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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불교, 포교의 황금어장 ( 대각사 주지 종원 스님) - 53선지식 구법여행 시즌2 – 스물여덟 번째 법회 봉행
삼보에 귀의 하옵고_()_
■.법회개요
주 제 : 군불교, 포교의 황금어장!
일 시 : 불기2567년 8월25일(금)저녁7시~9시
장 소 : 대한불교조계종 조계사 대웅전
법 사 : 대각사 주지 종원 스님
사 회 : 총무부장 도운 민영환
참석자: 총동문회 회장 보명화 도영숙 외 150명 참석
집 전 : 자문위원 명광월 권정숙 . 신행부장 법담 손영길
■.법회식순
화엄경 약찬게–공지사항-개회사–삼귀의–우리말 반야심경–음성공양(연꽃사랑 , 상구보리 하화중생 ) -인사말씀(총동문회장 보명
화 도영숙님) – 법문 (종원스님)–사홍서원–폐회사–기념사진 촬영
(조계사 불교대학총동문회 53선지수 합창단 )
□.노래: 상구보리 하화중생
□.지휘:경희대학교 박경태 교수
□.반주:삼조 정진경 자문위원
□.포교부장 운정 나현숙님 외 단원20명 일동
□.촬영:관음수 최명수
8월 법회 스케치 |
무더운 여름도 끝이 보이네요. 아침 저녁으로 서늘한 바람이 불어와 한낮의 뜨거운 열기를 잊게합니다. 지난 주에는 저희 조계사
불교대학 총동문회(회장 보명화 도영숙)가 53선지식 구법여행 시즌-2 스물여덟 번째 법회를 서울특별시 종로구 봉익동 소재, 대
각사 주지 종원 스님을 초청해 “ 군불교, 포교의 황금어장” 이란 주제로 법석을 마련했습니다. 이 자리에서 스님께서는 “ 해군교육
사령부에서 주지 법사로 계시면서 어려운 환경을 탓하지 않았으며, 불교중흥을 위해 조급하고 경직되고 염불도 법문도 잘 하지
못 했으나 오직 백일기도를 통해서 여유롭고 여여하고 밝은 마음으로 바뀌었다” 하시며 “ 처음 90명의 군장병으로 시작한 법회가
1500명까지 늘어난 이유는 내가 변화한 것 때문이라며 동문회 불자들도 기도를 통해서 변하는 모습을 보여 주셨으면 좋겠다.”
“ 절에 다니니까 저렇케 변하는구나” 하는 모습을 남편, 자식, 아내, 손주에게 보여주시길 바랍니다.” 며 감로설법을 재미있게 해주
셨습니다.
53선지식 시즌2 구법여행은 조계사 대웅전에서 화엄경 약찬게를 시작으로, 53선지수 합창단 (상구보리 하화중생)의 음성공양, 도
운 민영환 총무부장의 개회사를 시작으로 법회가 봉행 되었는데요, 총동문회장 보명화 도영숙님께서는 “ 대각사는 3.1운동을 하
신 곳이다. 하며 대각사 부처님께도 참배를 권선 하시며, 10월21일 제3회 문화대축전에도 많이 참석하셔서 함께 신행 활동하는
참 동문불자 가족이 되길 바랍니다.“ 며 부처님의 지혜와 자비가 가득하길 기원해주셨습니다.
특히 법사님 맞이는 보명화 회장님과 혜월 상임고문님외 고문 자문단에서, 법당 내.외빈 자리 안내는 법연심 안영란 봉사부장, 도
량 입구 안내석에서의 행복나눔터는 명심등부회장, 길상화 부회장, 점명 및 법회지 안내는 일향지 김영인 재무부장, 자련 임경애
문화부장, 월명화 백경선 수석차장등 외 많은 분들께서 활동해주셨습니다.
이번 법회참석은 대각사 신도 여러분들과 포교사단 서울지역단 성수 서정각 단장님, 그리고 조계사 불교대학 총동문회에서는 보
명화 도영숙 회장님을 비롯한 명심등 주숙자 부회장, 진각화 전연숙 부회장, 길상화 윤옥자 부회장, 법선심 우양숙 부회장, 도운
민영환 총무부장, 월명화 백경선 총무수석, 일향지 김영인 재무부장, 월광지 김은수 재무수석, 대경 박수정 기획부장, 성월 정승길
교육부장, 법연심 안영란 봉사부장, 여여 이양우 봉사수석, 법담 손영길 신행부장, 운정 나현숙 포교부장, 법왕자 오미균 포교수
석, 자련 임경애 문화부장, 진공 이호진 홍보부장님 외 각 부서 차장님들께서도 참석하셨습니다.
그리고 고문 자문단에서는 혜월 권순석 상임고문을 비롯한 ,성해 장경태 고문(신도회 교육본부 부회장), 호연 겸경숙 고문(신도회
부회장겸 장학회 이사장), 대덕심 김영숙 고문, 경담 이원굉 자문위원장, 영윤 김용규자문, 삼조정진경자문, 정진행 양순덕자문,
현진화김정미자문, 평전 하용수자문,법연 이동엽자문, 도안심 이순화자문, 환희지 권종순자문, 월광지 임연선 자문, 보현행 안영
주 감사, 문수행 정은희자문, 정명화 허복미자문님과 외 여러 많은 동문불자 150명이 함께 자리를 빛내주셨습니다.
( 글 정리 : 법연 이동엽 자문위원 )
8월 공지사항 |
■.제4회 총동문 문화대축전 ( 모이자 총동문! 불교대학 천년세움 함께하는 조계사로! )
➪.일 시 : 2023년 10월 21일(토)오후15시00분 ~18일(토)
➪.1부 : 문화마당/ 발원문/ 사진전시/ 기수별 경전 합송대회
➪.2부 : 대법회 / 주지스님 법문/ 장학회 장학금 전달
➪.3부 : 어울림 마당
■.천수다라니 기도법회
➪.일 시: 2023년9월1일 오후7시
➪.장 소:극락전
➪.문의:신행부장 법담 손영길010-7788-3445
■.제4회 총동문회 문화대축전 기념 공모전
➪.부 문 : 발원문/ 사진
➪.주 제 : 발원문 – 불교대학 천년세움 / 사진(불교관련)
➪.참가자격: 총동문회원 누구나 가능함.
