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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바른 교육
글/송악
금년에도 대입수학능력고사가 끝났다.
대학진학을 위해 먼 길을 달려온 수험생과 학부모들의 노력과 고생에 위로와 응원의 박수를 보내면서 모두 땀 흘린 만큼 좋은 결과가 있기를 바란다.
그러나 본격적 입시전은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수시합격을 했거나 특별한 전형으로 입학이 확정된 일부 수험생을 제외하고는 각종 전형을 찾아가며 입학의 문을 두드리는 힘겨운 여정을 해야 한다.
60여만 명의 수험생들 중 본인의 성적이 어느 만큼의 위치인가를 가늠하고 어느 학교 어느 학과를 지원할 것인가 자신에게 유리하게 적용되는 학교 학과는 어디인가 지원율은 어느 정도인가 치열한 눈치작전까지 펴가며 주어진 카드를 사용해야 하는 것이다.
정권이 바뀔 때 마다 교육의 수장에 따라 바뀌고 변화해오는 대학입학의 방식은 일선 진학담당 선생님들도 헷갈려 할 만큼 복잡하고 다양한 미로 속을 헤쳐 가는 길이다.
딸 둘에 아들 하나, 그 중에 둘을 재수를 시켜서 대학을 보냈으니 터득이 되었다고나 할까, 각 대학의 인기서열과 인기학과와 배치표, 소위 명문이라는 입시학원들과 인기강사, 진학안내 사이트들까지 웬만큼은 알게 되었다.
사는 것이 점점 더 팍팍해지기만 하는 헬조선에서 천만 다행으로 흙수저를 물고 태어났으나 굶지는 않을 듯해 위안을 삼고 있는데 큰 악재를 만났다.
사범대학에 입학해서 교육자의 뜻을 품고 역사교육학을 전공하는 막내가 이제 막 1학년의 2학기를 수강중인데 박근혜대통령께서 교육에 깊은 관심을 보이사 친히 교과서 국정화란 칼을 빼어 드신 것이다.
먼저 역사교과서부터 1년 내에 뚝딱 해 치워버리겠다는데 참으로 대단한 발상이다.
현행 8종의 검인증교과서를 모두 폐지해버리고 박근혜식 혼을 담은 국정의 단일교과서로, 전국의 국공사립 모든 중고등학교의 선생님들과 학생들의 다양한 시각들을 한곳으로 통일시켜 총화단결을 모색하고자 하는 것이 대통령의 교육정신 박근혜이즘이라는 것이다.
역사 이래 누구도 정답을 규정하지 못하는 역사적 사건들을 간단명료하게 정의해버리겠다는 멘탈이 불가사의하다.
못다 이룬 유신과업 박정희대통령의 독재정신을 계승하고자 역사까지 되돌리려는 효심의 의지가 놀랍고, 국정화에 반대하는 국민들을 사상몰이 하는 통치이념이 두렵다.
반대하는 대다수 일선 중고등학교 선생님들을 좌편향으로 몰아버리고, 명망 있는 학자들을 배제하고 비밀스런 T/F로 추진하는 국정교과서는 둔감한 내 촉에도 친일과 독재를 미화시키려는 저의가 훤히 보인다.
지난 11월 14일, 학우들과 총궐기대회에 참석했던 아들이 자괴감에 빠져 있다.
10만 군중의 일원이 되어 대학로에서 광화문까지 행진을 했던 것인데, 경찰의 차벽에 막히고 물대포에 얻어맞고 어용언론들로 부터는 폭도로 매도당하고 심지어 친북세력 소리까지 듣게 되니 암울한 벽을 절감하는 모양이다.
아들은 학교 선생님의 역할이 학생들에게 스스로 합리적 결론을 도출해 내는 능력을 길러주고 지성을 갖춤에 조력자가 되고 싶은 것이지 정권이 고정해 놓은 교과내용을 암기시키는 지식의 전달자에 한정된다면 도저히 교육자로서 양심이 허락지 않겠다는 것이다.
11월 14일 제1차 총시위집회/사진출처 머니투데이
그렇다고 비관만 하지 말고 더욱 열심히 학문을 닦으라고 충고 해 주었다.
북한 몽골 베트남 캄보디아등 극히 일부 나라에서만 시행하는 국정교과서의 생명이 얼마나 가겠는가.
