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7차 53선지식 및 명찰순례단 불국사,석굴암 후기 2018년 1월14일
무술년(戊戌年) 황구(黃狗) 황금개띠의 새해를 맞이하여 본단 첫 순례에 동참 법우님! 시방삼세에 두루 계시는 불,보살님의 자비광명으로 원력(願力)이 있는 곳에 가피가 따르듯 일념으로 지극정성 기도(祈禱) 하시면 불가사의한 기적이 일어나 소원성취와 재난을 면하게 되는 공덕(功德)을 받게 된다 하였으니 올 해에도 법우님 가정에 만사형통 소원성취 이루시기를 기원 드립니다.
2011년 1월 흰 눈이 쌓인 불국사,석굴암,기림사를 탐방하였는데 불국사에서 금강경 독송 외우시는 한석봉 선배님의 사찰해설을 들으며 순례를 다녀온지 7년만의 경주지역 순례 입니다.
문화재 관리 사정에 의하여 석굴암 입장 불가와 불국사는 법회장소 사용 불가로 일정이 변경됨에 법우님의 양해를 바라오며 기림사 천불전 108대참회 기도법회를 마치고 공양 후 불국사관람 경주지역 월정교와 교동 한옥마을 문화탐방으로 진행 하였습니다.
기림사(祇林寺)는 불국사 다음으로 경주지역에서는 큰 사찰이며, 석굴암과 문무대왕 수중릉과 삼각형을 이루는 명찰로써 천축국에서 오신 스님이 창건하여 임정사라 불리다 서기643년 선덕여왕12년 원효스님에 의해 크게 중창되어 기림사라 불렀다 한다.
기림사란 인도 기원정사의 이름(名)에서 딴것으로 기림(祇林)이란 기원정사의 숲이란 뜻이다.
조선 25대 철종 때 화재로 소실(燒失)되어 경주 부윤 송정화님의 중건으로 지금에 이르며, 왜구를 막기 위한 화랑(花郞)들의 야전사령부였다 한다.
이 절에는 오정수라는 우물이 유명하며 특히 장군수(將軍水)는 마시면 힘이 용솟음친다는 설이 있는데 조선 어느 때인지 이곳에서 역모를 하다 발각되어 나라에서 메웠다고 한다. 경내에는 보물 415호 건칠보살 좌상이 있다 하였다.
불국사(佛國寺)는 11교구본사로 구름을 먹고 토(吐)한다는 토함산 기슭에 자리, 불국사고금창기에 “신라 법흥왕 15년 528년에 왕모 영제 부인의 발원으로 지어졌고, 574년에 진흥왕의 어머니인 지소 부인이 중건하면서 비로자나불과 아미타불을 주조해 봉안하였고, 문무왕 10년 670년에는 무설전(無說殿)을 새로 지어 이곳에서 화엄경(華嚴經)을 가르쳤다”고 한다.
오늘날 불국사의 상징물로 알려진 국보석탑(석가탑·다보탑)이나 석교 등의 축조를 포함한 대규모 중창불사는 신라의 宰相 김대성 公에 의해서 이루어졌다고 한다.
삼국유사 권제5효선9 대성효(孝) 二世父母에 김대성을 신라 신문왕 때, 혹은 경덕왕 때의 사람이라고 기록하였으나, 오늘날에는 경덕왕 때의 사람이며 불국사의 창건(創建)도 경덕왕 10년의 일로 보고 있다.
三國遺事에는 十二緣起 불교의 윤회설에 따라 김대성 자신의 前生의 부모(父母)님을 위해 석굴암(석불사)를, 現生의 부모(父母)님을 섬긴다는 뜻에서 불국사를 창건하였다 한다.
1593년 壬辰倭亂 때 병사들이 무기를 지장전 벽 사이에 숨겼던 것을 왜병들이 발견 예쁜 꽃 속에 독벌레가 들어 있다하여 여러 명을 밟아 죽이고 사찰 전체를 불살라 남은 것은 석조물뿐이었는데 임진왜란 후 45년이 지나 여러 스님께서 복원을 하였으나 미진하여 1970년 고 박정희 대통령의 발원(發願)으로 1973년 대역사를 이루어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흰 구름과 푸른 구름의(백운교,청운교)다리계단을 오르면 보랏빛 안개가 가득한 자하문이 있는데, 이를 지나면 거룩한 부처님의 모습이 보이는 부처님 나라에 들어가게 되는 경내(境內)에 위로는 석단과 석교로 높여 부처님 나라 불국토(佛國土)요, 아래로는 범부세계를 나타내는 음양의 이치로, 누구든지 수도(修道)를 통해 불국세계에 이르기 위해 33계단의 석교를 통(通)하지 않고는 불국토에 이르기 불가능하다는 설(說)이 있습니다.
삼국유사(三國遺事)에서 서기756년 경덕왕 때 재상 김대성의 전설(傳說)은 모량리에 경조라는 가난한 여인과 아들 한명이 살고 있었는데 이마가 넓어 성(城)과 같았으므로 대성이라 불렀다 한다.