➪.기 간: 2023년9월1일~9월20일
➪.제출방법 : 이메일 (asialhj@naver.com)
➪.접수 및 문의: 부회장 명심등(010-8842-6742) 홍보부장 진공(010-9991-7985)
➪.심사 및 발표 : 9월예정 (개별통보)
➪.심사내역 : 주지스님상 1명, 불교신문상 1명, 총동문회장상 1명,
➪.시상일자 : 2023년 10월21일 (토) 문화대축전 행사
■.총동문회 합창단 모집 및 연습
조계사 불교대학 동문이면 누구나53선지수 합창단 가입하여 음성공양 할 수 있습니다.
➪.일 시:매월1,2,3째 주(토) 12시30분~2시4째 주(금)오후5~6시30분
➪.장 소:안심당 지하 합창단실
➪.문 의:포교부장 운정 나현숙,010-9491-9466
■.교육법회
➪. 일 시 : 2023년 9월 08일 오후7시
➪. 장 소 : 조계사 극락전
➪. 법 사 : 무진스님(조계사 교육부국장)
➪. 주제 : 부처님과 인연되는 또 하나의 방편, 주련
제2강 : 조계사 일주문
■.동문회비 및53선지식 구법여행 법회 보시구좌 안내
➪.동문회비:연회비-5만원,평생회비-50만원
➪.하나은행111-054579-03005.예금주 대한불교조계종조계사
➪.문의 재무부장 일향지 김영인010-3209-7400
■.장학기금 후원(조계사불교대학총동문회 장학회)
➪.조계사불교대학 동문이면 누구나 월1천 원 이상의 장학기금 후원가능
➪.장학회 정회원 조건:출자금10만원 월1천 원 이상 후원하시는 분
➪.후원계좌:신한은행100-030-532200 (조계종조계사 불대총동문회)
➪.문의:장학회 총무 보현행 안영주,010-6272-2895
■.불교신문 구독신청
➪. 53선지식 구법여행을 함께 진행하고 있는《불교신문》구독 신청바랍니다.
➪.문 의:자문위원 법연 이동엽010-6324-3200
■.9월 53선지식 구법여행 시즌2- 법사비 보시
➪.기획부차장 자재심 조옥현님께서 보시해 주셨습니다.
■.남전스님과 함께 하는 찾아가는 53선지식 구법여행(대만)
➪.날 짜 : 11월22일(수) ~ 11월26일(일)....4박5일간
➪.동참금 : 159만원
➪.총동참금 159만원 계약금 : 59만원(8월30일 까지) 완납 100만원 (9월30일까지)
➪.동참신청 : 신한은행 100-030-532280 대한불교조계종 조계사
➪.계약 후 취소시 , 취소시점에 따라 수수료 발생함.
➪, 문의 : 문화부장 자련 임경애 010-9173-0699
➪, 선 신청후 입금가능함. 많은 동참바랍니다.
■.총동문회 행복 나눔터
➪.참기름(12,000원)들기름(13,000원)볶음참께(5,000원)강황가루500g(1포30,000원)홍삼엑 기스( 100g 3병150,000원)를 판
매,-,국민은행: 837601-04-310207(예금주 도영숙)
➪.문의: 부회장 명심등 주숙자 010-8842-6742/ 길상화 윤옥자 010-9131-5435
■.총동문회 신행부 주관 목탁습의 및 경전 독송
➪.일 시 : 7월, 8월, 9월3개월간 시행
➪.매주 토요일 오후3시45 ~ 4시(개별연습)
오후4시~ 5시(목탁습의)
오후5시~ 5시30분(경전독송)
➪,장 소 : 원심회 법당
➪,동문이면 누구나 참여 가능합니다.
➪,신행부장 법담 손영길010-7788-3445
회장 인사말 |
반갑습니다. 총동문회장 보명화 도영숙입니다.
이제는 가을이 가까이 있으니 좀 느껴지시는지요? 조금 아침, 저녁으로 좀 서늘한 바람이 붑니다. 근데 문뜩 엄청 추운날 밖에서
오들오들 떨고 있을 때, 지난 여름날에 이 뜨거움이 과연 그리울까 하는 생각을 제가 한번 해봤습니다.
먼저 오늘 법문을 해 주시는 종원스님께 감사 인사 드립니다.
종원 스님은 가까운 곳 대각사에서 오셨으며, 대각사는 3.1 운동 민족대표 33인들이신 용성 진종대종사께서 일제 강점기 때 창건
하여 시대에 맞게 부처님의 법을 펼치고자 또 독립운동을 하신 곳입니다. 주지이신 종원 스님께서도 그 뜻을 이어받아 포교사 교
육에도 대각사를 내어주시며 전법에 최선을 다하고 계십니다.
여러분들께서도 꼭 한번 대각사 부처님께도 참배하시길 바랍니다.
여러분, 우리 총동문회도 부처님의 가르침대로 살겠다는 것을 뛰어넘어 부처님의 가르침이 온 세계의 두루 할 수 있기를 기원하
며 10월 21일(토) 제4회 총동문 문화 대축전 슬로건을 “ 총동문이여! 불교대학 천년세움 함께하는 조계사로!” 정하였습니다.
천년 세움이라 하여 경주 남산 열암곡 부처님을 떠올릴 수도 있겠지만, 우리 총동문회는 전법의 천년대계로 조계사 불교대학의
교육환경 개선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마중물이 될 수 있도록 발원합니다.
