자기의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 아래로 서로 이웃을 초대하리라’” 하셨느니라.
하나님께서 대제사장 여호수아와 그의 동료들이
장차 나타날 일의 예표가 되는 사람들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들이 예표하는 일은 장차
이 땅에 오실 그리스도를 통하여 세상 만민이 구원을 받게 되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장차 오실 그리스도를 ‘내 종 새싹’이라고 부르셨습니다.
구약성경에서는 장차 오실 메시야(그리스도)를
종종 순(荀, 새싹)이라고 표현했습니다(이사야 11:1, 렘 23:5).
3. 다섯 번째 환상 : 순금 등대와 두 감람나무
1) 순금 등대(금촛대)(슥 4:1~2)
1. 내게 말하던 천사가 다시 돌아와서 나를 깨우니,
나는 마치 잠에서 깨어난 사람 같더라.
2. 천사가 내게 묻되 “네가 무엇을 보느냐(무엇이 보이느냐)?” 내가 대답하되
“내가 보니 순금 등잔대(금촛대)가 보이는데 그 등잔대의 꼭대기에는
기름 그릇이 있고, 또 그 기름 그릇 위에는 일곱 등잔이 있으며,
그 기름 그릇 위에 있는 일곱 등잔과 연결된 일곱 개의 관(대롱)이 있고
스가랴가 본 다섯 번째 환상은 순금 등대(금촛대)와 두 감람나무입니다.
이때 스가랴가 본 순금 등대는 모세의 성막이나
솔로몬의 성전에 있던 등잔대와 모양이 조금 다릅니다.
2절의 등잔대는 밑받침이나 가지가 언급되지 않았으며,
살구꽃 모양이나 어떤 무늬에 대한 언급도 없이
그저 등잔대와 기름 그릇과 그 기름 그릇에 연결된 기름 대롱만 언급되어 있습니다.
• 등잔대와 기름 그릇과 기름 그릇에 연결된 기름 대롱만 있는 이유
다른 어떤 장식도 무늬도 없이 오직 등잔대와 기름 그릇과 연결 대롱만 있는 것은
등잔불을 켜기 위해 계속 공급되는 기름을 강조하기 위해서입니다.
이것은 영원히 마르지 않는 성령의 기름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능력이 아니라 성령의 기름부음으로 되는 것임을 강조한 것입니다.
2) 두 감람나무
두 감람나무는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와 하나님의 백성을 세우기 위해
하나님께로부터 기름 부음 받은 대제사장 여호수아와 총독 스룹바벨을 가리킵니다.
• 한 번이 아니라 계속 공급받는 기름
여기에서 기름 부음을 받는다는 것은
제사장이나 왕이나 선지자를 세울 때 기름 부음 받는 것과는 조금 다릅니다.
세움 받을 때는 그때 한 번 기름 부음을 받지만
여기에서는 등잔에 빛을 비추기 위해 계속 기름을 공급받는다는 의미입니다.
대제사장 여호수아와 총독 스룹바벨이 온갖 방해에도 성전을 건축하고
예배를 회복하는 이 일을 위해 하나님께서 계속 기름을 공급하십니다.
3) 이는 힘으로도 능으로도 되지 아니하고(6절)
(6절 성경구절 아래)
‘힘으로’는 ‘부(富), 군대, 상류층’의 뜻으로
일을 가능하게 하는 군사적인 힘이나 지위를 나타내고,
‘능력으로’는 ‘능력, 힘’의 뜻으로
일을 감당할 수 있는 육체적인 힘을 의미합니다.
성전 재건은 강력한 육체적인 힘이나
사람을 움직일 수 있는 재력이나 군대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고,
오직 하나님의 성령에 의해서만 가능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혹시 어떤 사람이 자신의 재력과 권세로 성전을 크고 멋지게 지었더라도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하시지 않았다면
그것은 세상의 다른 건물과 다를 바가 없기 때문입니다.
나라도 없는 포로 백성의 신분으로 주변 나라의 방해까지 받고 있는 상황에서
성전을 짓는 일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는데,
하나님께서 스룹바벨에게 포로 귀환자들과 함께 성전을 지으라 명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일은 오직 하나님의 힘으로 이루어질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4) 오직 하나님의 영으로 되느니라(6, 12절)
6. 그가 내게 대답하여 이르되 “이것은 여호와께서 스룹바벨을 두고 하신 말씀이니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도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하셨느니라.