대성은 집이 가난하여 부자집에 머슴으로 일 해 받은 조그만 밭으로 겨우 생활을 연명하던 중 흥륜사 점괘스님이 복안이라는 부자집에 시주(施主)를 받아가면서 “한(一) 가지를 베풀면 만(萬)가지를 얻을 것이고 안락(安樂)하며 장수(長壽)하리라” 이 말을 듣고 집에 와 어머니께 머슴살이로 받은 밭(田)을 시주하여 우리도 만배(萬倍)를 얻어 가난을 면(免)해 보자고 하니 어머니도 쾌히 승낙(承諾)하시어 스님에게 보시(報施)하였다.
그 후 얼마안가 대성이가 죽었는데 신라 재상 김문량의 집 하늘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모량리 김대성이 죽어 너의 집에 환생(還生)하리라” 하여 대성의 죽음을 확인(確認) 하였다 한다.
그날 김문량의 아내가 임신(妊娠)하여 아기를 낳았는데 왼손을 펴지 않다 7일 만에 펴는데 대성이란 글자가 새겨져 있는 것을 쥐고 있어 그대로 이름을 짓고 전생(前生)의 어머니도 데려와 함께 살게 하였다 한다.
현세(現世)의 부모를 위해 불국사를 크게 짓고 전생(前生)에 부모를 위해 석굴사를 세워 한 몸으로 두 세상의 부모님에게 효도(孝道)한 대성은 보시의 공덕(功德)을 크게 받았으며, 불국사를 경덕왕(서기751년)에 시작하여 혜공왕(서기774년)까지 佛事를 다 끝내지 못하고 대성 공(公)이 죽자 국가에서 이 일을 완성(完成)시켰다 합니다.
대웅전 앞처마에 목조각 돼지 한 마리와 극락전 현판 뒤에 목조각하여 놓았는데 이를 복돼지라 칭하며 올려다 보고, 황동돼지는 앞뜰에 설치해 놓았다.
석굴로 토함산 해발745m이며 불국사에서 8.2km에 있는 석굴암은 국보 제24호이며 서기7541년 35대 경덕왕10년 불국사를 중창하신 김대성공(公)이 만들었다 하며 처음에는 석굴사라 불렀고 조선시절(서기1714년)에 석굴암이라 고쳐 불렀으며, 태조 이성계의 3대정책의 하나인 배불정책(排佛政策)으로 인하여 잊어버리고 있다가 1900년이후 어느 우편배달부로 인해 다시 알려지게 되어 동양 3대석불이며 뛰어난 예술을 자랑하는 토함산 정상의 석굴암은 일본 식민지시절에 일본인들이 보수 원형으로 보존하지 못하고 오늘날 까지 수차례 보수하여 보존하고 있으며, 김대성공이 전생 부모님을 위하고, 외적(外敵)을 부처님 힘(佛力)으로 막기 위하여 토함산 정상에 신라의 꿈과 이상, 정열을 한군데 집결시켜 만든 신라시대 걸작품(傑作品) 석굴암을 들리지 못한 아쉬움을 뒤로 하고 문화탐방으로 월정교는 공사 마무리가 덜되어 멀리서 보았고 교동 교촌한옥 마을과 향교, 최부자 집을 둘러 보았다.
경주崔富者집은 임진왜란때 의병장(義兵將)으로 큰 전공(戰功)을 세운 정무공 최진립에서 시작되어 12代 걸쳐 부(富)를 일군 집안이다.
3대 부자 없고 3대 가난 없다 “부자는 3대를 못간다” 했는데 10대이상에 걸쳐 부(富)를 이어온 최씨 가문은 경주 지방에서 처음 가문(家門)을 일으킨 최진립에서 광복 직후 전 재산을 바쳐 대구대학과 청구대학을 설립한 최준에 이르기까지, 현대인이 부를 모으고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권력과 재산만을 가질 것과 지나친 욕심은 오히려 화(禍)가 될 수 있음을 경계하는 ‘윤리경영’을 앞서 실천한 최씨 가문의 가훈과 처세육연이 오늘날까지 귀감이 되고 있다.
경주(慶州)최(崔)부자집 육훈(六訓)
-과거(科擧)를 보되 진사 이상 벼슬을 하지마라.
-재산 만석(萬石) 이상은 사회에 환원하라.
-흉년기(凶年期)에는 땅을 늘리지 말라.
-과객(過客)을 후(厚)하게 대접하라.
-주변(四方)100리 안에 굶는 사람이 없게 하라.
-시집 온 며느리들은 3년간 무명옷을 입어라.
회향 차중예불을 마치고 행운권 추첨에서 지난해 12월31일 범공국장이 갓바위에서 3000배 기도 후 촬영한 최고의 선물 약사여래 부처님액자는 1호차에 49학번 무량지 임성조, 2호차에 51학번 해수월 김정희 법우님이 당첨되어 모셔가는 행운을 얻었다.