현재 불교대학의 강의실은 좁은 강의실을 확장하느라 5개에서 2개로 줄어 있는 현실이며, 강의실 부족으로 올 초 특정반은 신입
생 접수를 중단하기까지 했다고 들었습니다.
저는 지난 3년간 조계사에 불교가 무엇인지를 알고자 오는 사람들을 위한 교육 봉사팀에서 활동을 하였습니다. 요즘 많은 사람들
이 불교에 관심을 가지며, 또한 20~ 30대의 젊은 사람들도 생각 외로 많이 옵니다.
물론 몇십 년 동안 절에 다니시는 분들도 불교를 제대로 알고 다녀야겠다고도 오시는 분들도 많습니다. 제가 매 강의 시간마다 시
작과 끝을 함께하면서 본 그들이 호기심 가득한 돌망돌망한 눈빛으로 저에게 집중하는 그 모습은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사실 이 자리에 설 때마다도 그 때가 떠오릅니다. 우리에게는 늘 상 일어나는 작은 에피소드도 그들에게는 정말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요즘 매 기수 200명 정도의 기본 교육생이 옵니다. 그 많은 분들이 불교대학에서 더 공부하고 신행활동하며 참 불자
가 될 수 있도록 우리 총동문회가 앞장서며 마중물을 만듭시다.
궁극에는 그 마중물이 원력이 되어 성취될 수 있도록 부디 많은 동참을 기원합니다.
끝으로 오늘 동참한 인연 공격으로 여러분들에게 부처님의 지혜와 자비가 가득한 날들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불기 2567년 8월25일
[조계사불교대학 총동문회 회장 보명화 도영숙 합장 ]
법문 [ 대각사 주지 종원 스님] |
주 제 - (군불교, 포교의 황금어장)
약력 : 조계종 호계원장 보광큰 스님을 은사로 출가
중앙승가대학교 불교학과 졸업
동국대학교 불교대학원 불교사회복지학과 수료
중앙승가대학교 승가신문사 편집장
해군 해병대 법사(군승) 대위로 전역
청정승가를 위한 대중결사 사무처장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 호법부 조사과장
현) 대한불교조계종 대각회 총본산 대각사 주지
현) 대한불교조계종 제18대 중앙종회의원
현) 대한불교조계종 군종특별교구 부교구장
현)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 군종특별보좌관
현) 중안승가대학교 총무처장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오늘은 좋은 날입니다.
이렇게 좋은 날 거룩하고 여법한 법석을 한국불교 일번지 대한불교 조계종 총본산 조계사에서 봉행할 수 있음을 너무 감사드립니
다. 올해가 조계사불교대학 총동문회 창립 17주년 맞습니까? 진심으로 축하를 드립니다.
그리고 오늘 이 법석을 준비해 주신 보명화 회장님을 비롯한 많은 불자님들께 깊은 감사의 마음을 올립니다. 저는 아까 소개받았
듯이 가까운데 살고 있습니다. 조계사는 종로구 견지동이고 대각사는 종로구 봉익동에 있습니다. 벌써 이른 저녁 공양을 하고 걸
어서 한 십오 분 정도 걸렸습니다.
정말로 가까운 거리인데요. 원래 제가 군종특별교구 부교구장 소임을 보고 있어가지고 군불교에 대한 말씀만 드리려고 했는데 걸
어서 오면서 생각을 해보니까 우리 대각국사와 대각사를 창건하신 용성 큰 스님 말씀도 좀 드려야겠다 생각을 했습니다.
괜찮겠죠? 이 대각사를 창건하신 용성龍城禪師 큰 스님은 대한민국 조계종과 뗄레야 뗄 수 없는 그런 인연이 있습니다. 조계종 같
은 경우는 통 불교를 지향하고 있지만 사실 중심이 되는 사상은 선불교입니다.
선종. 이 선종의 법맥이 어떻게 계승됐냐며는 석가모니 부처님부터 해가지고 마하가섭 존자, 아난다 존자 그리고 대승불교의 아
버지가 누구시죠? 대승불교의 아버지 용수 보살님 그죠? 쭉 이어져가지고 중국 선종을 개척하신 초조 보리 달마대사, 이조 혜가,
삼조 승찬, 사조 도신, 오조 홍인대사, 육조가 누구시죠? 육조 육조 혜능 대사. 이 혜능 대사의 법맥이 쭉 이어져서 전통을 계승하
신 분이 바로 임제 의연 선사입니다.
이 임제 선사의 바로 삼십육대 법손이 바로 용성 진종 조사입니다. 이 선불교의 전통을 올곧이 계승하신 사실상 한국불교의 중흥
조 같은 그런 분이시죠. 이런 용성 큰 스님 들어보셨죠? 들어보셨죠? 잘은 몰라도 그래도 한 번 이 설명 들어보셨을 겁니다. 이 용
성 큰 스님은 한 번도 하기 힘든 대각 깨달음을 무려 네 번이나 성취를 하신 그런 분입니다.
워낙에 수행력이 깊고 법의 덕화가 크고 하다 보니까 많은 제자들이 모여가지고 법림을 이루었죠. 대한불교조계종 스님들의 반
가까이가 바로 이 용성 문중의 스님들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팔만대장경이 어디 있죠? 팔만 대장이요. 합천 가야산 해인사 해인사하면 떠오르는 암자가 어디 있어요? 암자 백
련암 유명하죠 백련암. 이 백련암의 성철 큰 스님이 바로 용성 동산 성철로 이어지는 법맥을 계승하신 분이고 또 이런 암자가 원당
암 아세요? 원당암에 용성, 인곡, 혜암 전 조계종 종정을 역임하신 혜암 큰스님이 또 법을 이으셨고 그 혜암 스님의 법을 이은 분
이 바로 현재 해인사 방장 원각 스님이십니다. 또한 홍제암이 있어요. 또 해인사 홍제암. 홍재암은 용성, 자운 그리고 지관스님의
문중들로 법림을 이루고 있고, 용탑선원이라고 보셨어요 용탑선원. 여기는 용성 고암 그리고 고암 스님의 제자들을 중심으로 해
가지고 하나의 법림을 이루고 있습니다.