12. 내가 또다시 그에게 물어 이르되 “금 기름을 흘리는(금 대롱으로 기름을 흘려보내는)
두 금 대롱 앞에 있는 이 감람나무 두 가지는 무슨 뜻이니이까?”하니
스가랴가 본 이 환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불을 밝히는 순금 대롱에 있습니다(12절).
순금 대롱으로 끊임없이 기름이 흘러 들어가니
그 불이 꺼지지 않고 계속 켜질 수 있습니다.
이것은 스룹바벨이 하는 일을 하나님께서 도우시리라는 것을 의미하고
또한, 그 성전에서 드리는 예배에
신령한 기름인 하나님의 영이 계속 부어지리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고 하나님의 영이 함께하는 성전이
참된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4. 큰 산아 네가 무엇이냐?
1) 네가 스룹바벨 앞에서 평지가 되리라(슥 4:7)
7. 큰 산아, 네가 무엇이냐? 네가 스룹바벨 앞에서 평지가 되리라.
그가 성전을 지을 머릿돌을 내놓을 때에 무리가 외치기를
‘은총, 은총에 그에게 있을지어다 하리라’” 하셨고
하나님의 말씀을 스가랴에게 전하던 여호와의 천사는
갑자기 큰 산을 향하여 외칩니다.
“큰 산아 네가 무엇이냐, 네가 스룹바벨 앞에서 평지가 되리라.”
여기에서 큰 산이란
스룹바벨이 성전을 건축하려는 것을 방해하는 세력들을 말합니다.
도움을 청할 곳이 전혀 없는 포로 백성들이니
주변 나라의 방해는 큰 산처럼 느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힘과 능력으로 행하는 일이니
스룹바벨 앞에서 큰 산이 평지가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명하시는 일을 하라는 것입니다.
2) 작은 일의 날이라고 멸시하는 자가 누구냐(10절)
10. “작은 일의 날이라고(시작이 초라하다고, 보잘것없는 일이라고)
멸시하는 자가 누구냐? 사람들이 스룹바벨의 손에 다림줄(측량줄)이 있음을 보고 기뻐하리라.
이 일곱은 온 세상에 두루 다니는(온 세상을 살리는) 여호와의 눈이라” 하니라.
그 어떤 위협이나 협박에도
스룹바벨이 두려워하지 않고 성전 건축의 일을 강행하자
방해하는 무리가 스룹바벨이 하는 일을 보잘것없는 일이라며 조롱하며 멸시합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그들을 향해 말씀하십니다.
“스룹바벨이 하는 일을 작은 일의 날이라고 멸시하는 자가 누구냐?”
스룹바벨을 조롱하는 자들을 하나님께서 가만두지 않겠다는 선언입니다.
스룹바벨이 하나님의 일을 하는 동안 그를 지키시고 도우시겠다는 선언이기도 합니다.
● 묵상 : 그의 손이 이 성전의 기초를 놓았으니 그가 마칠 것이라(9절)
9. “스룹바벨의 손이 이 성전의 기초를 놓았은즉
그의 손이 또한 그 일을 마치리라” 하셨나니,
“그때에야 너희는 비로소 만군의 여호와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음을 너희가 알 것이라” 하셨느니라.
사실 스룹바벨에게는 아무런 힘이 없습니다.
그가 페르시아의 다리오 왕으로부터 유다 총독으로 임명을 받아 왔지만
그 역시 포로 백성일 뿐입니다.
그러나 그가 하는 일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일입니다.
그러므로 페르시아가 아니라 그보다 더한 권세가 그를 방해할지라도
이 일은 반드시 이루어질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주께서 명하시는 일을 하고 있다면
그 어떤 방해나 시련도 두려워하지 말고 하십시오.
주께서 도우십니다.
우리 힘이나 우리 능력으로 하는 일이 아닙니다.
주님의 영의 도우심으로 하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두려워하거나 좌절하지 마십시오.
주님
하나님을 섬기면서 동시에 악한 일에도 참여하는
혼합주의자가 되지 말게 하옵소서.
에스라처럼 좌절과 절망에 빠졌을 때에도
은혜의 자리를 떠나지 말게 하옵소서.
항상 주께서 베풀어주신 은혜 안에
머물러 사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우리도 스룹바벨처럼
두려워하거나 좌절하지 말고
오직 주님만 바라보며 끝까지
주께서 명하신 일을 행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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