신묘장구대다라니 7독을 독송(讀誦)하고 새해 첫 순례에 저녁 공양을 휴게소에서 우동을 먹고 늦게 나마 47학번 야 회장 삼덕행 신군자 선배님 오늘 생신(生辰)을 알고 버스에서 생일축하 노래와 건강과 행복이 함께 하시라고 박수를 보내었다.
순례 거리가 가까워 일찍 도착 다음 만날 때까지 안녕을 기약하며 헤어졌다.
대만 불광산의 성운대사님은 “위아래 대중이 구분 없이 함께 기뻐하고 함께 수고하고자 하면서 마음이 평온할 수 있다면 그 어디에 거리낄 것이 있겠는가?” 승속 제자들에게 “비교하려 들지 말고 따지려 들지 말라”하고 “사람들과의 시시비비를 마음에 두지 않으면 평온하게 지낼 수 있다”고 자주 일러주고 있습니다.
모든 수행자들을 격려하고자 쓴 ‘십수가(十修歌)’는 나중에 점차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진 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십수가(十修歌) 佛光寺 성운(星雲)대사 글
∘一修人我不計較(일수인아불계교):남들과 따지지 않는 것이 첫 번째 수행이고,
∘二修彼此不比較(이수피차불비교):서로 비교하지 않는 것이 두 번째 수행이고,
∘三修處事有禮貌(삼수처사유예모):매사 예의를 지키는 것이 세 번째 수행이고,
∘四修見人要微笑(사수견인요미소):사람을 보면 미소를 띠는 것이 네 번째 수행이고,
∘五修吃虧不要緊(오수흘휴불요긴):손해를 보더라도 개의치 않는 것이 다섯 번째 수행이고,
∘六修待人要厚道(육수대인요후도):남에게 관대하게 대하는 것이 여섯 번째 수행이고,
∘七修心內無煩惱(칠수내심무번뇌):마음속에 번뇌가 없는 것이 일곱 번째 수행이고,
∘八修口中多說好(팔수구중다설호):좋은 말을 많이 하는 것이 여덟 번째 수행이고,
∘九修所交皆君子(구수소교개군자):교류는 군자들과 하는 것이 아홉 번째 수행이고,
∘十修大家成佛道(십수대가성불도):모두들 불도를 이루게 하는 것이 열 번째 수행이다. 若是人人能十修(약시인인능십수) 佛國淨土樂逍遙(불국정토락소요):누구든 이 열 가지를 수행(修行)할 수 있다면 불국정토에서 유유자적 즐길 것이다.
(혼자 알기에는 너무나도 소중한 글이라 적광 강지호님께 부탁하여 올려 봅니다.)
※ 53선지식 명찰순례단 2017년도 현황.(참고로 알고 계시라고 적어봅니다)
1월달은 전직 임원님의 3년동안 노고에 감사(感事)의 선물지급이 있었고, 순례 시 사찰에서 공양 제공이 되지 않을 때 외부 식사대 지출 및 12월은 53완주패 및 개근, 정근시상 등 과다한 지출이 발생하여 연중 4개월은 적자운영, 2개월은 0에 가까웠으며, 6개월은 흑자로 연중571명 동참 법우님과 임원들께서 소중한 보시로 총결산시 흑자운영을 하게 되었습니다.
매월 상세하고 투명하게 올리는 결산보고서 내용을 참조하시기 바라며 동참 법우님의 소중한 보시로 오늘날까지 본 단의 발전과 보유액은 동참 법우님과 임원님들의 성원에 의한 소중한 보시로 마련되었으므로 동참 법우님께서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본단 운영에 신중을 기해 공금을 쓰도록 노력 하겠습니다.
- 나 자신을 안다는 것 -
나의 설자리를 알고, 나의 갈 길을 알고
나의 분수를 알고, 나의 實力을 알고
나의 형편과 처지를 알고, 나의 本分과 責任을
제대로 아는 것이다.
나 自身을 제대로 아는 것은 天下를 알고 얻는 만큼 어렵다 하였습니다.
이 세상에 가장 존귀한 존재는 自己自身 입니다.
나 자신을 찾아 나서는 53명찰순례 求道行覺 수행정진으로 悟道能覺의 智慧로운 佛弟子가 되어 부처님 곁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다가 갑시다.
존경하옵는 동참 법우님 감사합니다. 2018. 1.17. 우담 이 경태 合掌
첫댓글 감사합니다.
우담단장님의 상세하고 정성이 깃든 후기글 보며 기림사 불국사 한옥마을최부자댁 성운대사 좋은글 귀감이되는 많은글월 감사합니다 ~~
늘 부처님자비광명이 함께하시옵소서~^♡^
우담단장님 신라의 불교가 살아 숨쉬는것 같습니다 후기글 수고하셨습니다
수고 했습니다.
후기 잘 보았습니다.
수고 많았습니다..
수고많으셨습니다 단장님