부산에 가면 가장 큰 본사가 어디가 있어요? 부산 금정산 범어사가 있죠? 이 범어사는 바로 용성, 동산 스님의 상좌들이 하나의
문중을 이루고 있는 그런 본사입니다. 우리가 잘 하는 지오, 지유, 광덕대종사 그리고 능가스님 그런 정말로 기라성 같은 큰 스님
들이 많이 계시죠.
설악산 또 신흥사 있죠? 신흥사는 바로 용성, 고암, 성준, 무산 오현스님이 문중이 자리 잡고 있고, 지리산 화엄사 아시죠? 지리산
화엄사는 용성 대종사, 동헌대종사, 도광 대종사 스님들의 문중에 있습니다.
쌍계사도 그렇고 이렇게 많은 스님들이 바로 용성 큰 스님의 法下법하 이 법의 향기 속에서 지금도 또 하나의 수행 공동체를 이루
고 정진들을 하고 계십니다. 또 한 이 용성문중에 가장 또 중심이 되는 한 축이 바로 재단법인 대각회입니다.
대각회에 소속돼 있는 사찰은 전국에 200개가 됩니다.
이 200개 사찰의 총본산이 바로 봉익동에 있는 대각사이다.
대각사인데 이 대각회 같은 경우는 용성, 동헌완규 그리고 도문 스님을 중심으로 해서 새로운 문중을 또 이루고 있어요. 이렇게 정
말로 이 선의 법맥이 올곧이 계승이 되고 조계종 스님들 반 가까이가 바로 이 용성문중의 스님들입니다.
정말 엄청난 이 법림을 이루고 있는 문중들이죠. 이렇게 문중을 많이 있고 또 많은 스님들이 또 공부를 하는데 그럼 대각사를 언제
창건하셨느냐 조선왕조 500년 동안 불교가 정말로 탄압을 박해를 많이 받았죠. 그렇죠? 얼마나 탄압을 받았느냐면은 스님들이
한양 도성에 올 수가 없었어요. 스님들의 출입을 금지시켜 가지고 정말 오백 년 동안 스님들이 오고 싶어도 한양에 들어올 수 없는
그런 정말로 이 숭유억불 정책에 의한 피해를 많이 보셨는데요. 이 스님들의 도성 출입 금지가 해제가 되고 바로 한양 안에 최초로
생긴 사찰이 두 군데 있습니다.
어디일까요? 두 군데 한 군데가 조계사 그리고 또 한 군대가 바로 대각사입니다. 조계사 같은 경우는 천 구백십 년 도에 창건이 됐
는데, 처음엔 각황사로 창건이 돼가지고 지금 이 자리는 아닙니다. 수십 년이 지나가지고 1943년인가요? 그때 지금의 조계사 이
자리에 사찰이 생겼습니다.
대각사는 1911년 창건돼 가지고 지금까지 그 자리에서 계속 전법 포교를 하고 있어요. 대각사 창건이 어떤 의미가 있느냐 1911년
용성 큰스님께서 대각사를 창건하시고 천구백사십 년에 입적을 하십니다. 열반을 하시는데 그 수십 년 동안 이 용성 큰스님이 온
몸을 다해서 전법과 독립운동 그리고 이 불교 중흥을 위해서 정말 온몸을 불사르셨던 그런 전법의 도량 열반의 성지가 바로 대각
사였다고 합니다.
용성스님하면 아까 뭐가 생각나죠? 아까 우리 회장님도 말씀하셨지만 독립운동 그죠? 이 독립운동을 그냥 어떻게 어떻게 하신 게
아니고 본인이 중심이 돼 가지고 주도하셔 가지고 하셨던 겁니다. 원래 알려지기는 만해 한용운 스님이 많이 알려지셨는데 사실
은 이 용성 큰 스님께서 더욱더 세밀하게 진두지휘를 하시면서 독립운동을 주도하셨습니다.
민족대표 33인 삼일절 33인들 중에서도 33명이 있는데 불교 대표가 용성스님과 만해 한용운스님 두 분이세요. 삼십삼 명이 있는
데 불교 대표가 두 명밖에 안 되냐 할 수도 있잖아요. 그죠? 그런데 두 분이 있어 정말 삼십 명 같은 두 분이었어요. 이 용성 스님과
만해 한용운 스님 전국의 의암 손병희 선생님이 이 세 분이 주도해 가지고 사실상 이 삼일 독립운동을 주도하신 겁니다.
그게 주도하시고 3.1 독립선언문을 낭독하시고 어떻게 되셨겠어요? 바로 일제에 의해서 서대문 형무소에 영어의 몸이 되셨습니
다. 서대문 형무소에 갇히셔가지고 얼마나 많은 탄압과 협박과 고문과 회유를 받으셨겠어요? 얼마나 그 고문이 심각했냐면은 이
손톱에 손톱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을 정도로 그렇게 극심한 고통을 주셨다고 합니다.
그런 고문 속에서 대부분의 독립운동가들이 다들 변절을 합니다. 의지를 굽히신 거죠. 일제의 회유에 넘어가신거예요. 그런데 만
해 한용운 스님과 용성 큰스님 그리고 의암 손병희 선생님 같은 몇몇 분들만 끝까지 절개를 지키시고 회유에 넘어가지 않으셨던
겁니다. 우리 민족의 정신을 지키신 거죠. 대단하시죠?
그리고 서대문 형무소를 출소하셔 가지고 백범 김구 선생님 아시죠? 또 김구 선생님과의 오랜 인연으로 서로 대각사에서 탁마하
시면서 앞으로 우리 민족이 어떻게 가야 하는지를 밤새 토론을 하시면서 고민을 함께하십니다. 그 결과 상해 임시정부 그런 인연
이 또 이어지구요. 용성 큰 스님이 제일 아끼는 유발 상좌가 있었어요. 누군지 아세요? 바로 유명한 매헌 윤봉길 의사. 이 윤봉길
의사가 당시 20대였는데 용성 큰 스님이 가장 아끼는 유발 상좌였습니다.