역사는 무한하고 정권은 한시적인 것이요 도도한 역사의 물줄기는 어떤 폭군도 독재자도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이 역사의 가르침이 아니더냐.
교육에 관한 문제만큼은 정치 색깔을 뛰어 넘어 영남지방에서도 진보성향의 교육감들이 선출되었고, 학생들의 무상급식을 반대하는 홍준표 경남지사는 주민소환의 위기에 처해 있는 것을 보지 않느냐.
콘크리트 지지층에 속한다는 내 고향과 주변의 60대를 전후하는 지인들, 경상도 헤게모니를 벗어나지 못하던 그런 분들도 친일과 독재의 미화에는 등을 돌리고 있으니 이런 것이 바로 의식화의 효과가 아니겠느냐.
대다수 교수님들이 국정교과서 집필을 거부하고, 일선의 대다수 선생님들이 가르치기를 반대하고 대다수의 학생들이 배우기를 거부하는 국정역사교과서는 절대로 오래 가지 않을 것이다.
결코 정권에 굴하지 않는 훌륭한 선배선생님들이 있으니 역사 교육학도로서의 자긍심을 가지고 더욱 열심히 공부하고 정진하라.
'교과서 국정화 반대'1인 시위를 하는 거창고등하교 신용균선생님
사진출처/시사인
예견을 했던 것일까? 경원사 소식지 지난 10월호에 효림스님의 교육의 중요성에 관한 법문이 실려 있어 몇 줄을 축략하여 새겨 옮기며 공부로 삼는다.
효림스님 법문에서
문: 몇 주 전에 하신 금강경강의로 기억합니다. 그 때 스님께서는 브라질 교육자 파울루 프레이리의 교육론을 비유로 들어, 교육이란 단순히 앎을 충족시켜 주고 글을 읽을 줄 알게 하는 것이 아니라, 교육의 목적은 의식화(意識化)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시면서 자기가 아는 것이 세상의 지식의 전부라고 믿는 사람은 차라리 아무것도 모르는 무지한 사람보다 더 위험하다고 하셨습니다. 자기 지식에 대한 확신주의자는 세상을 불안하게 하는 위험한 사람이라고도 하셨습니다. 당시에 스님의 말씀을 들을 때는 신선한 충격과 함께 매우 고무되고 감동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다시 한 번 스님의 자세한 설명과 그 의미를 듣고자 합니다. 의식화 교육의 의미를 잘 가르쳐 주십시오.
스님: 많이 부족한 강의를 열심히 들어 주시니 감사합니다. 이번 금강경 강의에는 듣는 사람들이 좀 많아져서 나도 기분이 좋습니다. 다음번에는 역사 인물들의 삶을 돌아보는 강의를 하려고 합니다.
......중략......
말씀하신 의식화 교육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고대부터 인간은 문명을 시작하면서 교육을 했습니다. 아니 어쩌면 교육은 인간이 지구상에 나타나면서부터 시작된 것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특히 모든 포유동물들은 자기 새끼에게 교육을 시킵니다. 교육받지 않아도 알고 하는 본능적인 것도 있지만 환경에 적응하고 야생으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교육을 받아야 합니다. 그런 차원에서 사람도 원시시대를 살아올 때 부터 자기 새끼에게 교육을 시켰습니다.
우리가 누리고 있는 모든 문명은 이런 교육의 성과입니다.
인간은 문명사회로 갈수록 교육의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더 질이 높은 교육을 자기 자녀들에게 시킬 것인가 하는 경쟁을 합니다. 왜냐면 질이 높은 교육을 받은 사람이 결국 더 질이 높은 삶을 살아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선진국은 좋은 교육을 시키는 나라들이고, 그 교육의 질이 나라를 선진화 합니다.
그만큼 교육은 중요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명문대학을 나오고 아무리 많은 지식을 습득해도 의식화 교육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단순 지식인에 불과합니다. 지성인이 못되는 것이지요.
