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80년대 학번의 여학생 제자 한 사람이 나를 찾아 왔습니다.
솔직히 말해 학생 시절에는 그리 친하게 지낼 기회가 없었던
제자였습니다.
그러다가 몇 년 전 우연한 기회에 만나 가끔씩 소식을 주고 받아 왔습니다.
그 친구는 학생 때부터 사회비판 의식이 남달라 민주화 데모에도 많이 참여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당시 반동적(?) 성향의 교수로
알려졌던 나였으니 그런 성향의 학생이 좋아할 리 없었지요.
(나는 그런 평가가 억을하기는 하지만, 수업시간에 공부만 가르치려 한 내가 그런
인상을 주었던 것만은 사실인 것 같습니다.)
예전에 만났을 때는 그저 사회적 기업을 경영한다는 말 정도만 들었는데, 며칠 전 만났을 때는 무슨 사업을 하는지 자세히 설명을 들을 기회를
가졌습니다.
설명을 듣고 보니 너무나도 좋은 일을 하고 있는 것 같아 여러분들에게 꼭 알려 줘야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제자가 설립, 경영하고 있는 베어베터(BEAR.BTTER.)라는 회사는 거의 전적으로 발달장애 장애인을 고용해 생산활동을 하는 소위
장애인 '표준사업장'입니다.
쿠키, 명함, 화환 등 다양한 사업을 하고 있는데, 거래상대방이 기업인 B2B방식으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베어베터사가 제조한 쿠키는 소비자가 아닌 다른 기업에게 판매되고 있다는 말이지요.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떠오릅니다.
베이베터사는 지적 장애나 자폐증을 갖고 있는 중증 발달장애인을 주로 고용하고 있는데, 이들의 낮은 생산성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채산을
맞추느냐는 것입니다.
나 자신도 이들에게 최저임금 이상을 보장하면서 어떻게 기업의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이윤을 창출하는지가 궁금한 사항이었습니다.
제자 말로 중증 발달장애인의 평균 생산성은 일반 근로자의 13% 수준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게다가 이들의 낮은 생산성을 보완하기 위해
추가적인 자본설비 투자가 필요할 뿐 아니라, 사회복지나 직업재활 전공자를 관리자로 고용해야 하기 때문에 더 많은 관리비용이 든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낮은 생산성과 높은 관리비용이란 이중의 부담을 안고 있는 셈입니다.
제자의 설명에 따르면 이 의문을 푸는 열쇠는 장애인 의무고용 관련 규제에 있었습니다.
관련 규제는 일정한 조건을 충족하는 기업에게
전체 근로자의 2.7%를 장애인으로 해야 함을 의무화하고 있답니다.
그리고 이 의무고용 비율을 채우지 못하는 기업, 즉 의무사업자는 의무
불이행의 정도에 따라 부담금을 납부해야 되고요.
바로 여기에서 베어베터사 같은 표준사업장의 역할이 발휘될 여지가 생기는 것입니다.
소위 '연계고용제도'라는 것이 마련되어 있는데, 이는 의무사업자가 장애인을 직접 고용하지 않아도 베어테버사 같은 표준사업장과 거래를 할 때
간접적으로 고용한 것으로 간주해 부담금을 감면해 주는 제도입니다.
따라서 베어베터사로부터 쿠키, 명함 등을 구입하면 구입액에 비례해 일정비율의 부담금 감면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기업이 명함 한 통을 직접 제작할 때의 비용이 7천원 내외라고 합시다.
그런데 베어베터사는 높은 비용으로 인해 그보다 훨씬 더 높은 1만원의 가격에 명함 한 통을 기업에 납품합니다.
그렇다면 기업은 왜
3천원의 추가 비용을 들여가며 베어베터사로부터 납품을 받으려 하는 것일까요?
연계고용제도로 인해 그렇게 하면 부담금이 5천원 줄어들고, 따라서 기업의 입장에서 보면 2천원의 비용절감 효과를 누릴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경제학자인 내가 보기에도 연계고용제도를 마련한 것은 참으로 잘한 일 같습니다.
장애인 의무고용이라는 규제에 이런 우회로를 만들어
놓음으로써 훨씬 더 적은 비용으로 장애인 고용 목표를 달성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
그런데 사람에 따라서는 그 제도에 눈살을 찌푸릴 수도 있습니다.
대기업이 장애인을 직접 고용하지는 않고 그 제도를 이용해 피해 간다고 비난을 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습니다.
제자 말에 따르면
관련 공무원들도 연계고용제도로 인해 의무사업자의 직접 고용이 줄어들까봐 걱정하는 것 같다고 하더군요.
그러나 의무사업자가 직접 고용하는 것과 표준사업자를 통해 간접적으로 고용하는 것 사이에는 장애인 보호라는 측면에서 아무런 실질적 차이가
없습니다.
경제성이나 효율성의 측면에서 보면 연계고용제도를 통한 간접적인 고용 쪽이 훨씬 더 우월하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각 기업이 개별적으로 의무로 부과된 2.7%의 장애인을 직접 고용한다고 가정해 보십시오.
이들을 관리하는 데 많은 비용이 들 뿐 아니라 장애인의 특수한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는 데서 어려 가지 어려움이 발생하지
않겠습니까?
일하는 장애인 입장에서도 불편한 점이 너무나 많을 테구요.
그러나 장애인들만이 고용되어 있는 표준사업장은 축적된 노우하우와 특성화된 자본설비를 이용해 효율적인 운영을 할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또한 장애인들이 편하게 작업할 수 있는 여건을 제공해 준다는 점에서도 우위를 가질 테구요.
더군다나 베어베터사가 주로 고용하고 있는 중증의 발달장애인은 일반 직장에서 거의 활동이 불가능한 것이 현실입니다.
이런 유형의
장애인은 표준사업장 말고는 대안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삼성에게 현대에게 왜 당신네는 중증 발달장애인 쓰지 않느냐고 닥달을 해봐야 아무 소용 없고 공연히 낭비만 초래할 뿐
아닙니까?
나는 그 제자의 설명을 듣고 이런 기업이야 말로 우리가 온뭄으로 응원해 줘야 할 기업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베어베터사가 실시한
고객만족도 조사에서 응답자의 87%가 매우 만족 혹은 만족이라는 대답을 했다는 것을 듣고 마음이 훈훈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일이 사회적 약자인 장애인에 대한 깊은 애정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입니다.
바로 이 점에서 그 제자가 너무나 훌륭하게
보였습니다.
기업 이름에 왜 곰 (bear)이 들어갔느냐는 물음에 비록 장애를 가졌으나 곰처럼 우직하고 순수한 젊은이들 가리키는 말이라고
대답하며 해맑게 웃는 그를 보고 너무나 기분이 좋았습니다.
몸과 마음이 불편한 장애인을 위해 봉사를 하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이들에게 일자리를 주어 자립의 기반을 마련해 주는 일입니다.
이 점에서 볼 때 베어베터 같은 기업의
존재가 더욱 가치 있게 느껴질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이런 기업에게 함께 박수를 보내 주십사는 의도에서 이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내 제자라서가 아니라, 우리 사회를 훈훈하게
만드는 한 의식 있는 젊은 사업가에게 큰 박수를 보내주는 것이 마땅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