그럼 매헌 윤봉길 의사를 대각사에서 정신무장 시켜가지고 중국으로 건너가시게 끔 해 가지고 이 민족적인 거사를 할 수 있게끔
그 기반을 만드신 것도 누구다? 용성 큰스님이시다. 대각사는 어떻게 창건이 됐느냐 용성 큰 스님은 이미 한양의 천구 백 십일 년
오시기 전부터 전국에서 가장 이름난 선승이시고 큰 스님이셨어요.
해인사에서 범어사에서 통도사에서 서로 조실로 모실려고 했던 그런 분입니다.
그렇게 어른 대접받고 한 절에서 편안하게 사실 수 있는 기회가 많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왜 그러면은 이 도성으로 올라오셨느
냐 첫째는 당시 고종 황제가 용성 큰스님을 정말 지극히 공경을 했다고 합니다. 신라나 고려 같은 불교 국가였으면 말 그대로 국사
로 모셨겠죠 국사. 그런데 조선왕조에서는 숭유억불이 심했기 때문에 국사로 따로 모시진 못했지만 또 마음의 스승으로 늘 생각
하고 가까이 모시면서 법을 청하고 싶어 가지고 바로 종로구 봉익동에 고종 황제가 희사금을 출연하셔가지고 대각사가 건립이 됐
던 겁니다. 그런 인연이 또 있고요. 이런 용성 큰스님이 정말 깨달음을 얻으셔가지고 대각을 성취하셔가지고 많은 제자를 키우고
법을 설파하시고 독립운동을 하시고 이걸로 끝나신 게 아닙니다.
큰 스님은 서대문 형무소에 계시면서 목사님과 교인들이 한글 성경을 중심으로 모여서 함께 공부하고 함께 찬양을 하는 그런 모
습을 보면서 감명을 받았어요. 왜냐하면 당시에는 우리 불교 경전이 우리 말 한글로 제대로 번역이 되기가 전입니다.
하기 때문에 이 경전은 불교 금강경 한글 같은 경전은 몇몇 지식인들 몇몇 스님들의 전유물처럼 됐던 시절입니다. 일반 불자들은
이 경전을 읽고 싶어도 읽을 수가 없었어요.
그러다 보니까 점점 더 기복적인 신앙에만 매몰이 됐던 겁니다.
이것을 혁신하고자 용성 큰 스님은 삼장역회三藏譯會를 만드십니다.
삼장역회를 만드셔가지고 화엄경을 최초로 한글로 우리말로 번역을 하신 분이 바로 용성 큰스님이시다.
금강경을 우리말로 최초로 번역하신 분이 바로 용성 큰 스님이십니다. 지금 우리가 이렇게 경전들을 쉽게 읽고 독송하고 공부할
수 있는 이런 토대 기반을 만드신 분이 바로 용성 큰 스님이신 겁니다. 대단하시죠?
워낙에 그 문화적인 그리고 선구자적인 기질이 있으셨던 분이에요.
그러다 보니까 이 찬불가를 또 만드십니다. 찬불가 찬불가를 작사 작곡을 하시는데 아마 제가 아는 범위 내에서는 대한민국 역사
상 최초의 찬불가를 아마 용성 큰 스님께서 작사 작곡을 하셔가지고 만드셨던 겁니다. 만드시기만 한 게 아니라 어린이 법회, 청년
법회, 일요 법회를 그것도 아마 최초가 아닐까 싶어요.
최초로 우리나라에서 만드셔가지고 어린이 법회와 일요법회 때 본인이 작사 작곡을 하신 찬불가를 피아노로 당시에는 오르간입
니다. 오르간으로 치시면서 직접 찬불가도 지도하고 그렇게 법회를 진행했던, 지금은 다들 그렇게 하지만 당시에는 정말로 있을
수 없는 그런 획기적인 사건이 아니지 않습니다.
그렇죠? 그만큼 이 불교를 위해서 민족의 독립운동을 위해서 깨달음의 생활화 그리고 사회화를 위해서 그리고 제2의 부루나 존자
로서 전법과 포교를 하셨던 한국 불교의 중흥조가 바로 용성 큰스님이시고 1911년부터 40년 입적하시는 그 시간까지 하루도 쉬
지 않으시고 매일 부단한 정진을 대각사를 중심으로 해서 이어갔던 겁니다. 그러한 스님의 전법 의지가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대
한불교 조계종도 있고 조계사도 이렇게 한국 불교의 일번지로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겁니다. 알겠죠?
시간이 별로 없는 거 같은데 군 불교 얘기 잠깐 할게요. 제가 한 이십 년 전에 군종 법사로 해군 법사로 근무를 했는데 진해 알지
요. 경남 진해 벚꽃으로 유명한 지내 해군교육사령부 군종 법사로 발령을 받았습니다. 내려가서 딱 보니까 이 해군교육사령부 법
당이 바로 흥국사라 해가지고 영외 그러니까 부대 안에 있는 게 아니고 부대 밖에 있는 사찰이었어요.
그러다 보니까 지금의 조계사나 대각사같이 일반 사찰의 시스템으로 운영이 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지역에서 가장 또 유명
한 유치원 흥국 유치원을 운영하는 그런 사찰이었습니다. 또 제가 그때 주지 복이 있어 가지고 또 주지를 겸했는데 해군 기초군사
학교 부대 안에 있는 보국사라는 법당이 있었어요. 그래서 두 개 사찰 주지와 한 개 유치원 원장을 하고 있었는데요.
한국 사회에서 처음 법회를 할 때 초하루 법회 때 법회를 하는데 정말 뭐 이렇게 지역에서 나름 유명한 절이니까 많이들 오실 거라
고 기대를 했었습니다.