교육에는 일반 사람들이 잘 알지 못하는 비밀스런 코드가 숨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즉 노예라는 제도가 있는 시절에는 노예에게도 교육을 시킵니다. 무슨 교육이냐? 노예로 살아가도록 하는 교육을 시키는 것입니다. 여성에게는 여성으로 살아가는 교육을 시키고 남자에게는 남자로 살아가는 교육을 시키지요. 귀족은 귀족으로 살아가는 교육 장차 왕이 될 사람에게는 왕이 될 교육을 시킵니다. 이렇게 교육을 통하여 형성된 가치관과 세계관으로 세상을 살아갑니다. 다시 말해서 노예로 살아가도록 교육받은 사람에게 자유인으로 살아가는 것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반대로 자유인으로 교육받은 사람에게 노예로 살아가라고 하면 목숨을 걸고 저항을 합니다. 부당한 권력에 착취당하고 억압받고 탄압을 당하면서도 저항 할 줄 모르는 것은 그렇게 순종하도록 교육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자유는 저항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란 교육을 받은 자유인에게는 착취와 탄압을 하지 못합니다. 저항이 두렵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권력으로 사람들을 장악하려고 하는 독재자는 순종이 미덕이라고 하는 교육을 시키고, 자유가 귀중한 가치인 것을 아는 사람들은 저항이 권리임을 알게 하는 교육을 시킵니다.
이런 사실을 알고 눈을 뜨게 되면 우리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세뇌당하고, 그렇게 세뇌당한 상태로 세상을 살았었다는 것도 압니다.
그러나 세뇌당한 그것들이 절대적으로 옳은 것으로 알게 되어버리면 그냥 아는 것이 아니라 아주 확신을 하고 믿게 되는 것입니다.
가령 조선시대에는 여인에게 삼종지교를 가르치고 정절을 가르칩니다. 그러면 그것이 절대적인 가치로 생각하고, 그것을 지키기 위해서 목숨도 바칩니다. 여자가 시집을 가서 어린 나이에 신랑이 죽어 청상이 되어도 일생을 성직자처럼 수절하고 시댁에서 일만하고 살다가 죽습니다. 자기의 일생을 송두리째 착취를 당하고도 깨닫지를 못하니, 최고로 가치 있는 삶을 살았다고 생각합니다. 바로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세뇌교육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시대가 변하니까 오늘날에는 그따위 것을 절대적인 가치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잘못된 악습이란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모두 교육 탓입니다. 따라서 오늘날에 우리가 최고의 가치로 알고 살아가는 것들 중에도 훗날 새로운 가치관으로 보면 왜곡되고 잘못 인식 되었었다는 것들이 분명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의식화 교육이라는 것은 그냥 단순하게 지식을 배우는 것이 아니고, 자기가 배운 지식을 보다 과학적이며 객관적인 입장에서 해석하고 분석하는 능력을 가지는 것입니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생각할 줄 아는 교육을 말하는 것입니다. 합리적이지 못한 교육에 대하여 이것은 이치에 맞지 않고 합리적이지 않다는 것을 스스로 깨닫도록 하는 것이지요. 그러니 교육이 얼마나 좋은 것입니까. 사람은 매우 복잡한 것을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하지만 반면에 한 번 이것이 옳다고 생각했던 것을 좀처럼 바꾸지 않으려는 습성도 있습니다. 자기 지식을 고정화시키는 것이지요.
왕조시대뿐만 아니라 오늘날에도 정치권력은 끝없이 국민들을 세뇌시키려 듭니다. 권력중에서도 자신들이 지향하는 방향을 지지하고 추구하도록 교육시키려 합니다. 그래서 초등학교나 중고등학교에서 교육 받은 것은 일생 동안 그 사람의 의식으로 지배합니다.
후에 누가 아무리 옳은 것을 가르쳐주어도 그 것을 믿지 않습니다. 참 딱한 일이지요.
특히 종교적인 가르침은 더욱 더 그러합니다. 한 번 자기가 믿게 된 종교의 세계관은 고정된 관념으로 머리에 박혀 버립니다. 그리고 좀처럼 고치지를 못합니다.
세상이 발전하고 과학이 발전하여 교리의 내용이 허구임이 밝혀져도 비합리적 사고를 버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중략................
끝으로 다시 한 번 말씀드립니다. 자기가 알고 있는 것에 대한 고정된 인식을 버리세요. 스스로도 모든 것을 비우고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생각을 다시 하세요. 이것이 올바른 교육이요 의식화 교육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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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어찌까요.
옆에서 보시기가 많이 힘드시겠어요.
막 교사의 꿈을 꾸는 학생으로서도 자괴감이 드는데, 반대하는 약 90%의 일선 학교의 선생님들은 모욕감을 느낀다고 합니다. 교사의 자율적인 교재 편성권이나 편성 능력을 불신하고 말단 관료 취급하면서 권력으로 통제하겠다는 정부의 오만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