그런데 첫 초하루 법회때 몇 명이 왔느냐 아홉 명이 왔습니다. 아홉 명이. 그래서 우와 정말 큰 충격을 받았어요.
이 넓은 법당에 아홉 명을 두고 법회를 하는 그 기분이 참 씁쓸했습니다. 알고 봤더니까. 전임 주지 법사가 정말로 기도도 법회도
공부도 포교도 거의 안 했던 거예요. 이제. 그러다 보니까 스님들에 대한 신뢰도가 거의 빵점이었습니다.
하다 보니까 절에도 나오지 않고 법회에도 기도도 보시도 않고 정말 적막한 사찰이었습니다. 그 절이었는데 어떻게 하면 이 흥국
사를 다시 중흥시킬 수 있을 수 있을까라고 살펴보니까 아무리 봐도 답이 없어요. 왜냐하면 저는 염불도 잘하지 못하고 법문도 지
금 보시면 아시겠지만 되게 못합니다. 설법을 뭐 못하는데 지금도 이런데 이십몇 년 전이니까 얼마나 못 했겠어요. 그죠? 법문도
못 하고 염불도 못하고 어떤 스님들처럼 정말 상호가 너무 좋고 아름다운 용모가 있는 것도 아니고, 하다 보니까 아! 내가 할 수 있
는 게 뭐가 있을까요?
여기서 단 한 가지 정말로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백이 무슨 백이죠? 부처님 백이죠.
부처님만 믿자. 부처님을 믿고 내가 정말로 나의 기도는 반드시 이루어진다. 기도는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드는 위대한 불사이다.
이것만 잊지 말고 열심히 기도해 보자. 그게 됐습니다. 그렇게 백일기도를 한 번, 두 번, 세 번 하면서 뭔가 조금씩 바뀌어가는 게
보였습니다. 찬불가 교실을 시작으로 해서 합창단을 만들고 유치원 자모회를 중심으로 해서 자모법회를 만들고 다도회 지장회 여
러 신앙 공동체를 만들면서 그 모임들이 활성화되니까 점점 절이 살아납니다.
매일 열심히 기도를 했습니다. 정말 제가 살아 출가를 해서 기도를 했던 모든 세월을 통틀어 가지고 그때처럼 간절하게 절절하게
용맹 정진을 했던 적이 없을 정도입니다. 그리하니까 좀 빨리 진행을 해가지고 1년 지나니까 초 하루 법회에 몇 분이 오신지 아세
요? 200 분이 넘게 왔어요. 200 분 그리고 이제 해군 기초 군사학교 법사 얘긴데 부대 안에 있는 법당이니까 일반 신도들은 못 들
어오고 이 장병들을 중심으로 한 법회이었습니다. 육군으로 비교하는 논산 훈련소 같은 데입니다.
근데 벌써 첫 일요법회를 하는데 몇 명이 왔냐? 구십 명이 왔어요.
구십 명 많은 거예요. 근데 이 보국사 법당은 정말 넓고 큰 법당입니다.
정말 운동장같이 큰 법당인데 거기 딱 구십 명이 앉아 있는데 너무 썰렁한 거예요.
우와 너무 썰렁한 거예요. 그리고 보니까 옆에 성당은 한 삼백 명 정도 옆에 교회는 천 명이 넘게 온대요. 근데 우린 구십 명인 거
예요. 이제 그래서 아 그 어린 마음의 이십대 때 이 보국사 법당만 가득 찰 수 있다면은 부처님 법 들으러 오는 젊은이들이 가득 찰
수 있다면은 내가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다.
그런 마음을 당시에 했었습니다. 그리고 보니까 왜 그러면은 기독교 교회는 1천 명이 넘게 가고 성당에는 300명이 가고, 절에는
구십 명밖에 안 올까 분석을 해봐야 되잖아요. 그렇죠? 분석을 해보니까 첫째 간식이 질적으로 틀립니다. 공양 간식이 있죠? 우리
는 초코파이 두 개의 우유를 준비했어요. 우유 그도 큰 마음을 내가지고 초코파이 하나면 안 된다. 하나 더 해가지고 두 개를 준비
하자. 초코파이 두 개의 우유를 준비했는데 여러분 성당을 보니까 핫브레이크 자유시간 약간 고급 초코바예요.
이제 그 초코바의 샌드위치까지 있어요. 샌드위치 그런데 교회를 보니까 맥도날드, 롯데리아 버거킹 햄버거 아니면은 치킨 그리
고 피자 아유! 너무 차이나죠? 당연히 게임이 아니죠. 그렇죠? 두 번째는 법회를 하는데 저는 할 수 있는 게 목탁을 치면서 나름은
못 하는 법문이지만 야무지게 준비를 해가지고 좋은 말을 모아가지고 병사들한테 해주는 거예요. 이제 해주는데 이렇게 성당을
보니까 그리고 교회를 보니까 정말 그 신부님과 목사님들은 말을 잘하기 위해서 태어난 분들 같아요.
정말 말씀은 얼마나 설교를 잘하시는지 그래서 이제 그 당시 궁금해가지고 우리 군종병을 첩보원으로 보냈어요. 어떻게 뭘 하는
지 보고 오라고 그랬지. 갔다 오고 나니까 뭘 보고 느꼈느냐? 물어봤더니니까 노래를 부릅니다.
노래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서 태어난 사람” 아시죠? 그 노래가 있는데 노래에 보니까 목사님은 말을 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 노래
를 부르는 거예요. 애가 너무 말씀을 잘하셔가지고 깜짝 놀랐다는 거예요.
말씀도 보면은 이제 너무 잘하기만 하는 게 아니라 유창하게 막 영어까지 중간중간 섞어가면서 말씀을 하니까 되게 세련되고 고
급스러워 보이겠죠? 설교만 잘하시느냐 그게 아니라 성당에는 그 교구에서 파견된 수녀님들이 정말 엄마처럼 따뜻하게 장병들을
따뜻하게 안아주십니다.
그리고 또 차령단 정말 젊은 청년들이 화려한 복장을 하고 율동과 노래를 부르면서 분위기를 만들어야지. 교회는 어떠냐 교회 완
전 넘사벽입니다. 넘사벽. 교회는 인기 가수들이 와요.
아이돌 가수가 와요. 이제 하니까 뭐 비교할 수 있는 부분이 전혀 없잖아요. 그죠?
게임이 안 되는 거예요. 세 번째는 당시에 교육사령관님 그리고 기초군사 학교장님 그리고 영관장교 지휘관들 참모들 모든 분들
이 거의 대부분 다 기독교 신자입니다. 불자는 찾아보기가 힘들어요. 인제 그런데 그 많은 지휘관들이 정말 신앙심이 투철하세요.
그 신심이 진짜 하늘을 찌릅니다. 진짜 신앙심이 그러다 보니까 거의 뭐 반강제적으로 교회 성당으로 가게 합니다. 이제 몇 명도
안 되는 불자들은 제가 좀 도와달라고 이제 말씀을 드리면은 종교는 그렇게 강요하면 안 됩니다.
하면서 이제 원론적인 말씀들만 하시는 거예요.
당시 저는 돈도 없고 능력도 안 되고 설법도 못 하고 도와주는 지휘관도 없고 정말 너무 힘들었어요. 그리 힘들었는데 그들 딱 한
가지 세상에서 가장 강력하고 든든한 빽이, 바로 부처님 빽이다. 나의 기도는 반드시 성취된다. 기도는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드는
위대한 불사이다. 오직 간절하게 기도하는 것 정성을 다해서 기도하는 것 외에는 제가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었습니다. 그리고 열
심히 했는데 시간이 흘러가니까 조금씩 또 변화가 생깁니다.
백일기도, 백일기도, 백일기도 하다 보니까 하나하나 변하는 게 첫째 제가 바뀝니다.
기도를 통해서 정말 조급하고 조금은 경직돼 있는 듯한 느낌의 저였는데, 정말 여유롭고, 여여하고 밝은 마음으로 바뀐 겁니다.
이제 제가 바뀌니까 병사들이나 누가 봐도 법사님은 참 좋은 분인 거 같다.
인상도 좋고 친절하시고 착하시고 그러면서 조금씩 조금씩 관심을 가지면서 모여드는 겁니다. 두 번째는 흥국사에서 기도를 통해
서 초하루 법회 때 200명이 모이는 그런 법회를 만들다 보니까 절에 돈이 없었는데 돈이 생겨요.
보시금도 많이 내고 기도비도 많이 내고 공양비도 많이 내고 하니까 돈이 여유가 생기니까 뭘 할 수 있죠? 간식을 좋은 맛있는 거
로 준비할 수 있게 됐습니다.
그리고 또 열심히 기도하니까 어느 날 해군교육사령관으로 불자가 오시는 거예요. 불자가 오셨는데, 그냥 불자가 아니고 정말로
신심이 깊은 그런 불자님이 오셨습니다. 아주 훌륭한 불자님이었어요. 하다 보니까 그분은 강요하고 반강제적으로 법당에 오게끔
하는 게 아니어도 저분이 다니는 법당이 어떨지 궁금해서 많이들 오게 되는 겁니다.
2천500년 전에 부처님 제자 마승비구가 있었는데 그 마승비구가 여법하게 위의있게 걷고 행동하는 그 모습만 보고도 당시에 사
리불존자, 목련 존자가 부처님이 귀의하기 전입니다. 외도였는데 그 마승비구의 여법한 모습을 보고 완전 반한 겁니다. 이제 반해
가지고 본인들 제자 이백오십 명과 함께 부처님께 귀의를 했듯이 그 사령관님의 정말 불교로 얘기하면 여법하고 근엄하고 위의있
는 그 모습에 많은 불자들이 또 감화를 받아가지고 오게 되는 거예요. 그 또 결정적으로 중요했던 사건이 제가 흥국사에서 기도를
딱 저녁 기도를 하고 뒤돌아갔는데 정말로 아름다운 아릿다운 여성들이 네 분 계셨어요. 같이 인사를 하고 같이 대화를 하고 차를
마시게 됐는데 불교가 궁금하다 해가지고 차를 마시게 됐는데 얘기를 하다 보니까 그분들이 유명한 가수였어요. 가수 여성 댄스
그룹이었습니다. 인제 꽤 인기가 있는 지금도 이름을 말하면 다들 아는 그런 분들입니다.
그런 분들이었어요. 이제 그래서 제가 제발 좀 도와달라 여차여차하니 불교 전법을 위해서 당신들의 힘이 필요하다. 사정을 했더
니까, 한 달에 많을 때는 두 번, 적어도 최소한 한 번 이상 매주 일요일 날 보국사 일요 법회할 때 오셨던 거예요. 이제 오셔가지고
법회를 뭐야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추고 하는데 정말 너무나 신기한 게 그 친구들이 이제 그 진해의 행사가 있어 왔다가 차를 타고
가는 길이었는데 뭔가 목탁 소리와 염불 소리가 들려가지고 끌리듯이 끌려가지고 흥국사 사찰로 찾아왔던 겁니다.
근데 제가 당시에 마이크를 가지고 기도를 했던 것도 아니고 생목으로 기도를 했는데 절대로 그 길가 차 길가에서 제가 염불하는
소리가 들릴 수 있는 그런 거리가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뭐겠어요? 부처님이 부르신 거죠.
염불 소리와 목탁 소리를 듣고 정말 자석에 이끌리듯이 본인들 스스로 알아서 왔던 겁니다.
그렇게 이제 제가 열심히 기도를 하면서 조금씩 변화가 있었고 일 년이 지났습니다.
일 년 일 년이 지났는데 제가 처음 보국사 법당에서 이 법당이 가득 찰 수만 있다면은 내가 지금 이 자리에서 죽어도 여한이 없다
라고 발원했던 그 원력이 성취가 됐겠어요? 안 됐겠어요? 됐습니까? 일 년 후에 보국사 법회 법당에서 이제 법회를 하는데 천이
백 명이 모였어요. 천이백 명이 교회는 300명, 성당은 한 100여 명 정도 이제 왔던 겁니다.
그래서 제가 거기 있는 동안 그 이후에도 6개월 동안 계속 1천200명에서 많게는 1천500명 까지도 이 인원들을 유지하면서 포교
를 했던 그런 기억이 있습니다.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저는 설법을 잘하는 것도 아니고 염불을 잘하는 것도 아니고 뭐 하나 가진
게 없는 힘없는 법사였지만 정말 말 그대로 나에게는 반드시 성취된다는 그 믿음 하나 기도는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드는 위대한
불사에 달하는 그 마음 하나로 정진해서 그러한 성취가 있었음을 제가 이거 100% 진실입니다. 100% 확실한 얘기를 들려 드립니
다. 이렇게 군포교가 중요한 겁니다. 보면은 얼마 전에 상월결사 회주이신 자승 큰 스님께서 대학생 전법을 선언하시고 열심히 하
고 계시는데요. 대학생이든 어린이법회든 청년법회든 백 명을 모으기가 너무 힘들어요.
그죠? 조계사 같은 경우도 청년회 법회한다 해가지고 백 명 모으기가 정말 힘듭니다.
그런데 이 군불교 포교의 황금어장인 군 불교는 누구라도 저처럼 열심히 간절하게 정진하면서 전법을 하면은 백 명이 아니고 1천
명 이상도 훨씬 더 수월하게 포교를 할 수 있는 그런 황금어장이 바로 군 불교입니다.
이 군 불교를 중심으로 한 이 군종 특별교구가 여러 활동을 하시는데 많이 열악합니다.
지금도 기독교나 카톨릭의 정말 막강한 물질적 지원에 비해서 너무 부족해요. 재정적으로도 그렇고 이 군종 특별교구가 더 활성
화돼서 한국불교회의 미래인 청년들을 부처님 법으로 인도할 수 있게끔 여러분들이 더욱더 큰 원력과 마음으로 응원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저는 지금도 전국을 다니면서 군 법당 법회를 주관하고 있습니다. 단돈 1만 원도 보시를 받은 적이 없어요.
이 군 불교에서는 군종에서는 제 돈을 써가면서 정말 지방을 열심히 다니지만 너무나 행복합니다. 너무나 즐겁고 유쾌합니다. 이
렇게 군 불교에 우리가 전력을 쏟을 수 있는 이런 인연에 감사를 드립니다. 앞으로 우리가 이 불교를 포교할 때 짧게 한 말씀만 더
드릴게요. 정말 놀랐던 게 절을 열심히 다니고, 절에서 3,000배하고 철야기도 하고 봉사하고 매일 절에 오시는 분인데 제가 봤을
땐 대 보살님이죠 그렇죠? 그 거사님이 한 번도 절에 안 오세요. 늘 보살님을 같이 오더라도 절에 딱 내려주고 본인은 집으로 가십
니다. 이제 너무 이상해가지고 아니 거사님도 한 번 정도는 거 법회를 오시고, 기도도 한 번 같이 하시죠? 했더니까? 이 거사님이
하는 말이 그렇게 백날 절에를 다니면 뭐합니까?
우리 와이프는 천하 제일의 지랄배기입니다.
그래요 천하제일의 지랄배기를 하기 때문에 저는 자기는 절에 열심히 다녀도 아무 의미가 없다는 거라. 이제 뭔가 우리가 기도를
하고 정진을 하면서 본래 모습보다 조금씩 나아지고 변화하고 발전하고 탐욕심도 진노하는 마음도 어리석음도 뭔가 달라지는 모
습을 보여야지 나의 남편도 나의 아내도 우리 자식도 손주도 아 우리 할머니가 우리 부인이 절에 열심히 다니니까 저렇게 좋게 변
하는구나. 그래야 포교가 되지. 아무리 절에 가자고 또는 스님 전법이 좋다고 같이 이끌라고 해도 본인이 기도를 통해서 변화하지
않으면 그 기도의 어떤 포교 전법의 효과는 미미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죠? 그만큼 내가 스스로 변하는 게 중요하다.
우리가 지금 인도를 봐도 인도는 불교가 사라졌어요.
이렇게 우리가 나태하고 방일해지면은 앞으로 한국 불교도 먼 훗날 인도처럼 정말 박물관처럼 사적지처럼 관리가 되는 그런 상황
이 올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정말로 깨어 있는 불자로서 늘 정신 차리고 내 가족부터 포교하고 이 군 포교를 통해
가지고 청년들을 포교하는 그런 원력과 이 발원을 결단할 수 있도록 해야겠습니다. 알겠죠?
오늘 이 조계사 법회에 우리가 함께 모여가지고 부처님 법을 나누고 같이 탁마할 수 있는 그런 좋은 인연에 감사드리고 오늘 법회
에 동참하신 이차인연 공덕으로 제법 부처님의 가피가 충만할 수 있기를 다시 한번 간절히 기도하고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사진자료를 제공해 주신 진공 이호진 홍보부장님께 감사드립니다.)
부처님께서는 집착하지 않고 안주하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복덕이 그토록 크다는 것을 깨닫게 하려는 것입니다.
여기서 복덕은 바로 행복입니다. -( 금강경 제4분 )
[ 조계사불교대학 총동문회 자문위원 법연 이동엽 합장 ]
첫댓글 군불교에 관해 전법하는 길을 알려 주셔서 대단히 감사드립니다.~
종원 스님! 항상 건강 유의하세요.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